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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4대 착각.부모와 자식의 차이.남 탓하는 인생

경호... 2012. 7. 1. 11:52

4대 착각

 

부처께서 말씀하신 3대 착각이 있다. 내

가 오래 산다는 착각, 내 말이 다 옳다는 착각, 남들이 다 나를 좋아한다는 착각이다. 얼마 전 구명시식을 한 뒤 3대 착각에 한 가지 착각을 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항상 잘 해줬다는 착각이다.

A씨에게는 친아들 같은 부하직원 B가 있었다. A씨는 부모 없는 B를 위해 대학 등록금까지 지원했고 졸업 후 자기 회사에 취직시켜줬다. 남들이 뭐라 해도 B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었다. “아들보다 더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걔만은 배신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B는 회사에서 많은 아이템을 개발했고 덕분에 회사도 크게 성장했다. 영원히 부하직원으로 남을 것 같았던 B는 몇 년 후 회사를 그만두고 중소기업을 차려 독립했다. A씨와 비슷한 업종이었다. 게다가 몇몇 직원들까지 데리고 나가버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였다. 아들 같은 B에게 배신당한 A씨는 마음의 상처가 컸다. 그래도 B의 회사가 잘 되기를 바랬다. 그런데 얼마 후 더욱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B가 동업자인 친구와 짜고 A씨 회사의 중요문서를 훔친 뒤 거액을 주지 않으면 기밀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한 것이었다.

인연이 악연이 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경찰에 체포된 B는 교도소에서 형을 살게 됐다. A씨는 B를 교도소에 보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출소하면 다시 잘해보고 싶었습니다. 능력도 있고 머리도 좋은 아이였거든요.” 그러나 B는 출소 후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A씨는 B를 위해 구명시식을 청했다. 내내 눈물을 흘리며 “정말 아들처럼 잘해줬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제3자인 내가 들어도 A씨는 인생의 은인이었다. 그런데 막상 구명시식을 시작하자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신이 아버지처럼 잘해줬다고요? 내게 얼마나 인색했는지 아십니까?”

 

B영가는 A씨를 보자마자 분노를 쏟아냈다. 영가 말로는 A씨는 지갑을 열 때마다 온갖 생색을 다 냈다고 한다. 그래도 B는 충성을 다 했다. 회사에 있는 동안 아이템을 개발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지만 항상 ‘너는 내 아들이나 다름없다’며 보너스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줬으니 회사에서 따로 보너스를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진급도 안 되고 월급도 그대로였다. 보너스도 없었다. 결국 B는 회사를 그만 두고 동종업계의 중소기업을 차렸다.

“저는 아버지 같다고 하시니까 도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천만의 말씀이었습니다.”

 

오히려 A씨는 B가 자신을 배신했다면서 거래처를 철저하게 끊어놓고 말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B는 할 수 없이 문서를 훔쳐 A씨를 협박하게 된 것이었다.

“왜 잘해준 것만 말씀하시고 제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노력한 만큼 이익을 돌려달라고 했을 뿐인데 저를 교도소까지 보내시다니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B영가는 구명시식 내내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사람은 남에게 잘 해준 것만 기억한다. 그러나 항상 남의 말도 들어봐야 한다. 내가 베푼 은혜가 당사자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A씨는 B영가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네 가슴을 많이 아프게 했다. 용서해다오.”

마흔의 짧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B영가는 그제야 마음을 풀고 영계로 돌아갔다.

 

 

 

[차길진의 갓모닝] 78.

신입생 특강

 

얼마 전 서울 S대학에서 신입생 특강을 했다. 명당 중 명당에 위치한 그 대학엔 일종의 징크스가 있었다. 그 대학 관계자는 "우리 학교에 대선을 앞두고 3월 신입생 특강을 하신 분들은 모두 대통령이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DJ·노무현 대통령·MB까지 대선이 있는 해 3월에 S대에서 신입생 특강을 한 뒤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혹시 법사님께서 대통령 선거에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그의 농담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덕분에 다소 긴장했던 마음도 풀려 무사히 신입생 특강 단상에 오를 수 있었다. 강의실에 모인 신입생들은 영어 'Freshmen'이란 말처럼 그야말로 젊고 활기찼다.

나는 그 자리에서 '김치와 효도'에 대해 강의했다. 김치가 되기 위해서는 다섯 번을 죽어야 한다.

배추가 뽑힐 때 죽고, 칼로 다듬을 때 죽고, 소금에 절일 때 죽고, 양념에 무칠 때 죽고, 마지막으로 김장독에 묻힐 때 죽는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다섯 번 죽어도 금방 먹지 않고 푹 발효시킨 뒤에야 김치는 상에 올라간다. 겉절이같이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한 김치도 있다. 양념과 재료는 비슷하지만 설익은 맛에 먹는 겉절이는 신선하지만 김치처럼 깊은 맛은 없다.

일본은 김치의 맛에 반해 오래 전부터 '기무치'를 만들어왔다. 김치 해물찌개·김치 포테이토칩에 이제는 한글로 '김치'라고 표기된 컵라면까지 팔고 있다. 하지만 '기무치'는 절대 김치의 참맛을 낼 수 없다.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마늘과 젓갈을 뺐기 때문이다.

효도도 마찬가지다. 한국 고유의 김치맛처럼 효도에는 한국인만의 감정이 들어있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낳은 정, 기른 정을 보답하려는 마음이 들어있다. 일본에도 윗사람을 공경하는 말이 있다. 바로 '충(忠)'이다. 충(忠)의 문화에는 넙죽 절하기, 머리 위로 떠받들어 상을 올리기 등 극존경의 자세가 포함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일본인들은 가족 내에서 충(忠)하진 않는다. 효(孝)의 개념도 없을뿐더러 그들에게 효와 비슷한 충(忠)의 대상은 스승·고용주·성주·천황뿐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충(忠)의 모습은 직장 정도다. 그마저도 희미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우리의 효(孝)도 예전보다 퇴색되었다.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막말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길가는 노인을 때리는 등의 패악적인 사건이 발생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효도문화는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한 구명시식을 올리는 수많은 한국인을 만나온 나로서, 한국인의 심성 저 밑바닥을 움직이고 있는 가장 큰 원리는 효도라고 생각한다. 효도를 못해 한이 되고 효도를 더 하고 싶어 부모님의 장수를 기원한다.

부자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부모와 조상을 끔찍이 위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와 조상을 위하면 위할수록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이야말로 20대 젊은이들이 갖춰야할 미덕이다. 부모에게 잘해야 사회에 성공하며 인생을 잘 살 수 있다. 3월, 오랜만에 대학교정을 거닐며 신입생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차길진의 갓모닝] 75.

부모와 자식의 차이

 

요즘 캥거루족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서른이 넘어도 여전히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젊은이들을 말한다. 사실 캥거루족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지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자식들 얘기를 하면 80%는 아직도 자식에게 생활비를 보낸다고 한다. 이미 자식은 결혼해 자식까지 낳았지만 부모에게 생활비를 보내드리기는커녕 거꾸로 부모에게 용돈을 받듯이 생활비를 받는다.

 

"애들 유치원비는 얼마나 비싼 줄 아세요? 자식들 월급으로는 절대 손주를 키울 수 없어요."

아이를 키우는 3대요소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과 운전실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덕분에 할아버지·할머니가 된 우리 세대는 이중으로 고초를 당하고 있다. 젊어서는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50대인 A씨는 효자로 소문이 자자했다. 맞벌이 부부인지라 가계수입도 꽤 높았다. 하지만 A씨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중풍으로 4년째 요양소에 계시고 아버지는 살짝 치매가 오는 바람에 부모님 병원비로만 한 달에 300만 원 가까이 나간다.

게다가 자식들 교육비도 상상을 초월했다. 대학등록금에 유학을 준비하는 자식을 위해 적금을 하나 들다보니 월급날만 되면 카드값 걱정에 한숨만 쉰다고.

"저희 집은 오남매입니다. 그 중 저만 부모님을 모시고 있어요. 왜 다른 형제들은 전혀 도와주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A씨의 고충은 백번 이해됐다. 그러나 부모는 40년이 넘도록 자식을 보호해주는데 자식은 10년 남짓 부모의 병구완을 했다고 모든 슬픔을 다 짊어진 사람처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만 자식은 단 10년도 부모를 위해 희생하기 힘들어한다. 이것이 부모와 자식의 결정적 차이다. 자식은 오랜 시간 부모로부터 받는데 익숙해졌고 항상 더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면서도 부모를 봉양하거나 모시기는 꺼린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평생 채무자·채권자라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은 죽을 때 신세지지 않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다거나 중환이 생기면 아무리 짧은 시간 아프더라도 자식을 고생시킨다. 그 고생마저 시키지 않으려고 보험에 들고 부지런히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그런 부모의 노력은 자식이 부모의 나이가 되어봐야만 안다. 부모가 걸어온 길을 똑같이 걸어봐야 비로소 부모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으며 많은 것을 줬는지 깨닫게 된다. 매번 백일기도를 올릴 때마다 후암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효도하려는 자식들의 기도가 줄을 잇는다.

하지만 그들도 모르는 것이 있다. 살아생전 뿐 아니라 돌아가신 뒤에도 부모는 자식을 영원히 돌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가오는 4월 1일, 6차 백일기도가 시작된다. 이번 기도의 테마는 부모와 자식이다. 생전 자신을 듬뿍 사랑해주셨던 부모님의 사랑을 반추하며 기도 영상을 통해 부모님과의 시간을 추억하시길 바란다.

 

 

 

[차길진의 갓모닝] 73.

남 탓하는 인생

 

나에게 상담하러 오는 분들의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 ‘누구 때문에’라고 말을 시작한다.

“내 인생은 부모 때문에 이렇게 됐어요.” “친구를 잘못 만나서 망했어요.”

“우리 애는 머리도 좋고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성적이 안 좋아요.”

더불어 심각하게 후회도 한다. “그때 주식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집을 팔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펀드를 하면 안 됐었는데 후회됩니다.” 하나같이 자신이 귀가 여려서 그랬다며 가슴을 친다.

그러나 반드시 ‘누구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그 ‘누구 때문에’ 성공한다. 또 가슴을 치고 후회하게 된 어떤 사건 때문에 실패를 딛고 일어선다. 남 탓을 하고 과거를 후회하는 일은 실패한 현실에 최면을 걸기 위한 방법이다.

만약 남 탓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미래를 훤히 안다면 모든 불행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미래를 기가 막히게 아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한 달 30일 중에 딱 이틀은 크게 다칠 운이 있고 나머지 28일은 운이 좋다고 한다. 그럼 이 사람은 28일을 행복하게 보내겠는가, 불행하게 보내겠는가. 아마도 다칠 운이 있는 이틀에 대한 걱정만 하다 28일마저 불행해질 것이다.

인간은 앞날을 모르기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만약 내가 한 시간 후에 죽는다는 사실을 미리 안다면 죽기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언제 죽는지,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 이 순간 웃고 재미있게 살 수 있다.

30년 전 부산에 살 때 일이다. 우리 집 앞 집엔 옥탑방에 사는 총각이 있었다. 어느 날 시골에 계신 총각 부모님이 옥탑방에 찾아왔다. 아들이 부산에서 크게 성공해서 잘 살 줄 알았는데 남의 집 옥탑방에서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을 터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았는지 총각은 “저는 일부러 옥상에 살아요. 하늘에 별도 보고 맨 꼭대기 층이라 전망도 좋아요”라며 조금도 기죽지 않고 초라한 옥탑방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부모님도 맞장구치며 “그래, 우리도 시골집에서 별보고 사니까 좋더라”하면서 웃었다.

잠깐이었지만 그 광경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뿌듯했는지 모른다. 만약 총각이 기가 죽어 옥탑방을 창피하게 생각했다면 부모님도 계시는 동안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더욱이 총각의 가족 사랑은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시골에서 올라온 조카들에게 공원도 구경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사 줬다. 동네 사람들이 걱정하면 총각은 “괜찮아요. 며칠 물 먹고 살면 돼요”하며 껄껄 웃어 넘겼다. 부산을 떠난 뒤 나는 총각이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총각의 소식을 듣게 됐다. 총각은 옥탑방에서 알차게 돈을 모아 작은 사업을 시작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은 부산에서 제법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고 했다.

기차를 타고 달리면 차장 밖에 가로수가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앞으로 가는 것이다. 인생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의 불행은 남이 아는 자기 자신 때문에 오는 것이며 그 불행을 용감히 딛고 일어설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일간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