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실명(陋室銘)
房闊十笏 넓어야 십홀(十笏) 방에
南開二戶 문짝 두 개 열렸구나.
午日來烘 한낮 해가 와서 쬐자
旣明且煦 환하고도 따뜻하다.
家雖立壁 벽만 세운 집이지만
書則四部 사부서(四部書)를 갖추었네.
餘一犢鼻 쇠코잠벵이 한 사람만
唯文君伍 탁문군(卓文君)의 짝이로세.
酌茶半甌 차를 반쯤 따라 놓고
燒香一炷 향 한 심지 살라보네.
偃仰棲遲 눕고 엎드려 느릿느릿
乾坤今古 건곤과 고금일세.
人謂陋室 남들이야 누추해서
陋不可處 살 수 없다 말하지만,
我則視之 내가 이를 볼진대는
淸都玉府 청도(淸都)와 옥부(玉府)로다.
心安身便 맘 편하고 몸 편하니
孰謂之陋 누추하다 뉘 말할까.
吾所陋者 내게 진정 누추한건
身名竝朽 죽은 뒤에 이름 썩음.
廬也編蓬 집이래야 쑥대 엮고
潛亦環堵 도연명은 담만 둘렀지.
君子居之 군자가 산다하면
何陋之有 누추함 어이 있으리.
허균(許筠, 1568-1618)의 「누실명(陋室銘)」이다. 누추한 거처에 써서 건 글이다. 그 가운데 두 구절 “작다반구(酌茶半甌), 소향일주(燒香一炷)”에 눈이 멎는다. 차를 반 잔 따라놓고서 향 한 심지를 붙인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다반향초(茶半香初)’다.
코딱지만한 방에 여러 책을 갖춰 두니 운신할 공간조차 없다. 그래도 차 한 잔에 향을 사르자, 맘 편하고 몸도 편하다. 내가 누추하게 여기는 것은 물질의 궁핍이 아니다. 정말로 누추한 것은 몸이 죽자 이름도 따라서 썩고 마는 것. 사람들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등 따습고 배 부른 것이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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