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漢詩및 시조

제승사(題僧舍)고려말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1347-1392)

경호... 2012. 2. 16. 16:25

한 줄기 푸른 연기


山北山南細路分 산의 위 아래로 소롯길이 갈려 있고
松花含雨落繽紛 송화는 비 머금어 어지러이 떨어진다.
道人汲井歸茅舍 도인이 우물 길어 띠집으로 가더니만
一帶靑烟染白雲 한 줄기 푸른 연기 흰 구름을 물들인다.


고려말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의 「제승사(題僧舍)」란 작품이다. 그는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살다 간 인물이었다. 16세에 과거에 급제한 신동, 명나라에 사신 갔을 때, 황제는 그가 지은 표를 보고 문사가 참으로 간결하다고 칭찬했다. 예문관제학, 동지춘추관사 등 벼슬길도 비교적 순탄했다.
그러다가 우왕 2년(1376)에 북원(北元)의 사신을 물리쳐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가야산 자락 성주(星州) 땅으로 귀양 왔다. 고향이기도 한 그곳에서 그는 청휘당(晴暉堂)을 세워 후진 양성에 온 마음을 쏟았다. 근처 해인사 스님들과도 자주 왕래하며 교분을 나눴다. 위 시는 이 시절에 지은 작품인 듯 하다. 제목으로 보아 어느 스님의 암자에 지어준 시다.
소롯길 한 줄기가 산 아래에서 위쪽으로 나 있다. 5월이었던 듯, 노란 송화 가루가 빗기운을 머금어 멀리 날리지 못하고 어지러이 땅으로 떨어진다.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소나무는 마치 먼지라도 털 듯이 송화가루를 뿜어댄다.
암자는 얼마나 더 가야 나올까? 지팡이 짚고 오르던 나그네는 자꾸 옷깃에 내려앉는 송화 가루를 털며 고개를 갸웃이 올려다 본다. 그런데 마침 저 위쪽에 웬 스님 한분이 우물 물을 길어 작은 띠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저기로구나! 반가운 마음에 걸음이 한결 가볍다. 그런데도 산 속 암자는 좀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금 좀전 스님이 사라진 지점 너머로 올려다 보니, 차 달이는 푸른 연기 한 줄기가 흰 구름을 물들이며 모락모락 하늘로 오르고 있다. 어서 가서 그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