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達摩大師語錄

▒ 達摩大師 語錄 ▒ - 달마대사 일대기

경호... 2012. 2. 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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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셉 아르파이아 · 롭상 랍가이 著, 서보경 譯

      ○ 달마대사의 일대기 '보리달마'는 남인도 향지 국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성을 '세테이리(刹帝利)'라고 했다. 단 달마는 인도가 아닌 페르시아 출신이라고도 하며 刹帝利라고 하는것은 성이 아니라 인도 4성계급 중에 '크샤트리아'를 의미 한다고도 한다 어느 날 '반야다라'라고 하는 고승이 널리 가르침을 베푼다는 말을 듣고 국왕은 그를 왕궁으로 초청하였다 국왕은 '반야다라'의 가르침을 받고는 왕에게 광채가 나는 보석을 공양하고 신자가 되기로 하였다 한편 왕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은 '월정다라'라고 불렀으며 염불삼매의 행을 닦았다 둘째는 '공덕다라'라고 하는데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셋째는 '보리다라'라고 불렀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데 뛰어났다 이에 '반야다라'는 세 왕자의 지혜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질문을 던졌다 "이 세상에서 이 보석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겠습니까?" '월정다라'가 대답하였다. "이 보석은 우리 나라의 보물입니다. 이 세상에 더 훌륭한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공덕다라' 역시 비슷한 말을 하였다. 그런데 '보리다라'가 말하길 "스승님 이런 보석은 감히 최상의 보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보물은 가지고 있는 사람만을 기쁘게 할 뿐 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가는 보물은 여러 가지 법 중에서 부처의 가르침이고 사람이 지닌 뛰어난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는 지혜가 가장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지혜 중에서는 마음의 지혜가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 보물이 가장 훌륭할 것입니다." '반야다라'는 그가 큰 그릇 임을 알고 크게 칭찬하였다. 얼마 후에 국왕이 승하하자 '보리다라'는 반야다라를 따라 출가하여 불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에 이름을 '보리달마'라고 하였다 달마가 스승 밑에서 수행하기를 40여 년 '반야다라'는 임종에 이르러 달마에게 유언을 남기며 입적하였다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 중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전법하도록 하여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네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북쪽으로 가도록 해라." 이에 달마는 훗날 스승의 명을 받아 중국이라는 나라로 향하게 된다. '반야다라'에게는 달마 이외에 불대선 불대승이라고 하는 두 명의 제자가 있었다 스승의 사후 그 종지가 6종(六宗)으로 나뉘어졌으니 유상종(有相) 무상종(無相) 정혜종(定慧) 계행종(戒行) 무득종(無得) 적정종(寂靜)이었다 각기 주장을 달리하여 서로 다투고 갈등을 일으켰다. 이를 보고 대사가 생각하기를 '이처럼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결코 부처님의 뜻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내가 이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해탈에 이르는 길이 멀어질 것이다.' 하고는 6종의 종사와 대면하여 일일이 그 고집을 꺽어 놓았다 그리하여 6종이 모두 달마에게 귀의하였고 그의 명성은 전 인도에 널리 퍼져나갔다 한편 달마의 첫째 형인 '월정다라'의 아들 '이견왕'이 즉위했을 무렵이었다. '이견왕'은 불법이 국민과 조상을 현혹하고 있다고 오해한 나머지 불교를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달마대사가 그것을 알고는 어찌하면 그를 설복시킬까 생각하였다. 이에 달마의 제자 종승이 말하길 "제가 천박하오나 어찌 왕을 위하는 일을 마다하리까." 라고 하자 대사는 "너는 아직 도력이 온전치 못하니라." 라고 하였다. 하지만 종승은 이에 굴하지 않고 홀로 왕궁에 나아가서 왕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왕의 물음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쩔쩔 매는 사이에 대사는 이를 눈치채고 다른 뛰어난 제자인 '바라제'를 보내어 종승을 구원토록 하였다 '바라제'가 신력을 빌려 구름을 빌어 타고 왕의 앞에 이르러 가만히 머물렀다. 이때 왕은 '바라제'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고 놀라 종승을 밖으로 쫓아내고는 '바라제'와 문답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바라제'는 왕의 물음에 답하여 불성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니 왕은 이에 마음이 열리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불법을 배우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한편 쫓겨난 종승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높은 벼랑에서 몸을 던졌으나 그의 능력을 아깝게 여긴 한 신선이 그를 받아 바위 위에 올려놓고는 계속해서 수양 정진할 것을 주문 하였다. 종승은 기뻐하며 바위 사이에 앉아 불법을 닦았다. 이때 '이견왕'이 '바라제'에게 물었다. "이토록 뛰어난 법문을 전수한 스승님은 누구십니까?" '바라제'가 대답하기를 나의 스승님은 곧 왕의 숙부이신 '보리달마' 그 분이십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놀라 자신의 죄를 탓하며 곧 대사를 맞아들이게 하는 한편 종승을 부르도록 하였다. 하지만 종승은 산속에 숨어 선을 닦을 뿐 세상에 나오기를 부끄러워하였다. 궁중에서 달마는 깊이 있게 법을 전수해주었다. 얼마 후 왕이 병을 얻어서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효력이 없었다. 대사에게 사신을 보내어 왕의 병을 구원하길 청하였다. 대사는 곧 왕궁에 와서 병을 위문하고 자비를 베풀고 죄를 참회토록 함으로써 왕의 병을 낫게 하였다. 어언 60여년 '반야다라'가 유언한 햇수가 흘렀다. 이제 본국에서 할 일을 어느 정도 끝마쳤다고 생각한 달마는 중국으로 갈 것을 결심하고는 왕을 찾아갔다. 왕이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지만 달마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에 왕은 꼭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달마의 항해를 준비하였다. 달마는 우선 제자 '불타야사'에게 사전답사를 떠나게 했다. 불타야사는 오랜 여정 끝에 겨우 중국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접한 광경들은 달마의 가르침과는 크게 어긋나는 것들이었다. 중국의 승려들은 달마의 사상을 낯선 것으로 배척하였던 것이다. 이에 '불타야사'는 크게 낙심하여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에 달마는 뛰어난 제자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면서 참된 불교의 마음을 전해주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중국을 향해 출발 하였다. 한편 달마가 바닷길을 출발하는 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대사가 배를 타려고 항구에 이르자 수 백년 묵은 큰 고기가 배 드나드는 길목에 와서 죽어있는데 배가 그 길목을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며 차츰 썩어서 냄새가 풍기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고 하였다. 대사는 그런 불편을 없애주는 것이 모두 중생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여 나무 숲 속에 들어가 조용히 선정에 들어서 그 정신이 몸을 벗어나 신력으로 고기시체를 운반하여 먼 바다에 내다 버리고 돌아와 보니 웬걸 자신의 몸은 오간 데 없고 어떤 선인의 괴이한 몸이 있었다. 대사가 혜안으로 관찰해보니 그 나라의 이름 높은 '오통선인'이 숲속에 도인의 몸이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몸을 벗어버리고 대사의 몸을 바꾸어 가지고 갔다. 달마의 몸은 원래는 매우 빼어난 모습인데 그 바꾼 몸은 눈이 새파랗고 수염이 많아서 얼른 보면 사람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후대에 전하는 달마도의 모습은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아무튼 어려운 항해를 마치고 중국의 광주에 도착한 것이 양무제 보통(普通) 원년(520) 9월 21일이었다고 한다. 광주자사 '소앙'이 바로 이 사실을 무제에게 알리자 무제는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달마를 궁궐로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달마는 11월 1일 도읍인 '건강'에 도착하여 무제와 회견하게 되었다. 양무제는 역대 중국 왕들 중에서도 열렬한 불교 신자로 이름난 인물이다. 이제 많은 군신들 앞에서 대사와 무제 사이에 세기의 문답이 벌어진다. "짐이 보위에 오른 이래 절을 짓고, 경을 쓰고, 스님들을 대접하기를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했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어째서 공덕이 없습니까?" "人天小果(인천소과 : 지은 복으로 인간으로나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과보)는 有漏의 因(한계가 있는. 끝날 때가 있는)이라 비록 있다고 할지라도 참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제일가는 진리요?" "확연하여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럼 짐을 대하여 있는 이는 누구요?" "알지 못하리다." 이에 무제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도리어 大師를 사마외도로 취급 하여 국경 밖으로 추방 하였다. 남쪽 나라에 아직 자신의 불교를 널리 퍼트릴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은 것을 깨달은 달마는 조용히 양나라를 떠나 북쪽 위나라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 때 달마가 갈대를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넜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달마의 신통력을 보여주는 일화인 듯 하다. 이제 달마대사는 후위 효명제 정광(正光) 원년에 낙양에 도착하여 접경지역에 있는 숭산 소림사를 찾아가 그곳에 머물며 날마다 벽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일러 壁觀(벽관)바라문이라 말하였다. 이렇게 앉아 있기를 9년. 몹시 추운 눈이 심하게 오는 날 ‘신광’이라는 스님이 와서 눈이 무릎을 덮는데도 감로의 법문을 일러 주실 것을 간청하며 서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寂然不動(적연부동) 돌아보지도 아니 했다. 밤이 깊어 눈이 허리에 차자 비로소 돌아보며 ‘신광’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구하려고 눈 가운데 그렇게 서 있느냐?" "오직 원하오니 큰 자비를 베푸시어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하여 주십시오." "모든 부처님들의 위없는 道(도)는 오랜 세월에 만나기 어렵거늘 어찌 작은 덕과 지혜의 가벼운 아만을 가진 마음으로 참다움을 알려 하느냐. 단지 수고로움만 더할 뿐이다." ‘신광’이 이 말씀을 듣고 크게 뉘우치며 법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곧 칼을 빼어 왼쪽 팔을 치니 팔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파초 한 잎이 올라와 떨어진 팔뚝을 받쳤다. "모든 부처님께서도 최초에 법을 구하실 때 법을 중히 여기므로 몸을 잊었는데 너는 이제 팔을 끊어 나에게 바치니 가히 그 마음을 알겠다."하시고 "이제 부터 너의 이름을 ‘혜가’라 하라."하셨다. 그래도 ‘신광’은 마음이 편안치 못했다. "스님 저의 마음이 편안치가 못 합니다. 스님께서 저로 하여금 마음의 안정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 그러면 그 마음을 이리로 가져 오너라. 내가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리라" 그러나 그 마음은 찾아도 가히 얻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더구나 갖다 바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마음을 찾아도 가히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케 했느니라." 이 말에 ‘신광’은 크게 깨쳤다. 대동 원년 10월. 대사가 장차 열반에 드시려고 제자들을 불러 놓고, "내 이제 열반에 들려하니 너희들은 각기 얻은 바를 말해보라." 제자 ‘도부’가 말하기를 "저의 소견은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는 것이 道(도)를 씀이 되나이다." "너는 나의 살이다." 다음에는 비구니 ‘총지’가 "저의 소견은 가섭불의 나라를 보고 기쁘기 그지없사오나 한번 보고 다시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가죽이다." ‘도육’이 "사대가 본래 空(공)하고 오음이 있지 아니하니 저의 소견으로는 가히 한 법도 믿을 것이 없겠나이다." "너는 나의 뼈다." ‘혜가’는 앞으로 나아가 절을 세 번하고 본 자리에 돌아와 서니. "너는 나의 골수니라."하였다. "세존께서 正法眼藏 涅般妙心(정법안장 열반묘심)을 가섭존자에게 전하여 여기 나에게 이르렀으니, 나도 너에게 그것을 전하노라. 아울러 믿음의 표시로 세존의 가사 한 벌을 주노니 잘 받들어 가지라. 이것은 내가 滅度(멸도)후 2백년에서 그치리라." 예언하시고 게송을 한 수 읊으셨다.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미혹한 중생을 건지기 위함이라 한 꽃에 다섯 잎이 피었으니 열매는 자연히 이루리라. 대사의 입적이 알려지자 나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웅이산 정림사지에 장사를 지내 탑에 모셨는데, 이듬해 정월 ‘위사 宋雲(송운)’이 사신으로 인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이란 고개(파미르고원)에서 신발 한 짝을 지팡이에 메고 홀로 걸어가시는 대사를 보았다.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동토와 인연이 다하여 본국으로 가는 길일세."하고 그 신 한쪽을 종이에 싸주며 "이것을 가져다 나라에 전하면 가히 알 바가 있으리라."하였다. 사신이 대사를 작별하고 본국에 돌아오니, 그 날이 바로 대사의 삼년이 되는 날이라. 나라에서는 ‘송운’의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웅이의 탑을 열어보니 대사의 신체는 간 곳이 없고 단지 신발 한쪽이 있을 뿐이었다. 두 신발을 맞춰보니 분명 한 짝이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양무제가 달마대사를 추모하는 비문을 기록 해 본다 슬프도다 보고도 보지 못했고 만나고도 만나지 못했으니 지난 일 오늘날에 뉘우치고 한됨이 그지 없도다. 짐은 한낱 범부로서 감히 그 가신 뒤에 스승으로 모시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