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問/漢字

切問而近思(절문이근사)

경호... 2012. 1. 28. 17:42

 

切問而近思(절문이근사)

 

切問而近思 : 切實하게 묻고 가까운 日常에서 具體的으로 生覺하라는 뜻. 論語 子張篇에 나오는 句節이다.

原文은 이렇다. 자하가 말했다“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懇切히 묻고 가까이서부터 생각해 나가면 仁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삶을 살아갈 때 피할 수 없는 것이 물음이다. 切實한 물음이 없으면 삶이 물렁해진다. 그 물음의 切實함만큼 삶은 단단해진다. 切實한 물음이란 삶의 무게를 담고 있는 質問이다. 묻는다는 것은 但只 疑心하는 것이 아니다. 물음을 通해 더 단단한 確信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切實한 물음은 힘이 있다. 그것은 問題를 迂廻하는 것이 아니라 正面으로 부딪치고 마침내 깨는 힘이다.

삶은 숱한 壁과 難關에 가로막혀 있다. 하지만 切實한 물음은 그것을 適當히 얼버무려 迂廻하거나 구렁이 담 넘듯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破壁한다. 卽 가로막힌 벽을 깬다. 그리고 突破한다.

 

#切實한 물음이 있은 然後엔 생각을 해야한다. 그 생각은 먼 데서가 아니라 가까이서 具體的으로 해야 한다. 한마디로 ‘近思’다. 1175년 朱熹와 呂祖謙이 周敦願(주돈이), 정호(程願), 정이(程願), 장재(張載)등 네 學者의 글에서 學問의 中心問題들과 日常生活에 要緊한 部分들을 뽑아 編輯한 冊名이 「근사록 近思錄」이다. 이전에는 ‘근사’의 참뜻이 뭔줄 몰랐다. ‘절문이근사’의 구절을 익히고 나서야 비로소 ‘近思’의 깊이와 意味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아무리 高談峻論을 펼쳐도 자신의 具體的인 日常에서 胚胎되어 나오는 생각과 말과 글이 아니면 사람들을 울릴 수 없다. 日常의 疎疎하고 가까운 것에서부터 具體的으로 思惟한다는 것은 대단한 認識의 境地요 진짜 무서운 힘이다.

 

#물음이 切實하다는 것은 그만큼 問題에 대해 깊이 穿鑿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두루 널리 배움 없이 깊이 穿鑿하기란 不可能하다. 땅을 파더라도 넓게 파 들어가야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너무 좁게 파 들어가면 자칫 판 구멍 자체가 막힐 수 있어 되레 危險하다. 이울러 뜻을 敦篤하게 함은 意志를 確固히 하기 爲함이다. 絶體絶命의 瞬間에 確固한 意志를 갖기 위해, 決定的 瞬間에 後悔없는 判斷을 내리기 위해 切實하게 묻는 것이 아니겠는가. 結局 널리 배워 뜻을 敦篤히 하며 切實하게 묻고 가까이서부터 具體的으로 생각해 나가면 仁은 그 가운데 있기 마련이다. 이때 仁이이 무엇인지 알고자하면 不仁이 무엇인지 알면 된다. 불인은 手足痲痺와 같은 不通이다. 仁하면 通하고 不仁하면 不通한다. 그래서 절문이근사, 卽 切實하게 묻고 가까이서 具體的으로 생각하면 仁이 그 가운데 있어 通하기 마련이다.

 

# 자고로 質問이 切實하면 반드시 그 안에 答이 있다. 질문이 허접하면 答도 虛術하다. 愚問賢答이란 말이 있지만 실은 切問賢答이 있을 뿐이다. 切實한 물음의 答을 먼데서 찾는 이는 下手다. 答은 恒常 가까운 데 있다. 어설프고 섣부른 이들이나 먼데서 요란스레 떠들며 답 찾는 시늉을 한다. 그런 이들은 진짜 問題가 뭔지도 모른다.

問題解決의 모든 실마리는 내 안에 있고 가까운 데 있으며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찾아지는 법이다. 只今 우리에겐 어떤 切實한 물음이 있는가? 과연 이 흑룡해에 우리는 어떻게 물으며 나아갈 것인가. 정말이지 切實하게 물으라.

그리고 가까이서 具體的으로 생각해 보라. 未來가 열리고 解法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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