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사평역에서 / 곽재구

경호... 2012. 1. 20. 00:32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Walking Through The Path Of Life - Ernesto Cortazar

 

 

'#시 > 영상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상병 / 無名   (0) 2012.01.20
너를 보내고 / 문 정 희   (0) 2012.01.20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 문 정 희  (0) 2012.01.20
신부 / 서정주   (0) 2012.01.20
후레자식 詩 - 김인육  (0) 201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