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열 가지 번뇌(煩惱)와 수번뇌(隨煩惱) (강의 - 2. 隨煩惱)

경호... 2012. 1. 5. 02:00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열 가지 번뇌(煩惱)와 수번뇌(隨煩惱) (강의 - 2)

    수번뇌에는 20가지 종류가 있다.
    『석론』에서는 이것을 “오로지 번뇌로서 분류되는 차별 속에서도
    질적으로 번뇌와 동등한 흐름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번뇌라 한다”고 하였다.
    이 20 가지 종류의 수번뇌는 유형별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분(忿) 한(恨) 복(覆) 뇌(惱) 질(嫉) 간(慳) 광(誑) 첨(諂) 교(憍) 해(害)의
    열 가지가 각자 따로 일어나기 때문에 소수번뇌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무참(無慙)과 무괴(無愧) 두 가지가 불선(不善)에 두루하기 때문에
    중수번뇌라 하는 것이다.
    셋째는 혼침(昏沈) 도거(掉擧)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실념(失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의 여덟 가지가 오염된 마음에 두루하기 때문에
    대수번뇌라 하는 것이다.


    수번뇌의 20가지 종류라는 것은
    열 가지 번뇌에 따라서 일어나는 번뇌가 20가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열 가지 번뇌를 근본번뇌라 하고,
    20가지 번뇌를 따를 수(隨)자, 수번뇌라 하는 겁니다.
    이런 것은 전부다 의식상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말나식은 4개의 심리를 거느리고 있지만
    반면에 의식은 51개의 심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제일 많이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활동도 제일 왕성하게 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주로 활동하는 심식이 의식입니다.

    ‘『석론』에서는 이것을 “오로지 번뇌로서 분류되는 차별 속에서도
    질적으로 번뇌와 동등한 흐름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번뇌라 한다”고 하였다.’
    따를 수(隨)자, 수번뇌는 번뇌와 동등한 흐름의 성질이기 때문에 번뇌를 따른다,
    그래서 ‘등류성고(等流性故) 명수번뇌(名隨煩惱)’ 이랬습니다.

    ‘첫째는 분(忿) 한(恨) 복(覆) 뇌(惱) 질(嫉) 간(慳) 광(誑) 첨(諂) 교(憍) 해(害)의
    열 가지가 각자 따로 일어나기 때문에 소수번뇌라 하는 것이다.’
    20가지 번뇌 중에 열 가지는 작을 소(小)자 소수번뇌라고 그럽니다.
    왜 작을 소자를 스느냐 하면,
    한 번에 일어나면 크다고 할 건데
    각자 따로따로 일어나기 때문에 작은 거죠.

    ‘둘째는 무참(無慙)과 무괴(無愧) 두 가지가 불선(不善)에 두루하기 때문에
    중번뇌라 하는 것이다.’

    ‘무참(無慙)과 무괴(無愧)’는 부끄러움이 없는 거죠.
    ‘불선(不善)에 두루하기 때문에’라는 것은
    선하지 않은 것에 다 통한다는 거죠.
    그래서 가운데 중(中)자를 서서 중수번뇌라 그러는 겁니다.

    ‘셋째는 혼침(昏沈) 도거(掉擧)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실념(失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의 여덟 가지가 오염된 마음에 두루하기 때문에
    대수번뇌라 하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는 오염된 마음에는 다 통하는 거예요.
    어떠한 마음에도 따라서 일어나기 때문에 대수번뇌다 이런 얘기에요.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눴는데
    차례대로 하나하나 공부를 하겠습니다.

    수번뇌를 차례로 설명하겠다.

    1. 분(忿) : 현재의 인연이 뒤틀린 데에서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성냄이 없는 것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분(忿)은 분노에요.
    삼독심[貪瞋痴]중에 진(瞋)에 속하는 거죠.
    그러니까 성내는 마음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 중에서 분노가 있습니다.

    ‘성냄이 없는 것을 장애할 수 있는 것’
    성냄이 없는 것을 성 내게 한다 이 말이에요.
    현재의 인연이 뒤틀린 데서 화가 난다, 이것은
    서로 대화를 하다가 화가 나기도 하고
    또는 차를 타고 가면서 아까 대화한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화가 난다,
    이게 현재의 인연이 뒤 틀린 거죠.
    골치 아프죠.
    분노는 머릿속에서 대면하든지 눈앞에서 대면하든지
    그 대상과 대면할 때 나타난다는 거죠.

    열 가지 번뇌와 20가지 수번뇌 뒤에는
    자아관념 아치, 아견, 아만, 아애가 잡고 있어요.
    자아가 뒷받침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대면하든지 눈앞에서 대면하든지
    대면해가지고 화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자아에 기스[흠집]가 나서 그것을 메우기 위해서 화를 내는 거죠.
    저는 무수하게 기스를 많이 냈습니다.

    이렇게 자아에 기스를 내가지고 메우고 메우고 하다 보니까 
    아, 근본적인 문제가 필요하다,
    자아에 기스난 것을 매번 메우고 닦아 본들 번뇌는 계속 일어나니까
    아예 자아를 없애면 이런 귀찮은 일이 없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겠죠.
    그래서 실제로 불교공부를 해보니까 구경무아(究竟無我)에요.
    본래 자아가 없어요.
    자아가 없는 사람은 위세를 떨치지 않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힘을 주지 않고
    자기보다 명예나, 학문이나, 재산이나 나은 사람 만나도 주눅이 안 드는 거예요.
    하지만 자아가 있으면 주눅이 들죠.

    그래서
    ‘현재의 인연이 뒤틀린 데에서 마음에 분노가 일어난다’
    참 멋진 말입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것을 바탕을 삼아서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얘기하네요.

    2. 한(恨) : 과거의 인연이 뒤틀린 데에서
       맺힌 원한을 버리지 않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성냄이 없는 것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과거의 뒤틀린 인연에 맺힌 게 바탕이 되어서 한이 되는 거죠.
    분(忿)은 현재의 뒤틀린 인연을 바탕으로 해서 분노를 일으키는 거고
    한(恨)은 과거의 뒤틀린 인연을 바탕으로 해서 한이 나오는 거죠.

    남자는 분노를 일으키는데 여자는 한을 품죠.
    이것이 남자는 미래 지향적이고 여자는 과거 지향적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고 보니까 너무 잘 맞는다. ㅎㅎㅎ

    한에 대한 것을 얘기하자면 이런 게 있습니다.
    인과의 얘긴데,
    중국에 열심히 경전 독송하고 염불하는 한 부부가 있었는데,
    다른 젊은 부부와 같이 아기를 가졌어요.
    그런데 다른 젊은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잘 웃고 낯도 안 가리고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아서 다 좋아하는데
    이 부부 아기는 태어나기 전까지도 엄마 뱃속에서 발길질도 하고 그랬는데
    태어날 때 탯줄이 목을 감아서 죽어버렸어요.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걸 보고
    ‘불교 믿어도 별거 아니다’ 이런 소문이 나고 난리가 난거죠.
    염불도 하고 경전 독송도 했는데 왜 아기가 저렇게 됐냐 이거죠.
    그러니 남들의 시선이 따갑죠.
    그래서 노스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 사실을 얘기한 겁니다.
    그러니까 노스님이 “아, 잘됐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아기 죽은 것을 잘됐다니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왜 그렇습니까?” 물으니까
    “그 집안에 자세히 물어 봐라.
    혹시 할아버지가 돼지를 잡는 도살업자가 아니었는지를.”
    그래서 깜짝 놀란 거죠.
    할아버지 직업이 돼지를 잡는 백정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안 좋게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그 집안에 병에 걸린 사람이 많은 거예요.
    노스님이 그 사람 전생에 인과를 보시고 말씀을 하시는 거죠.
    ‘이 돼지들이 죽으면서 한이 서려가지고 집안에 그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아기도 바로 그런 연유로 그렇다.
    그 아기는 잉태될 때 원한을 가지고 태어나려 했지만
    경전 독송을하고 염불을 했기 때문에 태속에서 그것을 듣고 한이 풀어져서
    태어나자 마자 죽은 것이다.’
    그래서 원한을 풀고 좋은 쪽으로 갔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한이 서리면 자식으로 태어나가지고 부모를 괴롭게 하는 겁니다.
    보통 동물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이 동물을 인위적으로 살생했을 때 그 동물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거죠.
    한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제가 종경록 속에 유식을 보면
    보통 유식은 교과서적인데 이것은 아니에요.
    유식을 아주 사실적으로 잘 풀어 놓은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강의 내용을 잘 풀어서 문자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원 봉사자가 필요할 거 같아요.

    그 다음에 봅시다.
    3. 복(覆) : 과거에 범한 잘못을 다른 사람이 지적하거나 말거나
       지은 악업을 숨기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자기의 잘못을 드러내어 뉘우치는 마음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복(覆)은 다시 ‘복’, 덮을 ‘부’로 씁니다.
    과거에 잘못을 다른 사람이 지적하지 못하게 숨기는 거죠.
    이런 게 청정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덮어 버려요.

    누구에게나 간직한 비밀은 있죠?
    저도 비밀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비밀이 한두 개 쯤은 있을 텐데,
    비밀을 발로하라면 아마도 아무도 없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다 있죠?
    그것을 그대로 덮어두면 몸이 상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참회를 해서 다 풀어야 됩니다.
    풀지 않으면
    ‘자기의 잘못을 드러내어 뉘우치는 마음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계를 꼭 받아야 되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겁니다.
    계를 받는 것은 참회의식입니다.
    참회해서 다시는 죄를 안 짓겠다고 맹세하는 겁니다.
    계를 받아도 계사(戒師)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거든요.
    계를 진행해 주시는 분이 정말 율사(律師)냐 이거죠.
    속칭 겉으로는 큰스님하면서 속으로는 순 엉터리가 많거든요.
    그런 사람이 올라가서 전계사(傳戒師)를 하면 소용없는 겁니다.
    말짱 황입니다.
    이번에 자비선사 수계법회에 대율사(大律師) 성우 큰스님 모셨는데
    잘 아시다시피 전통적인 계맥을 이으신 분이에요.
    성우 큰스님은 역시 대율사이신 자운(慈雲) 노스님으로부터 계맥을 이어받으셨고
    제가 성우 큰스님으로부터 계맥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계를 잘 지키시는 자격이 있는 분에게 계를 받아야 됩니다.

    자기가 숨기고 싶은 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죄,
    이것을 풀어버리는 방법이 참회입니다.
    참회는 매듭을 푸는 방법이에요.
    그래서 저도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있지 않을까 해서
    요즘 철이 들려는지 참회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ㅎㅎㅎ

    4. 뇌(惱) : 과거의 잘못을 다른 사람이 지적하면
       바로 거친 말을 하고 포악해져 참지 못하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좋은 벗 사귀는 것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뇌(惱)는 괴로울 뇌, 번뇌할 때 뇌입니다.
    과거에 잘못을 다른 사람이 지적하면
    바로 그냥 거칠고 포악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죠.
    그런 것을 바탕으로 해서 일어나는 게 뇌입니다.

    5. 질(嫉) : 다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공덕과 명예를
       질투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어질고 자애로운 마음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질(嫉)은 시기 질투한다는 말이죠.
    질투는 바람의 요소에서 일어납니다.

    6. 간(慳) : 재물을 모으고 쌓아두며 집착하여
       남에게 인색한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탐욕이 없는 것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아낄 간(慳)이죠.
    자기 것은 남 안 주고 남의 것은 빼앗으려는 마음이죠.

    7. 광(誑) : 남을 유혹하여 어지럽고 산란하게 해서
       사실이 아닌 일을 나타내어 속이려 하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사랑과 공경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광(誑)은 속이다, 기만하다 이런 뜻이죠.
    남을 속이는 것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는 거죠.
    이렇게 속이면 사랑하는 마음이나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지죠.

    8. 첨(諂) : 상대방을 속이기 위하여 거짓으로 공경하고 따르는 것을
       나타내려는 마음이 왜곡된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사랑과 공경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첨(諂), 아첨입니다.
    이것도 ‘사랑과 공경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속이는 거나 같죠.
    그런데 칭찬하는 데 안 넘어가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저도 남이 칭찬하면 기분 좋게 받아들이죠.
    그렇지만 그 이상은 안 속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것을 잘 지켜보고 통제하는 게 수행의 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자기가 그런 줄 알고 홀딱 넘어가거든요.
    그래가지고 아만이 생겨서 지가 잘난 줄 알고 무슨 일이든 하다가
    망신당하고 그러는 겁니다.

    9. 교(憍) : 세간의 흥성한 권력과 명예와 부 등을 믿고 의지해서,
       자신이 높고 훌륭하다고 믿어 남에게 꺼릴 것이 없다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세간의 명예와 이익을 싫어하고
       떠나려는 마음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교는 교만할 교(憍)입니다.
    권력, 명예, 부, 이런 것을 가지고 자기가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세간의 명예와 이익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어야 만이 수행이 되는데
    그런 마음을 떠나지 못하도록 자꾸 장애하는 게 교만이에요.
    바꿔서 말하면 권력이나 명예나 부가 있는 사람들은
    수행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10. 해(害) : 다른 중생을 핍박하여 자비와 측은한 마음이 없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해칠 해(害)자입니다.
    자비와 측은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다른 중생을 해되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을 장애해서
    남을 해치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는 거죠.

    11. 무참(無慙) : 과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으로 삼는다.


    무참(無慙),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죠.
    과거의 잘못을 부끄러워해야 되는데 부끄러움이 없는 철면피 같은 것이죠.

    12. 무괴(無愧) : 세상에서 잘못을 더욱 더 많이 저지르며
       과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래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마음내는 것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무괴(無愧), 여기 괴도 부끄러울 괴입니다.
    이것은 자기에 대한 얘기가 아니고
    세상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참괴(慙愧)를 해서 세상을 맑게 한다 이러는데,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잘못을 했으면
    반성할 줄 알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되는데 무지해서
    그런 마음 내는 것이 장애가 되어서 업이 된다는 거죠.

    무참무괴는 참회하고 관련이 있습니다.
    참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다 이 말이죠.
    맺힌 것 푸는 것을 참회라 그랬죠.
    내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풀어집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짓는 죄가 참 많기 때문에 겸손해져야 됩니다.

    이게 다 인과법에 관련된 얘긴데,
    인과법에 대해서 무시무시한 얘기를 한 마디 하겠습니다.
    왜 이게 부끄러운 일이 되는가,
    물리학적인 입장에서 얘기 해보죠.
    고체, 액체, 기체 가 있는데, 우리가 죄를 짓는 것도
    고체 입장, 액체 입장, 기체 입장에서 죄를 짓는 게 있습니다.
    이 중에서 기체적 죄를 짓는 게 가장 무겁습니다.

    고체는 딱딱하기 때문에 건드리면 넘어져도 곧 바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액체는, 깨끗한 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면 쫙 번지기 때문에
    고체처럼 원위치 시키기가 어렵습니다.
    넘어트린다든지,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을 죄를 짓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고체적인 것 보다 액체적인 것이 파급효과가 큰 겁니다.
    그런데 이것 보다 더 큰 것은 기체적인 겁니다.
    액체는 눈에 보이지만 기체는 눈에 안 보이죠.
    담배를 한 대 피웠다면 모든 공간을 다 오염시키게 되죠.
    그 공간에서 담배 연기 성분만 뽑아내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 하겠죠.

    이처럼 죄를 짓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상대방하고 서로 고함을 지르고 치고받고 했더라도
    서로 화해를 하면 끝나버리죠.
    이것이 고체적 입장에서 짓는 겁니다.
    그런데 액체나 기체 같은 경우는
    마음으로 짓는 죄업이기 때문에 잘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말을 한 마디 잘못했다면,
    그것이 쫙 퍼져서 듣는 사람이고 공간이고 전부다 오염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짓는 죄업이 더 크다는 거죠.
    몸으로 짓는 것은 치고받고 해도 당사자만 화해하면 그만인데
    마음으로 짓는 이것은 퍼지면 감당하기 힘들죠.

    과거도 마찬가지에요.
    과거에 서로 한 대 패고 맞고 한 일이 있어서 불편한 관계였다 하더라도
    ‘미안하다, 그 때는 내가 좀 그랬다’
    이러면서 악수 한 번하고 웃고 하면 다 풀어지는데
    말이나 생각 잘못한 것은 시간이 말해 주죠.
    1년, 2년, 10년 뒤에도 만나게 되면
    ‘야, 너 그때 이러저러한 말했지. 나쁜 놈.’
    이렇게 10년 후에도 나타날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이 다음 생에도 갈 수 있는 거죠.
    마음으로 짓는 업이 그렇게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참괴,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야 된다 그런 겁니다.

    13. 혼침(昏沈) : 마음이 몽롱하고 무겁게 가라앉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비파사나 관법(觀法)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혼침(昏沈)은 어두울 혼, 가라앉을 침자인데,
    어두운 곳에 들어간 것처럼 보긴 보지만 깜깜한 거죠.
    마음이 몽롱하게 가라앉는 바탕에 의해서 혼침이 온다 이 말이죠.
    ‘비파사나’는 ‘위빠사나’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의식이 깨어 있으려면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됩니다.
    명상의 대상을 잊어버렸을 때 오는 게 혼침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십시오.
    또 술을 마셔서 취하게 되면 혼침이 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지 마라고 하는 겁니다.

    14. 도거(掉擧) : 잘못된 것을 의지하여 옳은 것을 찾아 헤매는 마음으로
       고요하고 편안하지 못한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사마타를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도거(掉擧)는 흔들 도, 들 거를 쓰는데,
    마음이 들뜨는 것을 얘기 합니다.
    잘못된 것을 의지한다 했는데,
    이것은 삿된 견해하고 관련 있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욕망을 쫒거나,
    과거에 즐겁고 행복했던 것을 쫒아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얘기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사마타를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이랬습니다.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사유를 해야 되는데
    그런 게 아니고 마음이 들뜨는 상태에서 한다면 제대로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겁니다.
    사마타는 선정을 얘기하는데,
    마음이 들뜬 사람은 선정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15. 불신(不信) : 진여에 체(體)가 있고 공덕(功德)이 있고 공능이 있는 것에
       마음이 깨끗하게 믿지 못하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참다운 믿음을 장애하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불신(不信), 믿지 않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진여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죠.
    믿음은 어디서 생기느냐 하면,
    믿을 신(信)자가 풀어 얘기하면 사람 인 변에 말씀 언,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죠.
    불교에서 믿음은 불법학습을 통해서 믿음이 일어나죠.
    쉽게 말해서 법문을 자주 들으면[聞] 믿음이 일어나요.
    두 번째는 사유[思]를 통해서 믿음이 일어나고,
    세 번째는 듣고 사유를 통해서 믿음이 일어났지만 수행[修]을 하는 거죠.
    수행을 하면 그 믿음이 확인 되어지는 거죠.
    이렇게 확인이 되면서 믿음이 또 일어납니다.
    이때의 믿음은 견고한 거예요.

    그런데 법문을 들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 있죠.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보통 보면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들어온 선교사들에게
    고유의 한국 문화나 자아관, 이런 것은 전부다 미신이다,
    이렇게 교육을 시켜요.
    그러다 보니까 방송매체가 생기기 이전에는
    국민들 대다수가 불교를 미신으로 인식을 했습니다.
    스님이 길을 가면 관상, 사주보고 점치는 쪽으로 보고 그랬는데
    요즘은 불교 방송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인식이 많이 바뀌었죠.
    하지만 아직까지도 완고한 사람은
    불교를 미신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문제가 되죠.
    절에서도 책임이 있습니다.
    법문은 안하고 기도만하면 미신이 됩니다.
    기도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을 때 문제가 많이 발생을 하죠.

    16. 해태(懈怠) : 마음이 독려하고 애쓰지 않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바르게 애쓰려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에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해태(懈怠), 게으름이죠.
    자기 마음을 독려하고 애를 써야 되는데 그러지 않는 거죠.

    해태는 혼침과 도거와 관련이 있습니다.
    게으른 마음이 생기면 혼침과 도거가 오는데,
    혼침과 도거가 올 때는 대처해야 됩니다.
    첫째, 부정적인 생각을 해야 됩니다.
    ‘마음이 들뜨거나 가라앉으면 수행에 장애를 주는 것이다,
    내 수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고 생각을 일으켜야 됩니다.
    이런 생각을 되풀이해서 자주 일으키면
    혼침과 도거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혼침과 도거에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해태, 게으른 마음이 생기면 기본적으로 무상을 생각해야 됩니다.
    다람살라에서 티벳 노스님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게으른 마음이 생기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니까
    ‘무상을 생각해야 됩니다.
    과거에 집착하고 붙들고 있는 마음을 빨리 놔 버리십시오.
    매 순간 이 세상은 변해 갑니다.
    무상을 생각해야만 게으름에서 벗어납니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그런 얘기에요.
    아주 애를 써서 자기 마음을 독려해서 하려고 해야 되는데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거죠.
    ‘업을 삼는다’는 것은 습관화 된다는 겁니다.

    17. 방일(放逸) : 전체적으로 마음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나태한 마음을 일으키는 데에 스며있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방일하지 않는 마음을 장애하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방일(放逸), 이것도 게으름하고 비슷한 거예요.
    여기에는 탐․진․치하고 나태한 마음을 일으키는 게 스며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방일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겁니다.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한 마음을 장애하는 것이 이 마음이죠.

    18. 실념(失念) : 마음이 오염되어 바른 법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망념을 내지 않는 것을 장애하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실념(失念), 념(念)은 기억을 얘기 합니다.
    망념을 내지 않는 것으로 장애를 받는다 했죠.
    망념을 내는 것이 실념의 특징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죠.
    실념은 대상에 끌려가는 사람들이 자주 합니다.

    19. 산란(散亂) : 착하고 훌륭한 마음을 수행하는 곳에서
       기뻐하고 즐거운 마음을 의지처로 삼지 않기 때문에
       바깥 인연에 치달리는 것으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일체법을 평등하게 지니는 마음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산란(散亂)은 흩어질 산(散)자 어지러울 난(亂)자입니다.
    대상, 바깥 인연에 너무 끄달리는 사람들은 산란하다 이랬습니다.
    일체법이라는 것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형성되고 소멸되는
    정신작용이든 물질적 현상이든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거죠.
    그런 것을 평등하게 보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마음이 산란하면 이런 마음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깥으로 치닫는 이런 것을 바탕으로 삼으면 안 되죠.

    20. 부정지(不正知) :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바르지 못한 곳에 머물러
       나쁜 업에 물든 오염된 지혜로서 바탕 삼는 것을 말한다.
       바르게 아는 것을 장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업을 삼는다.


    부정지(不正知)는 바르지 못한 앎을 얘기 합니다.
    ‘나쁜 업에 물든 오염된 지혜’
    몸으로나 입으로 나 바르지 못한 지혜에 머물러 있다 이 말이죠.
    이 말은 늘 입으로 말하고 몸으로 행하고 생각으로 지은 것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쁜 쪽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거나 말하는 거죠.
    그래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바르지 못한 곳에 머물러서
    나쁜 업에 물든 오염된 지혜로서 바탕 삼는 겁니다.
    바탕을 삼기 때문에 바르지 못한 앎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몸으로나 입으로나 생각으로
    이것이 자꾸 엉뚱한 쪽으로 머물고 바르지 못한 곳에 머물고 있으면
    바른 앎이 생기는 게 아니고 바르지 못한 앎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TV같은 것도 선정적인 것이나 폭력적인 것은 보지 말아야 되요.
    특히 애들은 그런 것을 보면 그것에 머물러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바르지 못한 앎이 생기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애들 공부시키는 환경도 참 중요 합니다.
    그래서 바르지 못한 앎을 생기지 않게끔 하려면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바르지 못한 업을 바탕으로 삼기 때문에
    그런데 머물지 않고 나쁜 업을 짓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