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千手經

『 천수경 』 - 【천수경 강의】- 7. 깨달음의 마음에서 물러서지 않기를 원합니다. - 여래십대발원문(如來十大發願文)

경호... 2011. 10. 20. 00:12


        【천수경 강의】
           7. 깨달음의 마음에서 물러서지 않기를 원합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여래십대발원문> 또한 원력을 나타낸 구절인데, 원력이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력이 없는 사람은 생명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힘은 곧 원력이고, 원력은 곧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여래십대발원문(如來十大發願文) 원아영리삼악도(願我永離三惡道) 원아속단탐진치(願我速斷貪瞋癡) 원아상문불법승(願我常聞佛法僧) 원아근수계정혜(願我勤修戒定慧) 원아항수제불학(願我恒隨諸佛學) 원아불퇴보리심(願我不退菩提心) 원아결정생안양(願我決定生安養) 원아속견아미타(願我速見阿彌陀) 원아분신변진찰(願我分身遍塵刹) 원아광도제중생(願我廣度諸衆生) 이상 여래의 열 가지 큰 원력을 발하는 글은 그 하나하나가 독립된 뜻을 지니기도 하지만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 발원인 <원아영리삼악도>는 '원컨대 내가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를 영원히 떠나서 사람다운 삶을 살기를 원하옵니다'라는 뜻입니다. 둘째 발원인 <원아속단참진치>는 '원컨대 내가 탐․진․치 삼독을 빨리 끊기를 원하옵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어떤 문제라도 이 삼독에서 비롯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이 삼독의 사슬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발원인 <원아상문불법승>은 '원컨데 내가 항상 불․법․승 삼보에 대해 듣기를 원하옵니다'라는 뜻입니다. 넷째 발원인 <원아근수계정혜>는 '원컨대 내가 항상 계․정․혜 삼학을 열심히 닦기를 원하옵니다. 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발원인 <원아항수제불학>은 '내가 항상 모든 부처님을 따라서 배우기를 원하옵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모든 부처님이란 나에게 있어서 스승이 되는 모든 것들을 뜻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 세상에는 스승 안 될 것이 없고, 또한 어느 때 어떤 곳에서라도 배울 수 있는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여섯째 발원인 <원아불퇴보리심>은 '원컨데 내가깨달음의 마음에서 물러서지 않기를 원하옵니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슨 일이든 조금 하다가는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인생에 아무런 발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물러서지 않는 용맹심이야말로 우리의 생명력을 충족시켜 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적어도 불교인이라면 어떤 일에서든지 물러서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삶을 향상시켜 나가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물러서지 않는 불퇴심만 있으면 본궤도에 오른 것과 같습니다. 일곱째 발원인 <원아결정생안양>은 '원컨대 내가 반드시 안양국에 태어나기를 원하옵니다' 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안양국이란 극락세계를 뜻하는 말로서 모든 것이 충족되어진 세계를 가리킵니다. 여덟째 발원인 <원아속견아미타>는 '원컨대 내가 속히 아미타불을 친견하기를 원하옵니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아미타불은 한량없는 무한한 생명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결국 한량없는 무한한 생명을 친견하려면 자기 자신이 무한해야 하는데 우리의 본래 자성은 이미 한량없는 무한한 생명인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일이 바로 불교공부의 핵심인 것입니다. 아홉째 발원인 <원아분신변진찰>은 '원컨대 나의 몸이 먼지처럼 많고 많은 곳에 두루 나투기를 원하옵니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내몸이 미진수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나누어져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소원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열번째 발원인 <원아광도제중생>은 '내가 모든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기를 원하옵니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소원이나 발원, 축원의 맨 마지막에는 이처럼 항상 모든 중생이 다함께 성불하게 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구절이 따라다닙니다. 불교는 연기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자기 혼자만의 길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원리적으로 따져볼 때 다함께 성불하는 것만이 자기 자신의 성불도 가능한 것입니다. 불교에서 중생제도의 관점은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중생이 있다고 생각하여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관(假觀)이라 하며, 중생은 본래는 없는 것인데 중생이 있다고 생각하여 중생을 제도 하겠다고 하는 것을 중도관(中道觀)이라 합니다. 가장 정상적인 생각은 모든 사람이 본래 부처인데 그 부처인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천수경』의 내용은 소원과 원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만큼 진언이나 다라니의 구절구절에는 원력을 성취시킬 만한 힘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천수경』이란 바윗덩이 속에는 곳곳에 다이야몬드와 같은 값진 보석이 박혀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