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유경(唯境)이라 할 수 없다 (본문)
57-2-191
問 境不離識 識不離境者 何秖云唯識 不名唯境.
答 雖互相生 境從識變. 然古釋 境由心分別方生.
由心生故 名唯識. 識不由境分別生. 不由境故 不可名唯境.
問 心是境家增上緣 境假心生名唯識.
境是心家所緣緣 心假境生應名唯境.
答 離心執境是虛妄 爲遮妄心名唯識. 悟心無我出沈淪 不約二緣名唯境.
문 : 경계가 식(識)을 벗어나지 못하고 식이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다만 유식만을 말하고 어찌 유경(唯境)이라는 명칭은 쓰지 않는 것입니까.
답 : 서로가 서로를 생겨나게 하더라도 경계가 식에서 전변(轉變)한 것이다.
그러므로 옛스님은 풀이하기를
“경계는 마음의 분별로 말미암아 생긴다.
경계가 마음에서 생겨나므로 유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식은 경계의 분별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경계에서 생겨나지 않으므로 유경이라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
문 : 마음은 경계의 증상연(增上緣)으로
경계가 마음의 힘을 빌려 생겨났으니, 유식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같은 이치로 경계는 마음이 작용하는 소연연(所緣緣)으로
마음이 경계의 힘을 빌려 생겨나는 것이니,
응당 유경(唯境)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답 : 마음을 벗어나서 경계에 집착하는 것은 허망하다.
이 허망한 마음을 차단하기 위하여 유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마음에 ‘나’라고 할 것이 없는 이치를 깨달으면 생사의 침몰에서 벗어나므로,
증상연이나 소연연을 가지고 유경(唯境)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又 有境無境 皆是自心. 其心悉生.
一若緣有境生心者 卽是自識相分 一切實境 不離能緣之心. 於自識外 實無其境.
二若緣無境生心者 如獨生散意. 緣過去未來空華免角一切無法時 心亦起故.
또 경계가 있거나 경계가 없는 것이 모두 자기의 마음이다.
그 마음에서 모두 생겨나는 것이다.
첫째 만약 경계가 있는 것을 반연하여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은
곧 자기 식(識)의 상분(相分)이다.
일체 실재의 경계가 반연하는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의 식(識) 이외에는 실로 어떤 경계도 없다.
둘째 만약 경계가 없는 것을 반연하여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은
홀로 생겨난 흐트러진 마음과 같다.
이 마음이 과거와 미래와 허공의 꽃과 토끼뿔 등의
일체 존재하지 법을 반연할 때에도 마음에서 또한 일어나기 때문이다.
┨註釋┠─────────────────────────────────────────
등무간연(等無間緣)
등무간연이란 마음의 활동에서만 원인으로 작용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연속하는 마음의 활동에서 뒤의 생각은 앞의 생각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 자신도 원인이 되어 다음 생각을 일으키는데,
이 경우에 원인이 되는 것을 등무간연,
결과가 되는 것을 증상과(增上果)라고 한다.
우리가 어떤 한 가지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비슷한 장면의 정지된 사진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영화의 경우에는 장면과 장면이 잴 수 있을 정도의 시간 간격으로 이어지지만,
생각의 경우에는 그 간격을 시간 단위로 잴 수 없을 만큼
순간적으로 장면이 이어진다.
생각은 분명히 선후의 순서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그 간격은 없다’[無間]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짧다.
또 우리가 일상에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생각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한 가지’[等] 마음이 꼬리를 물고 찰나적으로 이어지면서 생각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등무간연은 앞 사람이 다 건너가고 나서야
다음 사람이 건너갈 수 있는 외나무다리와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즉 먼저 발생한 생각이 종식될 때라야, 이 종식이 연[조건]이 되어
다음 찰나의 새로운 생각이 발생해 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생각은 등무간연에 의해서 형성된다.
누군가를 곱게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곱게 보이고,
이와는 반대로 밉게 보면 그의 모든 것이 밉게 보이는 것도
등무간연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소연연(所緣緣)
소연연이란 마음이 뭔가를 인식하게 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달력의 사진은 내 고향의 봄을 생각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고향의 봄을 찍은 사진이 없이
오직 마음속으로 고향의 보리밭과 유채꽃을 생각해 낸다.
한 장의 사진이라는 대상이
고향의 봄을 떠올리는 마음 작용의 원인이 되었다.
이때 고향의 보리밭과 유채꽃을 본 것은 물론 내 마음일 뿐이다.
대상을 소연이라고 하므로, 여기서는 달력의 사진이 소연연(所緣緣)이다.
증상연(增上緣)
증상이란 ‘영향을 주는 힘’을 뜻한다.
우리가 기억한 일들이 모두 동일한 힘으로 우리에게 인상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인상을 남기는 힘의 강약에 따라
우리의 기억에는 단절이나 망각이 생긴다.
이러한 사태를 야기하는 이유도 우리는 낱낱이 헤아릴 수 없다.
다만 기억을 강하게 하는 요인도 있었을 것이고
약하게 하는 요인도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헤아릴 수 없이 너무도 많다.
이 같은 요인들을 증상연(增上緣)이라고 한다.
증상연은 인연과 등무간연과 소연연을 제외한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나쁜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좋은 방향의 것이든 나쁜 방향의 것이든
그것은 영향을 주는 힘으로서 작용한다.
그렇다고 하여 주변의 모든 것이 반드시 구체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 특별한 힘을 발휘하지는 않지만,
그냥 있는 자체로써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조건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방에 누워 잘 수 있는 것은
집 때문이지 집이 서 있는 땅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엄밀히 생각하면 땅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잠잘 수 있다.
그러므로 집과 함께 땅도 증상연이다.
내가 편하게 잠자는 데에는 집이 유력한 조건이고,
누구에게나 널려 있는 땅은 별로 힘이 없는 조건인 듯하다.
그러나 이 두 조건에 의해 내가 잠잘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증상연에는 유력과 무력이라는 두 가지가 있다.
유력의 증상연은 뚜렷하게 힘이 되는 조건이다.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누군가가 내게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유력의 증상연이다.
이에 대해 무력의 증상연은 구체적인 힘으로 작용하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 조건이다.
즉 소극적으로 작용하는 조건이 무력의 증상연이다.
결국 증상연은 존재의 원인이 매우 광대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불교 특유의 개념이다.
인간과 세계라는 존재는 반드시 어떤 원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함축하는 개념이 곧 증상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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