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일심(一心)을 벗어나지 못한다 (강의 - 1. 眞識, 現識, 分別事識)

경호... 2011. 10. 1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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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일심(一心)을 벗어나지 못한다 (강의 - 1) 시작하기 전에 전 시간에 얘기했던 ‘삼세육추(三細六麤)’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삼세(三細)’는 아뢰야식의 미세한 세 가지 모습입니다. 아뢰야식은 무의식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혀 알 수가 없는 그런 영역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보고 듣고 하는 모든 정보를 저장을 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의 과거 기억이 아뢰야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의식은 이 정보를 함장(含藏)하지는 않아요. 이런 아뢰야식에는 아주 미세한 세 가지의 모습이 있다, 하나는 업의 모습이라 해서 주객이 나눠지지 않는 모습[無明業相], 그 다음이 능견상(能見相)이라 해서 주관의 모습, 마지막으로 경계상(境界相)이라 해서 객관의 모습, 이 세 가지가 있는 거죠. 그렇지만 주관과 객관이 상대해가지고 심리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아뢰야식의 위(位)라 해서 수행을 해가지고 적어도 주객이 없는 자리, 진여자리에 들어가서 초지(初地)을 지나서 팔지(八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뢰야식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가 되는 거죠. 그러면서 경계상,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세계라는 것이 사실은 다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팔지보살(八地菩薩)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을 마음의 움직임이 없는 부동지(不動地)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대상이 있으면 대상의 영향을 받아서 마음이 움직이는데 그런 대상이 알고 보니까 아뢰야식이라는 자기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러니까 마음에 동요가 없는 그런 단계에요. 그 다음에 구지(九地)로 가면 주관이 없어지고, 십지(十地)에 가면 주객이 나눠지기 이전의 미세한 그런 마음 상태도 벗어나서 법계가 하나인줄 모르는 근본무명이 타파하면서 불지(佛地)에 이르는 거예요. 이게 구경각(究竟覺)입니다. 이 아뢰야라는 마음은 24시간 늘 깨어 있어요. 잠드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연기실상의 모습으로 연기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근본무명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업의 모습인 업상(業相)이 생기고, 능견상(能見相)이 생기고, 경계상(境界相)이 생기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경계상(境界相)에서 지상(智相)이 나옵니다. 지상(智相)에서는 말나식을 얘기하는데, 경계상을 반연해서 ‘내것이다’, 능견상을 반연해서 ‘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말나식이에요. 이 말나식은 대상을 분별하긴 합니다. 이때부터 심리작용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이 분별하는 마음은 잠재되어 있는 의식이라서 의식상에 나타나질 않아요. 옳고 그름을 다 따지고 분별하면서도 마치 잠자는 것 같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 말나식이 항상 문제에요. 자아의식이기 때문에 아뢰야식이 무아(無我)인줄 모르고 아뢰야식이 ‘내다’ ‘내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말나식의 입장이기 때문에 오염의 근원이죠. 이것을 무명과 지상(智相), 말나식이 결합해가지고 의식이 되고 의식이 또 무명과 결합하게 되면 전오식(前五識)이 나오고, 그렇게 나오는 거죠. 그래서 상속하는 마음이 생기고, 선악의 업을 짓고, 고통을 받고, 이렇게 다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거친 경계가 나옵니다. 아까 얘기했던 지혜 지(智)자 모양 상(相)자 지상(智相)이 나오고 두 번째는 상속상(相續相), 의식입니다. 이것은 내가 과거에 지었던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나오고 그 결과를 다시 불러내서 원인역할을 하는 게 결과고, 이렇게 돌고 도는 겁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 기억해가지고 인과의 법칙으로 상속해 가는 거죠. 이것은 의식이 하는 겁니다. 잘 알다시피 불교는 모든 존재, 우리 인생살이라든지 삼라만상 자연계라든지 이런 비밀을 얘기할 때는 인과법칙으로 설명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얘기하자면, 지구온난화현상이라든지 자연파괴가 많이 이루어지는 것은 인과에 의해서 비롯된다, 이런 것이 의식의 영역에 속하는 겁니다. 지구온난화현상 같은 건은 우리들의 욕심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욕심을 일으키는 물질적인 요소를 불의 요소라 그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욕심을 너무 강하게 일으키니까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생성되는 불의 요소가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불의 기운에 의해가지고 수분을 빨리 증발시키니까 공기가 뜨거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지구온난화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북극에 빙하가 녹기 시작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인과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겁니다. 그래서 상속식이라는 것이 과거로부터 계속 이어지면서 과거에 살았던 것도 다 기억을 하고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인과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의식이 하는 역할이에요. 아뢰야식의 종자를 계속 의식상으로 인과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거죠. 그 다음에 집취상(執取相)이라는 것은 상을 집착하는 겁니다. 대상이 있다, 내 밖에 따로 존립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고 자꾸 집착하는 마음을 내는 게 집취상이라 그러고, 거기에 대해서 선악의 생각을 일으키고 선악의 행위를 하니까 좋고 싫어함이 분명해서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게 있습니다. 그러면서 계명자상(計名字相)이라 해서 ‘명자(名字)’ 명(名)은 이름이고 자(字)자는 글자잖아요. 대상을 파악해도 전부다 이름으로 파악하는 그런 모습이에요. 이것도 역시 의식상에서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업을 짓는데 그게 기업상(起業相)입니다. 그 다음에 감각적으로 오는 게 업계고상(業繫苦相)이다, 이게 여섯 번째 모습이에요. 그래서 고통스럽게 사는 거예요. 전부다 자기가 만든 울타리 속에 갇혀가지고 겪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게 우리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거죠. 그런데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하면, ‘삼세육추(三細六麤)’ 아홉 개의 거칠고 미세한 마음의 모습을 얘기하는 거죠. 이런 마음의 모습을 얘기하면서 결국 고통 받고 힘들어 하는 것은 자기가 지어서 그렇다, 이런 얘깁니다. 제가 최근에 ‘시크리트’라는 책을 봤어요. ‘끌어당기는 법칙’이 나오는데 이게 자기가 원하는 무엇인가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코드에 맞는 우주의 주파수와 맞아가지고 끌어당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자되고자하는 생각을 일으키면 부자의 주파수가 나오면서 부자와 관계되는 여러 가지 조건이 결합을 하면서 끌어당긴다는 거죠. 그게 인과법이에요. 남녀가 결혼하면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생기는 데 무엇을 끌어당기느냐 하면 자식이에요. 자식이 태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원인과 조건이 만나면 결과가 생긴다는 법칙, 인연과(因緣果)죠. 그래서 한 생각이 탁 일어나면 그 생각을 원인으로 해서 들어오는 조건이 맞기만 하면 결과가 오는 거예요. 이렇게 인과법을 끌어당기는 법칙이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또 덧붙인 얘기가 지구상에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1%도 안 된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불교에서 봤을 때는 조금 엉성한 내용이지만 세속적 입장에서 봤을 때는 체계적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거죠. 엉성한 내용이라는 것은 아주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았다는 거죠. 단지 그들이 체험했던 것을 ‘시크리트’, 비밀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든 법칙은 선인선과 악인악과, 인과법칙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여기서 주장하는 것도 ‘자기 생각대로 창조한다’ 이랬는데, 불교에서 얘기하는 것하고 똑같은 얘기에요. 『화엄경』에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일체유심조’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현재 자기가 불행하다면, 불행을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불행이 해제된다, 라는 겁니다. 거기에 보면 몸무게 얘기도 해 놓았어요. 몸이 뚱뚱해지니까 ‘살을 빼야지’ 이 생각하지 말고 ‘완벽한 내 체형을 갖추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라는 거죠. 그런 생각하면 그 생각 따라서 몸도 그런 주파수가 맞아가지고 그렇게 된다는 거죠. 큰일 났다, 우리나라 병원 문 닫을 때 많다, 헬스클럽도 문 닫게 되고, 살 빼는 약도 안 먹게 될 거고...ㅎㅎㅎ 이런 게 인과법칙이에요. 그래서 불교에서 하는 얘기는 전부다 마음이 하는 일이다, 지나간 과거는 돌아오지 않아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고, 현재만 있는 거예요. 현재 일어나는 한 생각이 자기 삶의 전부다 이겁니다. 제가 옛날에 부자 되는 얘기도 했죠. 성실하고 신의가 있고 인내심 있고 원칙 있고, 이정도면 부자 될 조건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은 부자 되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거죠. 부자되고자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부자되고자하는 마음에 성실성과 신의와 인내심과 자기 원칙, 이런 것이 생기고, 또 눈으로 보면 그런 일도 보이기 시작하고 그런 사람들과 인연이 만들어지고 그런 식으로 부자가 되는 거예요. 이게 시크리트에요. 이런 것이 전부다 인과 법칙입니다. 자, 봅시다. ‘일심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말은 결국 마음에 대한 얘기죠. 묻습니다. : 『능가경』에서 풀어 놓은 세 가지 종류의 식(識)은 진식(眞識)과 현식(現識)과 분별사식(分別事識)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식은 팔식 가운데에서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까. 팔식(八識)은 시각부터 아뢰야식까지 여덟 개의 마음이죠. 이 여덟 개의 마음 중에서 진식(眞識), 현식(現識), 분별사식(分別事識)을 어떻게 배대(配對)를 시켜서 얘기할 수 있느냐 이런 얘기에요. 답을 합니다. : 진식은 본각(本覺)을 말하고 현식은 제팔식을 말하며 나머지 칠식은 모두 분별사식이라 한다. 비록 제칠식이 바깥 경계를 반연하지 않더라도 제팔식을 반연하기 때문에 분별사식이라 한다. 진식을 본각이라고 하는 것은 팔식의 성품이다. 경 가운데에는 구식(九識)을 밝히는 것이 있다. 여기에 식(識)이 마음인데, 마음 심(心)자도 마음이고, 뜻 의(意)자도 마음이죠. 그래서 마음을 얘기할 때 심의식(心意識)이라 그럽니다. 심(心)을 아뢰야식, 의(意)를 말나식, 식(識)을 의식과 전오식을 얘기 합니다. 보통 이렇게 나누지만 그냥 식(識)만을 얘기할 때는 본문에서 얘기하는 참다운 진식(眞識), 현식(現識), 분별사식(分別事識), 이렇게 세 가지를 얘기한다 이거죠. 여기 풀이가 진식(眞識)은 본각(本覺)이라고 하고 현식(現識)을 얘기하고 제팔식(第八識, 아뢰야식)을 얘기하고 나머지 칠식[전오식, 의식, 말나식]은 분별사식(分別事識)이다, 이렇게 보는 거죠. 진식(眞識)은 참다운 식인데, 이 식(識)이 알 식자, 알음알이라 그러죠. 이 앎이 일어나려면 주관과 객관이 상대해야만 앎이 일어나는 거죠. 아는 게, 생각도 아는 거고 감정도 아는 거고 감각도 아는 겁니다. 그래서 아는 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말나식, 아뢰야식 여덟 개나 됩니다. 그런데 전오식은 감각으로 아는 느낌이라는 거죠. 의식은 생각으로 활동합니다. 말나식[자아의식]은 ‘내다’하는 생각을 근거로 해서 대상을 파악해서 아는 겁니다. 그 대상은 제팔 아뢰야식의 견분(見分)을 대상으로 삼아요. 이 얘기 많이 했는데 다시 한 번 하죠. 눈이 형색을 만나면 시각이 생기고, 귀가 소리를 만나면 청각이 생기고, 코가 향기를 만나면 후각이 생기고, 혀가 맛을 만나면 미각이 생기고, 몸이 촉감을 만나면 촉각이 생기죠. 여기서 만난다는 것은 인연을 말하는데 이게 법이고 이 법을 인식하는 게 의식입니다. 이때 의식이 법을 인식하는 것은 생각입니다. 또 의식 뒤에서 영향을 주는 게 말나식[자아의식]인데 그 뒤에는 또 아뢰야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각부터 의식까지는 아는데 말나식하고 아뢰야식은 무의식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잘 몰라요. 이 말나식은 대상을 인식해도 잠자는 것 같이 인식합니다. 그리고 아뢰야식은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이 있는데 견분은 주관을, 상분은 객관을 얘기 합니다. 아뢰야식의 주관[견분]을 말나식이 인식을 합니다. 이게 말나식에 특징이에요. 그래서 말나식이 아뢰야식의 견분을 인식하기 때문에 분별하는 건데 이것을 일 사(事), 알 식(識)을 써서 분별사식(分別事識), 일을 분별하는 알음알이다 이거죠. 또 시각은 눈을 통해서 형색을 인식하고, 청각은 귀를 통해서 소리를 인식하고, 후각은 코를 통해서 향기를 인식하고, 미각은 혀를 통해서 맛을 인식하고, 촉각은 몸을 통해서 촉감을 인식하는 겁니다. 의식은 법을 인식 대상으로 삼죠. 이게 모두 식(識)인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얘기하면 이렇게 여덟 개가 되죠. 마음이란 게 그런 겁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이 뭐냐 하면, 결국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도 대상을 인식하고 분별하는 거죠. 의식은 전오식(前五識)에서 들어온 정보를 법이라 그러는데 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생긴 법을 인식하면서 생각이 일어나요. 그러기 때문에 식(識)이라 그러는 겁니다. 말나식은 또 아뢰야식 저장되어 있는 주관[견분]을 인식해서 ‘내다’ 이렇게 인식 하는 거죠.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식(識)이라는 것은 주관과 객관이 상대해서 아는 마음이 식인데 진식(眞識), 참다운 식이 뭐냐 하면 본래 깨어있는 마음, 본각(本覺)이다 이겁니다. 이 본각은 깨어있지 못한 불각(不覺)을 대상으로 깨어있다 해서 본각이라 그러는 겁니다. 진식도 망식(妄識)을 상대해서 하는 얘기에요.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 게 있는 거예요. 부처라는 게 있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게 있는 거죠. 알고 보면 본각에서 불각이 나왔으니까 본각이나 불각은 같은 거잖아요. 불각(不覺)은 깜깜해서 밝음이 없다, 무명(無明)인데 이게 본각에서 나왔다 이거죠. 그런데 왜 다르게 부를까요. 무명(無明)이니 본각(本覺)이니 하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얘기할 수 있을까. “마음이요.” 예, 물론 같은 마음이죠. 종경(宗鏡)도 마음이고 본각(本覺)도 마음이고 그런데 왜 본각이 불각의 마음일까. 아는 분 계세요? 어렵죠? 제가 다 얘기하면 재미없으니까 끙끙 앓아보세요.ㅎㅎㅎ 쉽게 얘기하면, 기독교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가 그런 겁니다. 하나님이 완벽하신 분인데 왜 사탄이 생겼을까. 그럼 하나님이 사탄을 창조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길 거고... 그런 거와 비슷한 거예요. 하나님이 있으면 사탄이 없어야 될 거 아니에요. 잘 생각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죄와 복을 관장하고 있는데 왜 사탄이 생겼을까. 이런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속 시원하게 해명을 못해줍니다. 그런데 이것을 불교식으로 풀면 시원하게 풀려요. 여러분들이 한 번 끙끙 앓아보세요, 그러면 얻는 것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다음 보십시오. ‘제칠식이 바깥 경계를 반연하지 않더라도 제팔식을 반연하기 때문에 분별사식이라 한다.’ 이것을 ‘제팔식의 견분을 인식하기 때문에 분별사식이라 한다.’ 이런 얘깁니다. ‘진식을 본각이라고 하는 것은 팔식의 성품이다. 경 가운데에는 구식(九識)을 밝히는 것이 있다.’ 구식은 아뢰야식 위에 하나 더 해서 암마라식이라는 것을 더 세웁니다. 암마라식(菴摩羅識)은 그냥 청정한 마음이에요. 사실은 아뢰야식을 얘기할 때 아주 깨끗한 것, 하나는 더러운 것,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여기서 깨끗한 부분을 따로 세워서 암마라식(菴摩羅識)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원측(圓測)스님은 제팔 아뢰야식에 청정부분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 왜 따로 제구 암마라식을 내세울 필요 있느냐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것은 팔식 이외에 따로 구식이라는 이름을 세워 진식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팔식의 참성품을 기준하여 정리하다면 또한 이것도 팔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참성품은 일체처에 두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팔식 이외에 따로 구식이라는 이름을 세워 진식을 말하는 것이다.’ 구식이 깨끗한 식인데 여기는 진식이라고 했네요. 제팔 아뢰야식 위에 자성이 청정한 참다운 식, 진식을 말합니다. ‘만약 팔식의 참성품을 기준하여 정리하다면 또한 이것도 팔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참성품은 일체처에 두루하기 때문이다.’ 참성품은 텅 비어서 두루하기 때문에 이런 팔식의 참성품을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진식이라는 것을 따로 내 세울 게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