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일심(一心)을 벗어나지 못한다 (강의 - 2. 세간의 이치가 존재하더라도 바탕[體]은 비어 있다)

경호... 2011. 10. 1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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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일심(一心)을 벗어나지 못한다 (강의 - 2) 묻습니다. : 단지 아뢰야식 등의 여덟 가지 식(識)만을 설하면 속제(俗諦)는 이미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열한 가지 종류의 식을 설명하시는 것입니까. 또 구경에 목표삼아 돌아갈 곳은 오직 하나의 진실한 성품입니다. 그런데 다시 어떻게 간략하거나 광범하게 모든 식을 설파하시는 것입니까. 이유가 있겠죠. 여기에는 식을 열한 가지 식이라 그랬죠. 팔식에 세 가지 식을 더하면 열한 가지 식이 되죠. 시각부터 아뢰야식까지 여덟 가지하고 진식(眞識), 현식(現識), 분별사식(分別事識)까지 해서 열한 가지가 됩니다. ‘구경에 목표삼아 돌아갈 곳은 오직 하나의 진실한 성품입니다. 그런데 다시 어떻게 간략하거나 광범하게 모든 식을 설파하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물으니까 답을 합니다. : 상(相)으로 인하여 성(性)이 드러나니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말을 거두어 근본에 돌아가니 본래 연유가 있는 것이다. 모양을 통해서 성품을 알 수가 있죠. 보세요. 이게 찻잔이죠? 모양이 드러났죠? 그럼 찻잔의 성품은 뭡니까? 모양으로 인해서 성이 드러난다면, 찻잔은 모양이 둥글고 그런데, 이 상(相)을 통해서 성(性)이 어떻게 드러냅니까? 성품은 눈에는 보이지 않죠, 그죠? 그러면 찻잔의 성품은 뭐예요? “지수화풍요.” 그럼 지수화풍의 본질은 뭐예요? 공(空)이죠. 그럼 공의 본질은 뭡니까? 공의 본질은 마음이에요. 반대로 마음의 본질은 공이죠. 이 공이 업식을 만나서 나타나는 게 지수화풍 4대에요. 이 4대의 결합이 몸을 이루고 우주를 이루는 겁니다. 그러면 결국 비어 있다는 말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타를 의지해서 존재한다, 이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찻잔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까? “깨면 됩니다.” 그렇죠, 야! 이제 머리 돌아가네.ㅎㅎㅎ 깨면 된다, 깨진다 이거죠. 안 깨지면 공이 아닌데, 깨지기 때문에 공이라는 게 확실한 거죠. 모양을 통해서 실체가 없다면 공을 드러내는 거죠. 그렇다고 여러분들 내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서 고속도로에 가서 트럭에 부딪치지는 마세요.ㅎㅎㅎ 그래서 ‘상(相)으로 인하여 성(性)이 드러나니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말을 거두어 근본에 돌아가니 본래 연유가 있는 것이다.’ 지말이라는 것은 끄트머리를 얘기하죠. 『섭대승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약 일체법에 오직 식(識)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지 못한다면 진실한 성품은 드러날 수 없다. 열한 가지 종류의 식(識)을 다 갖추어 설하지 않는다면 세간의 이치를 다 설할 수가 없다. 이 찻잔을 하나 만들려면 어떤 원인과 조건이 있었을까요. 원인은 도공이 만들고자 마음을 내는 거죠. 그런 마음을 내니까 그 다음 생각이 나오죠. 이것을 만들려면 흙이 필요하고, 흙에 물을 섞어서 반죽을 하고 이런 찻잔의 모양을 만들어야겠다, 만들어가지고는 말려서 그림을 그리고 불에 구어서 내면 이런 찻잔의 모양이 나오는 거죠. 처음에는 찻잔이 없었는데, 도공이 찻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조건이 형성되어서 실제의 찻잔이 나온 거예요. 그러면 원래 찻잔이 없었는데 나온 것을 뭐라 그러는지 압니까? 창조라 그래요. 그러니 여러분들의 창조품은 집에 있죠? ㅎㅎㅎ 아들딸들 있는 거, 그게 마음이에요. 결국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인연이 맺어지니까 마음 하나 잘 쓰면 우리 삶이 행복해 지는 겁니다. 나쁜 인연은 빨리 떨쳐버리고 좋은 인연 자꾸 맺으려고 해야 된다는 거죠. 그것이 명예와 부를 갖다 준다 하는 거예요. ‘시크리트’라는 비밀의 책에 보면 삼라만상의 이 우주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다 들어준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게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요술램프에 나오는 그림과 같고 우리는 주인이다 이거죠. 원하는 생각을 하면 이 우주가 만들어 준다는 거죠. 이 책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싫어할 거 같아요. 거기에는 인간이 창조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어요. 그런데 그 책을 90쇄 찍었으니 엄청난 사람들이 본 거죠. 마음에 대해서 그렇게 풀어 놨습니다. 다음 봅시다. 다만 전오식(前五識)만을 설하는 데 그친다면 오로지 세간 이치의 근본을 얻을 수가 있으나, 세간의 이치가 차별하는 뜻을 얻을 수가 없다. 세간의 이치를 설하는 것이 두루 원만하지 못하다면 진식(眞識)이 명료하지가 않다. 진식이 명료하지 못하다면 세간의 이치를 다 털어버리지 못한 것이다. 세간 이치라는 것은 인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이런 이유로 열한 가지 종류의 식(識)을 다 갖추어 설명함으로서 세간의 이치에 통하여 정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간의 이치에 결정된 성품이 없다는 사실을 요지하면 진공(眞空)에 통달한다. 진공이 공할지라도 세간의 이치가 갖는 모습을 허물지 않는다. 세간의 이치가 존재하더라도 항상 그 바탕(體)은 비어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진여(眞如)는 두 가지, 하나는 공(空)이고 하나는 불공(不空)인데 공은 변하지 않는 불변(不變)이고 불공은 인연을 따르는 수연(隨緣)입니다. 이 두 가지 공과 불공, 불변과 수연이 진여의 모습이죠. 이게 분리되는 게 아니고 하나라는 거죠. 여기서 수연(隨緣)이 세간의 이치에요. 그런데 세간의 이치가 다시 텅 비어 있어요.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보면, 원을 하나 턱하니 그려놓고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어떻게 전할손가.’ 이랬어요. 이것이 상징적인 것인데, 말과 생각을 떠난 자리를 표현한 겁니다. 말과 생각을 떠나면 알래야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참 마음은 앎이 없다, 진심무지(眞心無知)라 그래요. 그러니까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어떻게 전할손가.’, 주고받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여기서 그 둥근 원을 그린 것은 법이라 그러는데, 이때의 법은 진여에요. 이렇게 얘기를 해도 모르겠죠? 가르쳐 드릴게요. 여러분들 연애든 중매든 두 분이 만나서 사는 것을 인연이라 그럽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서 10년, 20년, 50년, 60년 이렇게 해로하는 분 많잖아요. 이런 인연은 연(緣)을 따르는 수연(隨緣)이죠, 공하지 않죠[不空]. 그런데 현재를 기준해서 시간으로 따져보면 과거는 지나가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다고 봤을 때, 지나온 과거는 다시 재연이 안 되기 때문에 다 비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두 분이 살아가는 매 순간이 인연의 모습이지만 현재는 허공에 날아가는 새 자취와 똑같은 거죠.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게 그렇다는 겁니다. 앞으로도 그렇고. 그래서 비어 있는 것과 살아가는 모습은 같은 겁니다. 그것이 진여의 모습이에요. 그것을 법이라고 합니다. 여기 얘기가 그런 거예요. ‘진공이 공할지라도 세간의 이치가 갖는 모습을 허물지 않는다. 세간의 이치가 존재하더라도 항상 그 바탕(體)은 비어 있는 것이다.’ ‘세간의 이치’는 인연을 따르는 모습이죠. 이런 이치를 잘 알면 살아가는 데 집착함이 없어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몸에 병까지 생기면 참 죽을 지경이죠. 내 몸 아프죠, 직장 변변치 못하죠, 거기다 마누라까지 아프면 감당하기 어렵죠. 이런 것도 전부 자기가 만든 거예요. 예를 들어서 얘기하면,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더라도 음식이 조금만 늦게 나오면 막 불평합니다. 이렇게 불만이 생기면 음식에 트집을 잡고 그릇 하나에도 다 트집을 잡아요. 그렇게 되면 식당 주인이 와서 주방장이 소홀해서 그렇다고 사과를 하더라도 이 사람 마음은 ‘다시는 이집 안 온다’ 이렇게 되어 버리죠. 이해를 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이런 사람은 자기 생각에 갇혀있는 사람이죠. 이런 사람 사고방식은 자기는 항상 손해보고 피해를 본다는 피해의식 속에 있는 사람이죠. 인생 살아가는데 굉장히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은 사업도 잘 안되고 몸도 아프고 다 그런 거예요. 자기가 만들은 겁니다. 이런 것을 해소하려면, 근본 바탕이 비어있구나,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몸이나 생명이나 형체 있는 모든 것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갯불과 같은 것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이를 잘 관찰하여 사는 지혜가 필요하구나, 이렇게 알면 본질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만큼 고통이 감소됩니다. 그때부터는 달라지는 거죠. 부정적인 생각을 안 일으키고 긍정적인 생각을 일으키게 되면 그런 인연으로 집안이 다시 일어나는 겁니다. 살아가는 데 아프고 하는 이런 모습들은 인연의 모습들이고 바탕은 비어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비어 있는 것은 결정되어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용기를 가져다줍니다. 결정은 자기가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을 높이면 부딪치고 힘들지만 낮추면 하는 일마다 잘 됩니다. 그 다음에, 이것으로 알아야 할 것이니 인연을 따르면서 존재하지 않는 출세간의 진리가 항상 현상과 다를 게 없으면서 현현하는 것이다. ‘인연을 따르면서 존재하지 않는 출세간의 진리’는 말과 생각을 떠난 것은 세상을 떠났다 해서 출세간이죠. 출(出)은 벗어났다, 세간을 벗어났다는 거죠. 이게 출세간의 진리에요. 그렇지만 이런 진리가 항상 현상과 다를 바가 없으면서 현현합니다. 인연 따르면서 그 속에 같이 있다는 거죠. 이런 것을 비유를 든다면, 금의 성품은 안 바뀌지만 모양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팔찌, 목걸이, 반지, 이렇게 온갖 형상으로 다 바뀌지만 금의 누런 성품은 안 바뀌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세상 살기 힘들고 찌지고 볶고 산다 하지만 본질은 비어있다는 사실을 빨리 아셔야 됩니다. 비어있다는 게 참 좋아요. 비어있으면서 늘 인연을 따른다 하는 거 항상 알아 두셔야 됩니다. 아까도 얘기 했지만 전부다 인연과입니다. 인은 직접원인이고 연은 간접원인, 조건입니다. 인과 연이 서로 만나면 가장 파워가 쎕니다. 끌어당기는 힘 그 절반이 인연과예요. 그래서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서 또 다른 결과를 불러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뭐냐 하면, 이 인과의 이치라는 것이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콩을 땅에 심으면 콩은 원인, 인(因)이고 흙, 수분, 온도, 이런 것들은 간접원인인 연(緣)이죠. 인(因)인 콩하고 연(緣)인 흙, 수분, 온도, 이런 것들하고 만나면 강한 힘이 나오는 거예요. 그 힘으로 인해서 뿌리가 나오고 싹이 트고 줄기와 잎이 생기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거죠. 이렇게 인연의 이치가 굉장한 거예요. 그래서 인연을 잘 만나야 된다는 이유가 그거예요. 이렇게 인연은 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창조 능력입니다. 결과가 창조된 겁니다. 인과법칙은 창조를 의미합니다. 이런 창조법칙은 하나님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생각 했지만 요즈음은 사람들이 다 인식이 발달해가지고 바로 우리들이 그런 창조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시크리트’라는 책에도 ‘당기는 법칙을 알면 자지가 원하는 대로 성취한다.’, 우리 절집식으로 하면, ‘인과의 법칙을 알면 자기가 원하는 게 다 결정 된다’ 그런 얘기에요. 사람마다 강하게 당기는 힘이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당기는 힘이라는 게 그냥 발휘되는 게 아니고 원인과 조건이 결합될 때 일어난다는 이 이치를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좋은 인연을 맺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하고 저하고는 어떤 인연입니까? “좋은 인연요.” 좋은 인연이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저하고 만나면 어떤 결과가 오겠어요? “좋은 결과요.” 구체적으로 어떤 거? 여러분은 그거를 잘 모르는 거예요. 인연의 내용에 따라서 결과의 내용이 결정 된다, 이걸 알아야 되요. 그럼 여러분하고 저하고 인연의 내용은 진리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게 아닙니까? 진리를 잘못알고 있는 무지를 타파하는 데 있죠. 여러분과 같이 맺은 이 인연은 번뇌가 없어지는 겁니다. 세상 보는 이치가 달라지고 눈과 귀가 달라지는 거죠. 궁극에는 죽지 않는 걸 성취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겁니다. 이게 인연의 법칙이에요. 그래서 수행의 출발을 인이라 해서 인할 인(因)자 땅 지(地)자, 인지(因地)라 그럽니다. 땅은 마음을 비유한 겁니다. 땅에 씨앗을 뿌리면 싹이 트고 잎이 나고 열매가 맺듯이 우리 마음도 땅과 같아서 마음에 선악의 씨앗을 심으면 선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 출발을 인지라 그러고 결과를 과지(果地)라 그럽니다. 과지는 부처님의 지혜, 불지(佛智)를 얘기 합니다. 깨치고자하는 마음을 낼 때 깨달음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게 인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도 인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복권 하나씩 받았으니까 그것이 씨앗이 되어가지고 인 복이든, 돈 복이든, 재산 복이든, 자식 복이든 무슨 복이든 아마 들어올 겁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들이 거기다 염원을 해야 되요. 그러면 거기 맞는 결과가 올 겁니다. 중요한 것이 또 뭐가 있느냐하면, 인연은 당기는 힘인데, 그 힘에 의해서 결과가 온다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겠어요? 그래서 내가 좋은 생각을 했다면 실천에 옮기는 겁니다. 남에게 베푸는 봉사활동 같은 것을 실천해야 되겠죠. 부처님을 복과 지혜를 가추셨다 해서 양족존(兩足尊)이라 그럽니다. 복은 베푸는 데서 오는 결과고, 지혜는 우리가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법을 공부해서 지혜를 생기게 하고 실제적으로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든지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해서 복을 짓고 이렇게 복과 지혜가 같이 이루어져야만 제대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적멸하면서도 없는 것이 아닌 세간의 이치가 항상 출세간의 진리와 다를 게 없으면서 성립하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바 있는 이식과 삼식과 팔식과 구식과 십일식 등이 모두 일심의 종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