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꿈을 꾸는 비유 (강의)

경호... 2011. 10.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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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꿈을 꾸는 비유 (강의) ‘꿈을 꾸는 비유’는 마음을 꿈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이런 얘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꿈을 비유해서 얘기를 합니다. 『섭대승론』에서 말하였다. 이 식(識)은 모두 오로지 식만 있을 뿐이니 조금도 실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에 무엇으로서 비유를 삼아 드러낼 것인가. 꿈같은 비유를 들어 드러내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식(識)’이란 말은 주객이 상대하는 말이라고 얘기 했죠. ‘이 식(識)은 모두 오로지 식만 있을 뿐이니 조금도 실물이 없기 때문이다.’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 오직 마음뿐이지 다른 경계가 없다. 물질도 마음이라고 전 시간에 얘기 했죠. 삼라만상 모든 게 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을 식이라 그랬어요. 식이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실물이 없다’ 이렇게 얘기한 거죠. 아무리 스님이 이렇게 얘기해도 책상은 내 밖에 따로 존재하는데 왜 마음만 있고 이 책상은 없다고 얘기하느냐, 이렇게 얘기 한다면 우주 삼라만상은 매 순간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책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도끼로 쪼개가지고 불에 집어넣으면 타버리잖아요. 만일 책상이 내 밖에 스스로 존재한다면 도끼로 쪼개도 쪼개지지 말아야 될 것이고 불에 넣어도 타지 말아야 되는데, 도끼로 쪼개지고 불에 타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늘 착각하고 산다는 겁니다. 내 밖에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빨리 버려야 되는 겁니다. 여기에 ‘실물이 없다’는 말이 그런 얘기에요. ‘그렇다면 이 가운데에 무엇으로서 비유를 삼아 드러낼 것인가. 꿈같은 비유를 들어 드러내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꿈 속에는 조금도 실물이 없어 오로지 식만 있다는 것을 말한다. 비록 꿈속에서 여러 가지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과 집과 숲 및 땅과 산이 있더라도 이것은 모두 실물과 비슷한 영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는 조금도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분들 꿈꾸면 꿈속에 집도 있고 사람도 있고 다 있죠. 혹시 꿈꾸면서 날아다닌 사람 있습니까? 이런 꿈은 수행자의 꿈이거든요. 수행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 집니다. 또 꿈속에서 대변을 보는 것은 업장이 소멸되는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해석을 잘 해야 되는데 그 꿈 풀이를 되도록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잘 되어서 좋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부정적인 감정이나 그런 생각에 의해서 안 좋은 쪽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이것도 저것도 싫다면, 꿈은 꿈일 뿐이다 하고 아예 무시해버려요.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면 아무렇지도 않을 겁니다. 수행자는 일반사람과 다른 꿈을 꿉니다. 예견하는 꿈을 꾸면 그것이 맞는 경우가 많아요. 일반사람들이 맞는 다는 것은 비스무리하게 같다 붙이는 거고, ㅎㅎㅎ 이러고서 잘 맞는다 그러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그 다음에 이 비유를 드러내는 것으로 말미암아 일체시처(一切時處)에 오직 식만이 있다는 사실을 요지해야 한다. 마음에서 경계가 나타나 업(業)에 묶이어 생사를 받는 것이 삼세육추(三細六麤)1)의 아홉 가지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일체시처(一切時處)에’는 ‘일체 모든 시간과 공간에’라는 말입니다. ‘이 비유를 드러내는 것으로 말미암아 일체 어떤 처소든 어떤 시간이든 오직 식만이 있다는 사실을 요지해야 한다.’ 어떤 시간이나 어떤 장소에 있든지 다 마음뿐이다 이 말이에요. ‘마음에서 경계가 나타나 업(業)에 묶이어 생사를 받는 것이 삼세육추(三細六麤)의 아홉 가지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경계가 나타나’ 이 말은 보이는 대상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업(業)에 묶이어 생사를 받는다’ 했죠. 업은 자기가 조작해서 만들어 내는 게 업이에요. ‘생사를 받는 것’은 윤회를 한다는 거죠. ‘삼세육추(三細六麤)의 아홉 가지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승기신론」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석벽 스님이 다음과 같이 풀이한 것과 같다. 오직 하나의 꿈같은 마음으로 비유하겠다. 어떤 사람이 홀연히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그는 꿈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보고 마음에 분별을 일으켜 생각이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이 꿈 이야기는 규봉종밀(圭峰宗密)선사가 저술한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에 보면 똑같은 꿈을 들어서 삼세육추(三細六麤)를 설명하고 있어요. 이 내용은 대동소이 합니다. 자기 생각에 수순하거나 뒤틀리는 데에서 깊이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 착해지거나 악해지기도 하고, 친해지거나 소원해지기도 하였다. 착해지거나 친해지는 곳에서는 여러 가지 은혜와 이익이 있었다. 악해지거나 소원해지는 곳에서는 여러 가지 모멸과 손해가 있었다. 은혜로 갚아지는 것이 있으면 기쁨을 누렸다. 원수로 갚아지는 것이 있으면 고통을 받았다. 그러다가 홀연히 잠을 깨니 꿈속의 모든 일이 사라지는 것이다. 어느 보살님이 재미있는 얘기를 했는데, 안 좋은 생각을 하니까 집안에 안 좋은 일이 터져버리고 좋은 생각하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 이런 말을 했어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안 가져요. 자기 생각이 영향을 줘가지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어나는 줄을 전혀 생각 못하고 안 좋은 일 생기면 남 탓하고, 좋은 일 생기면 지가 잘나서 그런 걸로 이렇게 착각하고 사는 게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보살님이 그런 얘기를 해요. 몇 번 경험을 해 봤는데, 좋은 생각을 하면 매사가 잘 풀리고 좋은데 나쁜 생각을 하면 남편에게나 자식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 이런 얘기를 했는데 이 생각의 파장이 굉장히 영향을 줍니다. 여기서도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거예요. ‘착해지거나 친해지는 곳에서는 여러 가지 은혜와 이익이 있었다. 악해지거나 소원해지는 곳에서는 여러 가지 모멸과 손해가 있었다.’ ‘악해지거나 소원해지는 곳에서는 여러 가지 모멸과 손해가 있었다.’ 여기서 소원(疏遠)은 멀어지는 걸 얘기 합니다. 우리가 꿈속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얘기하고 있는 거죠. ‘은혜로 갚아지는 것이 있으면 기쁨을 누렸다. 원수로 갚아지는 것이 있으면 고통을 받았다. 그러다가 홀연히 잠을 깨니 꿈속의 모든 일이 사라지는 것이다.’ 저는 어릴 때도 곧 잘 악몽을 잘 꿔가지고 꿈을 깨고 나면 큰 숨을 들이쉬면서 ‘다행이다’, 이렇게 몇 번 그런 적이 있었어요. 서산대사 게송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이 앉아서 주인이 손님에게 꿈 얘기를 하니 손님도 주인에게 꿈 얘기를 하더라. 그런데 두 사람도 사실은 꿈속에 사람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자도 꿈속에 있는 자더라.’ 여러분 살고 있는 게 다 꿈입니다. 왜 꿈인 줄 알아요? 지나간 거 되돌아오지 않죠? 그러니까 다 꿈이죠. 이게 사실 같으면 지나간 과거도 오래도록 남아가지고 즐겨야 되는데 그냥 다 지나가잖아요. 그래서 과거는 지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으니 환영에 지나지 않잖아요. 현재는 매 순간 변하는데, 이게 꿈 아니고 뭐겠어요? 그런데 뭐가 좋다고 찌지고 볶고 싸우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런 거 보면 자비선사에 법당 짓고 요사채 짓는 거 다 꿈이에요. 명상 지도하는 것도 다 꿈속에 일입니다. 그런 게 꿈속에 일이지만 의식이 깨어있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명상센터 운영하고 신앙 공간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법당도 짓고 하는 거예요. 부부지간에 금슬 좋아도 꿈속에 일이고 자식 잘돼서 부모 기쁘게 해준다 해도 꿈속에 일이에요. 그걸 잘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꿈이라는 게 다 마음을 지칭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 풀이를 이렇게 합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진여의 일심이다. 홀연히 잠이 든다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홀연히 무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세 가지 미세한 모습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업식인 모습이다. 꿈속에서 본다는 것은 두 번째인 전식의 모습이다. 꿈속에서 보는 여러 가지 일은 세 번째인 현식의 모습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진여의 일심이다.’ 규봉종밀(圭峰宗密)선사 도서(都序)에 보면 고귀한 사람이 훌륭한 집 속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홀연히 잠이 든다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홀연히 무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홀연히 잠이 든다는 것은’ 이것은 바로 무명[무지]를 얘기 합니다. 홀연히라는 말은 갑자기, 원인 없이 이런 뜻인데, 세상에 원인 없는 것은 없죠? 그렇다면 원인 없이 생긴 것은 진짭니까 가짭니까? “가짜요.” 그래서 무명을 잠에 비유한 거예요. 이게 착각이지 실재하지 않는 거라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세 가지 미세한 모습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업식인 모습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업식이다, 이 업(業)이라는 것은 원효스님께서 움직임의 뜻이라 그랬어요. 그래서 업식(業識)을 주객미분(主客未分)이다, 주관과 객관이 나눠지기 이전의 모습이면서도 마음이 움직였다 이렇게 보는 거죠. 그래서 업식이다 그러는 겁니다. 여기 식(識)이라는 것은 마음을 얘기 하죠. 이렇게 꿈을 꾸면 꿈속에서 보고 듣고 하죠? 그래서 ‘꿈 속에서 본다는 것은 두 번째인 전식의 모습이다.’, ‘전식(轉識)’이라는 말은 능견식(能見識), 능히 보는 식, 주관을 얘기 합니다. ‘꿈속에서 보는 여러 가지 일은 세 번째인 현식의 모습이다.’ ‘꿈 속에서 보는 여러 가지 일’이라는 것은 보이는 것, 경계를 얘기 합니다. 그것을 현식(現識)이라 그럽니다. 이 현식을 주관과 동시에 나타나는 객관이다 해서 경계상(境界相)이라 그래요. 대상이다 그 말이에요. 여기에 업식, 전식, 현식은 전부 아뢰야식의 마음을 얘기하는 건데 결국 주관과 객관이 나눠지기 이전의 모습[業識]도 아뢰야식이고, 객관을 보고 있는 마음[轉識]도 아뢰야식이고, 보여 지는 대상 노릇하는 놈[現識]도 아뢰야식이다, 이 말이에요. 수행을 하면, 업식, 전식, 현식 중에서 현식을 경계상이라고 하는데 이 경계상이 소멸해버리면 제8아뢰야식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이렇게 수행이 제8아뢰야식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 부동지에다가 금방 십지에다가 부처를 이루게 되죠. 그래서 제8아뢰야식은 구경각을 깨칠 수 있는 바탕을 얘기 합니다. 그 다음에 마음에 분별을 일으킨다는 것은 여섯 가지 거친 경계의 모습에서 맨 처음에 나타나는 분별하는 모습이다. 아까는 아홉 개를 얘기 했는데 여기선 여섯 개를 얘기 하죠. 분별하는 모습을 ‘지상(智相)’이라 얘기하는데, 이것은 말나식을 얘기합니다. 말나식은 자아의식인데, 이놈은 아뢰야식에다가 종자도 심고 다섯 가지 감각하고 의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렇게 영향을 주지만 이놈은 항상 오류를 범해요. 대상을 인식하더라도 아닐 비(非)자 비량(非量)이에요. 그래서 인식하는 순간순간 다 어긋나는 인식들이 말나식이 하는 짓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말나식은 오염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아의식[말나식]이 빠져버리면 정각에 가까워진 거죠. 그런데 이 말나식은 대상을 선악이라든지, 높고 낮음은 다 분별하긴 하되 분별하는 모습이 마치 잠자는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해요. 분별하는 생각이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는 것은 두 번째의 생각이 생각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생각이 생각을 이어간다’는 것은 상속식이에요. 부모가 자식에게 상속하듯이 상속하는 마음이죠. 이 상속하는 것은 의(意), 의식(意識)을 얘기합니다. 의식의 내용을 보면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나죠. 좋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여러분 생각은 안 그렇죠. 나쁜 생각 좋은 생각 뒤죽박죽되어서 생각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나죠. 얼마나 힘 드는지 모릅니다. 생각 속에 갇혀서 꼼짝 못해요. 생각 따라 화냈다가 좋아 했다가 이러잖아요. 그런 생각이 사그러지고 고요한 상태를 선정이라 그러는 거예요 그 다음에 자기 생각에 수순하고 뒤틀리는 데에서 깊이 집착하는 마음을 낸다는 것은 세 번째의 집착하여 취하고자 모습이다. 이것이 의식이 하는 일인데, ‘집취상야(執取相也)’라 그럽니다. 집착하여 상을 취하는 모습이죠. 착해지거나 악해지기도 하고, 친해지거나 소원해지기도 하는 것은 네 번째의 고정관념으로 사물을 분별하는 모습이다. 이것도 의식이 하는 일인데, ‘계명자상야(計名字相也)’라 그럽니다. 이름과 글자를 헤아리고 집착하는 모습이죠. 고정관념으로 사물을 분별하는 것은 안 좋은 거예요. 말과 생각에 속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말과 생각을 떠나서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이러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혹시 여러분들 옷을 사드라도 메이커 있는 옷을 사 입고 싶지 정체불명의 회사에서 내놓은 옷은 안 사 입고 싶을 거예요. 그렇죠? 그러면 결국 확실한 상호를 갖은 회사의 옷을 사 입는다는 것은 그 회사를 믿고 사 입는 사 입는 것이죠. 이런 게 고정관념으로 사물을 분별하는 모습이죠. 그 다음에 선(善)과 악(惡)에서 이익과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다섯 번째의 중생이 업을 일으키는 모습이다. 고통과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여섯 번째의 중생의 업에 매여 일어나는 고통의 모습이다. 업을 일으키는 게 맹목적이거나 습관적인 게 참 많은데요, 다섯 번째 업을 일으키는 모습하고 여섯 번째 업에 매여 일어나는 고통의 모습은 감각에서 일어나는 것이죠. 홀연히 잠을 깨니 꿈 속의 모든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오직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종경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꿈에서 깨어 난 것과 같고, 연꽃이 피어 난 것과 같다. 마루 종(宗)자, 거울 경(鏡)자, ‘종경(宗鏡)’이라는 것은 아시죠. 그러니까 진리의 속에 들어갔다 이런 얘깁니다. 옛날얘기 하나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인건비가 비싸니까 해외에 공장을 짓든가 회사 설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기업이 남태평양 어느 섬에 공장을 짓고 가동을 해야 되는데 주민들이 일을 안 하는 거예요. 먹고 사는데 불편함이 없는데 뼈 빠지게 일을 뭐하러 하겠어요. 그래서 사장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일을 시킬까 하다가 꾀를 냈어요. 육지에서 아주 멋있는 오토바이를 가져다가 주민들에게 타는 법을 알려 줬어요. 말을 타는 것도 아니고 웬 쇳덩어리를 타고 싱싱 달리니까 얼마나 신기하고 좋아요. 그래서 사장이 주민들에게 오토바이를 사서 선물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 신나게 얼마동안을 타고 다니다 보니까 어느 순간 이게 안가는 거예요. 사장한테 이거 왜 안가느냐고 하니까, 기름을 넣어야 된다, 그럼 기름 달라고, 기름은 돈 주고 사야 된다고, 돈 없다 이러니까, 그럼 공장에 와서 일하면 돈 준다, 이런 거예요.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 보려고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낮과 밤이 없이 거기 매여가지고 부러울 것 없이 즐겁게 살았던 동네가 삭막하게 돼 버린 겁니다. 그런 사건이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영악한지 몰라요. 여기에 중요한 것은 번뇌라는 것이 결국 집착에서 비롯된 건데 욕심이잖아요. 욕심이 자기를 구속하는 거거든요. 가지고 싶은 번뇌가 사물을 분별하는 고정관념으로 의식에서 일어나가지고 과보를 받는 거예요. 중생이 업을 짓는 게 뭡니까,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서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과 같죠. 공장에서 일하고 부터는 재미가 없는 거예요. 오토바이는 타고 싶지, 돈은 없지, 돈 벌라니까 힘들게 일을 해야 하고, 이런 악순환이 온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삼세육추(三細六麤)’속에 다 있는 거예요. 결국 꿈에서 깬다는 것은 이 삼세육추에서 벗어난 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이 삼세육추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유식 공부하는 게 즐겁죠? 이게 삼세육추에서 벗어나는 길 중에 하납니다. 결국 꿈을 비유한 것은 마음을 얘기 한 겁니다. 종경록에서 나오는 얘기는 참 좋습니다. 하나의 경전에서만 얘기하는 게 아니고 여러 경전이나 논서에 나오는 것을 취합해서 하기 때문에 굉장히 폭이 넓습니다. 또 분명히 뜻을 드러내서 핵심을 찔러서 얘기하기 때문에 좋죠. 결국 꿈을 비유한 것도 오직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얘기 하듯이 그런 식으로 거기서 벗어나도록 촉발하는 내용들이 있죠. 그래서 참 좋다는 얘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註釋┠─────────────────────────────────────────
      1) 생멸의 상(相)인 삼세육추는 사람의 생각이 타락의 길을 가는 유전(流轉)의 과정을 인과관계로 설명한 것인데, 중생에게 홀연히 무명(無明)이 생겨 이 영향으로 업을 지어 과보를 받는 과정을 아홉 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 삼세(三細) : 心王(마음 자체), 心所(마음의 속성, 심리, 정신상태)의 구분이 없고 작용하는 모습도 미세하여 분명치 않은 세 가지. ① 무명업상(無明業相) : 사람의 마음이 날 때부터 이어받은 밝지 못한 맹목적인 의지의 힘(업보)으로서 생멸의 근본원인. ② 능견상(能見相) : 생멸의 근본 원인, 즉 無明때문에 나타나는 주관. ③ 경계상(境界相) : 주관과 동시에 나타나는 객관. ● 육추(六麤) : 心王과 心所가 상응하여 그 미치는 모습이 뚜렷한 여섯 가지. ① 지상(智相) : 객관적인 대상인 경계에 대한 가지가지 분별이 생기는 모습. ② 상속상(相續相) : 분별하는 마음이 지속되어짐. ③ 집취상(執取相) : 좋고 나쁨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판단 단계. ④ 계명자상(計名字相) : 허황된 망상을 개념화시켜 실제 있는 양 착각하는 잘못된 마음가짐의 모습. ⑤ 기업상(起業相) : 악을 행동으로 옮기는 단계. ⑥ 업계고상(業繫苦相) : 악의 행위로 말미암아 고통이 따르는 판국에 빠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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