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千手經

『 천수경 』 - 【천수경 강의】- 1. 행복하십시오, 행복하십시오. - 정구업진언 (1)

경호... 2011. 10. 17. 02:26


        【천수경 강의】
           1. 행복하십시오, 행복하십시오.
          -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1) 팔만대장경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경전이 『천수경』이란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천수경』의 첫마디가 <정구업진언>이란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교훈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정구업진언>의 글자 그대로의 뜻을 풀이하면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참된 말'이란 뜻입니다. 불교인들은 업에 대해서 누구나 한번쯤 들어 보거나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자신이 지은 업은 여러 수십억 년이 지난다 해도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을 만나는 어느 순간에 자기가 지은 업에 대한 과보는 반드시 받는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불교인들은 업을 잘 지어야 합니다. 일생을 통해 부처님과 인연을 맺는 일은 참으로 훌륭한 업을 짓는 일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스승 중의 스승이시며, 가장 훌륭한 깨달음을 성취하셨기에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부처님과 업을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업을 짓는 일입니다. 안개 속을 지나와도 옷이 촉촉히 젖는 것과 마찬가지로 업이라고 하는 것은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몸에 스며드는 흡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좋은 업이란 우리가 절에 와서 절을 거듭 하는 사이에, 또 법문을 여러 차례 듣는 사이에 그것이 쌓여서 커다란 공덕이 되고 지혜의 큰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과의 인연 맺음은 우리의 삶을 밝게 열어가는 훌륭한 업을 쌓아가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공덕으로 인하여 마음이 정화되고, 마음에 선업이 쌓여서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업과 연관된 우리가 잘 아는 고사(古事)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흔히 공교로운 시간에 같은 일이 함께 겹쳐 일어난다는 말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뜻의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이 말은 불교경전에서 나온 것인데, 사실은 그 뒤에 '그 배가 떨어지면서 마침 지나가던 뱀의 머리를 맞추어 뱀이 죽었다'는 뜻의 '파사두(破巳頭)'라는 구절이 이어 져야 합니다. 이 고사성어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과응보의 업연(業緣)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오비이락 파사두야'의 고사 이야기는 다음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우연히 떨어진 배에 맞아 죽게 된 뱀은 죽어서 다시 산돼지로 태어났습니다. 또 배에 앉아 있던 까마귀는 죽어서 꿩이 되었습니다. 이른 봄에 꿩이 양지쪽에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는데 산비탈을 지나던 산돼지가 그만 돌을 헛디디고 말았습니다. 그 돌은 굴러서 양지쪽에 앉아 있던 꿩을 치여 죽이고 만 것입니다. 처음에는 까마귀에 의해 죽음을 당했던 뱀이 다시 산돼지로 변하여 까마귀가 된 꿩을 다시 죽이게 된 것입니다. 다시 꿩은 죽어서 사람으로 태어나 사냥꾼이 되었는데 어느 날 산에서 우연히 산돼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냥꾼이 그 산돼지를 쏘려고 하니 그 산돼지는 마침 근처에 있던 조그만 암자로 숨어들었습니다. 그 암자에는 지혜의 눈이 열린 도인 스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가만히 않아 참선을 하고 있으려니 절 주위에서 죽고 죽이는 과거의 원한 관계가 뒤엉켜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도인 스님은 사냥꾼에게 가서 산돼지를 죽이지 말라고 하면서 숙명통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서로의 원한 관계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냥꾼은 마침내 발심하여 불제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경전에 실려 있습니다. 이처럼 모르고 지은 업이지만 언젠가는 그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불교경전 속에서 업이라고 하는 문제는 굉장히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는가 하고 한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도 따지고 보면 전생부터 지은 업장 때문입니다. 결국 지은 업대로 그 과보를 받는다는 원리를 이해하면 자기의 행동이나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좋은 업을 쌓으면 좋은 과보를 받고, 나쁜 업을 쌓으면 나쁜 과보를 받는다는 믿음이 철저할 때 우리가 속한 이 사회는 보다 밝은 내일을 기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은 업은 반드시 자기가 받는다는 뜻으로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도 있습니다. 또 업감연기(業感緣起)라고 하여 업은 인과(因果)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그 업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이 돌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업의 굴레에서 산다고 하는 것을 느끼는 일이 바로 업감연기의 법칙입니다. 업으로 인해서 생겨나고 업으로 인해서 소멸되는 일이 모두 업의 소치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시해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세계(환경)가 모두 업의 인연에 의해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동업중생(同業衆生)이라는 말도 많이 합니다. 부부가 함께 살면서 닮아가는 이유도 같은 환경에서 같은 업을 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결국 업의 한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좋지 않은 습관을 스스로 끊으려 해도 잘 안 되는 것은 업장(業章)이 두텁기 때문입니다. 그밖에도 업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삼국시대의 유명한 인물로 김유신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고 늘 타고 다니던 말이 무의식중에 매번 기생집으로 향하므로 말의 목을 벤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업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굳어져 버리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고치기 어려운 것입니다. 업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좋은 업, 청정한 업도 얼마든지 지을 수 있습니다. 불교를 공부하고 절에 다니는 사람은 절대로 남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전생에 자기가 지은 업의 한 결과일 뿐입니다. 부모를 원망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에 불과합니다. 세상이란 각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이며, 그 속에 나란 존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입니다. 업에 대해서 제대로 깨닫고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면 불교를 다 이해한 것과 같습니다. 업에 대한 이해는 비단 불교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알아야할 이치입니다. 업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세상에 험악한 일이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돌아올 업의 결과가 두려워서라도 포악한 행동은 하지 못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회법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지만 업은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정화하는 길은 업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이해하여 실천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