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阿含經講義

지운스님 강의 『阿含經』 : 1. 맹구경(盲龜經)

경호... 2011. 8. 2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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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맹구경(盲龜經)1)
      如是我聞. 一時, 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 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원숭이 연못 곁에 있는 중각강당에 계셨다. 이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로, 이 큰 땅덩이가 모두 큰 바다가 될 때, 수명이 무량겁(無量劫)인 한 눈 먼 거북이가 있다고 하자. 그 거북이는 백 년에 한 번 그 머리를 내미는데 바다 가운데 떠다니는 나무가 있고 오직 구멍 하나만 있다. 바다 물결과 바람을 따라 동서로 떠도는데, 눈 먼 거북이가 백 년에 한 번 머리를 내밀어 바로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阿難白佛, 不能, 世尊, 所以者何, 此盲龜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날 수 없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그 눈 먼 거북이가 만약 바다 동쪽에 이르면 떠다니던 나무는 바람을 따라 혹은 바다 서쪽으로 가기도 할 것이고, 남쪽과 북쪽 사유를 두루 돌아다니는 경우도 또한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서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었다. "눈 먼 거북이와 떠다니는 나무는 비록 서로 어긋나더라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로서는 오취에 떠 흐르면 잠깐이나마 다시 사람 몸 받기가 저보다 더 어려울 것이니라.
      所以者何, 彼諸衆生不行其義不行法不行善不行眞實, 展轉殺害, 强者陵2)弱, 造無量惡故, 是故, 比丘, 於四聖諦當3)未無間等者, 當勤方便, 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여기 저기 다니면서 서로 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겨서 한량이 없는 악을 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네 가지 진리에 대하여 아직 밝게 알아 증득하지 못하였으면 마땅히 방법을 잘 결택하여 부지런히 노력하되 더욱더 성취 욕구를 일으켜 밝게 알아 증득하도록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어 마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깊이 읽기 눈 먼 거북이 가르침[경]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부처님께서 눈먼 거북이 비유를 들어 사람 몸 받기가 어렵다는 것을 설하신다. 즉 중생이 오취(五趣)4)로 윤회하다가 사람 몸 받는 것이 마치 눈 먼 거북이가 바닷가 가운데 떠 있는 나무판자의 구멍에 머리를 밀어 넣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비유하시고 계시다. 둘째는 사람 몸 받지 못하는 이유를 의(義 :道理), 법(法), 선(善), 진실을 행하지 않고 서로 죽이고 해치는 등 한량없는 악을 짓기 때문이라고 설하신다. 셋째는 그러므로 사람 몸 받았을 때 사성제(四聖諦)를 부지런히 힘써 배워야 한다고 설하신다. 이 세 부분을 연결해 보면, 첫 부분은 고해(苦海)에서 힘들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절박한 현실을 설하고 계시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몸 받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 몸 받기가 어려움을 눈 먼 거북이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 계시다. 이는 사람 몸 받기 어려움은 그만큼 괴로움의 극한 상황임을 말한다. 두번째 부분으로 이어 보면 이러한 윤회의 고통은 악을 짓기 때문임을 설하셨으며 세번째 부분으로 연결해 보면 악을 그치고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사람 몸 받았을 때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성제를 힘써 배워야 한다고 설하신 것이다. 첫번째 중생이 당하는 고통을 눈 먼 거북이 비유를 드셨는데, 비유를 드신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언어나 문자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비유를 드신 경우이다. 예를 들어 찻잔 자체는 던지면 깨지거나 세월이 흐르면 마모되기 시작하여 끝내 부서져 없어지지만 찻잔이라는 말은 찻잔과 상관이 없이 사용된다. 즉 찻잔은 눈앞에 던지면 깨어지지만 언어문자로 불리어지는 찻잔은 아무리 던져도 부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찻잔 자체와 찻잔이라는 말은 전혀 별개라는 사실이다. 즉 사물은 변모해가지만 말이나 문자는 도리어 사물을 고정화시킨다. 그래서 이러한 말이나 문자의 속성을 피하여 진실을 보여 주기 위해 비유를 든다. 또 하나는, 길고 치밀하게 또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문제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여 이해시키는 방법으로는 비유가 적격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반조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비유이다. 따라서 눈 먼 거북이가 바다에서 헤매는 비유는 바로 고통의 극대화를 보여 주고 자기 자신의 문제임을 암시하고 있다. 비유의 의미를 살펴보면 바다는 괴로움의 바다[苦海]요 바다 밑은 지옥, 축생, 아귀의 삼악도(三惡道)를 가리킨다. 물에 표류하는 것은 육도(六道)로 윤회함이요, 거북이가 눈이 먼 것은 진리를 모르는 무명, 거북이의 나이가 무량겁이라는 것은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무량겁의 나이를 먹어도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의미하고 또 하나는 중생의 수명은 본래 없다는 것이다. 눈 먼 거북이가 바다 가운데 떠 있는 나무판자의 구멍에 머리를 밀어 넣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사람 몸 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설한다. 왜 사람 몸 받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실까? 이는 윤회하는 괴로움을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첩경은 인간의 몸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 하필이면 인간의 몸일까? 천상의 몸을 받아 수행하면 더 빨리 깨칠 수 있지 않을까? 인간계는 십법계(十法界) 가운데 다섯 번째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제일 아래가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그 다음이 인간이다. 인간 위는 천상의 신(神), 성문, 연각, 보살, 부처이다. 이렇게 인간이 십법계 중 다섯 번째에 위치한다는 것은 고(苦)와 낙(樂)이 반반임을 의미한다. 인간계 아래는 나쁜 업(業)에 의해 중생의 고통이 심하고 또한 그러한 세계이므로 수행하는데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인간계 위의 천상의 세계는 즐거움이 많고 강하기 때문에 수행하는데 적합하지 못하다. 그러나 인간계는 고락이 균등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내기 좋고 수행하기에 적합한 환경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 몸 받았을 때 사성제 공부하라고 하신 것이니, 부처님도 도솔천 내원궁에 보살로 계시다가 이 인간계에 내려와 수행해서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따라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 받기가 매우 어렵다. 지구상의 생물이 모두 몇 종류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수치임에 틀림없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150만여 종류라고 한다. 이 수치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150만 분의 1의 확률을 돌파하여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엄청난 행운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날 확률은 1조 분의 1이다. 인간은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행운을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5) 그래서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삼악도에서 벗어나는 길은 불법(佛法)을 수행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진리를 깨치고 해탈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苦)․집(集)․멸(滅)․도(道) 사성제를 힘써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사성제는 ‘이것은 괴로움[苦]이고, 이는 괴로움의 원인[集]이며 이는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滅]이며, 이는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는 수행방법[道]이다’함이다. 사성제를 바르게 깨달아 알기 위한 전제로서 인과(因果)에 대한 바른 견해와 믿음을 가져야 하니, 이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바른 견해를 가지게 해 주며, 또한 사성제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몸 받기가 이렇게 어렵다면 누가 수행하겠는가? 다행히 사람 몸 받아 불법(佛法) 만나서 사성제 공부를 하더라도 스승 만나기 어렵고 도반 만나기 어렵다. 그리고 공부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구하는 것도 또한 어렵다. 그러나 사람 몸 받기 어렵다는 자각이 있다면, 그만큼 세상에 살기 싫을 정도로 괴롭다는 것이며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보리심(菩提心)을 발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어렵다는 것은 악행으로 인하여 사람 몸 받지 못하고 괴로움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말한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자면 선행(善行)을 하면 어떻게 될까? 만나기 어려운 모든 것이 해결됨을 의미한다. 만남이란 다른 말로 인연이니 만나기 어렵다는 것은 인연이 되지 않음을 말한다. 만남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인과 연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만나기 어려운 모든 것이 극복된다. 특히 좋은 인연으로 돌아가려한다면 선행을 하여 착한 뿌리[善根]를 심는 것이 최선이다. 선근의 힘은 싹이 돋고 잎, 줄기 최종적으로 깨침의 꽃을 피워 부처의 열매를 맺어주기 때문이다. 즉 눈 먼 거북이가 나무판자를 만나듯이 인간으로 태어남과 불법(佛法)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선행은 괴로움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일어난다. 무의식적으로 선행을 하는 이유도 바로 과거에 괴로움을 겪은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악행(惡行)은 악의 결과를 불러와서 괴로움을 일으키고 선행은 선과를 가져오면서 즐거움을 일으킨다. 그래서 선행은 괴로움을 자각하고 벗어나려는 마음에서 일어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보리심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의 괴로움[輪廻]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바로 진리를 깨쳐 해결하고자 하는 바램이 보리심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선행을 진리에 향하게 하면 이것이 보리(菩提)에 회향하는 것이니 좋은 인연이 이루어진다. 곧 불법(佛法)[사성제의 가르침]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보리심을 낸 구도자는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되어 스승인 선지식(善知識)을 만나고, 도반인 선우(善友)가 생겨서 좋은 수행도량에서 정진하여 삶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행은 보리심을 발하고 증장시키게 해서 모든 만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준다. 즉 사성제에 힘써서 깨달음을 성취케 하는 것이다. 끝으로 부처님께서 비유를 들어가시면서 까지 하시고자 하신 이야기가 무엇일까? ‘이것은 괴로움이며 이것은 괴로움의 해결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괴로움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보리심을 내어야 한다는 것을 설하신 것이다. 또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중생을 향한 부처님의 크나큰 사랑[大慈]과 크나큰 연민심[大悲]이다. 이것이 ‘눈 먼 거북이’를 비유한 경의 해의(解義)라고 말할 수 있다.
    註釋┠─────────────────────────────────────────
      1) 阿含藏註 : 本經說明愚癡凡夫漂流五趣 欲復人身 難於盲龜穿木孔 故比丘當於四聖諦 勤方便學無間等. 參閱相應部 < 雜阿含 406 (大 : 2책 108쪽 하, 한글 : 잡-1-447, 佛光 : 잡2-675, 南 : cf.s.56.47~48-Chiggaḷa) > 본문으로... 2) 「陵」 宋, 元, 明三本均作 「凌」 본문으로... 3) 「當」 麗本作「當」, 今依文意作「尙」. 본문으로... 4) 아수라가 들어가면 六道가 된다. 본문으로... 5) 안양규 지음 『붓다의 비유 설법』 동대 경주 캠퍼스 정각원 p. 5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