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阿含經講義

지운스님 강의 『阿含經』 : 아함부 경전 해제 - 3. 아함경의 내용

경호... 2011. 8. 24.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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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함부 경전 해제
      3. 아함경의 내용 자기 자신이나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괴로움은 무엇일까? 그것은 늙고 병들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일 것이다. 이 문제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들에게 안겨주는 고통이자 숙제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늙고 병들고 죽어가야만 한다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하여 출가를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해결 방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문제에 그는 용감하게도 정면으로 도전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붓다가 되었다.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에서 비로소 불교는 시작된다. 부처님께서는 과연 무엇을 깨달으셨을까?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존재는 독자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 전체로써 연기한다는 법(法 : dharma 또는 dhamma)을 깨달은 것이다. 법을 깨친다는 것은 바로 개인과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로병사 등의 괴로움을 해결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법은 바로 인생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열쇠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가 法의 종교라고 말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괴로움의 해결을 위하여 법을 깨치지 않으면 안 되고, 법을 깨치기 위해서는 사성제 등의 수행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근기가 수승한 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필요 없이 바로 눈으로 달을 쳐다보지만, 그 이하의 대다수의 중생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을 제도하는 방법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사슴동산[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진리의 바퀴를 굴리실 때 깨우친 법을 말씀하시지 않고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셨다. 어떻게 해서 십이연기(十二緣起), 중도(中道), 오온(五蘊), 무상(無常), 무아(無我), 공(空) 등의 많은 가르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진여 등 다섯 수행자에게 최초로 진리의 바퀴를 굴리신 내용이 사성제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최초의 설법에 사성제를 설하신 의도가 어디에 있었을까. <중아함(中阿含) 상적유경(象跡喩經)>에 보면 비유를 들어서 설하기를,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코끼리의 발자국에 포섭되듯이 붓다의 모든 가르침은 이 사성제(四聖諦)에 다 포함된다.” 라고 설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사성제에 포섭되는가? 이는 곧 최초의 가르침을 편 부처님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의도는 중생들이 겪고 있는 온갖 괴로움을 제거하는 데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나는 오직 한 가지를 알려줄 따름이니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이노라”(중부경 22)라고 역설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명쾌하게 일러주신 말씀을 올바로만 이해한다면 불교를 다 이해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이 이 한 가지 원리의 적용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 당신 자신이 부처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이 사성제의 가르침에 대해 완전한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사성제는 초전법륜의 최초의 설법이지만, 부처님께서 입멸하실 때에도 사성제에 대하여 의심나는 점이 있으면 질문하라고 재삼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최후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이 사성제는 이제까지도 변함없는 부동의 수행체계이다. 이 사성제라는 수행체계는 여러 가지로 응용되고 그 응용에 따라 법은 다양하게 설해졌던 것이고 그것이 모두 깨치는 길을 말씀하시고 마치 병자에 따라 약을 주듯이 그 근기에 따라 진리를 설파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입멸하실 때까지 49년간 설하신 법문이다. 부처님은 우리들이 가야할 길을 보여주시는 길잡이이시고 모델이다. 아함경은 ‘우리에게 부처님은 어떻게 하여 인생의 괴로움을 깨뜨리고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법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인가? 또 부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어떤 가르침을 받아 그 지혜를 체득할 수 있었던가? 또 그들은 이런 자비의 실현을 위해 어떤 길로 이끌려 갔던가? 승가(僧伽)는 어떻게 화합하며, 운영되는가?’ 등등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즉, 첫째, 싯다르타 태자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늙고 병들어 죽는 문제를 타파해 보겠다는 큰 뜻을 품고 출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결방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문제에 그는 용감하게 정면으로 도전한다. 왜 늙고 죽는 고통에 시달려야만 하느냐에 대한 의문, 바로 그 화두가 태자를 시대를 뛰어넘어 온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부처가 되게 한 내용. 둘째, 싯다르타 태자가 부처가 되기까지는 단지 자신의 굳은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였다.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든지 부처님처럼 일체의 갈등과 무지(無知)를 벗어난 대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부처의 길을 실제적으로 보여 주는 내용. 셋째, 부처님이 인생의 괴로움의 뿌리를 뽑아냄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보여주는 내용. 넷째, 누구나 보고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깨침으로 이끌어 주는 정연한 논리와 수행체계를 갖추고 있음. 다섯째, 부처님의 가르침은 듣는 사람의 지식 정도, 생활 양태, 성격, 연령에 따라 그 내용과 방식을 달리하여 상호(相好), 비유(譬喩), 침묵(沈黙), 분석(分析), 반대질문(反對質問) 뿐 아니라 게송(偈頌 :詩), 설화說話)등 다양한 방법으로 중생들에게 지혜의 가르침을 주셨고, 또 열반에 들기 직전까지도 제자들의 의문을 풀어 주려고 한 자애로운 스승임을 보여주는 내용. <경(經)을 읽고 얻는 이익> 이렇게 부처님께서 물려주신 경(經)은 사물이나 우리의 모습을 되비쳐주는 거울과 같다. 경(經)을 공부하면 전 세계, 전 우주의 본질이나 우리들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앓고 있는 생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 등의 갖가지 병을 제거해 주는 묘약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經은 법(法 dharma)이라고 하는 진리다. 법이란 우리를 깨닫게 하는 인(因)의 힘을 가진다. 아함부의 여러 경전에는 이 진리(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의 특성이 있음을 설하고 있다. ㉮ 법(dharma)은 잘 설해져 있어 처음도 좋으며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볼 수 있다. ㉰ 법의 발생 후 곧바로 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즉시적이다. ㉱ 탐구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 법을 자각함으로써 우리는 법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다. 또한 존귀한 사람을 열반으로 이끌어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 현명한 사람에 의하여 직접 체험될 수 있다. 만약 인생이나 존재의 본질에 대한 가르침이 위에서 말한 법(法 dharma)의 여섯 가지 특성에 맞지 않다면 그것은 진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진리의 조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참으로 존재 본래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증명되지 아니하고, 또한 그 가르침을 실행에 옮겨서 즉시적으로 효과를 가져 오지도 못하고, 그 결과가 바로 눈으로 확인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진리라고 말할 수 있으며, 설사 진리라고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들의 갖가지 괴로움을 해결하여 귀의처가 되지 못한다면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정하여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진리가 보편타당하게 인식되지 못하고 단지 특정의 사람들에게만 인식 가능한 것이라면, 그러한 진리는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존재의 본질을 추구하여 나타난 진리가 우리의 모든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만이 그것은 진리로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실상을 규명하는 것은 고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법의 특성이란 다름 아니다. 진리라면 그것을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이유, 즉 우리들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괴로움을 제거해 주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 힘이 바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법이고 경(經)이라는 것이고 아함경이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아함경은 부처님 당시의 상황과 가장 근접되어 있고 부처님의 직접적인 교설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에 처음 입문하는 자나 체계적인 바탕을 갖추고자 한다면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인 아함경을 배워야 한다. 여기에 편집한 내용은 아함경의 방대한 양의 극히 적은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인연으로 아함경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