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阿含經講義

지운스님 강의 『阿含經』 : 아함부 경전 해제 - 1. 아함경의 성립

경호... 2011. 8. 24.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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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함부 경전 해제
      1. 아함경의 성립 아함부 경전은 복잡하고 산만한 듯하지만, 그 내용은 뜻밖에 간결하여 사실적이면서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그것은 정연하고 단순한 원리에 의해 일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붓다가 저 보리수 밑에서 깨치신 진리, 법을 말한다. 이 법은 부처님께서 49년간 우리 중생들을 위하여 설하여 주신 가르침이고 경(經)이고 율(律)이다. 수많은 대소승의 경전이 있으나 부처님의 생생하게 다가오는 체감과 육성은 바로 아함부 경전에서라고 말할 수 있다. 아함부 경전의 내용은 부처님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아함경이 이루어지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부처님께서 입멸(入滅)하신 직후의 일이었다. 파바와 구시나성 사이에서 마하가섭이 오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니르그란타푸트라가 세존이 열반하셨을 때의 꽃을 가지고 길을 다니고 있었다. 이때에 가섭이 멀리서 이를 보고 물었다. “그대들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들은 구시나성에서 옵니다.” “우리 세존을 아는가?” “압니다.” “지금 안녕히 계시던가?”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미 열반에 드신지 칠일이 되었는데 우리들이 거기서 이 꽃을 가지고 옵니다.” 그때에 가섭과 오백 명의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다 함께 슬퍼하였다. 그때 발난타 비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폭언을 내뱉었다. “벗들아, 근심하지 말고 탄식하지 말라. 우리들은 대사문 붓다에게서 해탈을 얻었는데 이제야 저 대사문 붓다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닌가. 저 대사문은 참으로 시끄러운 분이시었다. ‘이 일은 너희에게 알맞고 이 일은 알맞지 않다.’고 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왔거니와, 이제 그 대사문은 안 계시다. 우리는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이 말을 모두 침묵한 채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폭언은 그들에게 격렬한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듣자마자 이와 같은 어리석은 자가 생기는구나. 지금부터 이러한 자가 얼마나 불어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법(正法)이 왜곡되고 삿되고 악한 법이 다투어 기세를 펼 것임에 틀림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남겨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삿된 법이 일어나지 않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정법과 계율을 호지하기 위해서 가장 좋다. 미래에 영겁토록 정법이 이 세상에 머물게 해야 되겠다. 정법이 오래도록 이 세상에 존속되어야만 그것이 엄연한 기준이 되어,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세상이 다하도록 수많은 중생을 무명(無明)에 의한 사견(邪見)과 번뇌의 고통에서 구제할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암중으로 결심했을 것이다. 실제로 마하가섭은 바로 부처님의 다비가 끝난 직후 대중을 모으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발난타 비구의 발언을 다른 비구들에게 전하고, “우리들은 지금 한자리에 모여서 계법을 모아 두어야 외도들이 딴 소리를 하거나 비방하되 ‘사문 고오타마의 법(法)과 율(律)은 연기와 같다.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제자들이 계율을 배우더니 이제 입멸하고 없으니 계율을 배우는 이가 없구나’하지 못하게 해야 되겠소. 여러 비구여 이제 잘 생각해서 들은 것이 많고 지혜롭고 아라한인 비구를 추천하시오”라고. 그리하여 그들은 붓다가 열반(涅槃)하신지 오래지 않아(석 달 전후로 봄) 오백 명의 장로비구들이 마가다국의 서울 라자가하(王舍城) 밖에 있는 동굴 칠엽굴 주변에 모여 평소 스승이 남기신 가르침과 계율을 몇 달에 걸쳐 결집하기에 이르렀다.1) 이를 제일결집(第一結集), 제일합송(第一合誦) 혹은 오백결집(五百結集)이라고 한다. 이단 사설이 만연되기에 앞서, 바른 가르침을 확립해 두고자 한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현존하는 아함부 경전의 원형이다. 경전을 제일결집(第一結集)할 때 바로 문자로 결집하지 않았다. 아난존자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던 법문을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라고 시작하여 암송하면 다른 장로비구들이 그 법문을 듣고 함께 그 법문을 들었다고 인정이 되면, 모두 같이 그 암송된 가르침을 합창하듯이 합송(合誦)하였던 것이다. 경전이 문자화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 시대에 왕자 마힌다에 의해 서부인도의 불교가 남방의 세일론(스리랑카)으로 전파된 후, 기원전 1세기경 세일론의 밧타가마니 아바야왕시대에 그때까지 구송(口誦)되어 오던 빨리어 삼장(三藏)이 처음으로 문자화되었다고 한다. 아함(阿含)이란 산스크리트어(語) 아가마(Āgama)에서 음역된 것으로 「오는 것」 「도래(到來)」 「귀착(歸着)」의 뜻이다. 그러므로 아함경(阿含經)이란 「전(傳)해진 경전(經典)」, 「전래(傳來)의 서(書)」, 「전승(傳承)의 경(經)」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성전을 말한다. 때에 따라서는 법(法 dharma 또는 dhamma)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註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