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지는 소리
山寺夜吟/鄭澈
쓸쓸히 나뭇잎 지는 소리를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
스님 불러 문 나가 보라 했더니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네요."
蕭蕭落木聲
錯認爲疎雨
呼僧出門看
月掛溪南樹
가을밤에 시인이 산사(山寺)로 놀러와 하루 밤을 묵게 되었다. 좀체 잠은 오질
않고 정신은 점점 더 또랑또랑해져만 간다.
창밖에서 갑자기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좀전까지 하늘이 맑더니 웬 비가
오는걸까? 손님은 절의 꼬마 스님을 부른다.
"밖에 비가 오나 봐라."
스님이 대답한다.
"저기 시내 남쪽에 달님이 걸려 있는데요. 손님."
비는 무슨 비냐는 말씀이다. 손님은 비가 오느냐고 물었는데, 스님은 달이
걸렸다고 대답했다. 달이 걸렸으니 비가 올리는 없고, 그렇다면 좀전에 내가
들었던 소리는 무슨 소리였을까? 그제서야 좀전 방안에서 들었던 그 소리가
비소리가 아니라 낙엽지는 소리였음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처음에 시인은 나뭇잎 지는 소리로만 알았는데, 사미 스님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낙엽 소리였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손님의 물음에 뚱딴지 같은 스님의 대답이 재미있다. 스님이 만약, "비 안와요.
낙엽 지는 소리예요. 손님!" 하고 대답했다면 이것은 시가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직접 말하지 않고,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하는 것, 이것이 한시에서 말을 건네는
방법이다. 비가 안 온다는 사실을 입에 담지 않고, 달이 떴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리고 시인은 그 말을 듣고서, 달이 떴다면 빗소리는 아닐테고, 그렇다면
낙엽지는 소리였구나 하고 깨달았지만, 그런 중간 과정은 다 말하지 않은 채
생략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다 알아듣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방법이다.
옛날 한시 속에는 이렇게 엉뚱한 착각을 노래한 시들이 참 많다. 이왕 보는
김에 한 수를 더 읽어보기로 하자.
강진(姜 )이란 시인의 〈산골짝을 지나며(峽行雜絶)〉란 시이다.
산 늙은이 한밤중에 사립문 열고
사방 한번 둘러보며 서서 있구나.
"얄미운 저놈의 딱따구리를
마을 사람 마실 온줄 잘못 알았네."
山翁夜推戶
四望立一回
生憎啄木鳥
錯認縣人來
제 4구에 위의 시처럼 `잘못 알았다(錯認)`는 말이 들어가 있다. 산골 마을을
지나다가 그곳에서 본 풍광을 노래한 것이다.
한 밤중에 산속 집에 사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일어나 사립문을 열더니,
누가 왔나 하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누구지? 방금 사립문을 노크한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며 두리번 거려도
사람 그림자는 찾을 길이 없다. 그때, 앞쪽 나무 위에서 딱따구리가 딱딱딱딱
나무를 쫀다. 아이쿠! 저 녀석에게 속았구나.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조금 전
노크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차린다.
사실 할아버지는 긴 밤 잠도 안오고, 저 아랫 마을에서 자기처럼 누군가가
심심함을 못견뎌 자기 집에 마실이라도 와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실제로 딱따구리가 한 밤중에도 나무를 쪼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알아 문간을 두드린 딱따구리와 산골 할아버지 사이의 텔레파시가
그렇게 공교롭게 통했던 모양이다. 싱거운 산골의 밤은 깊어만 간다.
*출처;한국한문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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