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및旅行]/유명한 맛집

보은 宣氏 宗家 간장

경호... 2007. 10. 26. 20:53
가문 며느리들, 씨간장 350년째 대물림”
‘1L 500만원 간장’ 만드는 보성宣씨 종부(宗婦) 김정옥씨
장독대에 담 치고 씨간장독엔 금줄 둘러

▲ 충북 보은에 있는 보성 선씨 종가의 큰며느리 김정옥씨. 350년을 대물림한 간장을 만든다/박종인기자
충청북도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에 있는 99칸짜리 선병국 고가(宣炳國 古家·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34호)는 요즘 굉장히 바쁘다. 몇 안 남은 조선 말기 양반가옥을 찾는 문화답사 모임은 물론 식품 연구가들의 발길도 잦다. 사랑채를 개조한 찻집 도솔천은 주말이면 문화의 향취를 느끼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출입이 금지된 안채까지 객(客)들이 기웃댄다. 집 전화는 통화 중이거나 받지 않거나 둘 중 하나. 지난 4월 이 집에서 담근 ‘350년 묵은 간장’이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소개된 이후다. 그때 매겨진 가격이 1L에 500만원. 그러더니 지난 17일 전국의 언론매체에 다시 한 번 이 집 이야기가 나왔다.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한국골동식품예술전’에서 이 간장이 실제로 500만원에 팔린 것. 이날 아침, 장안의 화제는 단연 간장이었다. 도대체 누가 담갔고 어떻게 350년을 살아왔을까. 그래서, 찾아갔다.
 

신문사에서 왔다고 하자 김정옥(金貞玉·53)씨가 안채 다실(茶室)로 기자를 안내하고선 어디론가 사라졌다. 10여 분 뒤 그녀가 나타났다. 흰 저고리에 남색 치마. 조금 전의 평범한 아낙 모습은 간 곳 없이 보성 선씨 종갓집 종부(宗婦)가 차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스물넷에 이 집에 시집온 도시 처녀가 세월을 차곡차곡 쌓아 배워 담근, 아니 ‘350년 동안 보성 선씨 종가 맏며느리들이 합작해 만든’ 간장 1L가 500만원에 팔렸다. ‘합작(合作)’?

 

“시집왔더니 장독대에 담이 쳐 있고 대문이 있는 거예요. 이 가문이 장을 굉장히 귀하게 여기는 집이었어요. 장독대에 금줄을 두른 독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대물림하는 씨간장독, 하나는 햇간장독이었어요. 씨간장은 350년째 우리 가문 며느리들이 담가서 대물림하는 간장입니다. 해마다 10월이면 메주를 쑤어 겨우내 집안 곳곳에서 발효시킵니다. 이듬해 정월에 옹기에 넣어 3년을 묵혀 새 장을 담급니다. 그 햇간장에 씨간장을 부어서 다시 씨간장을 만드는 거예요. 소금은 천일염을, 물은 집안 우물물을 씁니다.” 말이 막힘이 없다. 1998년 여름 홍수 때 집안 처마까지 물이 찼는데, 씨간장독과 햇간장독은 뒤집어지지 않고 온전하게 마을 어귀까지 떠내려가 ‘살아남았다’. 물도 종가의 자존심을 꺾지 못했다.

 

이번에 팔린 간장이 바로 이 씨간장을 부어 만든 간장이다. ‘덧간장’이라고 한다. 김씨 혼자서 만든 게 아니라, 가까이는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멀리는 아득한 조선 중기 어느 며느리의 혼(魂)이 깃들어 있는 장이다. 그저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퍼주곤 했던 간장이었는데, 판매장에 가서야 매겨진 가격이 500만원이란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 1977년 종갓집이 뭔지도 모르고 시집왔을 때, 닷새 동안 마을 잔치를 끝내고 시할머니가 손주며느리를 불러앉혔다. “집안이 망한 다음에야 장 만드는 걸 그만두는 법이다. 장이란, 바로 그 집이다.” 달마다 있던 제삿날에는 어김없이 거대한 제사상을 차려야 했다. 제사상에는 꼬박꼬박 간장이 올랐다. 제사상에 오른 간장은 이듬해 씨간장으로 쓰인다.

 


전남 고흥이 고향이었던 보성 선씨 가문. 20세기 초 명당을 찾아 보은으로 왔다. 아흔아홉 칸 집을 짓고, 따로 서른 칸 집을 더 지어 무료 교육기관 덕선정을 지었다. 덕선정은 6·25 때 파괴되고 이후 덕선정에서 공부를 한 한학자 임찬순 선생이 부근에 무료학당인 지곡선사를 지어 지금도 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통 큰 집안에 그녀가 맏며느리로 왔다. 시집올 때 가져온 패물을 팔아 제사상을 차릴 정도로 힘든 때도 있었다. “…몰래 많이 우셨겠어요?” 피식 웃더니 그녀가 말을 멈춘다. 그리곤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있다가 말없이 밖으로 나간다. 한참 만에 돌아온 김씨의 눈가가 붉다. 그 설움이 한국 장류(醬類)의 상징을 일궈냈다.

 

보은군에서는 군 예산을 지원해 김씨의 장에 보은 특산인 대추를 섞은 기능성 장류를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종가의 손맛이 ‘브랜드’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부여의 전통문화대학에서 보존과학을 전공 중인 아들 종완(23)씨가 그 책임을 맡겠다고 했다. 김씨는 걱정이다. “일년에 콩 한 가마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대량생산을 해도 다 제 손이 가야 하잖아요. 이 집 꾸리고, 장 만들고, 그걸 어떻게….”

 

 

 

 

보은 선병국가옥 [報恩宣炳國家屋] 
중요민속자료 제134호

 

1919~1921년 하개리 마을에 지은 전통가옥으로 선민혁이 소유·관리한다. 속리산에서 흘러내리는 三街川이 큰 개울을 이루고 개울 중간에 삼각주를 이루어 섬이 된 蓮花浮水形 명당이며, 아름들이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중앙에 99칸의 큰 기와집이다.
 












 


 


▲ 속리산 입구의 정이품송의 전경.

▲ 말티재 자연휴양림 입구에 세워진 세조가 말티재를 넘는 모습의 조형물.

▲ 천연기념물 103호인 정이품송. 상처입은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 속리산 입구에서 바라본 말티재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