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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門關의 註釋的硏究 第十一則 ~ 第二十則

경호... 2015. 7. 23. 02:09

*  표시 글은 임의로 넣었습니다.

 

 

 

 

無門關의 註釋的硏究 <3>

 

 

 

【原文懸吐】

 

第十一則州勘庵主₁

 

趙州가 到一庵主處하야 問호대 有?아 有?아하니 主?起拳頭어늘 州云호대 水淺不是泊舡處₂로다하고 便行하니라 又到一庵主處하야 云호대 有?아 有?아하니 主亦?起拳頭라 州云호대 能縱能奪하며 能殺能活이
로다하고 便作禮하니라

無門이 曰호대 一般?起拳頭어늘 爲甚?肯一箇하고 不肯一箇오 且道하라 ?訛₃在甚處오 若向者裏下하야 得一轉語하면 便見趙州舌頭無骨하고 扶起放倒하야 得大自在하리라 雖然如是나 爭奈趙州가 ?被二庵主勘破오 若道二庵主가 有優劣이라하면 未具參學眼이요 若道無優劣이라도 亦未具參學眼이니라

頌曰眼流星이요 機?電이니 殺人刀요 活人劍이로다

 

第十一則、州勘庵主

 

趙州到一庵主處問。"有?? 有??"  主?起拳頭。州云。"水淺。不是泊舡處。"便行。

又到一庵主處云。"有?? 有??"  主亦?起拳頭。州云。"能縱能奪 能殺能活" 便作禮。

 

無門曰: 一般?起拳頭。?甚?。肯一箇 不肯一箇?。

且道  ?[言*肴]訛在甚處?。

若向者裏下得一轉語。便見趙州舌頭無骨。扶起放倒 得大自在。

雖然如是。爭奈趙州?被二庵主勘破 !。

若道二庵主有優劣。未具參學眼。若道無優劣。亦未具參學眼。

 

頌曰:

眼流星 機?電 

殺人刀 活人劍。

 

 

【한글 직역 】

 

조주가 한 암주의 처소에 이르러서 묻되 “있느냐? 있느냐?” 하니 주인이 주먹을 일으켜 세우거늘 州가 이르되 “물이 얕아서 배를 댈 곳이아니로다” 하고 문득 가니라.

또 한 암주의 처소에 이르러서 묻되 “있느냐? 있느냐?” 하니 주인이 또한 주먹을 일으켜 세우거늘 州가 이르되 “능히 놓아 주고 능히 빼앗으며, 능히 죽이고 능히 살리도다” 하고 문득 禮를 지으니라.

 

무문이 가로되 일반으로 주먹을 일으켜 세웠거늘 어찌하여 일개는 수긍하고 일개는 수긍하지 않았는가?

또한 이르라. 잘못 된 말을 한 것이 어느 곳에 있는고?

만약 그 속을 향하여 일전어를 얻으면 문득 조주의 혀끝이 뼈가 없음을 보고 붙들어 일으키고, 넘어지게 놓아서 대자재를 얻으리라.

비록 그러히 이와 같으나 조주가 저 두 암주의 감파를 당한 것을 어찌 할고?

만약 두 암주가 우열이 있다고 말한다면 참학의 눈을 갖추지 못한 것이요. 만약 우열이 없다고 이르더라도 또한 참학의 눈을 갖추지 못한 것이니라.

 

頌하여 가로되

눈은 흐르는 별이요. 기틀은 번개가 침이니

사람을 죽이는 칼이요. 사람을 살리는 칼이로다.

 

 

【內容略解】

조주가 수행하는 암주가 머물고 있는 암자 두 곳을 찾아 가서 주인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두 암주 모두 주먹을 들어보였다. 그런데 한 암주에게는 물이 얕아서 배를 댈 곳이 없다고 비난하며 그냥 가고, 한 암주에게는 능히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스님이라고 칭찬하며 예배하고 물러갔다. 둘 다 똑같이 주먹을 세워 보였는데 어째서 하나는 인정하고, 하나는 인정하지 않았는가?

말해보라!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 이 속에 들어가서 한 마디 할 수 있으면 조주의 혀에 뼈가 없음을 보아 대 자재를 얻으리라. 그러나 조주가 오히려 저 두 암주에게 감파 당했음을 어찌하랴!

만약 두 암주가 우열이 있다고 하면 참구하는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것이요, 만약 두 암주가 우열이 없다고 하여도 참구하는 안목을 감추지 못한 것이라. 자! 어떻게 볼 것인가?

보는 눈은 流星같아야 하는 것이요. 근기는 번개와 같아야 한다. 칼은 사람을 죽일 수 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註解】

 

1. 州勘庵主: 이 공안에 관한 것은『古尊宿語錄』卷第14「趙州眞際禪師語錄之餘」에 보이는 내용이다. 이『趙州錄』에 전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내용을 무문이 인용하여 간추려서 공안의 문장을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師行脚時에 到一尊宿院하야 ?入門相見에 便云호대 有?有?하니 尊宿이 竪起拳頭어늘 師云호대 水淺船難泊이라하고 便出去하니라 又到一院하야 見尊宿하고 便云호대 有?有?하니 尊宿이 竪起拳頭어늘 師云호대 能縱能奪하고 能取能撮이라하며 禮拜便出居하니라

 

師(=조주)가 행각할 때 한 존숙의 庵子(=院)에 가서 서로 볼 때에 문득 이르되 ‘있습니까? 있습니까?’ 하니, 암자의 존숙이 주먹을 일으켜 세우거늘 사가 이르되 ‘물이 알아서 배를 댈 곳이 없구나!’ 하고 바로 가버렸다. 또 한 암자에 가서 존숙을 보고 문득 이르되 ‘있습니까? 있습니까?’ 하니 존숙이 주먹을 일으켜 세우거늘 사가 이르되 ‘능히 놓아 주고 능히 빼앗으며, 능히 취하고 능히 집는다.’고 하며 예배하고 물러갔다.190)

190) 卍續藏118, 331上15-下1.

 

2. 泊舡處(박강처): 배를 정박시킬 수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3. ?訛(효와): 난잡하고 잘못된 것이란 뜻이다. 선어록에서는 자주 사용되지만 世俗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191)

191) 鄭性本, pp.122-123 참조.

* ? 섞일 효. ?삼가지 않을 효.(대부분의 중국자료는 ?로 되어 있다) 

 

 

 

 

【原文懸吐】

 

第十二則巖喚主人₁

 

瑞巖彦和尙이 每日自喚主人公하고 復自應諾하며 乃云호대 惺惺著₂하라?하고 他時異日에 莫受人瞞하라 ??하니라
無門이 曰호대 瑞巖老子가 自買自賣하야 弄出許多神頭鬼面하니 何故오 ?!₃

一箇喚底하고 一箇應底하며 一箇惺惺底하고 一箇不受人瞞底라하니 認著依前還不是로다 若也?他하면 總是野狐見解니라
頌曰學道之人不識眞₄은 只爲從前認識神이요 無量劫來生死本은 癡人喚作本來人이로다

 

第十二則、巖喚主人

 

瑞巖?和?。每日自喚 "主人公"。復自應 "諾"。

乃云。"惺惺著" "?"。"他時異日。莫受人瞞"。"?" "?"。

無門曰: 瑞巖老子自買自賣。弄出許多神頭鬼面。何故?[斬/耳]?

一箇喚底。一箇應底。一箇惺惺底。一箇不受人瞞底。

認著依前還不是。若也?他。總是野狐見解。

頌曰:

學道之人不識? 只?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한글 직역 】

서암언화상이 매일 스스로 주인공을 부르고 다시 스스로 응락하며

이에 이르되 “마음을 분명히 하라! 예!” 하고, “다른 때 다른 날에 사람에게 속임을 받지 않게 하라! 예! 예!” 하니라.

무문이 가로되 서암 늙은이가 스스로 사고 스스로 팔아서 허다한 귀신의 머리와 귀신의 얼굴을 나타내어 희롱하니 무슨 까닭인고? 니!

一箇는 부르고 一箇는 응락하며, 一箇는 성성하라 하고 一箇는 사람에게 속임을 받지 않게 하라 하니,

인정하면 앞을 의지하여 도리어 옳지 않도다. 만약 다른 이를 본받으면 다 이것은 들여우의 견해니라

頌하여 가로되

도를 배우는 사람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만 종전의 識神을 인정함이요.

무량겁 내에 생사의 근본은 어리석은 사람을 본래의 사람이라 지어 부르는 것이로다.

 

【內容略解】

서암은 매일 같이 스스로 주인공을 부르고 자기가 대답하며 말하기를 “정신 차려라! 예! 남에게 속지마라! 예! 예!” 하였다. 무슨 이유인가?
한 개는 부르고 한 개는 속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옳지 않다. 남이 하는 것을 본받으면 이것은 모두 여우의 견해가 되는 것이다. 분별심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고, 무명의 업식을 본래의 자기 면목으로 착각하는 것은 생사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註解】

1. 巖喚主人: 이 공안은『五燈會元』「瑞巖章」에 보이는 것이다.『五燈會元』卷第7「台州瑞巖師彦禪師章」에 다음과 같이 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師尋居丹丘瑞巖에 坐磐石하야 終日如愚히 每自喚主人公하며 復應諾하고 乃曰호대 惺惺著하야 他後莫受人?하라하니라
師가 丹丘의 瑞巖에 있을 때에 반석(/바위)에 앉아서 종일토록 미련한 사람같이 매양 혼자서 주인공을 부르며, 다시 스스로 대답하고 말하기를 ‘정신차려서 후일에 남의 속임을 받지 말라.’ 하니라."192)

192) 卍續藏138, 240下10-12.

 

이 내용은『大慧普覺禪師書』卷第29「答李寶文章」193)에도 있는 것인데, 無門은 이것을 취하여 이 공안의 문장을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193) 大正藏47, 935下1-4.

 

2. 惺惺著: 마음을 분명히 하라고 하는 뜻으로 선어록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194)

194)『禪學辭典』, p.386 참조.

 

3. ?!(니) : ‘저것!’ 이라 하던가, 또는 ‘야!’ 라고 하면서 무언가 물건 같은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반문할 때 쓰는 말(간투사)이다. 또는 주의를 끌게 할 때 쓰는 말이다.195)

195) 秋月, p.93 참조.

*? 부적 적,가리키는 모양 니,가리키는 모양 이

 

4. 學道之人不識眞: 이 게송은『景德傳燈錄』卷第10「湖南長沙禪師章」에 있는 게송을196) 옮긴 것이다. 無門은 이『傳燈錄』의 것에서 從來를 從前으로, 無始를 無量으로, 本來身을 本來人으로 바꿔 쓴 것으로 보인다.

196) 大正藏51, 274中17-18.

 

 

 

【原文懸吐】

 

第十三則德山托鉢₁

 

德山이 一日에 托鉢下堂이라가 見雪峰하니 問호대 者老漢₂이 鐘未鳴하고 鼓未響이어늘 托鉢向甚處去오하니 山이 便回方丈하니라 峰이 擧似巖頭하니 頭云호대 大小德山이 未會末後句₃로다하니 山이 聞하고 令侍者로 喚巖頭來하야 問曰호대 汝不肯老僧耶아하거늘 巖頭가 密啓其意하니 山이 乃休去하니라 明日陞座에 果與尋常不同이라 巖頭가 至僧堂前하야 ?掌大笑하며 云호대 且喜得老漢이 會末後句로다 他後天下人이 不奈伊何하리라하니라

無門이 曰호대 若是末後句인댄 巖頭德山이 俱未夢見在라 ?點將來하면 好似一棚傀儡₄로다

頌曰識得最初句하면 便會末後句나 末後與最初가 不是者一句? 로다

 

第十三則、 德山托?

 

德山一日托?下堂。見雪峰問者。"老漢鐘未鳴鼓未響。托?向甚處去?"。山便回方丈。

峰?似巖頭。頭云。"大 小德山未會末後句"。

山聞。令侍者喚巖頭來。問曰。"汝不肯老僧那?"。

巖頭密?其意。山乃休去。明日陞座。果與尋常不同。

巖頭至僧堂前。?掌大笑云。"且喜得老漢會末後句。他後天下人不奈伊何。"

無門曰: 若是末後句。巖頭德山俱未夢見在 !。?點將來好。似一棚傀儡 !。

【頌曰】 識得最初句 便會末後句 末後與最初 不是者一句

 

【한글 직역 】

 

덕산이 하룻날에 발우를 들고 堂에서 내려오다가 설봉을 보니, 묻되 “이 늙은이가 종이 울리지 않고, 북소리도 나지 않았거늘 발우를 들고 어느 곳으로 가는 고 ?” 하니 山이 문득 방장으로 돌아 가니라.

峰이 암두에게 드니 頭가 이르되 大小의 덕산이 말후의 句를 이해하지 못 함이로다 하니,

산이 듣고 시자로 하여금 암두를 불러 오게 하여 물어 가로되 “네가 노승을 긍정하지 않는 것이냐?” 하거늘 암두가 비밀히 그 뜻을 여쭈니 산이 이에 가서 쉬니라. 명일 자리(/법좌)에 오름에 과연 평소와 더불어 같지 않은지라.

암두가 승당의 앞에 이르러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이르되 “또한 기쁘도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알아 얻었도다. 그는 뒤에 천하의 사람들이 저를 어쩌지 못하리라!” 하니라.

무문이 가로되 만약 이 말후구 일진대, 암두와 덕산이 함께 꿈에도 보지 못한 것이라. 점검하여 오면 좋게 하나의 시렁(/선반)에 꼭두각시와 같도다.

頌하여 가로되 최초의 구를 알아 얻으면 문득 말후구를 이해 할 것이나 말후와 최초라는 것은 이 일구가 아니로다.

 

【內容略解】

 

덕산은 말후구를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런 말을 한 암두를 불러서 따졌다. 암두가 비밀히 그 뜻을 말씀드렸더니, 다음날 덕산이 법상에 올라서 설법하는데 과연 평상시와는 다르게 하였다. 이 때 암두가 법당 앞에 와서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저 노장이 드디어 말후구를 알았다. 이제 천하에 어느 누구도 노장을 어쩌지 못하라라!” 하였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덕산과 암두의 속뜻이 무엇일까? 이 두 스님의 행동에 속으면 안 된다. 만약 이것이 말후구라면 암두와 덕산은 꿈에도 말후구를 보지 못한 것이다. 점검하여 보면 선반에 얹어 놓은 인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구를 알면 말후구도 알 수 있으나, 말후구와 최초구라고 하는 것은 모두 第一句가 아닌 것이다. 암두가 말한 말후구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註解】

1. 德山托鉢: 이 공안의 내용은『傳燈錄』에 있는 것을 무문이 간추려서쓴 것으로 생각된다.『景德全燈錄』卷第16「前朗州德山宣鑒禪師法嗣章」에 있는 이야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설봉이 덕산에서 공양주(飯頭)로 있을 때 하루는 공양(飯)이 늦었다. 덕산이 발우를 들고 법당으로 가는데 설봉이 덕산을 보고 ‘저 늙은이가 종이 울리지 않고 북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 가는고?’ 하였다. 덕산은 그대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설봉이 이일을 암두에게 말하니, 암두가 덕산이 말후구를 모른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덕산이 侍者를 시켜서 암두를 불러다가 ‘네가 나를 긍정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암두가 은밀하게 그 뜻을 여쭈니, 덕산이 다음 날 上堂하여는 평상시와 같지 않았다. 암두가 법당 앞에서 박장대소하며 말하기를 또한 기쁘지 않은가? 늙은이가 말후구를 알았도다. 이후로는 천하의 사람들이 어쩌지 못하리라”197) 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五燈會元』卷第7「德山鑒禪師法嗣章」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198)

197) 大正藏51, 326上26-下4.

198) 卍續藏138, 232下9-15.

 

2. 老漢: 노스님을 친밀하게 부를 때, 또는 얕잡아 부를 때 쓰는 말이다.199) 선어록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다.

199)『禪學辭典』, p.112 참조.

 

3. 末後句: 末後는 究竟, 畢竟, 至極을 뜻하고, 句는 언구, 문구 등을 뜻하는 것 으로서 宗門의 활구를 의미한다.200)

200)『佛敎辭典』, p.574 참조. 末後一句. 대오철저(大悟徹底)한 극치(極致)에 이르러 지극한 말을 토(吐)하는 것.

 

4. 一棚傀儡(일붕괴뢰): 傀儡는 인형을 말하고, 一棚은 인형극을 할 때의 일막 일장을 뜻 하는 것이다.201) 이 공안에서는 암두와 덕산의 행동이 마치 인형놀이를 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202)

203)『佛敎辭典』, p.2130 참조.

 

5. 一句: 禪家에서 쓰는 용어도 末後一句를 말하는 것이다.203)

203)『佛敎辭典』, p.2130 참조.

 

 

 

 

【原文懸吐】

 

第十四則  南泉斬?₁

 

南泉和尙이 因東西兩堂에 爭?兒하야 泉乃提起云호대 大衆아 道得卽救요 道不得卽斬?也리라하니 衆이 無對라 泉遂斬之하니라 晩에 趙州外歸어늘 泉擧似州하니 州乃脫履하야 安頭上而出하니 泉이 云호대 子若在₂
라면 卽救得?兒리라하니라

無門이 曰호대 且道하라 趙州頂草鞋意가 作?生고 若向者裏下하야 得一轉語하면 便見南泉令不虛行하리라 其或未然인댄 險이니라

頌曰趙州若在라도 倒行此令이리니 奪?刀子하면 南泉乞命하리니라

 

第十四則、南泉斬?

 

南泉和?。因東西兩堂爭?兒。泉乃提起云。"大?道得?救。道不得?斬?也!。"

?無對。泉遂斬之。

? 趙州外歸。泉?似州。州乃脫履。安頭上而出。泉云。"子若在 ?救得?兒。"

無門曰: 且道。"趙州頂草鞋 意作?生"。若向者裏 下得一轉語。便見南泉令不虛行。其或未然「險」。

【頌曰】

趙州若在 倒行此令 

奪?刀子 南泉乞命

 

【한글 직역 】

 

남전화상이 동서의 양당에서 고양이를 다투는 것을 인하여, 泉이 이에 일으켜 들고 이르되 “대중들아! 이르면 곧 구원함을 얻을 것이요. 이르지 못하면 곧 참하리라” 하니

무리가 대답이 없는지라. 전이 드디어 참하니라.

저녁에 조주가 밖에서 돌아오거늘 전이 州에게 같은 것을 드니, 주가 이에 신을 벗어 머리 위에 얹고 나가니라. 전이 이르되 “그대가 만약 있었더라면 곧 고양이를 구원하였으리라” 하니라.

무문이 가로되 또한 이르라. 조주가 풀 신을 머리에 한 뜻이 무엇인고?  만약 이속을 향하여 일전어를 얻으면 문득 남전의 명령이 헛되이 행한 것이 아님을 보리라. 그 혹 그렇지 않을진대 위험할 것이니라.

 

頌하여 가로되

조주가 만약 있었더라면 거꾸로 이 명령을 행하였으리니

칼을 빼앗으면 남전이 목숨을 빌었으리라!

 

【內容略解】

 

남전은 선방에서 스님들이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기에 고양이를 붙잡고 “한 마디씩 해 보라! 옳게 말하면 고양이를 살려 두고, 옳게 말하지 않으면 고양이를 죽이리라!” 하니,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그래서 남전은 고양이를 그 자리에서 죽였다. 저녁에 조주가 돌아왔기에, 남전이 그 일을 말해 주고 “자네라면 어떻게 하였겠는가?” 하니, 조주가 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말없이 나가 버렸다. 남전은 조주를 칭찬했다.

조주의 의도가 무엇일까? 남전은 고양이를 살려 둘 수는 없었을까? 말해보라!

조주가 신을 머리에 이고 나간 의도가 무엇인가? 이 속에 들어가서 한 마디 할 수 있으면 남전의 행위가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볼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위험하게 될 것이다. 조주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남전이
오히려 살려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註解】

 

1. 南泉斬猫: 南泉은 남전이라고 발음한다.204) 이 남전참묘의 이야기는『祖堂集』卷第5「德山章」에도 나오는 것인데,『祖堂集』에는 馬祖가 싸움을 말리기 위하여 고양이를 죽인 이야기는 있으나, 趙州와 나눈 이
야기는 기록되지 않고 있다.205)『無門關』의 것은『景德傳燈錄』卷第8「南泉禪師章」206)과『古尊宿語錄』卷第13「趙州眞際禪師語錄幷行狀」卷上에207) 있는 내용을 무문이 간추려서 문장을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204) 佛敎辭典, p.345 참조.
205) 高麗45, 269上26-中1.

206) 大正藏51, 258上3-7.
207) 卍續藏118, 306下13-18.

 

2. 子若在: 子字는 ‘당신’, ‘너’ 라는 뜻으로 쓰는 2인칭 대명사이다.208) 그러므로 子若在는 “네가 만약 있었더라면” 이라고 해석한다.

208)『中國語辭典』p. 2829.

 

 

 

 

【原文懸吐】

 

第十五則  洞山三頓₁

 

雲門이 因洞山參次하야 門이 問曰호대 近離甚處오 山이 云호대 査渡이니다 門이 曰호대 夏在甚處오 山이 云호대 湖南報慈이니다 門이 曰호대 幾時離彼오 山이 云호대 八月二十五이니다 門이 曰호대 放汝三頓棒₂하
노라 山이 至明日에 ?上問訊호대 昨日에 蒙和尙三頓棒이나 不知過在甚?處니다하니 門이 曰호대 飯袋子야 江西와 湖南에 便恁?去오하니 山이 於此에 大悟하니라

無門이 曰호대 雲門이 當時에 便與本分草料₃하야 使洞山으로 別有生機一路하야 家門이 不致寂寥라 一夜에 在是非海裏著到하야 直待天明再來하니 又與他注破라 洞山이 直下에 悟去나 未是性燥아 且問諸人하노라
洞山이 三頓棒을 合喫가 不合喫가 若道合喫인댄 草木叢林이 皆合喫棒이요 若道不合喫인댄 雲門이 又成?語로다 向者裏하야 明得하면 方與洞山으로 出一口氣니라

頌曰獅子敎兒迷子訣은 擬前跳?早?身이로다 無端再鉢當頭著이라 前箭猶輕後箭深이로다

 

 

第十五則、洞山三頓

 

雲門因洞山參次。門問曰。"近離甚處? "。山云 "?渡"。

門曰 "夏在甚處?"。山云 "湖南報慈"。

門曰 "幾時離彼?"。山云 "八月二十五"。

門曰 "放汝三頓棒"。山至明日?上問訊。"昨日蒙和?放三頓棒。不知過在甚?處?"。

門曰 "飯袋子。江西湖南便恁?去" 山 於此大悟。

 

無門曰: 雲門當時便與本分草料。使洞山別有生機一路。家門不致寂寥。

一夜在是非海裏。著到直待天明。再來又與他注破。洞山直下悟去。未是性燥。

且問諸人。"洞山三頓棒合喫不合喫?"。

若道合喫。草木叢林皆合喫棒。若道不合喫。雲門又成?語。

向者裏明得。方與洞山出一口氣。

【頌曰】

獅子?兒迷子訣 擬前跳?早?身 

無端再?當頭著 前箭猶輕後箭深

 

【한글 직역 】

 

운문이 동산의 參함을 인하여 門이 물어 가로되 근래 어느 곳에서 떠났는고? 山이 이르되 査渡이니다.

문이 가로되 여름에는 어느 곳에 있었는고? 산이 이르되 “호남의 報慈이니다”

문이 가로되 “어느 때 저쪽을 떠났는고?” 산이 이르되 “팔월 십오일이니다”

문이 가로되 “너에게 三頓의 棒을 놓아두노라” 산이 명일에 이르러 문안을 올리되 “어제 날에 화상의 삼돈 방을 받았으나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문이 가로되 “밥자루야! 강서와 호남에 문득 이렇게 갔었는고?” 하니, 산이 이에서 크게 깨달으니라.

 

무문이 가로되 운문이 당시에 문득 본분의 草料를 주어서, 洞山으로 하여금 별다르게 하나의 길로 살아가는 기틀이 있게 하여, 가문이 고요함에 이르지 않게 한지라.

하루 밤에 시비의 바다 속에 일음이 있어서 곧 바로 하늘이 밝기를 기다려 다시 오니, 또한 달리 주파를 준지라. 동산이 곧 바로 깨달아 갔으나, 이 성품이 마른 것이 아닌가!

또한 모든 사람에게 묻노라. 동산이 삼돈방을 합당히 먹었는가? 합당히 먹지 못하였는가?

만약 합당히 먹은 것이라 이를진대 초목과 총림이 다 합당히 방을 먹을 것이요. 만약 합당히 먹지 못한 것이라 이를진대 운문이 또한 미친 말을 한 것이로다.

이 속을 향하여 밝게 얻으면 바야흐로 동산으로 더불어 한 입의 기운을 나타내리니라.

 

頌하여 가로되

獅子가 새끼를 가르침에 迷子를 결정함은 앞을 헤아려 일찍 몸을 뒤집어 뛰어 오름이로다.

무단히 두 번 베풀어서 즉시에 맞음이라. 앞에 화살은 오히려 가벼웠으나 뒤에 화살은 깊음이로다.

 

 

【內容略解】

 

운문이 동산에게 “근래에 어디서 떠나 왔는가?” 하고 물으니 동산은 “사도입니다” 하였다. 또 묻기를 “여름에는 어디에 있었나?” “호남의 보자사에 있었습니다” “언제 거기서 떠났는가?” “팔월 십오일입니다”하니,
“너에게 세 번 때릴 것을 놓아두노라” 하였다. 다음 날 동산은 운문에게 묻기를 “어제 저에게 三頓棒(/육십 방망이)을 때린다고 하셨는데,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운문은 “이 밥자루야! 강서와
호남을 그런 식으로 다녔느냐?” 하였다. 이 때 동산이 곧 바로 깨달았다고 하지만, 그 성품이 매 마른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들에게 묻노라, 동산이 과연 三頓棒을 맞는 것이 합당 한 것인가? 합당 하지 않은 것인가? 사자가 키워야 할 새끼를 가려 낼 때는 절벽에서 떨어뜨려서 기어오르는 새끼만을 기른다고 하였다.

 

【註解】

 

1. 洞山三頓: 이 공안은 관한 것은『景德傳燈錄』卷第23「襄州洞山守初崇(宗)禪師章」에209) 있는 것이다. 그리고『五燈會元』卷第15「襄州洞山守初宗(崇)慧禪師章」에도 전하고 있다.210) 본『無門關』에서는『傳燈錄』의 것에 初參雲門을 雲門因洞山參次로, 雲門問을 門問曰로 師曰을 山云으로, 師於言下를 山於此로 하는 등 여러 語句들을 바꾸어 쓰고 있다.

209) 大正藏51, 389中13-19.
210) 卍續藏138, 565上8-12.

 

2. 三頓棒: 禪家에서 스승이 ?杖子를 가지고 學人을 가르치는 수단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頓이란 횟수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원래 중국에서 죄인을 벌 할 때 몽둥이로 때렸는데 20번 때리는 것을 一頓이라고
했다.211) 三頓棒은 세 번 호되게 때린다는 뜻이므로, 三頓은 반드시 60棒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212)

211) 鄭性本, p.151 참조.
212) 秋月, p.109 참조.

* 돈(頓)은 질책·권고·식사 따위의 횟수에 쓰임. 몽둥이로 세 번 내리침.

 

3. 本分草料: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끔 하는데 쓰이는 먹이라는 뜻인데, 학인을 牛馬에, 스승이 지도하는 것을 먹이에 비유한 말이다.213) 여기서 草料는 소나 말이 먹는 여물을 말하는 것이다.

213)『禪學辭典』, p.292 참조.

 

 

 

 

【原文懸吐】

 

第十六則  鐘聲七條₁

 

雲門이 曰호대 世界恁?廣闊이어늘 因甚向鐘聲裏하야 披七條오하니라
無門이 曰호대 大凡參禪學道는 切忌隨聲逐色이니라 縱使聞聲悟道하고 見色明心은 也是尋常이라 殊不知衲僧家가 騎聲蓋色하야 頭頭上₃明하고 著著₄上妙로다 然雖如是라도 且道하라 聲來耳畔가 耳往聲邊가 直饒? 響寂雙忘이면 到此如何話會오 若將耳聽하면 應難會요 眼處聞聲?이면 方始親이니라

頌曰會則事同一家요 不會萬別千差로다 不會事同一家니 會則萬別千差니라

 

 

第十六則、鐘聲七條

 

雲門曰。"世界恁?廣闊。因甚向鐘聲裏披七條? "。

無門曰: 大凡參禪學道。切忌隨聲逐色。縱使聞聲悟道 見色明心。也是尋常。

殊不知。衲僧家騎聲蓋色。頭頭上明。著著上妙。

然雖如是 且道。聲來耳畔。耳往聲邊。

直饒響寂雙忘。到此如何話會。若將耳聽應難會。眼處聞聲方始親。

【頌曰】

會則事同一家 不會萬別千差 

不會事同一家 會則萬別千差

 

 

【한글 직역 】

 

운문이 가로되 “세계가 이렇게 넓고 넓거늘 어찌 종소리를 인하여 七條를 입는고?” 하니라.

무문이 가로되 무릇 참선하며 도를 배우는 이는 소리를 따르고 색을 ?아 가는 것을 간절히 꺼리나니라. 가령 소리를 들으면 도를 깨닫고 색을 보면 마음을 밝히는 것은 이 평상시의 일이라.

특히 衲僧家가 소리를 타고 색을 덮어서 頭頭上에 밝고 著著上에 묘함을 알지 못함이로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더라도 또한 이르라. 소리가 귀 쪽으로 오는 것인가? 귀가 소리의 곁으로 가는 것인가? 설령 소리와 고요를 쌍으로 잊는다면, 이에 이르러 어떻게 말하고 이해 할 것인고? 만약 귀로 들으면 응당 알기 어려울 것이요. 눈으로 소리를 들으면 바야흐로 비로소 친근할 것이니라.
頌하여 가로되

 이해한 즉, 한 집과 같은 일(事)이요. 이해하지 못하면,곧 만 가지가 다르고 천 가지가 틀리도다.

이해하지 못하여도 한 집과 같은 일이니, 이해하면, 곧 만 가지가 다르고 천 가지가 틀리 나니라.

 

【內容略解】

 

운문이 “이 세계가 넓고 넓은데 무슨 이유로 종소리가 나면 칠조의 가사를 입느냐?” 하는 문제를 냈다. 참선하면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소리나 모습을 따라 가서는 안 된다. 소리를 들어서 도를 깨우치고 모습을 보고서 마음을 밝히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다. 말해 보라!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인가? 귀가 소리를 듣는 것인가? 소리는 귀로 듣는 것 보다는 눈으로 들어야 소리의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어떻게 눈으로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이해가 된다는 것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註解】

 

1. 鐘聲七條:『古尊宿語錄』卷第15「雲門匡眞禪師廣錄」上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上堂因聞鐘鳴하고 乃云호대 世界與?廣闊이어늘 爲什?하야 鐘聲披七條오
堂에 올라서 종이 울리는 것을 듣고, 이에 말하기를 세계가 이처럼 광활하거늘 어찌하여 종소리에 칠조 가사를 입는고?214)

214) 卍續藏, 118下9-10.

 

그런데『五燈會元』卷第15「韶州雲門禪師章」에는 『雲門廣錄』의 因聞鐘鳴을 因聞鐘聲으로 그리고 乃云을 乃曰로 바꿔 쓰고 있다. 無門은『雲門錄』의 것을 줄여서 문장을 만들고 공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2. 聞聲悟道 見色明心: 香嚴이 대나무에 작은 돌이 맞아서 나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달은 것과, 靈雲은 복숭아꽃이 핀 것을 보고 깨달았다는 이야기에서 근거한 말이라 한다.215)『景德傳燈錄』卷第11「鄧州香嚴智閑禪師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215) 平田, p.72 참조.

 

"一日因山中芟除草木에 以瓦礫擊竹作聲하야 俄失笑間에 廓然惺悟하니라
하루는 산중에서 풀과 나무를 베는데, 돌이 대나무에 맞아 나는 소리에 잠시 쓴 웃음을 짓다가 확연히 깨달았다." 216)

216) 大正藏51, 284上9-11.

 

그리고 同「福州靈雲志勤禪師章」에는 꽃을 보고 깨달은 내용을 간단히 전하고 있다.

 

"初在僞山에 因桃華悟道하니라
처음 위산에 있을 때에 복숭아꽃을 보고 도를 깨달았다." 217)

217) 大正藏51, 285上23-24.

 

無門이 이 내용들을 인용하여 한 말인가 하는 것은 의문점이 있다.

 

 

3. 頭頭上: 頭頭는 각각, 또는 제각기의 뜻이다.218) 上은 명사의 아래에 붙어서 ‘~에 관하여, ~에 있어서’ 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219) 그러므로 頭頭上은 ‘각각에 관하여’ 라는 의미로 해석 된다.

218)『漢韓字典』, p.2254 참조.
219)『국어사전』, p.1834 참조.

 

4. 著著: 일이 차례대로 잘 되어 가는 모양을 뜻한다.220)

220)『漢韓字典』, p.1768 참조.

 *著著 충분하다, 확실하다, 착착

 

5. 直饒: 가령, 설령을 뜻한다.221)

221)『禪學辭典』, p.624 참조.

 

6. 眼處聞聲: 洞山良价禪師가 雲巖禪師에게 無情說法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후에 지은 게송에 나오는 말이다.『景德傳燈錄』卷第15「筠州洞山良价禪師章」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보인다.

 

"若將耳聽聲不現이요 眼處聞聲方可知로다
만약 귀로 들으면 소리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요.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가히알 것이다." 222)

 

無門은 이 게송의 뜻을 취하여 문구를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五燈會元』卷第13.「雲巖晟禪師法嗣章」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의 게송을 전하고 있다.

 

"若將耳聽 終難會요 眼處聞時 方得知로다
만약 귀로 들으면 마침내 알기 어려운 것이요. 눈으로 들을 때에 바야흐로 알 것이다."223)

 

222) 大正藏51, 321下11.
223) 卍續藏138, 467下3-5.

 

 

 

 

 

【原文懸吐】

 

第十七則國師三喚

 

國師가 三喚侍者에 侍者가 三應하니 國師가 云호대 將謂吾辜負汝러니 元來?是汝辜負吾로다하니라

無門이 曰호대 國師三喚하야 舌頭墮地하니 侍者三應하야 和光₂吐出이로다 國師年老心孤하야 按牛頭喫草호대 侍者未肯承當₃이라 美食不中飽人?이로다

且道하라 那裏是他辜負處오 國淨才子貴요 家富小兒嬌니라
頌曰鐵枷無孔要人擔하니 累及兒孫不等閑이로다 欲得撑門幷?戶인댄更須赤脚上刀山이로다

 

第十七則、國師三喚

 

國師三喚侍者。侍者三應。國師云。"將謂吾辜負汝。元來?是汝辜負吾 ! "。

無門曰: 國師三喚舌頭墮地。侍者三應。和光吐出。

國師年老心孤。按牛頭喫草。侍者未肯承當。美食不中飽人餐。

且道 那裏是他辜負處?。國?才子貴。家富小兒嬌。

 

【頌曰】

鐵枷無孔要人擔 累及兒孫不等閑 

欲得?門??戶 更須赤?上刀山

 

 

【한글 직역 】
國師가 侍者를 세 번 부름에 시자가 세 번 응낙하니 국사가 이르되 “장차 내가 너를 저 버린다고 이르려 했더니 원래 이는 네가 나를 저버렸음이로다.” 하니라.

무문이 가로되 국사가 세 번 불러서 혀끝이 땅에 떨어지니 시자가 세번 응낙하여 和光을 토해 냄이로다.

국사가 나이가 늙고 마음이 외로워서 소의 머리를 만지며 풀을 먹이되 시자는 즐겨 받아드리지 않는지라.
아름다운 음식이 배부른 사람의 밥으로는 알맞지 않음이로다.

또한 이르라. 어디가 남을 저버린 곳인고? 나라가 맑으면 재주 피는 이가 귀하게 되고, 집이 부자이면 어린 아이가 교만하여 지나니라.

頌하여 가로되

구멍이 없는 무쇠 칼을 사람에게 메게하니  累가 兒孫에 미쳐 등한히 하지 못하게 하였도다.

門을 지탱하고 아울러 戶를 버팀을 얻고자 할진대  다시 모름지기 붉은 다리로 칼산에 오를 지로다.

 

 

【內容略解】

 

國師가 侍者를 세 번 부르니 시자가 세 번 대답하였다. 그런데 국사는 시자에게 배반자라고 하였다. 무슨 이유일까? 국사는 세 번 불러서 혀끝이 땅에 떨어졌으나, 시자가 세 번 대답하여 和光을 토해 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말해 보라! 시자가 배반한 것이 무엇인가? 부잣집 아이는 교만하기 쉬운 것이다. 가문을 지탱하려면 맨 발로 칼산을 올라가야 하리라.

 

【註解】

 

1. 國師三喚:『傳燈錄』에 있는 내용인데, 無門은 이것을 간추려서 공안의 문장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景德傳燈錄』卷第5「西京光宅寺慧忠國師章」에 다음과 같이 전하는 것이 있다.

 

"一日에 喚侍者하니 侍者應諾이라 如是三召에 皆應諾하니 師曰호대 將謂吾孤負汝러니 却是汝孤負吾로다

어느 날 시자를 부르니 시자가 대답하였다. 이렇게 세 번 부르는데 (시자가)다 대답하니 師가 가로되, 내가 너를 배반(/잘못가르침)한 줄 알았더니 네가 나를 배반하였도다.224)

224) 大正藏51, 244上24-26.

 

그런데『五燈會元』卷제2「南陽慧忠國師章」에는 “侍者應諾을 者應諾으로, 皆應諾을 三應으로”225) 하고 있다.

225) 卍續藏138, 66上18-下1.

 

2. 和光: 자기 智德의 빛을 고이 감추고 밖에 나타 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226) 또는 俗世間에서 서로 사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227) 이 말은 『老子』「第四章」에 있는 和光同塵(和其光同其塵)에서 인용한 것이
다.228)

226)『국어사전』, p.4262 참조.
227)『佛敎辭典』, p.2844 참조.
228) 秋月, p.123 참조.

 

3. 承當: 받아들이다.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한다는 뜻이다.229)

229)『禪學辭典』, p.410 참조.

 

 

 

 

【原文懸吐】

 

第十八則  洞山三斤₁

 

洞山和尙은 因僧問호대 如何是佛이닛가하야 山이 云호대 麻三斤이라하니라
無門이 曰호대 洞山老人이 參得些蚌蛤禪₂하야 ?開兩片에 露出肝腸이로다 然雖如是라도 且道하라 向甚處見洞山고
頌曰突出麻三斤은 言親意更親이로다 來說是非者는 便是是非人₃이니라

 

 

十八則、洞山三斤

 

洞山和?。因僧問。"如何是佛? "。山云。"麻三斤"。

無門曰: 洞山老人參得些蚌蛤禪。?開兩片。露出肝腸。

然雖如是且道。向甚處見洞山。

【頌曰】 突出麻三斤 言親意更親 來說是非者 便是是非人

 


【한글 직역 】

 

동산 화상은 승이 묻되 “어떤 것이 이 부처이니까?” 함을 인하여, 산이 이르되 “삼 세근이라” 하니라.
무문이 가로되 동산 노인이 이 조개의 禪을 參하여 얻어서 겨우 두조각(/조개의 입)을 열음에 肝과 腸을 노출 하였도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다 하더라도 또한 이르라. 어느 곳을 향하여 동산을 볼 것인고?

頌하여 가로되

삼 세근이 돌출함은 말도 친근하고 뜻도 다시 친근함이로다.

와서 시비를 말하는 이는 문득 이 시비하는 사람이니라.

 

 

【內容略解】
동산은 어떤 것이 부처냐고 하는 질문에 삼 세근 이라고 대답하였다.
동산 노장이 조개와 같은 참선법으로 두 조각을 열었기에 肝과 腸을 노출시켰다.

그러나 말해 보라! 어느 곳에서 동산을 볼 것인가? 삼 세근을 돌출시킨 것은 말과 뜻이 모두 친절한 것이다. 남의 시비를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이 시비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註解】

 

1. 洞山三斤: 이 공안은『傳燈錄』과『碧巖錄』에 있는 것을 인용하여 문구를 만든 것으로 생각 된다.『景德傳燈錄』卷第22「隋州雙泉山師寬明敎大師章」에 다음의 인용문이 보인다.

 

"僧問洞山호대 如何是佛이닛고 洞山이 云호대 麻三斤이니라
승이 동산에게 묻되,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동산이 이르되, 삼 세근이니라."230)

230) 大正藏51, 386下21.

 

『碧巖錄』卷第2 第十二則231)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인용되고 있다.

그리고『五燈會元』卷第15「襄州洞山守初禪師章」에는 다음과 같이 어구를 다르게 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231) 大正藏48, 152下19-20.

 

"問호대 如何是佛이닛가 師曰호대 麻三斤이니라
묻되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사가 가로되 삼 세근이니라."232)

232) 卍續藏138, 565下14.

 

이 공안의 내용에서 麻를 “참깨” 로 해석하기도 한다.233) 그러나 唐代에 三斤의 麻絲가 하나의 단위이다. 또는 한 뭉치 麻絲의 무게가 三斤이었다. 동시에 袈裟한 벌의 재료가 되었다. 當時에 마포(/삼베)로 가사나 승복을 만들었다.234) 고 하여, 이 공안에서는 삼베의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지만 확실 하지는 않다.『碧巖錄』卷第2 第十二則의 評唱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233) 『中國語辭典』, p.1354 참조.
234) 鄭性本, p.172 참조.

 

"洞山是時에 在庫下하야 秤麻러니 有僧問하야 所以如此答이라
동산이 이 때에 창고 아래에서 삼베(혹은 참깨)를 저울질하고 있더니, 僧의질문이 있어 이와 같이 대답하였다."235)

235) 大正藏48, 152下25-26.

 

그러나 이 麻가 삼베인지 참깨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2. 蚌蛤禪(방합선): 무문이 만들어 낸 말이다. 이 말은 조개가 입을 열면 속이 다보이는 것과 같은 禪風을 뜻하는 것이다.236) 麻三斤이라 대답한 것은 洞山의 禪旨가 들어난 것이라는 의미이다.237)

236) 秋月, p.129 참조.
237) 平田, p.78 참조.

 

3. 來說是非者 便是是非人: 이 게송은『嘉泰普燈錄』卷第11「五祖法演禪師法嗣」의「嘉州九頂淸素禪師章」238)과『明心寶鑑』「省心篇」上에239)보이는 구절이다.

238) 卍續藏137, 185下3.
239)『明心寶鑑』, p.51 참조.

 

 

 

【原文懸吐】

 

第十九則  平常是道₁

 

南泉이 因趙州問호대 如何是道닛가하야 泉이 云호대 平常心是道니라 州云호대 還可趣向₂否잇가 泉이 云호대 擬向卽乖니라 州云호대 不擬爭知是道닛가 泉이 云호대 道不屬知요 不屬不知니 知是妄覺이요 不知是無記
니라 若眞達不擬之道면 猶如太虛하야 廓然洞豁₃이니 豈可强是非也리요하니 州於言下에 頓悟하니라
無門이 曰호대 南泉이 被趙州發問하야 直得瓦解?消하니 分疏不下4로다 趙州縱饒悟去나 更參三十年이라야 始得이리라
頌曰春有百花秋有月이요 夏有?風冬有雪이라 若無閑事?心頭하면 便是人間好時節이로다

 

 

第十九則、平常是道

 

南泉因趙州問。"如何是道? "。泉云。"平常心是道"。

州云。"還可趣向否? "。泉云。"擬向?乖"。

州云。"不擬爭知是道? "。

泉云。"道不屬知。不屬不知。知是妄覺。不知是無記。

若?達不擬之道。猶如太虛廓然洞豁。豈可?是非也"。州於言下頓悟。

無門曰: 南泉被趙州發問。直得瓦解?消分疏不下。趙州縱饒悟去。更參三十年始得。

 

頌曰 

春有百花秋有月 夏有?風冬有雪 

若無閑事?心頭 便是人間好時節

 

【한글 직역 】
남전은 조주가 묻되 “어떤 것이 이 도이니까?” 함을 인하여, 泉이 이르되 “평상심이 이 도이니라”

州가 이르되 “도리어 가히 취향 하여야 하나니까?” 전이 이르되 헤아려 향하면 곧 어기나니라.

주가 이르되 헤아리지 않으면 어찌 이 도를 알겠나이까?

전이 이르되 “도는 아는데 속하지 않는 것이요. 알지 못하는 것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니 안다는 것은 망녕된 깨달음이요. 알지 못함은 이것이 無記니라.

만약 참으로 헤아림이 아닌 도를 통달하면 太虛와 같아서 확연히 통찰함이니, 어찌 가히 강제로 시비하리요” 하니, 주가 언하에 갑자기 깨달으니라.
무문이 가로되 남전이 조주의 물음을 입어서 기왓장이 무너지고 얼음이 사라지는 결과가 되었으니 변명하지 못함이로다. 조주가 설령 깨닫고 갔으나 다시 삼십년을 참 하여야 비로소 얻으리라.

頌하여 가로되

봄에는 백가지 꽃이 있고, 가을에는 달이 있음이요.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있고, 겨울에는 눈이 있음이라. 만약 일이 한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문득 이것이 인간의 좋은 시절이로다.

 

 

【內容略解】

남전은 조주가 어떤 것이 道냐고 묻는데 평상심이 도라고 대답하였다. 조주는 남전의 설명을 듣고 단박에 깨달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설령 조주가 깨달았다 하여도 삼십년을 더 참구해야 비로소 도를 얻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봄에는 꽃이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있으며, 가을에는 유난히 밝은 달이 있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있지 않은가!

마음에 걱정할 일이 없으면 이 모두가 좋은 시절이 아니냐! 지금 마음속에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가?

 

 

【註解】

1. 平常是道: 이 공안에 관한 것은『祖堂集』卷第18「趙州和尙章」240)과『古尊宿語錄』卷第13「趙州眞際禪師語錄幷行狀」上,241) 그리고『景德傳燈錄』卷第10「趙州觀音院從?禪師章」에242)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無門은 이것들을 인용하여 본칙의 문장을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祖堂集』과『趙州錄』의 擬則乖가『傳燈錄』에는 擬向卽乖로 되어 있고,

『祖堂集』과『傳燈錄』에서 不擬時如何知是道라 한 것이『趙州錄』에는 不擬爭知是道로 되어 있다.

또『趙州錄』에는 師於言下頓悟玄旨라하고,『祖堂集』에는 師於是頓領玄機로,『傳燈錄』에는 言下悟理로 하는 등 각기 다른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240) 高麗45, 343中5-9.
241) 卍續藏118, 306上16-18, 下1.
242) 大正藏51, 276下14-19.

 

2. 趣向: 실천하는 것, 향하는 것, 과보로 인도되는 것 등의 뜻이다.243) 여기에서는 실천하여 나가는 것이란 뜻으로 쓴 것이다.

243)『佛敎辭典』, p.2582 참조.

 

3. 洞豁(통활): 탁 틔어 넓음을 뜻한다.244)

244)『漢韓字典』, p.1143 참조.

 

4, 分疏不下: 분소는 ‘변명 하다’245)라는 말이고, 불하는 ‘하지 못한다’는 뜻이므로 分疏不下는 ‘변명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245)『漢韓字典』, p.282 참조.

 

 

 

【原文懸吐】

 

第二十則  大力量人₁

 

松源和尙이 云호대 大力量人이 因甚擡脚不起오하고 又云호대 開口不在舌頭上이라하니라
無門이 曰호대 松源은 可謂傾腸倒腹이나 只是欠人承當이로다 縱饒直下承當이라도 正好來無門處하야 喫痛棒이니라 何故오 ?! 要識眞金인댄 火裏看이니라
頌曰擡脚踏?香水海₂하며 低頭俯視四禪天이라 一箇渾身無處著이니 請續一句₃로다

 

 

第二十則、大力量人

 

松源和?云。"大力量人因甚??不起? "。又云。" 開口不在舌頭上"。

無門曰: 松源可謂。傾腸倒腹。只是欠人承當。縱饒直下承當。正好來無門處喫痛棒。

何故 ?[斬/耳]?要識?金。火裏看。

【頌曰】

??踏?香水海 低頭俯視四禪天 

一箇渾身無處著 請續一句

 

 

【한글 직역 】

 

송원화상이 이르되 “대력량의 사람이 어찌 다리를 들고 일어나지 못하는고?” 하고, 또 이르되 “입을 여는 것은 혀끝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니라.

무문이 가로되 송원은 가히 창자를 기울이고 뱃속을 거꾸로 하였다고 이를만하나, 다만 이것을 받아드리는 사람이 모자람이로다. 비록 직하에 받아드리더라도 正히 좋게 무문의 처소에 와서 아픈 棒을 먹을 것이니라. 무슨 까닭인고? ?!  진금을 알기를 구할진대 불속을 볼 것이니라.

 

頌하여 가로되

다리를 들고 향수해를 밟아 뒤집으며, 머리를 숙여 四禪天을 내려다보는 지라.

일개의 온전한 몸도 착할 곳이 없으니, 청컨대 一句를 이을 지로다.

 

 

【內容略解】

 

송원은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왜 다리를 들고 일어서지 못하는가? 말하는 것은 혀끝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문제를 냈다. 송원이 드러낸 속뜻을 알고 받아 들였다고 하여도 이 무문의 처소에 와서 아프게 몽둥이를 맞아야 한다. 왜냐 하면 이것 봐요! 순금을 알아보려면 불속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발을 들어서 바다를 밟아 뒤집으며, 고개를 숙여서 사선천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이 한 몸을 붙일 곳이 없음이니, 마지막 한 구절을 말해 보라.

 

 

【註解】

 

1. 大力量人:『大明高僧傳』卷第8「臨安府靈隱寺沙門釋崇岳傳」9 246)와『續傳燈錄』卷第35「天童傑禪師法嗣章」247)에 보이는 내용이다. 松源和尙은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 공안을 가지고 시험하였다는 것이다. 이 두 기록의 문장 중에『續傳燈錄』의 것은 有力量人으로 되어 있고,『明高僧傳』의 것은 有大力量人으로 되어 있다.

246) 大正藏50, 932中11-12.
247) 大正藏51, 708上8-9.

 

2. 香水海:『華嚴經』에서 말하는「蓮華藏世界說」에 나오는 말인데, 盧舍那佛이 장엄한 국토에 있는 바다와 같은 연못을 말하는 것이다.248)『八十卷華嚴經』卷第8「華藏世界品」第5-1에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248) 平田, p.84 참조.

 

"諸佛子야 彼須彌山微塵數風輪에 最在上者를 名殊勝威光藏이니라 能持普光摩尼하야 莊嚴香水海니 此香水海에 有大蓮華니라
모든 불자들이여! 저 수미산에 미진수의 풍륜에 가장 위에 있는 것을 殊勝威光藏이라 이름 하는 것이니라. 능히 보광의 마니를 가지고서 향수해를 장엄하였나니, 이 향수해에 큰 연꽃이 있나니라."249)

249) 高麗8, 470下21-23, 大正藏10, 39中4-7.

 

3. 請續一句: 이 마지막 구절은 누구 던지 이 공안을 참구하는 사람이 이어 보기를 바란다고 하는 뜻으로서, 無門이 학인에게 주는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