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世上萬事

자사호(紫沙壺). 수장관 강신문 대표

경호... 2015. 7. 19. 05:26

[The Collector]

자사호 수집가, 홍익 자사호 수장관 강신문 대표

홍익 자사호 수장관 강신문 대표

 

강신문 대표는 15년 전 친구 소개로 차를 마시며 자사호(紫沙壺)의 매력에 빠졌다. 처음부터 차보다 자사호가 좋았다는 그가 지금까지 수집한 자사호만 1000여 점에 이른다. 현재 서울 마포 오피스텔에서 회원제 찻집을 운영하는 그의 자사호 컬렉션을 소개한다.

 

 

 

 

자사호는 중국 이싱(宜興) 일부 지역에서만 나는 독특한 광물질로 만든 다호(茶壺)다. 오색토 또는 부귀토로 불리는 광물질의 주요 성분은 석영, 적철광, 고령토, 운모 등이다.

오색토로 만든 자사호는 유약이나 다른 색소가 들어가지 않으며 섭씨 1100도 전후에서 구워낸다.

명나라 중엽 차 문화의 발전과 함께 탄생한 자사호는 통기성, 보온성 등이 뛰어나 차를 우리는 최적의 다구로 꼽힌다. 중국인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다구인 자사호는 오래 쓸수록 더 빛나고 차를 우려도 짙은 향이 난다.

중국인들은 예술적 가치와 실용 가치를 동시에 지닌 자사호를 두고 “주옥보다 가치가 더 있다”고 말한다. 오랜 기간 잘 보관돼 상태가 양호한 자사호는 새로 구입한 자사호보다 비싸게 거래된다. 따라서 가격도 무척 비싸다. 명인이 만든 자사호는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돈 많은 중국인들이 자사호 수집에 열광하면서 최근에는 자사호뿐 아니라 자사호의 재료인 오색토 가격까지 몇 년 사이 10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친구 소개로 시작한 중국차

 

강신문 대표가 이런 자사호의 매력에 빠진 것은 15년 전이다. 음대 교수로 있는 친구가 중국차를 가르쳐 주면서 선물한 작은 대만 자사호가 자사호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계기가 됐다.

“다른 사람들처럼 처음에는 녹차를 마시다 보이차를 마시게 됐습니다. 보이차는 연도와 지방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거든요. 중국차는 궁합이 맞는 자사호를 만났을 때 제 맛을 냅니다. 다양한 자사호에 차를 우리면서 자사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 거죠.”

중국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등으로 나뉜다. 보이차는 발효 정도가 가장 높은 흑차에 속한다. 발효 정도가 높은 차일수록 높은 온도에서 우려야 하며, 그에 따라 궁합이 맞는 자사호도 다르다.

“다인들을 보면 차에 먼저 빠지고 다음에 다구에 빠지는 게 일반적인데, 제 경우에는 처음부터 자사호가 더 좋았습니다. 차에 맞춰 이런저런 자사호를 쓰면서 한두 점씩 모으게 됐어요. 그러다 중국 여행까지 가게 됐습니다.”

자사호를 모으면서 디자인만도 수백, 수천 가지인 자사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아쉬운 점은 중국차든, 자사호든 공부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의 경우에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 그들의 도움으로 수업료를 절약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말부터 중국의 지인을 통해 수집을 시작했다. 이후 틈나는 대로 베이징과 상하이, 다롄 등을 방문해 눈에 차는 자사호를 사 모았다. 동시에 자사호를 만드는 작가들의 본거지인 이싱을 수시로 방문해 작가들과 교류를 이어왔다.

 

 

 

 

초보 컬렉터를 위한 조언

 

“자사호 수집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중국차 중에 어떤 차가 내 입맛에 꼭 맞는지 끽다(喫茶)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 차와 맞는 자사호를 찾는 게 자사호 수집의 시작일 겁니다.”

차와 자사호의 궁합을 고려한 후 자사호의 니료(재료)와 형태, 용량, 가격 등을 감안해 자사호를 구입하면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다. 그가 그랬듯이 수집 초기에는 기본 형태인 석표호, 방고호, 철구호, 서시호 등 단순하고 오랜 세월 널리 사용돼 온 것에 먼저 눈이 간다.

다음에는 호신에 각을 한 것, 부조를 한 것 등 다양한 기법의 자사호로 발전한다. 자사호는 크기도 다양한데 처음에는 소형(150cc 이하)에 끌리다 나중에는 대형(300cc 이상) 자사호에 눈이 간다. 그런가 하면 사방, 육방, 팔방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자사호에 관심이 간다. 그리고 궁극에는 유명 작가의 고가 자사호 작품에도 꽂히게 된다.

물론 컬렉션은 절대적으로 개인 취향에 달렸다. 컬렉터에 따라서는 같은 모양의 자사호를 니료별, 용량별, 작가별 등으로 수십여 점 모으는가 하면, 어떤 이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자사호만 수집하는 경우도 있다.

 

시대를 아우르며 다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자사호는 중국 부호들의 열광적인 애정 속에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컬렉션을 하며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

 

강 대표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왔다. 값진 경험도 많이 했다. 어떤 작품은 3년 동안 작가를 쫓아다니며 어렵게 구입한 경우도 있다. 2000년 자사호의 고향인 이싱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연히 들른 작가의 공방에서 한 자사호에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작가는 자기 작품이지만 아끼는 거라 팔지 않는다고 했다. 몇 번이나 실랑이를 했지만 결국 살 수가 없었다. 그 뒤 이싱에 갈 때마다 작가를 찾아가서 팔라고 졸랐지만, 작가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4년간 작가를 조른 끝에 그 자사호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시 120만 위안에 산 그 자사호가 현재는 가격이 5~6배 이상 올랐다.

컬렉터들 사이에는 자신의 컬렉션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때 마음에 드는 자사호가 있으면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그도 그런 경험이 있다. 다른 컬렉터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데, 마침 그도 강 대표의 컬렉션 중 하나를 점찍은 상태였다. 서로 마음이 통해 작품을 교환했는데, 나중에 보니 교환한 자사호의 가격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이었다. 강 대표는 그 말을 듣고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고 했다.

7, 8년 전의 일이다. 상하이 출장길에 이싱에 들러 자사호 하나를 봤는데, 마음에 들었지만 고민 끝에 호텔로 그냥 돌아왔다. 밤새 그 자사호가 눈에 밟혔던 그는 날이 밝기를 기다려 택시로 3시간을 달려가 자사호를 손에 넣었다.

15년간 자사호를 수집하다 보니 컬렉션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떤 작품은 아내의 거센 만류로 구매하지 못하다 “자사호는 보석보다 투자 가치가 높다”는 이유를 들어 그 자사호로 결혼선물을 대신한 경우도 있다.

“15년 동안 30여 차례 중국을 오가며 자사호를 수집하다 보니 1000점 정도나 소장하게 됐습니다. 단골집에서는 인민폐 2만~3만 위안 정도는 외상도 잘 줍니다. 하지만 아직도 새로운 작품을 보면 갖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사람 욕심이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사호에 관심이 있는 초보 컬렉터들에게 그동안의 노하우를 담아 컬렉션 5계명을 전해주었다. 5계명은 다음과 같다.


① 운이 좋아 횡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마라
② 가격을 신뢰하지 마라
③ 유행을 따라가지 마라
④ 작가의 직칭을 맹신하지 마라
⑤ 수집은 점진적인 과정이 필요하며 끊임없이 호를 감상하는 수준과 경지를 제고하라


“이 점만 조심해서 자사호 수집에 빠져든다면 건전한 끽다 생활이 되지 않을까요?”


/ 한경

 

 

 

 

 

"차 도구는 안목 있는 다인(茶人)을 만나 명품으로 완성됩니다"

 

보이차·다구 컬렉터_居奇茶苑 김영효 선생

 

수원 화성행궁 부근은 최근 몇 년 사이 민속공예품과 차를 파는 가게들이 하나둘씩 들어서 촌을 이루었다. 현재는 고풍스런 인테리어의 전문점들이 오래된 성벽과 행궁, 돌길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한가운데 자리한 곳이 김영효 선생의 거기다원(居奇茶苑)이다. 사실 거기다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곳은 오래된 음식점과 선술집이 간간이 자리한 구(舊)도심에 지나지 않았다.

2008년 거기다원이 들어서면서 올바른 보이차와 차 도구를 배우려는 차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개중에는 의사를 비롯한 전문직 종사자들과 유명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

 

 

 

 

홍인원차에서 철병까지 차의 가치만 20여억 원

 

김영효 선생이 본격적으로 차의 매력에 빠진 것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반이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차와 가까웠다. 유난히 몸이 약했던 그를 위해 선친이 따로 집을 마련하고 한의사를 붙여주었다. 용하기로 소문난 한의사와 함께 기거하며 일찍 약초에 눈을 떴고, 자연스럽게 차를 마셨다.

“대학에 가서도 몸은 여전히 안 좋았어요. 한번은 통도사 극락암의 명정스님을 만나 녹차 한 잔을 얻어마셨습니다. 아주 진하게 우린 녹차였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아 잊을 수가 없더군요. 산사에서 내려와 한의사 선생님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비싸지만 정말 좋은 차를 마셨다’며 건강에도 무척 유익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때부터 아마 차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좋은 차와 다구를 만날 수 있다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과 함께 전문 잡지를 보며 이론을 쌓던 시절, 그는 금당 최규홍 선생을 알게 됐다. 한국 다도계의 거목인 금당 선생은 그에게 저서인 <허차서의 다소(茶疎)>를 보내주었다.

그는 지금도 이 책을 간직하며, 책을 펼칠 때마다 선생을 대하듯 한다. 하지만 당시는 여러 상황이 맞지 않아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 젊은 취기에 애써 선생의 부름을 외면했다. 외국 서적을 뒤져가며 독학으로 차에 빠져들었다. 그때까지는 녹차와 말차밖에 몰랐다. 그러던 그가 보이차를 알게 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다.

 

 

 

“말차와 녹차를 마셨는데, 마시면 배가 아프고 몸이 차가워졌어요. 차라는 게 원래 냉한 성질이 있거든요. 그러다 연변대 중의학과 교수로 있던 친척을 통해 보이차를 알게 됐죠. 귀한 차라고 내놓는데 마셔도 배가 아프지 않고, 마신 후 회감력(입 안에 단맛이 도는 느낌)이 아주 좋더군요. 아는 차인에게 그 차를 보여주니까, ‘덜 익은 차’라면서 그냥 가져갔어요. 그러고는 다른 차를 저한테 주더군요. 나중에야 속은 걸 알았죠.”

지인에게 속은 것을 뒤늦게 깨달은 그는 이후 보이차 연구에 더 열중하게 됐다. 그는 보이차를 알기 전에 발효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요즘 건강식으로 알려진 와인, 요구르트, 된장은 모두 발효식품이다.

발효식품이 좋은 이유는 발효 과정에 미생물이 들어가 우리 몸이 소화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발효 과정을 거친 보이차는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하고 지방을 태워 건강을 지켜준다.

와인 애호가이기도 한 그는 와인보다는 보이차가 훨씬 좋다고 강조했다. 보이차에는 와인에 함유된 안토시아닌, 타닌 등의 성분이 70~80% 가까이 들어 있다. 대신 와인과 달리 알코올이 없어 건강에는 더없이 좋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좋은 보이차의 기준을 스스로 정립한 것도 그때부터다. 제대로 된 보이차는 중국 윈난(雲南) 지방의 야생 찻잎을 재료로 청병으로 제작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후 메주처럼 건조시켜 오랫동안 숙성시켜야만 제대로 된 보이차가 된다. 이렇게 만든 보이차는 자사호에 넣어 우려 보면 대부분의 잎이 원형을 유지하며, 우려낸 차의 색상은 생산 연도와 무관하게 맑고 투명하다.

 

 

 

 

“제대로 된 보이차는 아주 농밀한 과일의 즙을 태양 아래 살짝 말린 듯한, 농밀하다 못해 지린 향이 납니다. 더불어 달콤하고 품위 있는 과일 향과 쿠바산 시가의 매력적인 향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맛은 좋은 빈티지 와인처럼 타닌과 산도, 피니시로 이어지는 구조감이 훌륭한 게 특징입니다.”

그가 보유한 보이차는 1955년 최초로 찍은 철병부터 보이차 애호가들이 ‘꿈의 차’라고 부르는 1940년대 홍인원차, 청대 인두금과공차, 황실 공납전차, 각종 호자, 인자, 칠자병 차급 보이차, 2000년대 야생 보이청병까지 시대와 종류를 아우른다.

그간 컬렉션한 보이차는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가격도 구입하던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올랐다. 1990년대 초반 150만 원에 샀던 홍인원차가 현 시세로는 편당 3000만~4000만 원을 호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나온 물건이 없어 해마다 가격이 오르고 있다. 그가 가진 보이차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억 원에 이른다.

 

억대를 호가하는 녹리다호의 진짜 가치는 차를 우려낼 때

 

차를 마시다 보면 자연히 다구에 눈이 가게 마련이다. 그도 그랬다. 차를 마시면서 자연히 다완과 호, 잔 등에 관심이 갔다. 말차를 하던 초기엔 말차 다완만 300~400개를 컬렉션했다.

이후 보이차를 마시면서 중국 다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다행히 호텔과 나이트클럽 등을 운영한 선친 덕에 원하는 다구를 마음대로 컬렉션할 수 있었다.

그의 다원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진열된 다양한 자사호(자사로 만든 호)를 볼 수 있다. 너무 흔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없어보이지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볼 게 없다.

중국 자사호의 근대 7대 명인이라는 녹리다호에서 청말민국(淸末民國) 초의 작품들까지 다양하다. 중국 부자들이 자사호에 관심을 보이면서 최근 자사호의 가격이 10배에서 많게는 30배까지 올랐다.

1억 원을 줘도 안 판다는 녹리다호에 차를 채우며 그는 “차는 어떤 자사호에서 우려내느냐에 따라 맛이 전혀 달라진다”고 했다. 뜨거운 물을 따르며 그는 “광산에서 돌을 캐내어 잘게 부수어 수십 년 수백 년 오랜 시간 숙성시킨 니료로 만든 좋은 자사호는 차 맛을 내는 데 제격”이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차도 붉은 골동 주니 자사호와 녹리다호에서 우린 차의 맛이 달랐다.

대부분의 다호는 사실 작가의 등급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 있다. 하지만 가격이 낮고 무명의 작가가 만들었다고 해서 명품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이름은 없지만 재능과 열정이 있는 작가가 만든 다호는 명품임에 틀림이 없다. 이걸 고를 수 있는 능력이 안목인 것이다.

“모든 다구는 다인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성됩니다. 공예품(craft)와 파인아트(fine art)의 차이가 거기에 있습니다. 다구를 완성할 수 없다면 참다운 다인이 아닌 거죠. 자사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를 마시고 나서 얼마나 양호(養護: 차를 마시고 난 후 다호를 닦는 행위, 차에서 나온 기름이 다호의 표면에 적당하게 감싸면서 다호를 더욱 윤기 있게 한다)를 잘 하느냐가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차와 다구로 사업으로 얻은 빚 갚고 재기

 

최고의 것만을 고집하는 그는 2002년 차 인생에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에게 다인의 길을 보여준 금당 선생의 부음을 들은 것이다. 생전에 얼굴 한번 보지 못했지만 49제에 찾아가 고인의 위패 앞에 큰절을 올렸다. 그는 그때 차를 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었다.

석자연 스님을 만나고 수원에 터를 잡은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는 어울문화원이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빚이 많을 때였다. 빚을 갚으며 다도의 맥을 이어오던 그는 문화원의 이름을 거기다원으로 바꾸었다.

거기다원은 사기(史記)의 <여부위열전>(呂不韋列傳)에 나오는 ‘기화가거(奇貨可居)’에서 따왔다. 이름 그대로 ‘진기한 물건은 잘 간직해 나중에 이익을 남기고 판다’ 뜻이다. 그는 ‘기화가거’만큼 컬렉터의 자질을 잘 표현한 말도 없다고 했다.

“제가 증인입니다. 한때 제가 외제차를 수입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사업이 쫄딱 망했어요. 부동산에 압류가 들어가고 집 안 곳곳에 차압딱지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차나 다구에는 딱지를 안 붙이는 거예요. 그 가치를 몰랐던 거죠. 남은 빚 수억 원을 몇 년 동안 차와 다구를 팔아 모두 갚았습니다.”

지금 그는 보이차와 다구, 골동품 등을 정식 통관 절차를 거쳐 거래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회원들을 대상으로 보이차와 향을 교육하고 있다. 그는 또다시 사업이 망해도 언제든지 일어설 수 있다고 공언한다. 오랜 세월 오감으로 터득한 자신의 ‘안목’을 믿기 때문이다.

 

/ 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