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問/人文學

조영남 북토크 강연록 1~9

경호... 2015. 7. 17. 03:31

 

북토크 강연록 

 

조영남 강연

 

 

 

 

조: 일단 의자가 지금 방향이 이렇게 이렇게 돼 있잖아요. 의자가 저쪽으로 틀었으면 좋겠어요. 멀리 계신 분들은 이렇게 오시고. 가운데가 텅 빈게 흉한데. 카메라 무시하세요.

 

유: 그 담에 선생님과 얘기중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선생님과 토크가 끝나고 나면 선물이 많아요. 일찍가면 여러분들이 손해라는 거. 미리 말씀드리고요. 선생님 그러면, 다짜고짜 질문부터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조: 우리 사이를 먼저 얘기해야 옳을 것 같아요. 우리 사이는 아....연도수는 기억이 안나고. 언제 유인경을 만났는지. 경향신문 국장 오광수는 기억이 나요. 제가 첫번 이혼할 당시. 레이디경향 기자로서 제가 숨어있는 데를 알아내서 찾아와서 관계가 시작됐고. 유인경 기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그즈음부터 알게 되서 돌아가신 제 여자친구 중 가장 가까웠던 최윤희(행복전도사)..자살했죠.

최윤희하고 친할 때 그 최윤희가 나이로 보나..제 여친 중에서 제일 위였는데, 더 위는 정광모 선생이라고 저보다 훨씬 더 위인데 처녀예요. 정광모 선생은 아직까지 저에게 반말한 적이 없어요. 천경자 여사도 저에게 반말한 적이 없어고. 하여튼 오래됐습니다.

 

유: 중요한 것은 오늘 주제가 북토크이고, 선생님이 책을 굉장히 많이 쓰셨어요. 처음 제가 기억하는 것은 돌맨돌맨이라고 시사저널에 연재했던 자전적인 것이었고요. 그 다음에 선생님이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시면서 목사 자격증을 따시고, ‘예수의 샅바를 잡다’라는 신학 책을 쓰셨고. 그다음에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책도 쓰셨고. 그다음에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는 시인 이상에 대한 책도 쓰셨고. 가장 최근 책은 ‘그여자, 패티김’, 패티김과 대담하면서 자전적 이야기를 하는 책도 쓰셨고. 다음에 준비하는 책이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 함께 20가지 그림에 대해 분석한 책이 나올겁니다.

 

본업이 가수시지만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하셨는데, 선생님이 몇년 전에 이런 칼럼을 썼다.

하필 오늘 민통당 대표 선거를 하면서 김한길씨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김한길씨가 김대중 정부에 청와대 수석으로 입성했을 때 예전에 방송 작가를 하고 정치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김한길씨가 청와대 입성한 것이 감개 무량하다. SBS 쟈니윤쇼 만든 이남기 PD가 보도본부장이 됐는데 코미디 하던 사람이 보도본부장 된 것이 참 신기하다. 그리고 소설가 김홍신씨도 국회의원이 되셨던 무렵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를 음악이면 음악, 정치면 정치 등 한우물 파라고 하는데 한우물 팠던 사람들 중에서 우물에서 물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정치건, 문학이건 막 쑤신 사람들은 뭐든 되더라. 이런 얘기를 하면서 청년이여 여러 우물을 파라고 했는데. 요즘 인문학적인 체험이 중요한 때여서 그때 이야기를 공감하시는지, 그리고 진짜 여러우물을 파야 하는지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조: 저는 어려서부터 여러 우물을 파면 밥 굶는다는 얘길 너무 많이 들었어요.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니까. 선생님들도 저한테 여러 가지 하면 밥 굶는다 그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해서. 참 이상하다...왜 그런 얘길 하나..그래서 슬슬 오기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여러 우물을 파도 진짜 물이 안 나오는가? 그런 오기가 생겨서 슬슬 파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런데 물이 다 나오더라고. 그런 것 때문에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누구도 그런 얘기를 안 한 것 같아서,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아요.

 

유: 그렇게 다양한 분야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환경적 요인이나 아니면 DNA라던가.

 

조: 음, 저는 질문을 해서 답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낚시꾼이 낚시를 던졌는데, 낚시를 던지면서 이번엔 잉어를 잡아야겠다, 피라미를 잡아야겠다, 붕어를 잡아야겠다 그런 마음을 먹지 않고 그냥 던진다고 봐요. 딱 건지면 잉어일수도, 붕어일수도 뱀장어일수도 있고. 그런 기분이거든요. 그런 답을 갖고 있질 않았어요. 근데 저는 그런 식으로 얘기하고 싶네. 계획한 게 아니고 걸리는 거였다.

 

 

 

 

유: 낚시대 조차도 잘 못 던지는 사람이 많거든요. 난 못할거야, 재능이 없을거야 이런 마음 때문에. 사실 복권도 사야 당첨이 되는 건데. 낚시대를 던질 수 있는 힘이, 왜냐면 선생님 노래에도 나오지만 옛날에 고양이 샅다리? 도 그게 뭐 대단한 문화적인 환경이 되었던 것도 아니고. 그리고 예전에 얘기하다 깜짝 놀란 게 피노키오를 모르시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우리가 생각하는 디즈니 만화를 모르는데,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노래와 그림과 글과 어떻게 이런 것에 재능 있다고 느끼셨는지?

 

조: 그건 왜 그런 걸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건데. 정확하게 알려면 군포 언덕배기에 두 분이 누워 계시는데, 두 분이 나를 낳았거든요. 시체를 끌어내서 살려서 일으켜 세워가지고 어떻게 당신 아들이 그렇게 됐느냐고 묻는 것만큼 그거에 대한 답변이 안 나온다는 게 제 생각이다. 제가 왜 그림을 그렸는지 노래를 잘했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유: 그래도 그렸잖아요.

 

조: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 있어요.

 뭘 알고 싶은 거야. 왜 그랬냐. 이렇게 말하면 맞아 죽을 것 같지만 결국은 심심하니까. 결국은 그거에요. 여자친구들이 24시간 같이 있어주는 거 아니잖아요.

한 여자가 13년동안 같이 있었는데 어느날 더 젊고 이쁜 여자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여자와 끝을 내고 새 여자와 같이 시작했는데 그것도 또 몇 년 가니까 시들해지더라고.

그 와중에서 재미없는 시간이 있잖아. 부인 옆에 있어도 재미 없는 시간 수없이 있잖아. 그래서 사회 제도화가 잘 돼 있어.

 

그래서 회사 가야 한다는 거예요. 심심하지 않기 위해서 결혼이란 제도가 있었고, 그래서 그 결혼이랑 회사를 가도 심심할 때가 많잖아. 그 외에도 심심할 때가 많아요. 눈 뜨자마자 회사 가는것도 아니고 가기 전에 좀 서성거려야 하잖아. 그 서성거리는 게 심심해서, 그리고 일 끝나고 와서 여자친구랑 약속 있으면 내가 진짜 만날 만한 여자친구고 그런 얘기가 계속 있었으면 그림 안했을 거고 책도 안 썼을 거고 걔와 데이트비를 벌려고 노래나 간신히 했을 거라는 게 제 생각이예요. 제가 저하고 시간을 원없이 하고 싶은 여자가 있었으면 그런 것이 없었을 텐데 이 세상은 안 그렇잖아. 시간 남는 걸 뭐해요.

 

유: 선생님만 시간 남는 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조: 그 사람들은 낚시하고 주색잡기하고 마약하고....외롭다는 말은 쓰기 싫은데 심심해서 하는 것 같다. 뭐 무료하고 하니까 그런거 했다고 생각해요.

 

유: 그러면 13년 동안의, 뭐 다 아시는 얘기니까 윤여정씨와 결혼생활 도중에는 그림을 안 그렸나요.

 

조: 그때 많이 그렸죠. 막판에.

 

유: 그러면 행복해서 즐거워서, 목표를 가지고 한 게 아니라, 심심하거나 불행하거나 우울하거나 그런 것의 산물인가요?

 

조: 그 산물이라고 규정하면 안 되지만 그 질문의 의도에는 가장 적합하게 얘기할 거예요.

 

유: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이 참 많아요. 그림 한 점이 인정받고 전시되길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넘 많고,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 수많은 오디션을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걸 보면, 안티가 300만명이 양성 될 만한 말씀을 하신거에요 지금. 심심해서 부르고 심심해서 그렸는데, 죽기 살기로 그림 그리는 것도 아니라 우리가 보기엔 화투 몇장 그려놓고 어마어마하게 받잖아요. 근데 청춘들에게 너네 심심해라, 불행하라 이렇게 얘기할 수 없는 없는거잖아요.

 

조 : 제가 젊은 친구들에게 심심해라, 불행해라 그런 말 안해도 결국 불행하잖아요. 결국 뻔하잖아. 근데 그것을 이야기해야 알아? 걔네들이 이미 아침에 눈 뜬 게 불행의 시작이고 심심의 시작인데.

 

유: 아, 그니까 그런 심심과 불행을 잘 활용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있다는 거죠.

 

조: 그렇죠. 낚시를 가던가, 고스톱을 치던가. 무얼 해라. 저는 다행히 참 그게 천운이에요. 이걸 연구를 하고 싶은데, 제가 하는 그림, 이거 해서 수지 맞았고, 낚시 하는 것과 똑같이 했는데.

제가 그림 그리면서 조심스럽게 그렸어요. 화가가 우리나라에서 편견이 무지 심한 나라라서 가수가 화가 흉내내는 걸 굉장히 금기시하잖아요. 저는 그걸 너무 잘 알아서, 너무 국제, 현대, 광명자... 이런 분들하고 다 친해요. 돌아가신 선화랑... 그분들도 다 친하고. 단 한번 그렇게 친한데도 당신네 미술관에서 전시합시다, 이런 말을 꺼내본 적 없어요.

 

저는 사이드로 돌았어요. 한번 가나에서 자선 옥션에서 제 물건 판 적 있는데, 그 외에는 사이드로 돌았어요. 이런건 왜 이야기 하냐면, 제가 뭘 하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요.

가수가 이 나라에서 화가 노릇하면 안 된다는 것. 그런데 결국 하게 되고, 그것만큼 재밌는 게 없으니까 하게 되는데. 그걸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가수인데 화가로 보기 시작하더라.

또 글도 제가 한번... 저는 제 입으로 제가 책 쓰겠다 해본 적이 없어요. 한길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책을 쓰자고 그러더라고. 제가 떠드는 것, 잡담하는 것을 보고 책 써도 되겠다고 하더라.

책 씁시다 해서 쓰게 된 거고. 마침, 제가 2005년에 일본 발언을 했다. 일본하고 친해야 한다. 그거 물어봐달라. 왜 그렇게 했는지.

 

 

 

 

유 : 아 선생님이 쓰신 책 중에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100년만의 친일선언’이라고. 말이 씨가 된다고 맞아죽었어요.

 

조 : 그래서 할 일이 없었잖아요. 방송, 칼럼, 신문 등 제일 바쁠 때 그걸 해가지고, 당시 내가 하고싶어서 한 게 아니라, 조우석 중앙일보 수석 문화일보 기자가 2005년이 한일합방 100년, 해방 60년되는 해. 한일수교 40년.

그해에 누군가가 새로운 이야기해야 할 것 아니냐. 100년이나 됐는데 앙숙으로 지내야 하느냐.

누가 할 사람 있냐. 일본에 대해. 전여옥, 이어령, 다 일본은 없다, 그런 책만 썼지. 일본은 친할 만한 이웃이다. 이런 논점으로 쓴 지식인 없어요. 다들 무서워하잖아. 못 쓰잖아.

그러니까 조우석이가 나를 쳐다보더라고.

당신이 광대 아니냐. 나를 보니까, 내가 광대다. 임금 앞에서 자기 재주 부리고 임금 앞에서 재주 부려서 하고 싶은 말 임금에게 얘기 해서 마음에 들면 왕의 남자가 되는 거고. 역사적으로 그렇잖아요. 그게 참 광대라는 거죠.

 

그래서 아 내가 광대지, 내가 써야겠네. 해서 일본 가서 조사하고 일본을 앙숙,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는 나라다. 100년됐으니 친일이라는 나라를 매국이라는 단어에서 바꿔놓자고 했다. 돌려놓자고 했다.

진정한 친일을 일본과 친하다는 친일로 하자고 선언한 책이 그 책이었고, 저는 역사상 큰 일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가 작살이 났죠. 작살 난 것 때문에 다른 여러가지 책이 나온 거에요.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등.

왜냐면 이 시대에 귀양은 안 보내잖나. 현직에서 물러나라는데, 요새 안 물러나는 친구들이 바득바득 그런 친구들이 있잖아요. 나는 바보같애. 물러나라면 물러나면 되는데. 결국 물러날 거예요. 안물러나서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물러나라고 해서 딱 물러났어요.

 

그러니 할 일이 없잖아요. 그때 할일이 없어서 책이나 쓰자 했다. 뭘 쓸까. 현대 미술에 대해. 그럼 현대미술에 대해 생각하는 것 씁시다 해서 현대미술에 관련된 걸 쓰게 된 거고. 또 어느날 사랑이, 먼저 썼어요. 제가 사랑했던 이야기. 그거 나오면 또 맞아죽으니까 그건 보류하고 미술을 먼저 쓰자. 그래서 미술을 썼어요.

그 다음에 어느날 사랑이 발간되고. 그 다음에 한길사에서 뭐 쓰고 싶냐 해서, 평소에 이상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거 써도 될까 하니까 그럽시다 해서 쓰게 된거에요.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어려서부터 그 제목을 갖고 있었다. 너무 이상에게 매료돼서. 제가 심심해서 썼다는 것은 논리적인, 굉장히 맞는 말이에요. 그때 그 기간이 제게는 굉장히 중요한 책이었어요. 제깐에는. 시간이 많아서, 시를 오랫동안 그럴 기회가 있어서.

 

정약용, 귀향 17년 가 있는 동안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책 많이 쓰게 된 거에요. 그건 귀양 덕분이야. 나라가 물러나 있어라 그렇게 한게 오늘날 정약용을 만든 거에요. 귀양살이 덕분에 포항 이런 데 가서 정약용 선생이 귀양살이 한거지. 그 선생이 귀양살이 안했으면 개뿔 정약용 모를 수도 있어요. 귀양 가서 생각나는 그대로 쓴 거에요. 책 여러가지 썼죠. 정조 시대에 우리나라의 르네상스 인물이 정약용이다. 제 핵심은 심심하기 때문에, 시간이 남기 때문에 그런 인물이 됐다는 것. 저도 시간 남아서 심심해서 쓰게 됐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에요.

 

유: 심심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베스트셀러작가나 화가가 되고 노숙자도 되고 자살도 하고 계속 달라지는 것 같은데, 문제는 선생님이 심심해서 봤다고 그러기에는 이상은 이상 이상이다는 책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어마어마한 참고 문헌이 들어가있어요. 랭보의 시에서부터 시작해서 인문학적인 이야기들도 다 들어가있고, 현대인도 못알아먹는 현대미술 책은 굉장히 다양한 책과 그림이 들어가있어요.

이런 책을 읽고 전람회를 가고 보는 것들이 선생님의 인생에 어떤, 단지 책 저작으로써 만이 아니라 선생님의 삶 자체에 있는. 이게 생활일 수도 있잖아요, 생활이지만, 우리가 인생을 만드는 것은 생활은 아니거든요.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냐.

 

조 : 좋은 영향을 미쳤죠. 제가 남친도 많지만 여친도 더불어 많은 이유는 나이에 관계없이.... 여기도 몇 명 오셨는데, 정동영 사모님도 오셨는데 제 여친으로 치거든요. 노상 만나니까

 

유: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안해요.

 

조: 상관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럴 수 있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게 제 생각이에요.

제가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하고 대화하는 게 즐겁지 않다는 걸 일찍이 알았어.

그러니까 왜 재미없냐, 묻지도 않은 말 자꾸 하고, 나이드는 사람들은. 또 반복하고. 한 말 또하고. 그게 나이 든 사람들의 증상이라 생각해서, 저는 일찍이 혀를 깨물고, 누가 묻지 않는 것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다.

또 자꾸 반복하는 버릇 없애야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젊은 친구들하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수준을 젊은 수준으로... 소위 말이 안되는데, 수준을 낮춰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젊음의 생각으로 내가 가야, 가 있어야 젊은 친구들하고 대화가 가능하다 이렇게 생각했죠.

 

유: 수준이 아니라 눈높이라는 말씀이시죠?

 

조 : 그렇죠, 눈높이를 맞춰야 정상적인 대화가 되는거다. 내 딸의 나이 23살로 내려가야 대화가 가능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 기술을 총 동원해서 지금 발버둥치는 거죠. 그렇게 최대한 했는데 그 결과가 저에게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 잘 알잖아요.

 

 

 

 

유: 근데 사실은 인생을 규정해보면 명함 떨어지고 나면, 퇴직하고나면 그 사람 파악할 게 잘 없어요. 전직 교수건, 국회의원이건, 전직 기자건 간에. 근데 그 이후 삶은 취미가 규정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조영남선생님이 취미가 현대미술 관람이나 글쓰기가 아니라 도박, 경마, 여자들 만나서 더듬기 뭐 이런 거라면 굉장히 추한 노인으로 전락하셨을텐데. 혀를 깨물고 문화활동에 전념하신 끝에, 지금 지공선사시거든요.

젊은 여성들이랑 대화를 나누시는게, 눈높이 낮추기 위해 애쓰는 거 어려운 건가요. 어려운데 억지로 하는 겁니까? 아니면......

 

조 : 세상에 그거처럼 어려운 게 어딨어요. 그걸 다 잘하면 제가 이 자리에 오지도 못하고. 보통 사람으로 그냥 전락되겠죠. 근데 다들 그걸 못하고. 노인네들은 노인답게 살고, 그러시니까 노인대접 받는 거고.

저는 그런 면에서는 법적으로 대화하는 격에 맞게 대화 상대를 정해야 한다면 저는 종신형 받을 거에요. 감옥에 갇혀서, 법이 그렇게 돼있다면 종신형 받을텐데, 지금 그건 자유잖아요. 제가 그 대신 14살짜리하고는 교제하려고 하지는 않고 최소한 성년들하고, 20살 넘은 여친하고는 다 사귀고 싶어 했고. 그리고 그게 유지되고 있고. 그게 저의 노력의 결과라고 저는 생각해요. 이게 지금 맞아죽을 소리인지, 교만한 소리인지 모르는데, 질문을 해서 지금 대답하는 거에요. 가장 정확하게 대답하고 싶어서 이런 식으로 대답했어요.

 

유 : 혹시 3월에 알파 북토크 오신 분 있다면 기억할 텐데, 김정운 전 교수가 한 말도 똑같거든요. 대한민국 중년남성들이 참 불쌍하고 외로워지는 이유가 이야깃거리 없다는 거에요.

이야깃거리가 없다보니까 싫어하는 정치인 정해서 씹고 연예인 가십하고 그런 다음에 대화가 없으니까 폭탄 돌리고 자고... 그런 것 때문에 심난하게 나이가 드는데. 조영남선생님같은 경우에는 가장 풍성한 스토리가 있으신 분이고, 그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은데요. 근데 사람들이 묻습니다.

일상에 마그리트 그림을 하나 보는 것, 바하 음악을 듣는 것, 전람회 가서 보는 게 뭐 그렇게 영향이 있냐,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하는데, 가장 다양한 문화체험 하시는 선생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통한 문화 체험이 어떤... , 물론 기뻐 재밌어 이런걸로 끝나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까 제가 말씀드렸지만 21세기 상류층은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문화체험이 다양한 사람이라고 하니까 그걸 부담없이, 의무감으로 하지 않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안 지치고 매주 영화보고 연극보고 전시회 가시고 하시는지, 그것부터 궁금해요.

 

조 : 이 여자친구를 적당량 정도 사귀잖아요? 여친하고 몇번 만나잖아요. 여친하고 사귀었어요.

그러면 처음에는 이야기만 둘이 해도 지루하지 않잖아요. 근데 어느 정도 사귀면 적당한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둘이 뮤지컬 가거나 영화를 가거나 밥먹고 그런 걸 일부러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그게 데이트 코스, 순서가 되요 저한테는. 그래서 영화를 가는 건데, 무슨 영화 광.....

그런데 내 나이에 영화를 확실히 덜 봐요 사람들은. 근데 저는 갈 만한 케이스가 많으니까. 거의 볼만한 영화는 놓치지 않고 보게 되더라구요. 그것뿐이에요. 그리고 또 질문이 뭐에요?

 

유 : 그런 전람회 가서 본 그림이나 음악같은 것들이 그냥 봤다, 여자친구랑 시간 때우고 왔다 그런게 아니잖아요 삶에 영향을 미칠거 아닙니까? 창작이나 상상력이라던가 무엇이 됐던 간에.

 

조 : 그게 여친하고 영화보기 전에 이야기할 것이고. 영화 보기 전에 뭘 이야기하겠어요. 두런두런 얘기 하죠. 또 영화 보고나서 영화가 좋았다 거지같았다 그런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제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 아니에요. 그거 이상 무얼 하려고 저는 하지 않았어요. 나와 같이 하는 당신과 나의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단지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해요.

 

유 : 근데 선생님 글을 쓰고 이러는 데 다 모티브가 되신거 아니에요?

 

조 : 물론이죠. 그렇죠.

 

유 : 그러니까 데이트로서의 툴이 결국은 선생님의 문화 예술로서의 반열에 올라온 거잖아요.

 

조: 자꾸 그렇게 기자 투로 질문을 하면 제가 넘어갈 것 같지만, 넘어가요. 예. 넘어갑니다.

 

유: 사담이 아니라 신문에 나오기 때문에, 중앙일보가 아니라 경향신문에 나오기 때문에요. 좋은 경향신문에.

 

조: 좋은 신문이죠.

 

유: 진보는 아니구요, 그냥 굉장히 개혁적이고 앞서가는 신문이에요. 그래서 선생님이 빨리 조중동을 끊으셔야 되는데.... 선생님의 큰 특징중의 하나이자 가장 오해받는 것 중 하나는 정말 남의 눈치 안보고 산다는 거에요.

그렇게 남의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사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라고 얘기했는데, 진짜 눈치를 안보십니까?

 

조 : 안 볼 수가 어딨어요. 오늘 내가 까만 셔츠를 입을까 하얀 걸 입어야 하는가 이런 눈치보죠. 뭐 팬티 입을 때는 그런 생각 안 하겠지만 겉에 눈치 보고 어저께 이발도 했고. 눈치 안 본다는 것은 당신이 인간입니까? 이렇게 묻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유 : 2012년 상식으로는, 표준 상식 선에서는 정말 눈치 안 보고 사시는 거거든요. 눈치 안보고 어떻게 어르신이 그렇게 2030대 여성이랑 맨날 영화보고 그런것도 엄청나게 자유롭고 눈치 안 보고 사시는거 거든요. 공인이신데. 그리고 방송에서 굉장히 실수 많이 하시잖아요.

남들이 볼 때는 깜짝 놀랄만한 발언, 아슬아슬한 발언 이런것들을 보면 우리 일반인들은 오 진짜 눈치 안보고 사시는구나. 그리고 지금은 정말 흔해졌지만 아주 예전에 20세기에 이미 이혼을 두 번이나 하셨잖아요. 그것도 일종의 눈치 안 보신 거잖아요. 그런 것들의 기준으로 여쭤 본 거죠.

 

조 : 저도 남들이 어떤 여자하고 사귀었다. 이런게 흥미롭죠. 속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우리는 서로 눈치 주고받으면서 사는 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에요. 참모습. 그렇죠?

69세에 24게 소녀 그 나이차이를 눈치 안 보는 이유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제가 공부를 해 왔고, 책을 읽어왔고, 영화를 쭉 봐왔고 그 결과. 눈치 보면서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나이 든 여자하고 만나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손해, 득이 안된다는거. 그걸 제가 배웠죠. 모든 책을 뒤져가면서 다 배운 거예요. 그리고 69이라도 20살짜리하고 데이트를 정상적으로 하면 법에 어긋나지도 않고 욕먹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눈치를 보려면 봐라. 그거는 눈치 보는 사람이 부러워서 그런 눈치라고 그냥 저는 싸잡아서 그렇게 생각하고 강행하는 거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죠.

 

유 : 그러면 선생님이 남몰래 읽었던 책과 남몰래 봤던 영화가 20대 여성들하고 만나는데 도움이 되나요?

20대 여성들이 선생님한테 지성 때문에 끌린다고 생각하세요?

선생님이 읽은 책 때문에. 선생님이 노인정에 계신 할아버지라면 24세 여성이 데이트하자고 하는데 만나실 건가요?

 

조 : 여기에도 몇 명 있거든요. 걔네들한테 물어보죠.

 

유 : 그건 조영남씨니까.

 

조 : 다시 물어보세요.

 

유 :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조 : 조영남이니까.

 

유 : 그런 거죠. 그게 선생님이, 조영남이라는 사람은 그 이름만 있는게 아니라, 60년 동안 독서하고 치열하고, 위기가 있어도 견뎌내고, 맞아죽어도 다시 밟혀도 일어나고 숱한 내공들이 쌓여있고. 그다음에 숱한 여친들이 있다고 해도 단 한번도 성희롱 등에 연루된 적 없으니까.

 

조: 단 한번도 없어요.(박수) 박수 치는 게 한 번 걸리라는 뜻이에요? 별 걸 다 축하하네.

 

유 : 그럼 이십대 여성들이 영악해서 그런 거죠.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나름 또 서울대도 나온 분이라서 지성적인 분으로 분류돼 있으니까.

 

조 : (안경 벗고) 지성적으로 보여요?(웃음)

 

유 : 건성은 아니신 것 같아요. 지금 저희가 나눌 대화가 여자친구 얘기는 아닌데, 어떻게 계속 여자친구 얘기를 하시는지.

 

조: 아니 그거 외에 재밌는 주제가 또 어딨다고....

 

유: 그거 선생님은 재밌겠지만 우리는 하나도 재미 없어요. 선생님의 여자친구는 궁금하지도 않아요.

 

조 : 그건 당신이 아줌마라서 그렇지. 여기 모인 여자들은...

 

유: 더더욱 안궁금할걸요? 그리고 사실 저는 그 아까 젊은이들이 불행하다, 눈 뜨면 불행하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맞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맞는 얘기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잘 팔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사소한 일에 너무나 많이 상처받고 심지어 자살에 이르기도 하는데. 요즘 하루에 50~60명이 자살하는 게 우리나라 세태구요. 정말, 2010년 통계에. 그리고 청소년 1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에요. 너무 작은 일이 상처를 받아서, 뭐 야단 맞았다고 자살을 하는데, 선생님은 남들이 받을 숱한 구설과 위기와 질타와 이런 걸 다 견뎌내셨잖아요. 경험자로써.......

 

조 : 견뎌낸다는 표현이 마땅하지 않은데요. 그런 구설수나 그런 스캔들에 얽혀온 거지. 견디고 그런 것이... 저의 삶이 위대하고 굉장하고 그렇지 않아요.

 

유 : 아뇨, 구설수가 위대하다는 얘기는 아녜요. 이겨냈다 견뎌냈다 등 어쨌건 사셨잖아요, 자살하지 않고.

 

조 : 분명한 건 자살 안했다는 것이죠. 한번도. 그때 일본 책 출간했을 때, 자살을 동시 다발로 대우사장, 안상영 부산시장 등 고 때 자살하고 3명인가 현대 사장 뛰어내리고. 나도 자살해야 하는 순간인가보다 그런 느낌까지 가져봤어요. 용기를 못 냈죠. 죽을만큼 그렇게까지는 안 되더라고.

 

 

 

 

유 : 그럼, 뭐 극복이 아니라 어떤 힘으로 버틸수 있었는지?

 

조 : 그때 여친들이. 전화해서. 아저씨는 괜찮아, 선생님은 잘못 없어.

 

유 : 그때 제가 전화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보낼수도 있었는데. 근데, 선생님이 여친이라고 했지만 여자친구 비율이 적었구요 남성들이 많았죠. 주변 사람들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시잖아요.

 저는 참 조영남이라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게, 2000 몇 년인가요?

뮤지컬 레미제라블할 때 하루 공연을 조영남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세종문화회관 전체 층을 조영남씨가 초대한 인물로 다 메꿔진 적 있었어요. 그 때 한 500명인가 왔었어요 에로배우부터 조폭, 스님에 이르기까지. 근데 어떻게 그렇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랑 교류를 할 수 있는지.

 

조 : 난 모르겠어요.

 

유 : 동생 조 교수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말도 없고 그렇던데요.

 

조 : 그놈보다 같은 형제인지 몰라요. 두 분 돌아가시기 전에 물어봤어야 하는데. 친동생이냐고. 그때는 그냥 관습적으로 물어보지 않던 시절이야. 동생이면 동생인가보다 하고 살던 시절.

 

유 : 선생님, 궁금해 할 이유가 없어요. 똑같이 생기셨어요.

 

조 : 그 친구는 나보다 노래를 잘 못해. 공부는 무지하게 했는데, 그림 못 그려요. 글씨 하나 제대로 못 써. 어떻게 대학교수 하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형제가 그렇게 다른 걸 나보고 당신은 왜 그런 걸 잘하냐고 대답하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돼. 난 진짜 모르겠는 걸. 그림 그려도 되고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돈을 주고.

아 나도 느껴요. 내가 노래를 교묘하게 잘하는구나 기술이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림도 이렇게 그리면 팔리는구나 그런 느낌이 있는데 정확하게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유 : 그러면 사람 사귀기에는 무슨 교묘한 기술이 있나요?

 

조 : 살면서 극심하게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높은 자리로 빨리 올라가더라고. 그래서 나는 불안한 적 있었어요. 누가 나를 감시하나. 왜 내가 친한 친구들이 느닷없이 KBS에서 SBS로 불려가고.

내가 참 괜찮다 했던 친구들이 제일 방송국에서 유명한 피디가 되고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문화방송에서도 제일 재밌다 하지만 하는 행동으로 봐서 부장이나 될까 했던 친구들, 도저히 말하는 걸로 봐서는 방송 부장 감도 아닌데 걔하고 그렇게 친하게 되더라고. 근데 걔가 결국 믿거나 말거나 부사장까지 올라가요. 내가 말하는 거 틀렸어요?

 

몽타주로 봐서는. 저 양반은 포항 사장인데 사장 틀이 나요. 근데 저 양반하고 이상호하고 손바닥뉴스 그 일로 가깝게 됐어요. 근데 만나니까 굉장히 사람이 좋아, 인상이 좋고. 정동영씨하고도 친구이고. 그래서 친구가 됐는데, 틀림없이 그게 무슨 나를 알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나를 만난 사람은 잘 된 거 같은 불안한 마음. 그런게 있어요. 나를 만나면 잘 된다는 영감이 있나. 불안할 정도로. 결국 김한길 김홍신 걔네들 진짜 별 볼일 없는 애들이야. 그런데 장관 되고 지금도 난리치고 그러잖아요.

 

정말 할 일 없이 만나던 애들인데 그러면서 제가 또 한편 느낀 건, 저 같은 사람이 유명해지면 계속 남는 것은 이 나라에 인물이 없구나. 그런 걸 통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운찬, 정동영 이런 친구들이 나라를 이끌어가는데. 평소에 보면 이 인물들이 그렇게 대단하고 그런 게 아닌데 그렇게 되요. 어느 날 불안하지 않겠어요?

제 느낌을 이해해주세요. 불안해. 총리도 되고 한낱 서울대 총장이었는데. 총리 되기 전에는 서울대 총장은 나도 그 학교 나왔으니까 나도 늙었으면 학장도 됐겠고 총장도 될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총리까지 되더라니까. 제가 뭘 말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렸어요. 근데 제가 어느 날 신문사에서 누가 가장 우리나라에서 인맥을 두텁게 쌓은 사람이 조영남이라고 판단났다고 듣고 이 나라에 인물이 없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유 : 조영남씨가 그래서 인간복덕방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적이 있었죠. 뭐 다 잘된 건 아녜요. 조영남씨가 아시는 분이. 전여옥씨 이번에 표절시비 났고 신정아씨 그렇게 됐죠.

 

조 : 그래도 다 이름은 났잖아요. 원 없이.

 

유 : 근데 사실은 그런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친하게 된 사람 잘됐다는 것은. 우리가 그러거든요. 행운의 법칙 제 1조가 운이 좋은 사람하고 사귀라는 거에요. 그래서 아마 본인이 늘 말씀하시기를 참 나는 재수가 좋다. 종교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재수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근데 재수가 정말 중요한 건지 열심히 일하는 성실함이 중요한 건지.

 

조 : 무릇 인간 만사는 다윈의 진화론을 시작으로 인간의 교묘함은 아무도 몰라요. 우리의 삶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살아야 옳은 건지 해답을 못내. 단지 제가 눈치채는 것은 그 모든 것.

내 옆의 사람 내 뒤에 있는 사람. 나 자신한테도 이 나의 생각하고 여기서 배운 걸 다 섞여가지고 교묘하게 통합돼서 이게 움직이는 거다. 하는 게 제 생각이에요. 교묘하게 그렇게 되고 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선량하게 사는 것. 선량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한테 재수가 많이 붙는 것 같아요. 제가 재수교 교주를 자청한 적 있는데. 재수교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 여러 가지 것중에 재수라는 것도 포함된다고 봐요. 우리 삶의 논리에. 재수라는 게 아무리 노력해도 재수 좋은 놈한테 못당하잖아요. 아무리 이쁘고 돈 많고 맵시나고 그런 여자라도 젊은 여자한테 못 버티듯이. 그렇죠?

 

유 : 그렇죠. 가당치 않은 말씀을. 선생님이 늘 생선회만 관심 있고 꽁치구이는 관심없다고 하시더라두요,

생선회는 금방 상해요. 꽁치구이는 뒀다가 다시 구워먹어도 되기 때문에. 젊은 여성에게만 편협한 그런 발언들은 옳지 않은 발언이시고.

오늘 핵심 주제는 선생님과 여자친구 만들기가 아니라, 알파 북토크에 선생님을 모신 것은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작을 한 적이 없으며, 정말 조정래 작가도 이렇게 많은 책이 예약된 적 없는데. 4개 책 예약돼 있어요. 이런 것들을 다양한 문화 체험, 다양한 예술 경험. 이런 것들을 우리가 나이 들어서 해야 하는 건지, 심심해서 해야 되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이런 것들 시작해봐라. 현대미술 하면 뒤샹 알아야 될 것 같고, 앤디워홀 알아야 될 것 같고, 아는척 해야 할 것 같고, 그럴 것 같은데. 정말 솔직한 제목이거든요.

현대인들도 못 알아먹는다. 이런거 해야 할 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이런걸 할 때 선생님이 가수로서가 아니라, 현대 작가로서 얘기해주셨으면 하는 거죠. 책을 쓰셨잖아요. 선생님?

 

조: 저는 그 젊은이들하고 대화가 가능한 것은 내가 야, 이래라 저래라 이걸 안하기 때문에 가능해요. 이 자리에서도 미술에 대해서 이래라, 이상 시인의 시는 하나쯤 알아야 한다는 얘길 하고 싶지 않아.

나나 알고 있으면 되지. 또 책으로 써놨으면 되지, 구태여 멀쩡하게 잘 하는 친구들에게. 또, 이름이 뭐에요?

윤경이가 미술에 대해 나보나 많이 알지 누가 알아. 내가 함부로...야, 경아. 미술에 대해서 마르셀 뒤샹 정도는 알아야 한다, 이런 얘길 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그런 얘기를 하면 얘가 나하고 데이트할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하고 거리가 멀어질 것 같아. 경아가.

 

유: 그럼 젊은 여성들이랑 미술 전시관 가서 무슨 얘기하세요.

 

조: 전시관 가서는 전시 그림 얘기하죠. 이 그림은 어떻다... 그때는 같이 얘기한다는 결의 하에 간 거니까. 영화관에 갔으면 영화를 얘기한다는 둘이 약속 같은 게 이뤄졌다고 생각되면 영화 얘기하고.

 

유: 그니까 누구에게 현대미술 이해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 이해하려면 이 책이 좋다. 이런 권고를 사람들한테 안하는 것이....

 

조: 아니, 젊은 여자한테. 그걸 안하는 게 훨씬 나하고 관계를 유리하게 되는 국면이라고 생각해.

 

유: 선생님은 지혜로우신 거에요. 60대 이상 되면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면 되요. 아니면 뭘 바라시겠습니까.

그러면 한 번도 그 무엇을 목적의식을 갖고 해본 적 없으신가요?

 

조: 글쎄 이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그림 그리면서, 내가 무슨 생각으로 왜 이걸 그리는가...이 책을 쓸 때 뭐 때문에 쓰는가. 그런 걸 생각 안 해봤어요. 그냥 책을 쓸 때는 너무 재미있으니까. 낚시 광들이 열광하는 것처럼, 바둑 광들은 3박 4일동안... 그런 걸 충분히 이해하는 거죠. 재미있으니까 쓴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뭘 위해서 도박하냐고 물어보면 주저리 대답하겠어요? 낚시를 왜 하느냐, 왜 산에 올라가느냐. 그런 걸 물어봐봐야 대답이 나오겠어요.

 

유: 정상을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사장자리에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고. 비엔날레 참석하려고 한다던가, 무언가 목표를 설정해놓고 사는 사람이 있잖아요. 엠비션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과 챌린지를 하며 사는 사람들의 차이인 것 같아요. 선생님은 엠비션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는 거잖아요. 야심을 갖고, 한번도 엠비션을 가져본 적은 없나요?

 

조: 그런 기억은 없어요.

 

유: 그렇죠. 그런 도전정신 때문에 선생님이 여기까지 오셨고, 더군다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일들을 되게 재밌어하신다는 거예요.

 

조: 책 쓴 건 도전이 아니었어요. 그냥 내가 재밌어서.

 

유: 근데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재미를 잘 못 찾는 거예요. 일상에서 재미를 못 찾는다는 거죠. 개그콘서트 같은 개그프로만 보다 말지, 깊이 있는 재미를 추구하지 못하는데. 선생님이 느끼는 재미는 뭔가요. 어떤 것 때문에 끊임없이 그런 재미를 추구하시는 건지.

 

조: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예수의 샅바를 잡다 라는 책을 쓸 때 제가 발견한 라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가고, 우리 종교가 왜 없어졌는가. 우리 단군교가 왜 없어졌는가 이런 걸 공부할 때는 정말 찌릿찌릿했어요. 이상 시인 책을 쓰면서 말도 안 되는 숫자 적어놓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건 도저히 인간으로서 풀 수 없는 막연한 문제인데. 제 생각에는 인문학 적으로 이상 시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죽기 전에 그 어려운 문제를 풀어 낼 수 있으면 얼마나 재밌겠느냐, 그렇게 풀어내다가 심지어 미세한 뇌경색 3기. 그니까 세 핏줄 중 하나가 막혔다는 진단 받게 됐어요. 바로 그것 쓰는 막판에. 무지하게 재밌더라고요. 이 이상의 암호같은 것들이 풀리지 않는데 새벽2~3시까지 이게 뭘까 하고 있다가 내일 출근해야되서 자야지 하고 불을 꺼요. 그래도 누워서 생각이 나면 일어나서 쓰거든요. 그러다 몇 시간이 가요. 그리고 또 불을 끄고 숙제를 안고 누우면 또 생각이 나. 일어나서 하면 하루 밤을 꼴딱 새고 출근하는 거에요.

그래서 방송하고 드러누워서 갤갤대고 그러다가 뇌경색이 왔는데 그때 알았지. 아,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 되는구나. 그때 처음 알았어요. 혹사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우리 아버지가 중풍으로 13년 고생한 이유는 우리 아버지는 모르지만 나한테는 뇌경색은 중풍 초기 아녜요? 그래서 그때는 정말 재미, 찌릿찌릿함을 느꼈어요.

 

유: 재미라는게 어떤 일이던 자기 가슴을 울리고 찌릿찌릿하고, 뭔가 할 때 자기가 희열을 느끼는 것을 찾으면, 낚시로 잉어를 잡든 뭘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다시 선생님의 삶을 보면, 뇌경색 이후에 세씨봉 공연이 빵 터졌잖아요. 세씨봉 공연이 요즘도 하고있거든요. 평균연령이 67세에요. 66세에 미국, 호주 공연 다니면서 화양연화를 구가할지 아무도 몰랐을 텐데. 근데 이런 세씨봉 공연을 이끌어 낸 것도 어떻게 보면 선생님의 힘인 것 같은데요. 어떠셨어요?

 

조: 그건 재수라고 봐요. 재수가 작용한 것 같아요. 지금 인간관계가 넓다는 것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어요. 지금 들어오신 분이 대한민국 총리를 하셨던 정운찬....

 

유: 방금 15분 전쯤에 한낱 서울대 총장이라고 하셨던...

 

조: 같은 정씨에요. 정동영씨도 오시고.... 제가요 이분들을 알게 된 것을 여친을 잘 거느려서... 유인경같은 여친을 잘 거느려서

 

유: 세씨봉 공연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씨봉 공연을 보고 젊은 분들이 더 많이 감동을 한 것 같아요. 그 노래에, 기계음이 아닌 살아있는 목소리에 감동을 하고, 또 하나는 세상에, 저 나이에도 노래를 할 수 있었구나, 저 분들도 소년 시절이 있었구나. 그래서 어르신들은 추억여행을 했겠지만 10대들도 댓글이 굉장히 많았고, 호감을 보이는 반응이 굉장히 많았었어요.

 

조: 우리 딸도 그걸 보고 기타 사달라고 해서 기타를 배웠죠. 그것도 뭐 재수 같아요.

 

유: 결국 그럼 세씨봉 공연도 참 재수 좋다 란 뜻인데, 재수 좋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게 있나요?

 

조: 그런 건 없고. 쎄시봉 얘기가 나왔으니까. 제가 친구들을 잘 유지했다는 거. 이장희, 송창식, 김세환 이런 애들을 잘... 잊어버리지 않고 끊임 없이 교우해왔기 때문에. 야 한번하자. 최유라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라디오에서 음악회를 한번 하지 그래요? 야, 다 모여. 30년, 40년만에 첨이었어요. 장희, 송창식 다 모였어요. 그래서 이제 기타 들고 뭐 연습도 안했어. 우리 옛날에 하던 거 그것부터 하자. 연습도 안하고. 지금부터 조영남과 친구들이 합니다 해서 5명이 하니까 제가 듣기에도 괜찮더라고요.

 

그 노인네들, 노인들이 기타 들고 연습 안하고 했는데 그걸 방송에 대박이 났어요. 우리는 깜짝 놀랐죠. 그런데 어느날 테레비에서 그걸 그대로 하자는 거야. 그래서 저는 테레비는 틀리다. 라디오는 안 보이지만 티비는 고대로 나오는데 노인들이 기타 하나들고... 그때까지만 해도 통기타가 푸대접 받는 악기였어요.

그 노인네들 대여섯명이 기타들고 하면 노인정도 아니고, 노숙자 그룹도 아니고 후줄근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번 하자니까 하자. 그래서 연습도 없이 다 왔어요. 짱 했는데 그게 그냥 대박을 치대.

 

유: 그래서 그때, 6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 포크음악의 기수들이 다들 돌아가시지 않고 버텨셔가지고 60대 이후 문화를 만들어낸 거예요. 지금 놀라운 게 50~60대 남성들이 밴드를 결성해서 트럼펫 불고 기타치고 그런데요. 그런데 트럼펫은 앞니가 굉장히 튼튼해야 되는데, 틀니끼신 분은 부시다가 앞니가 이렇게 빠지기도 하고..... 조영남 선생님이 장년문화 부흥에 엄청난 영향 준 거예요.

 

조: 저도 고교 때 트럼펫 불었고, 정동영의 친구이자 경기 출신의 손학규도 저하고 2년인가 밑에 후배에요. 그때 저하고 트럼펫 불었어요. 그래서 둘이 만나면 나팔로 입으로 불어요. 근데 저는 강문고등학교. 지금은 용문고죠. 손학규는 경기고등학교. 우리 그때는 데모를 그렇게 많이 했어요. 4.19 전후니까. 격변기니까.

 

지금부터 동대문부터 시청앞까지 행진이 있겠습니다. 밴드 순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나다 순서야. 강문고등학교, 경기고등학교, 경서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고는 저 꼬래비... 결국 우리가 제일 앞에 가. 너무 자랑스러워. 근데 강문고 밴드 악기는, 우리는 그냥 닦아서 반짝반짝 닦는데 경기 이 애들은 악기 자체가 좋아. 돈많은 학교라, 손학규 학교는. 기가 팍 죽지. 근데 우리 강문 고교가 경기를 끌고 가자. 강문이 경기보다 앞서간 거지.

 

 

 

 

유: 아까 선생님이 많은 친구, 젊은 여성과 사귀는 비결이 물어보지 않는 말에 답하지 않는 거였잖아요.

그러면 조영남선생님은 말끝마다 여친 하셔서 묻겠습니다.

조영남선생님과 피카소가 비슷한 건 이거 같아요. 젊은 여자에게 집착한다는 건데. 프랑소와 라는 여자.

유일하게 피카소를 먼저 떠난 여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그랬대요. 너보다 젊은 자는 무조건 너보다 이뻐, 그런 얘기를 피카소가 했다는군요. 젊은 여자 당할 재간이 없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이 젊은 여자에게 집착하게 된 게 몇세 이후? 어릴 때부터 지병이셨나요. 아니면 중년 이후에.... 왜냐면 결혼은 그렇게 어린 여자와 안하셨어요.

 

조: 여보세요. 여기 꽃이 있어요. 시든 꽃이 이뻐요. 싱싱한 꽃이 이뻐요.

 

유: 꽃은 져요 다.

 

조: 어쨌든 질문에 답하세요.

 

유: 근데 저는 김장김치가 맛있어요. 폭 익은 김치가.

 

조: 그건 댁의 취향이죠.

 

유: 선생님도 익은김치 좋아하셨어요.

 

조: 노노노노. 제 나름대로 김치 취향은 있는데

 

유: 인간은 꽃이 아니죠. 인간이죠.

 

조: 아니 근데, 당신 눈에는 젊은 여자친구가 이쁘지 않아요?

 

유: 젊은 여성들의 풋풋한 젊음 부럽죠. 탱탱한 피부도 부럽고. 근데 그들의 미숙함과 불안함이 부럽지는 않아요.

 

조: 그렇다면 저는 병자입니다.

 

유: 환자시죠. 지병이시고. 유사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피카소나, 칸 부총리...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조: 제가 피카소 전시 때 가봤는데 제일 인상 깊었던 게 피카소와 여자들. 여인 관계들을 도표로 그렸더라고요. 이만한 데에다가 피카소하고 제일 먼저 만난 여인. 공식적으로 8명인데 사실 11명인가 그렇게 되요.

도표가 2,3,4,5..굉장히 커요. 거기서 또 이렇게 해서 아들 누구 낳고, 딸 누구 낳고.... 그래서 도표 없으면 설명 안될 만큼. 제 도표도 그 정도는 된다고 봐요.

 

그런데 공식적으로, 놀라지 마세요. 두 여자 밖에 없어요. 그건 나라의 문화 차이다. 그 나라에서는 그게 흉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되도 흉이 아니고 용인된다는 걸 저는 굉장히 부러워해요. 우리나라는 그렇게 했다가는 또 맞아죽잖아요. 그러니까 치사하게 되고, 비겁하게 되고, 몰래하게 되고. 그런 비극적인 상황이.... 쳐다보면서 아 참 부럽다 그런 생각을 깊이 했어요.

 

유: 선생님 지금 전화 받으시려고 하는 거세요?

 

조: (여보세요?) 출발해도 괜찮아 여기서 밥 먹으러 갈꺼니까.

 

유: 믿거나 말거나 정말 여자들이 이렇게 전화를 걸어요. 저런 여자들 많을 뿐더러 다 멀쩡한 분들이라는 거죠. 오늘의 주제는 선생님의 여자친구가 아니고, 거듭 얘기하지만 다양한 인문학적 체험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고 몰아가야하지만....여기 만원씩 내고 오신 분도 많고 그런데.

 

조: 그러니까 뭘 얘기할까요.

 

유: 선생님이 이 나이에 여친이라는 매개체가 없이는, 동력 없이는. 아 그러면 남친과는 영화도 안보고 그림도 안 그리시는 건 아니시지 않습니까? 선생님이 화투 그릴 때는 고독한 상태에서 하는 거지, 여친이 잘라주고, 여기다 광을 붙이세요 이렇게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자친구는 제외하고, 선생님같은 연령에 이렇게 젊은 2,30대 여자친구는 로망일 뿐이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뿐더러, 아뇨 불가능하진 않죠.

 

조: 거 왜 불가능하다는 단어를 썼어요.

 

유: 아뇨, 그렇게 내공을 지닌 분들이 드물어요. 그래서 연령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문화적 체험을 하려면 재미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항상 재미를 주장하면서 재미교를 만들어야 겠다, 재수교를 만들어야 겠다 말씀하시는데.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도 폄하된 것도 정치가 재미없다...였는데 정치도 재미있다고 하게 만든 게 나꼼수 잖아요. 그런 말씀도 하셨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동안 재미가 너무 폄하되고, 유치한 걸로 되고 한가한 사람들만 하는 걸로 돼 있었기 때문에, 이제 선생님이 재미의 부활. 더구나 그 재미가 마약하고 도박하는 재미 아니라 정말 양명함, 문화적인 체험을 하고 그런 것들을 느끼는.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미학적으로 표현하셔서 그렇지, 이거를 온 몸으로 체험하신 분이잖아요. 마무리를 약간 거룩하게 해주셔야 해요. 여자친구 없이 이 문화체험이 나이 들어서 얼마나 좋은지. 교훈적으로 말씀하시는 거 싫어하시지만, 좀 잘난척을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조: 잘난척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한데, 할수도 있는데... 너무 막연한 것 같아. 그런 얘기를 하라는 게요.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게 좋겠어요.

 

 

 



 

조영남 질의응답

 

 

유 : 질문하고 싶은 분.

 

Q: 연세가 68세시면 20대부터 지금까지 세대별로 많은 여성들을 만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여성들을 많이 만나셨으니 우리 여성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아요. 원초적인거 말고, 느끼시는 우리 여성들의 앞으로 가능성 발견하셨던 것. 우리나라 여성들이 20대 때 느꼈던 여성상, 60이 되서 지금 보시는 20~30대 여성상. 이런 게 다를 텐데 그 여성들에게 보이는 미래를 어떻게 투영하는지.

 

조 : 질문이 맞춤형 질문이네. 그때그때 다르죠. 저도 20대가 있었어요. 20대에 만나는 건 정신없이 만났어요.

뭐 최윤희, 윤여정. 정신없이 만났어요. 그때는 여러분들 만나는 거랑 똑같았어요. 하나가 떨어져서 얘와 결혼해야 하는구나. 어..... 하다가 결혼했고. 애 낳고 10 몇년 살다가, 미국에서 잘 살았어요.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13년을 잘 산 거예요. 한국에 다시 왔는데 가정하고 멀어진 게 한국에 귀국하게 된 거였는데. 보니까 여자가 또 있더라고요. 같이 살던 여자하고 이 여자하고는 새로 만난 여자가 훨씬 젊고 이쁜데 이 사회가 용납을 안 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내가 같이 살던 여자는 용납할 줄 알았어요. 왜냐면 완벽히 들켰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오리발 내밀었어야 했는데 같이 사는 걸 인정받으려고 솔직하게 얘기한 게 큰 잘못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인에게 얘는 잠깐 만나는 애다, 근데 너무 이쁜걸 어떻게 하느냐. 안 만난다고 결심하고 술한잔 먹으면 또 생각하는데 어떻게 감추느냐고 얘기를 하니 그여자가 하는 얘기가.

셋이 살 순 없잖아, 나가. 그래가지고 나왔어요.

그렇게 됐는데, 그때만 해도 여자라는 느낌 같은 게 없었어요. 그때는 젊은 여자라는 어휘가 저한텐 없었고, 누구나 다. 그땐 저 자신이 젊고, 스무살 차이는 났지만 젊은 여자고 난 나이가 있다는 느낌은 안 가졌는데.

 

그러다가 두 번째까지 끝나고 나니까 아. 이제부터는 나이가 들어서 점잖아져야 하고. 사귀어도 점잔 빼야 하고 그런 순간이 오더라고. 그때부터 우리나라 여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어요 저한테는.

 그래서 욕망, 남자가 늘 갖는 욕망. 그런 것도 줄어들고 점잖아지니까 이제는 정상적인 교제를 해야 하는구나..젊은 여자하고...데이트를 해야 하는구나.

그런데 데이트를 하다보니까 칼라가 나타나요. 젊은 칼라하고 나이 든 칼라하고. 그 칼라가 달라요. 그런데 저는 그림에 다양한 칼라를 쓰잖아요. 그러듯이 여러 가지 칼라는 써야 하는 입장에 처해서 젊은 칼라, 중년 칼라 이렇게 분리가 됐죠. 저는 그렇게 흉악하거나 수사관에게 걸릴 만한 잘못은 정말 추호도 안 저질렀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여자의 앞길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걸 알면 제가 여기 있겠어요.

 

유: 그렇죠. 조영남 선생님이 가장 재수 좋았던 거는 좋은 여자를 만나셨어요. 첫 번째 부인 되셨던 분도 어떤 고백도 안했고. 수기도 안쓰셨고. 굉장히 퀄리티 있는 여성분들을 만나왔는데.

 

조: 혜안이 있었다고 얘기해주시겠어요? 아주 눈썰미가 탁월했다고.

 

유: 네, 그렇죠. 그게 예술가적인 것도 그렇고.....

 

조: 그게 총체적이란 거죠. 한 두가지 이유 때문도 아니고 어려서 교회다니고 밴드 다니고 여자도 사귀고 그런 결과가 아닌가.

 

유: 근데 조영남 선생님이 사실은 지나치게 솔직하시고 지나치게 위약적으로 말씀하셔서. 젊은 여자가 좋다고, 무조건 젊은 여자가 좋다 이런 말씀을 하시지만. 모든 남성분들이 뭐 물건으로 비유를 하자면, 신상품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뭐 그 분들이 안 되기는 했죠.

왜냐면 젊은 여자나 나이 든 여자나 우리도 젊은 남자들이 좋거든요. 그래서 뭐 질문하신 분의 답이 될지 모르겠지만, 뭐 결코 자기 변명을 하셨어요. 수사관에게 걸릴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Q: 선생님의 여자친구랑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무엇이고, 돈의 맛이라는 영화는 보셨는지. 그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신 적이 있는지

 

조: 지금 상영하고 있습니까? 개봉했어요? 아직 못봤어요. 윤여정 나오는 것도 제가 다 보고. 볼라고 그래요. 무슨 개론인가... 건축학 개론 봤어요. 그거 보러 갔는데 첫날은 말하는 건축가라는... 어떤 건축가라는 다큐가 나오더라고. 아. 이거 아니구나 했고 그 다음에 건축학개론 가서 봤는데 누구하고 갔는지 기억 안나요.

 

유: 가장 최근에 나온 영화는 건축학 개론이고, 같이 영화본 사람은 누구인지 기억이 안나고, 윤여정씨가 나온 영화는 다 보신답니다. 돈의 맛도 앞으로 볼 예정이고.

 

Q: 왜 소재가 화투인가요.

 

조: 화투에 대한 걸 얘기하자면 2시간 이상 얘기해야 하는데. 간단하게 얘기하면 그 질문은 음악하고 달리, 독자적이어야 하잖아. 노래는 토스카의 노래를 파바로티와 똑같이 부르면 지금 이 자리에서 세계 1, 2위의 성악가가 되요. 성악가들은 피셔디스카우. 80세로 돌아가셨는데, 저는 똑같이 가곡 부르는 게 첩경이에요. 피아니스트도 밴 클라이본... 라흐마니노프 등등 똑같이 하면 되요.

 

근데 미술은 반대에요. 제가 피카소와 똑같이 찍으면 미친놈 소리 들어요. 조영남 미술만 해야 해. 그 뭉크의 절규 같은거 이걸 똑같이 그리면 대번에 실력없는 놈이 되요. 따라하는 놈.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미술은 음악과 다르다. 조영남의 독창성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들 시선을 끌어야 해. 풍

경이든 뭐든 다 그렇더라고. 미술관이 뭐 다 그려 놨어. 근데 뭘 그려야 지나가는 사람들 발길을 세울까. 그런데 어느 날 화투 보니까, 그 속에 그림이 있더라고. 일본화도 그렇고.... 그래서 시선을 끄는 방법이 화투를 그리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리게 된 거고, 제가 성공한 거죠.

 

유 : 여기도 나와있지만 현대미술은 어떻게 그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그리느냐. 풍을 따라 그리는게 아니라 독창적 주제가 중요한 거라서. 데미안허스트 같은 한 번에 800억씩 팔리는 작가의 경우도 본인 아이디어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작업을 하죠. 뭐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같은 것도 뭐 기계적이지만, 독창성 때문에 각광 받은 것처럼. 그래서 대한민국은 물론이거나와 세계에서 아무도 그리지 않았던 소재와 주제를 찾다가, 화투를 그리신 건데, 외국의 미술 평론가들이 세계인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색감을 가진 그림이라고 해서 중국에서 전시 했을 때 호평을 받았어요. 처음부터 화투를 그리신 것은 아니었어요. 1974년에 처음 전시회 했을 때는 풍경화를 그리셨어요. 그때 제가 관객으로 참석했던.... 중학교때 교복입고, 믿거나 말거나.

 

 

Q. 북토크이긴 하지만, 책보다는 타이틀 주제가 인생은 나의 것이다. 재미없는 것은 한정이 없다. 이런 글귀를 보고 신청을 했어요. 저도 방황하는 젊은이로서 제가 사실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어서 자퇴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주변의 현실적 시선이나 어른들이 봤을 때 옳지 않고, 니가 앞으로 살아갈 때 걸림돌이 될 거라고 많이 말씀들을 하셨어요. 근데 재미를 찾고 하고 싶은 걸 해오셨다고 했는데, 순간순간의 불안함이라던가, 미래에 내가 당장 하고싶은 걸 선택을 해도 괜찮은지, 조언을 해주실 수 있는지..?

 

조 : 나이가?

 

Q. 24살.

 

조: 24가 내 딸 나이인데, 그 방황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이야기 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왜 자기 삶을 방황이라고 표현을 하는지. 대개 젊은이들의 삶이 방황이라는 부정적인 뜻이 담겨있잖아요. 보통 들으면. 그럴 필요가 없죠. 그걸 느끼는 것 자체가 너무 웃기고, 건방지다고 생각해요.

방황이라 생각하면 안 돼. 그래서 당신은 방황이란 느낌을 갖는 거죠. 젊기에 여러 생각 들고, 24살이면 인생에서 가장 꽃피는 나이 아니에요.

 

당연히 여러 생각이 들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신이 우리에게 행복 불행 반반 줬고, 불안 안정 반반 줬는데, 그걸 나쁜 것만 자꾸 생각하며 불안하다, 불행하다, 초조하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물으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건 우리가 당신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 그 자체, 그리고 당신이 가진 재료야. 음식 만들때 후춧가루 맛없잖아요. 그러나 그걸 갖고 있어야 해요. 마늘도 맵기만 하죠. 고추. 하지만 그런걸 다 조화롭게 섞어서, 불안, 초조, 외로움 소화해서, 엮어서 살아야 나중에 근사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가져야 하는데.

 

당신만 해도 왜 나는 불안하고 초조해야 하고, 이럴 직업을 가질때 망설여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게 우스워. 당신은 지금 그런 거 할 때가 아니야. 그걸... 그렇게 해도 그런가 보다. 그러고 이게 재밌구나, 그러면 그냥 해. 끝까지 해. 옆에서 누가 뭐라고 그러던 아부지가 그러든 선생이 그러던. 그럼 학교 때려쳐. 그리고 재밌는 거 해.

 

유: 때려쳤대요.

 

조 : 그렇게 살아보는 거지. 남자친구 만나는 거 그러면 더 좋아.

그 나이에 가장 해 볼만한 거는 좋은 남자친구과 밤새 수다떨고, 쏘다니고. 그게 안 되면 나머지. 자수를 하던가. 수사관에게 걸리지 않는 것. 재미있는 것 찾으세요. 책을 읽던가.

 

유: 선생님 말씀대로 방황이라는 부정적인 언어 대신에 생각이 많음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저것 도전하다 보면 다양한 체험이, 직업을 체험하며 살아야 하기에 그게 훨씬 여러분들의 인생을 강하게 해 줄 거고요. 청춘만 아픈 게 아니에요. 중년도 아파요.

 

조 : 왜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청춘은 때려죽이고 싶어요. 자기들만 아프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요. 왜 청춘만 아파야 해. 노인네도 아픈데. 노인네는 비가 오면 쑤시고.

 

유: 선생님이랑 저랑 책을 하나 쓸건데, 저는 결리니까 중년이다, 선생님은 쑤시니까 노년이다 쓸 거에요. 아프고 결리고 쑤시는 과정을 통해서 이제 삶을 성숙해 나갈 건데. 하염없이 얘기하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제 선생님, 그만 하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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