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책]/민요,국악

황병기 - 침향무

경호... 2015. 7. 13. 00:09


 

"서양음악이 벽돌이라면 동양음악은 소리 하나 하나를 정원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서양곡은 벽돌을 쌓아가듯이 작곡하지만, 동양곡은 정원에 돌을 배열하는 기분으로
만들지요.
돌 하나 하나의 모습, 즉 소리 하나 하나가 어떻게 오묘하게 변하는가에 귀가 열려야
우리음악의 묘미를 알 수 있습니다."

- 가야금연주가 황병기-

 


법열의 세계로 승화된 신라미술의 특징 표현 - 황병기/이화여대 교수

'침향무'는 1974년 작곡된 장구 반주가 붙은 가야금 독주곡이다.
'침향(沈香)'은 본래 나무의 이름이다.
침향나무의 진으로 만든 `침향`. '침향무'라는 제목은 '침향의 향기 속에서 추는 춤'이라는
뜻입니다.
학명으로는 알킬라리아 아갈라차(aquilaria aqallacha)라고 한다.
인도가 원산지인 상록수로 높이가 20m, 지름이 2m이상 자라는 큰 나무이다.
가지에 상처를 내 흘러나온 진으로 향료를 만들고, 이 향료를 다시 '침향'이라고 부른다.
침향은 의복이나 기물에 스며들게 하거나 태워서 향기를 내며, 예로부터 동양의 가장 고귀한
향으로 존중되었다.
따라서 '침향무'라는 곡명은 '침향의 향기 속에서 추는 춤'이라는 뜻이다.

현재 우리가 연주하고 있는 전통음악은 조선시대의 유산이다.
나는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기 위해 전통음악의 틀, 즉 조선시대의 틀을 벗어나려 했는데,
그 한 방법으로 '침향무'에서는 신라적인 예술세계에 복귀함으로써 조선조의 틀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신라의 찬연했던 문화, 특히 미술세계는 지금도 우리를 경탄케 하지만, 당시의 음악은
완전히 사라져서 찾을 길이 없다.
음악은 철저하고 순수한 무형문화재인 것이다.
나는 우선 신라사람들로부터 춤곡을 위촉받았다고 전제하고 신라적인 춤곡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신라의 불상들을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역으로 불상의 동적인 상태, 즉 신라적인 춤을 상상할
수 있고, 이러한 춤에 맞는 음악이 곧 신라적인 음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라의 문화와 예술은 서역의 문화, 특히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의 영향을 받아 꽃피었음을
상기해, 나는 곡명을 인도의 향기 속에서 추는 춤, 즉 '침향무'라고 붙이고, 서역 특유의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현란함이 종교적인 법열의 세계로 승화된 신라 미술의 특징을 음악으로
표현코자 했다.

'침향무'는 가야금의 줄 고르는 법부터 새롭다.
전통적으로 가야금의 조율은, 레-미-솔-라-도의 5음 음계를 사용할 경우, 아래 세줄을 레-솔-라로 맞추고, 이 세음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침향무'에서는 제1현과 제2현은 장2도, 제3현은 단3도 높게 올려서 미-라-도의 3음이
핵심을 이룬다.
불교음악이나, 불교음악의 영향권에 있는 강원도 민요, 예를 들면 '한오백년'과 '정선아리랑'등에서 애용하는 음계와 선율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제1악장은 신에의 갈구하는 마음을 담은 저음역의 중모리 가락으로 시작한다.
이 가락이 점차 고음역으로 고조되면, 중모리(12/4박자)가 반으로 줄어든 엇중모리(6/4박자)로 변하면서 속도도 점점 빨라져 다시 중중모리(12/8박자) 가락으로 변한다.
이 중중모리 가락은 리듬적으로는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무곡 풍의 흥을 지니지만 선율적으로는 오히려 애절한 계면조의 색채를 띠고 있어서 갈구하는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다지고 있다.

제2악장은 진리의 황홀경, 즉 법열의 문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처음 '느리게(♩=42)'는 한 줄기의 빛을 상징하는 도입부인데, 높은 음으로 시작해 순차적으로
한 옥타브를 하행한 후, 상행하는 아프페지오로 끝난다.)
본 곡인 '약간 빠르게(♪=152)'는 6박, 7박, 4박 등 다양한 박자의 리듬으로 전개된다.
바른손의 고집 음형이 서역의 북소리를 상기시키고 외손은 선율을 연주하면서 법열의 문으로
다가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나타내는데, 고수가 장구채로 북면의 변죽과 복판뿐만 아니라
중간의 나무통까지 연주하면서 다양한 장구소리로 이러한 분위기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끝부분인 '아주 느리게(♩=30)'는 도입부보도 더욱 정적이고 명상적인 가락으로 되었는데,
목탁소리 같은 음향이 드문드문 나타나다가 다섯 번 연달아 울리면, 바로 제3악장이 시작된다.

제3악장은 환희의 춤으로 시작된다. 급속한 휘모리 장단(12/16박자.♪=184)으로 흐르는데, 한동안 왼손으로 지속 저음(drone), 오른손으로 선율을 연주하다가 절정에 이르면 바른손으로 기교적인 지속 저음을 연주하고 왼손으로 선율을 연주한다.
환희의 춤이 그치면, 제2악장에서 나왔던 '목탁 같은 음향'을 연상케 하는 음향이 저음역에서
깔리면서 정적인 가락이 잠시 흐르다가 침묵으로 변한다.
침묵 속으로 가야금의 최저현을 손가락 끝으로 비비는 바람소리 같은 작은 소리가 나타나 차츰 여러 줄로 비비는 폭을 확대해 폭풍 소리처럼 커졌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드디어 하늘나라에서 나부끼는 천의(天衣)의 옷자락을 상징하듯 부드러운 분산화음이 세 번
울리면서 전곡이 끝난다.

'침향무' 다음에 쓴 곡은 '비단길(1977년)'이다.
내 작품 중 신라적이고 서역적인 세계를 지향한 작품은 이 두 곡인데, 그 무렵에 나는 가야금 연주자로서도 현대의 서역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 왕성한 연주활동을 했다.
440세 전후의 일이다. 내 인생의 전성기일지도 모른다. 60대가 된 지금, 이러한 작품을 물론 쓸 수 없다.
몸도 마음도 그 시절의 힘과 정열을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더 오묘하고 원숙한 작품을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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