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친구를 위한 기도/ 박인희

경호... 2013. 8. 24. 13:51

 

 

친구를 위한 기도/ 박인희

  

주여
쓸데없이
남의 얘기 하지 않게 하소서

친구의 아픔을
붕대로 싸매어 주지는 못할 망정
잘 모르면서도 아는척
남에게까지
옮기지 않게 하여 주소서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속으론 철 철 피를 흘리는 사람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사람
차마 울 수도 없는 사람
모든 것을 잊고싶어하는 사람
사람에겐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가슴 속 얘기
털어 내 놓지 못하는 사람
가엾은 사람
어디하나 성한데 없이
찢기운 상처에
저마다 두팔 벌려
위로받고 싶어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말에서 뿜어나오는 독으로
남을 찌르지 않게 하소서

움추리고 기죽어
행여 남이 알까 두려워
떨고있는
친구의 아픈 심장에
한번 더
화살을 당기지 않게 하여 주소서

 

- 기도시집『기도하면 열리리라』(율도국,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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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도 시는 1970년대 초 '뚜와에 무와'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박인희가 쓴 것으로 우리에겐 이해인 수녀와의 두터운 우정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박인환의 시를 노래한 ‘목마와 숙녀’ 그리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로 시작되는 ‘얼굴’ 이란 그녀의 자작시 낭송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해인 수녀와는 풍문여중 때부터 단짝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보통사람의 경우와 달리 주로 편지로써 서로의 생각과 우정을 교환하는 좀 특이한 관계였는데, 이해인이 수녀가 된 뒤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정작 학교에선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다가 집에 가서야 서로 편지를 끊임없이 써댔다고 합니다.

 

 이 시 역시 박인희가 이해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 남다르게 무르익은 건 사실이지만 둘 다 성격이 안으로 꽉 들어차 글로서 깊은 교류가 이루어지다 보니 더러는 우리가 상상되지 않는 영적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보통사람 이상의 섬세하고 민감한 성격을 가졌기에 예기치 않은 감정 마찰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가 이해인 수녀를 직접 겨냥한 글은 아니지 싶습니다.

 

 주위의 친구가 겪은 아픔을 대신 말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이 다른 친구에게 받은 상처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남의 불행이나 잘못을 은밀히 즐기는 심리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들은 수다와 뒷담화의 유혹을 참지 못하는 성향이 농후하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커뮤니티를 견고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의 반영 정도면 넘어가겠는데, 문제는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악의적인 가십의 유포일 것입니다.

 

 명색이 친목을 위한 동아리나 동호회 등에서도 별 생각 없이 내뱉은 쓸데없는 남의 얘기로 당사자에게 상처가 됨은 물론이고 둘레까지 불편하게 하는 사례를 가끔 봅니다. 더욱이 공연한 시기와 질투가 작동되어 빚어진 경우 그 폐해는 더욱 심각해져 결국 친목이 아닌 반목과 분열로 치닫게 됩니다. 이럴 때 자기반성과 성찰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치러야할 심리적 대가는 열섬이고 단체의 내홍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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