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 문정희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 시집『나는 문이다』(뿔,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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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의 솔직 대담하면서도 경쾌하고 재미나는 시다. “응”은 사람이 세상 밖으로 나와서 가장 먼저 구사하는 긍정의 모국어이다. 갓난아기의 옹알이 단계에서부터 사용하는 본능적인 근원의 생존언어라 할 수 있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엄마뱃속에서부터 익혀서 나온 말이다. 입술을 달싹이지 않고도 가슴에서 뿜어내기만 하면 되는 말이다. “응?”하고 한음절로 물을 때 “응!”하고 한음절로 대답하면 만사형통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언어의 유통구조가 좀 복잡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응”은 매우 분명하고 효과적인 의사표현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란 말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목적어가 빠져있는 말이다. 어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해도 통하는 것은 다 통하나 보다. 당신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무엇을 하든 당신과 함께라면 좋아라란 뜻이고, 무조건적인 특급사랑의 관계에서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즉각 “응”이라고 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같이 밥을 먹자는 건지 영화를 보자는 건지 드라이브를 하자는 것인지 다른 무슨 수작을 꾸미자는 것인지는 몰라도 "응"이다. 시인은 지평선에 동시에 떠있는 해와 달처럼 대칭의 이응이 마주보고 있는 모양을 두고 “눈부신 언어의 체위”라고 한다. 동그라미 두 개가 서로 긍정하며 수용되는 지점에서 우주적 황홀경이 펼쳐진다.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가 완벽한 긍정과 소통이 이뤄진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진선미의 총화다.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에서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이라니. 이건 달을 품은 해이거나 해를 품은 달이 아닌 공존의 합궁이다. 달은 해를 섬기고 해는 달을 감싸 안지만 이건 완전한 대칭의 평화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감탄사다.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내게도 이런 문자 날려도 좋을 누군가 있을까. 한 치의 주저 없이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이라는 문자를 받을 수 있을까.
권순진
그대 목소리에 마음이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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