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관계 / 이화은
내 남자는 내게 옷을 벗으라 하고
나의 神은 몸을 벗으라 한다
초저녁
묽은 어둠속에서 무심히 복숭아의 껍질을 벗기는데
명치끝에 직입했던 질문 하나가 따끔거린다
손목의 맥을 짚던 한의사가
성관계는 몇 번이나?
하루? 일주일? 한 달? 한 생?
내 몸 어디에 그런 횟수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단 말인가
급하게 뒤집어 입은
헌 속옷 같은 대답을 대충 던져주었는데
성(聖)이었나?
선행과 자비를 물었던 것인가
복숭아 단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손가락 사이가 새삼 화끈거린다
문득 귓속이 허전하니 메밀꽃 진 자리 처럼
매미 울음이 없다
제 울음 끝을 다시 뒤집어 찢곤 하던 울보들도
드디어 울음의 몸을 벗은 것인가
바람이 어둠의 맥을 짚는 저녁
다 발라먹은 복숭아씨 하나를 놓고
하나와 한 번은 다른 말이라고, 하루 종일 나는
이상한 숫자의 벌거벗은 의미들과
너무 오래 관계되어 있었다
* in A Water Side(Whisper) / Xin X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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