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난처한 관계 / 이화은

경호... 2013. 8. 24. 13:47

 

 

       
                        

 

                     

 

난처한 관계 / 이화은

 

            

 

 

내 남자는 내게 옷을 벗으라 하고

나의 神은 몸을 벗으라 한다

초저녁

묽은 어둠속에서 무심히 복숭아의 껍질을 벗기는데

명치끝에 직입했던 질문 하나가 따끔거린다

손목의 맥을 짚던 한의사가

성관계는 몇 번이나?

하루? 일주일? 한 달? 한 생?

내 몸 어디에 그런 횟수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단 말인가

급하게 뒤집어 입은

헌 속옷 같은 대답을 대충 던져주었는데

성(聖)이었나?

선행과 자비를 물었던 것인가

복숭아 단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손가락 사이가 새삼 화끈거린다

문득 귓속이 허전하니 메밀꽃 진 자리 처럼

매미 울음이 없다

제 울음 끝을 다시 뒤집어 찢곤 하던 울보들도

드디어 울음의 몸을 벗은 것인가

바람이 어둠의 맥을 짚는 저녁

다 발라먹은 복숭아씨 하나를 놓고

하나와 한 번은 다른 말이라고, 하루 종일 나는

이상한 숫자의 벌거벗은 의미들과

너무 오래 관계되어 있었다

 

 

 

            

         * in A Water Side(Whisper) / Xin X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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