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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자의 명칭과 유래 / 중국차문화사 5.6.

경호... 2013. 1. 21. 01:29

중국차문화사

 

(5) 각종 문헌상에 나타난 차(茶)자의 명칭과 유래

 

‘차’(茶)를 의미하는 여덟 글자의 연원

 

 

▲ 차(茶)자의 여섯글자(세계차문화박물관), 사천성 名山현의 蒙頂山

 

 

고대 중국에서 차(茶)자에 대한 기록들은 여러 고문헌에서 어렵지 않게 많이 보이고 있다. 그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글자들이 문헌에서 출현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도(?)’?‘타(?)’?‘가(?)’?‘천(?)’?‘설(?)’?‘명(茗)’?‘고로(皐蘆)’?‘차(茶)’ 등의 여덟 글자가 모두 ‘차(茶)’자의 의미를 가지는 글자들이다. 이 글자들을 순서에 따라 그 문헌의 출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1) 도(?)―(音:?,t?)

이 글자가 맨 먼저 보이는 문헌은 《육경(六經)》중의 하나인 《시경(詩經)》이며, 《이아(爾雅)》나 《신농본초(神農本草)》,《동약(?約)》 등에서도 각기 보이는 데 그 내용들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시경(詩經)》:
“수위도고(誰謂?苦) - 누가 씀바귀(차)를 쓰다했나?”,
“채도신저(採?薪樗) - 씀바귀(차) 캐고(따고) 개똥나무 베어….”

②《이아(爾雅)》:
“가(?), 고도(苦?) ― 가(?)는 쓴 씀바귀(차)이다.”

③《신농본초(神農本草)》
“도생익주, 삼월삼일채(?生益州, 三月三日采) ― 도(?)는 익주(益州)에서 나며, 삼월 삼일에 딴다.”

④《동약(?約)》
“팽도진구(烹?盡具) - 도(?:차茶의 옛 글자)를 다릴 도구를 깨끗이 씻는다.”(일설에 의하면‘盡’은 ‘淨’이다.)
“무양매도(武陽買?) ― 무양(지금의 팽현)에서 도(차)를 사다.”

 

▲ <이아(爾雅)>, 항주차엽박물관 소장

 

 

고대에 ‘도(?)’자의 뜻은 매우 여러 가지이므로 반드시 차를 가리킨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대부분의 《시경》 번역서들을 보면 하나같이 ‘도(?)’자를 씀바귀 정도로만 번역이 되어있지 그것을 ‘차’라고 번역한 책은 극히 보기 드물다.

진(晉)나라의 곽박(郭璞:276-324년)이 《이아(爾雅)》〈석목(釋木)〉편의 “가(?), 고도(苦?)”라는 문구를 설명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무는 마치 치자와 같고, 겨울에도 푸르게 살며, 잎은 삶아서 국을 만들어 마실 수가 있다. 지금에 부르기를 일찍 딴 것은 도(?)라고 하며, 늦게 취한 것은 명(茗)이라 하고, 일명 천(?)이라 하며, 촉(蜀)땅의 사람들은 이것을 고도(苦?)라고 이름 한다.”

(樹小似梔子,冬生靑, 葉可煮羹飮. 今呼早采者爲?, 晩取者爲茗, 一名?, 蜀人名之苦?.)

이것은 ‘도’가 바로 차나무였다는 사실을 최초로 명확하게 지적한 기록이라 하겠다. 아울러, 이것은 최초로 차나무의 특징과 특성을 묘술 함과 동시에 차의 채적시기의 이르고 늦음에 따라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리 우고 있음을 잘 설명해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남북조(南北朝:420년-589년)에 이르러 차를 마시는 풍조는 민간에까지 보급되었다. 아울러 많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도(?)’자는 이미 민간의 음차 풍속 속에서 ‘차(茶)’자의 대체 문자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서서히 도태되어 갔으며, 이에 따라 ‘차(茶,ch?)’자와 ‘도(?,t?)’의 함의는 점점 구분되기에 이른다.

당(唐)나라 고조 때의 국학박사(國學博士) 육덕명(陸德明:618년-626년)이 저술한 《경전석문(經典釋文)》과 《제경독음(諸經讀音)》에서 ‘도(?,t?)’자의 독음은 이미 ‘차(茶,ch?)’자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것도 발음만 바뀐 것이지, 글자가 ‘도(?)’자에서 ‘차(茶)’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 세계 각국 차자 표기 도표(출처-中國茶文化今古大觀)

 

 

2) 타(?)―(音:du)

이 글자 역시 고대의 ‘차’자 중의 하나이다. 고증에 의하면 ‘도(?)’자 보다 그 역사가 더 오래된 것 같다. 서한(西漢)의 사마상여(司馬相如:BC179년-118년)가 지은 《범장편(凡將篇)》에 “원화(?華)?패모(貝母)?누로(漏蘆)?천타(??)?창포(菖蒲)” 등의 20여 종의 약물이 기재되어 있다. 《범장편(凡將篇)》은 후세의 계몽잡자(啓蒙雜字)같은 교과서와 비슷한 것이며, 동시에 또 일종의 고자서(古字書)이기도 하다.

‘타(?)’자는 차자의 옛날 정자(正字)이다. 음운학 상으로 분석해보면 ‘타(?)’자와 ‘도(?)’자는 같은 소리로 발음되는 글자이다.

‘타(?)’의 원래 뜻은 뚜껑과 그릇 받침이 있는 마실 거리의 도구이다. 그 음은 ‘도(?)’와 동음이다.

이것은 바로 고대의 다기를 가리키는 말로써, 아마도 후대의 뚜껑과 차받침이 있는 차완, 즉 개완찻잔(蓋碗茶杯)에 해당하는 다기였을 것이다.

 

 

▲ 세계 각국 차자 표기 도표(출처-世界茶文化大觀)

 

 

3) 가(?)―(古音:古 g?, 今音:假)

이것은 유일한 ‘목(木)’변의 고대 차자(茶字)이다.

《이아(爾雅)》〈석목(釋木)〉편의 “가(?), 고도(苦?)”조에 처음으로 보인다.

 

《광아(廣雅)》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형파(荊巴)지구에서는 가도의 잎을 구워, 콩잎(콩의 어린잎)·생강·귤껍질 등을 넣어 명(茗:차)을 만들어 그것을 마셨다.”

(荊巴間灸??之葉, 加入菽·薑·橘子等爲而飮之.)

이 단락은 육우의 《다경》에서 인용된 《광아》의 내용에 비해 문장이 간단할 뿐만 아니라 글자의 내용이 약간 다르다. 유소서(劉昭瑞)의《중국고대음차예술(中國古代飮茶藝術))》에서는 현존하는 《광아》와 여러 가지 참고문헌을 들어 육우의 《다경》에서 인용된 《광아》가 잘못 인용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다.

육우의《다경》에도 이 글자는 보인다. 육우는 《다경》에서 말하기를, “그 맛이 달며(甘), ‘가(?)’이다.”라고 하였다.

가(?)의 고음은 ‘고(古,g?)’와 같이 읽는데, 이것은 ‘고(苦,k?)’와 ‘도(?,t?)’의 합음이다. 이렇게 가(?)자가 ‘고?도(苦·?)’ 두 글자를 합음한 가차(假借)자에서 말미암았고, 게다가 사람들이 ‘도(?)’자만을 주로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차사(茶事)에 대한 역사 기록 중에서는 오직 ‘고도(苦?)’ 두 글자만이 많이 보이고, ‘가(?)’자의 사용은 매우 드물게 보이게 되었다.

4) 천(?)―(音:喘)

이 글자는 ‘초(艸)’변으로 오직 찻잎만을 가리키는 ‘고대의 차(茶)’자이며 《범장편》에서 제일 먼저 보인다. 그 외에도 이 글자는 다음과 같은 문헌 등에서 보인다.

《삼국지?오지(吳志)》〈위요전(韋曜傳)〉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위요(韋曜)는 주량이 겨우 두 되밖에 되지 않으므로 손호(孫皓)는 처음부터 요(曜)에게 예를 달리하여 몰래 차(??)를 하사하여 술을 대신하게 하였다.(…曜飮酒不過二升, 皓初禮異, 密賜??以代酒.)”라고 기록되어있다.

또, 진(晉)나라《손초가(孫楚歌)》에 보면 “생강·계피·차는 파촉(巴蜀)에서 난다.(姜桂??出巴蜀)”라는 기록이 있다. 이상에서 나타난 ‘도천(??)’은 지금의 ‘차(茶)’이고, ‘파촉’은 현재 사천성 ‘성도’와 ‘중경’을 합칭하는 말로써 삼국시대 때의 촉나라 영토를 말하는데, 지금의 사천 일대가 된다.

이 글자의 원래 뜻은 정제되지 않은 ‘거친 차(粗茶)’ 혹은 늦게 딴 차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아》에 이를 잘 입증하는 기록이 있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서술한 본문 ‘(1)도(?)’조에서 언급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대체로 동한(東漢) 때부터 시작하여 ‘천(?)’이란 글자가 차츰차츰 ‘명(茗)’이란 글자를 대신하여 ‘차(茶)’라는 글자의 의미로 쓰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5) 설(?)―(音:設sh?)

양웅(楊雄)의《방언(方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즉, “촉(蜀) 땅의 서남인(西南人)들은 도(?)를 일러 설(?)이라고 한다.”(蜀西南人謂?曰?.)라 하였다. 이는 사천 서남부에서 차를 칭하는 속어임을 입증하는 기록이라 하겠다. 육우의 《다경》에서도 ‘설(?)’자를 일러 ‘차의 별명’이라 하였다.

6) 명(茗)―(音:酩,m?ng)

《신농식경(神農食經)》에 이르기를, 즉 “차를 오래 복용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힘 있게 하고, 뜻을 기쁘게 한다.”(?茗久服, 令人有力悅志)라고 하였다. 또《이아》에도 이 글자의 기록이 보이며, 당(唐)《옥편(玉篇)》에 이르기를 “명(茗)은 차의 싹(茶芽)이다.”라고 하였다. 차의 발상지인 사천의 방지(方志)인《화양국지(華陽國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파촉(四川)지방의 뜰에는 향기로운 부들 싹이 있으니, 향명(香茗)이라…….”(巴蜀園有芳蒻,香茗…)

이상에서 살펴 본 ‘명(茗)’자는 비교적 그 ‘도(?)’나 ‘천(?)’보다 훨씬 늦게 출현한다. 한(漢)나라 허신의《설문》에 보면 이 글자를 새로 추가로 첨부하였기 때문에 ‘명(茗)’자의 해석이 없다. 어떤 이는 추측하기를 “이 글자가 동한(東漢)시기에 찻잎을 표시하는 글자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나 어원에 근거하여 보면 ‘명(茗)’자는 운남 일대에서 주로 사용 ‘차’자의 토착어이다. 혹자들은 태국어의 차(茶)의 독음은 아마 이 ‘명(茗)’자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6) 각종 문헌상에 나타난 차(茶)자의 명칭과 유래 2

 

‘차’(茶)를 의미하는 여덟 글자의 연원

 

7) 고로(皐蘆)

 

《동군록(桐君錄)》(각주1 참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남방에 과로목이 있는데, 이 또한 명(茗)과 같이 아주 쓰고 떫다. 그것을 가루로 취하여 끓여 마시면, 또한 밤새도록 잠을 잘 수 없다.” (각주2 참조)

 

1) 성서(成書)년대가 불확실하다. 춘추(春秋)설과 동한(東漢)설이 있다.
2) “南方有瓜蘆木,亦似茗,至苦?,取爲屑,煮飮,亦通夜不眠.”

 

납북조(南北朝) 심회원(沈懷遠)이 쓴 《남월지(南越志)》(557년-589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용천현에 ‘고로’가 있어, ‘과로(瓜蘆)’라 이름 하는데, 잎사귀는 마치 ‘명(茗)’과 같다. 토착인들은 그것을 일러 ‘과라(過羅)’ 혹은 ‘물라(物羅)’라고 하는데 모두가 오랑캐의 말이다.” (각주3 참조)

 

3) “龍川縣有皐蘆,名瓜蘆,葉似茗,土人謂之過羅,或曰:物羅,皆夷語也.”

 

당나라《본초(本草)》에는 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고로는 일명 ‘과로’라고도 한다. 지금 남방 사람들이 그것을 쓰는데 ‘고등’이라고 이름하며, 잎사귀가 마치 ‘명(茗)’과 같다.” (각주4 참조)

 

4) “皐蘆,一名瓜蘆,今南人用之,名曰苦登,葉似茗.”

 

고증에 의하면 ‘고로(皐蘆)’는 ‘고도(苦?)’의 회역음(回譯音) 문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중국 남방(운남?사천일대)에서 야생하는 대엽형(大葉型)의 차나무를 광범위하게 통칭하는 말로써, 가끔씩 차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근대의 식물분류학자들은 역사에 나타난 ‘고로’라 하는 것을 아예 차나무의 유형을 대표하는 일종의 차나무의 변종이라 결론짓고 있다. (각주5 참조)

5) 1958년 J.R.Sealy란 학자가 “Camellia sinensis var. macrophylla”.이라 명명(命名)하였는데, 이 는 곧 “중국대엽변종(中國大葉變種)”이란 뜻이 된다.



8) 차(茶)

 

‘차(茶)’자가 최초로 보이는 것은 당나라 소공(蘇恭)의 《본초(本草)》에서이다. 《본초》는 당나라 고종(高宗) 영휘(永徽) 연간(650-655년)에 이적(李勣) 등이 편찬한 것인데, 현경(顯慶) 연간(656-660년)에 소공?무기(無忌) 등이 주석을 단 것이다. 소공이《본초》를 중수한 이후, 차사(茶事)에 대한 기술은 모두 ‘차’자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로는 ‘도(?)’자로써 ‘차(茶)’자를 대신하는 일은 없었다.

《당운(唐韻)》에 “도(?)는 중당부터 또한 차(茶)자로 했다.”(각주6 참조)는 기록이 보인다. 당나라 문종(文宗:827-840년)과 선종(宣宗:841-859년) 기간 동안에는 이제까지 차(茶)자를 대신하여 사용해오던 일체의 모든 별명들을 폐용하고, 오직 ‘차(茶)’자 하나만을 사용하도록 통일하였다.

 

6) “?自中唐, 亦作茶.”

 

세계에서 사용되는 차자의 독음은 거의 모두 중국의 ‘차(茶)’자나 ‘차엽(茶葉)’이란 글자에서 그 어음(語音)이 전역(轉譯)된 것들이다. 현재의 중국어는 ‘보통화(普通話:북경어)’를 대표로하여 국어(國語)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가 비교적 통일된 상태이다. 그러나 예부터 중국의 방언은 매우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 중국 자체에서도 지방이 다르면 마치 서로 외국어 대하듯 할 정도이며, 겨우 문자에 의해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정도이다. 게다가 역사상 외국과의 언어교류는 대부분이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방의 방언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까닭에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茶)’자의 독음은 대부분 중국 방언의 영향을 받아 제각기 그 방언의 색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세계 각국에 최초로 전해진 ‘차(茶)’자의 지방음(地方音)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차’자의 독음 또한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茶)’자의 어음(語音)은 크게 ‘민남어계(?南語系)’와 ‘광동어계(廣東語系)’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민남어계(?南語系)‥중국 복건성(福建省)의 민남어(?南語)이다. ‘차(茶)’자를 [te?]로 읽는다. 이는 하문어(厦門語)로써 민남어의 대표로 삼은 예이다. 하문은 중국 역사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외항구도시이며, 해운업(海運業)이 일찍이 발달한 곳이다.

 

중국의 비단이 외국으로 전파되면서 비단길(실크로드)이 생겨났듯이, 차엽(茶葉)이 세계로 전파되면서 ‘차의 길(茶之路)’이란 것 또한 생겨났다.

 

‘차로(茶路)’에는 크게 둘로 나누어 해로와 육로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차(茶)’의 독음에서 분명하게 구분이 되고 있다. 민남어계는 바로 해로 상에서 주로 전용되던 독음이다. 네덜란드,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서반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체코슬라바키아, 헝가리 및 라틴어, 영어(英語) 등이 모두 이 민남어계(?南語系)에 속하며 ‘차(茶)자의 ’민남어(?南語)의 독음인 ‘[te?]’에서 유래하였다. (각주7 참조)

우리나라에서는 차(茶)자를 두고 ‘차’와 ‘다’ 두 가지 발음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다’로 발음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7) 영어의 ‘Tea’, 프랑스어의 ‘The?’, 독일어의 ‘Tee’, 라틴어의 ‘Thea’ 등등이 그러하다.

 

② 광동어계(廣東語系)‥광동어에서 ‘차(茶)’자는 ‘Cha ?(査) 로 읽는다. ‘차로(茶路)’중 육로의 독음은 광동어계와 화북어계를 함께 채용하고 있다. 일본, 러시아, 인도, 이란, 터키, 아랍에미레이트, 포르투갈 등이 모두 광동어계에 속하며, 그 독음은 모두 차(茶)자의 광동계 독음인 ‘차[Cha?]’에서 유래하였다. (각주8 참조)

 

8)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린네(Carl von Linne)는 최초로 차나무의 학명(學名)으로 정하였는데, “Thea Sinensis” 라고 하였다. 이 또한 중국차에서 유래한 것으로써, 그 것은 곧 “중국차나무(中 國茶樹)”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차(茶)자를 ‘다’로 발음하는 것 외에 또 ‘차’로도 발음하는 것은 바로 광동어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상에서 거론한 ‘다’와 ‘차’ 두 가지 발음이 우리나라에 모두 존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아주 지형학적으로 가장 가깝게 위치하고 있고, 또한 중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음차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반드시 명대 인사들의 음차생활에 대한 공헌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동시에 명대의 음차문화의 혁혁한 성취는 반드시 당대 육우의 창시의 공로와 송대 인사들의 ‘음차열기’및 ‘투다풍기(鬪茶風氣)의 조성’의 공으로 귀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독자들의 역대 중국다예(中國茶藝)의 변천과정과 발전 및 그 흐름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해 중국다예의 시대적 구분과 그 변천내용의 요지를 아래 도표로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시기의 구분 변 천 내 용
 몽매시기(??時期)   선진(先秦)이전, 주로 제사품(祭祀品)이나 채식(菜食:요리,음식)으로 사용
 맹아시기(萌芽時期)   진(秦)에서 동한(東漢)까지, 요리(料理)로부터 음료(飮料)로 발전하여 사용
 상시시기(嘗試時期)(시험적 시기)   삼국(三國:魏?蜀?吳)에서 남북조(南北朝)까지, 궁정(宮廷)의 고귀한 음료로 사용
 긍정시기(肯定時期)   수(隋)에서 초당(初唐)까지, 점차 보통음료(普通飮料)로 사용하기 시작
 개전시기(開展時期)   중당(中唐)에서 명초(明初)까지, 음차(飮茶)·제다법(製茶法)의 건립
 발황시기(發皇時期)   중명(中明)에서 청말(淸末)까지, 음차(飮茶)와 생활이 서로 밀접한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를 형성함.
 부흥시기(復興時期)   민국(民國)이래 지금까지, 음차문화(飮茶文化)의 재출발과 도약의 시기로 접어 듬.
    

 

▲ 자료출처: 吳智和《中國茶藝》(臺北, 正中書局)

 

 

 

 

박영환 / 중국 사천대학 객좌교수. 불교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