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世上萬事

육우(陸羽)의《다경(茶經)》 / 중국차문화사 7.8.

경호... 2013. 1. 21. 01:28

중국차문화사

(7) 중국 다도(茶道)의 원류와 고대다서(古代茶書)

 

세계최초의 다서(茶書)- 육우(陸羽)의《다경(茶經)》

 

제2장 중국 다도(茶道)의 원류와 중국의 고대다서(古代茶書)

 

 

▲ 항주시 여항(餘杭)의 육우천(陸羽泉)

 

 

1. 세계최초의 다서(茶書)- 육우(陸羽)의《다경(茶經)》

 

1) 육우의 생애와 다경의 산실 ‘육우천(陸羽泉)’

 

중국의 ‘다도(茶都)’라 불리어지는 항주(杭州)는 천하 최고의 명차 서호(西湖) 용정차(龍井茶)로 유명하지만, ‘명천(名泉)’의 유적지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용정차의 유래가 된 ‘용정(龍井)’, 명대 이래 지금껏 용정차와 항주쌍절(杭州雙絶)을 이루고 있는 천하제삼천인 ‘호포천(虎?泉)’ , 그리고 세계최초의 다서인 《다경》의 산실인 육우천(陸羽泉) 등이 바로 그러한 곳들이다.

필자는 육우의《다경》을 소개하기에 앞서 ‘육우’와 ‘육우천’에 얽힌 이야기부터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육우(陸羽:733~804년)의 자(字)는 홍점(鴻漸)이며 일명 계자(季疵)이다. 자칭 쌍저옹(雙苧翁)이라 일컬으며 또한 경릉자(竟陵子)라고도 한다. 당대 복주(?州) 경릉(현, 湖北 天門縣)사람이다. 당?현종 개원(開元) 15년(727년), 용개사(龍蓋寺) 부근 갈대밭에 버려진 아이를 이 절에 있던 승려 ‘지적선사(智積禪師)’가 가엾이 여기고 거두어 키웠다. 절에서 자란 인연으로 어려서부터 불경을 배웠으나 별로 흥미를 못 느끼고 유교에 더 흥미를 가지게 되어 지적선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글을 익혔다.

자라서는 스스로 이름을 짓기 위해 《역경》을 가지고 점을 보아 <건지점(蹇之漸)>괘를 얻고 풀이를 찾아보니 “기러기(鴻)가 뭍(陸)으로 나아간다. 그 깃(羽)은 거동에 쓸 수 있으니 길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곧 성을 ‘육(陸)’씨로 하고 이름을 ‘우(羽)’라 하고 자(字)를 ‘홍점(鴻漸)’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일설에는 용개사의 지적선사의 속성이 ‘육(陸)’씨였기 때문에 그의 성을 따랐다고도 한다.

그러던 중, 당?현종 천보(天寶) 연간(742~755년)에 우연히 하남도(河南道)의 부윤으로 있던 이제물(李齊物)의 눈에 띠어 그의 도움으로 산을 내려와 그의 소원이던 유학(儒學)과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또 일설에는 한때 도가(道家)에 심취하여 수많은 도사들과 교유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 항주시 여항 육우천의 육우상

 

 

스물한 살 때부터 중국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차생산지를 무려 32주(州)나 고찰하였다. 그리고 평생 동안 찻잎의 종식(種植), 제다(製茶), 팽다(烹茶), 음차 등에 관한 연구를 위해 엄청난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당나라 상원(上元:760년) 초에는 초계(苕溪)에 은거하며 26년 동안이나 찻잎의 연구와 저술에만 몰두하였고, 영태(永泰) 원년(765년) 이후에 세계최초의 《다경(茶經)》을 초고 완성하고, 대력(大歷) 10년(775년)에 다시 증보하였으며 대력(大歷) 14년 후에야 비로소 완성하여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는 당시에 단지 약용(藥用)으로만 사용되던 차를 좀 더 광범위하게 음용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마침내 그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사람들에게 크게 각광을 받았음은 물론 당대(唐代) 차업(茶業)의 흥성과 중국 다문화의 정립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정원(貞元) 19년(803년), 향년 71세에 병으로 생을 마감하니 호주(湖州) 천저산(天?山)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는 죽은 후에 후인들에 의해 ‘다성(茶聖)’으로 추존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다신(茶神)의 예로서 제사를 지냈다.

 

다경을 저술하기 전에 육우가 초계(苕溪)에 은거할 때 차와 샘을 고찰하고자 천목산(天目山)을 찾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가 이른 곳이 바로 천목산의 지맥인 경산(徑山) 북쪽 자락에 있는 쌍계(雙溪)였다. 육우가 천목산 주변의 흐르는 계곡의 물을 살펴보니 천목산 주위를 흐르는 모든 계곡 물들이 이 두 시냇물을 통과하여 흘러 초계의 상류에 모이고 있었다. 더욱 자세히 살펴보니 계곡의 바닥이 투명할 정도로 물이 맑을 뿐 아니라 주위의 산수(山水) 또한 수려하고 토양이 비옥하여 차를 심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 여겨졌다.

 

그는 곧 야생차나무의 씨를 따서 그곳 시골 노인들에게 심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곧바로 산 밑을 흐르는 시냇가에다 갈대를 엮어 초옥(草屋)을 짓고 《다경》의 저술에 몰입하였다. 그 때 마침 육우의 초옥 옆에서는 아주 맑은 샘물이 솟아올랐다. 육우는 그 샘물을 길러다 차를 다려 마시며 전국 각지의 명차들을 세심하게 품명하였다.

 

 

▲ 경산(徑山)의 대나무 숲

 

 

필자가 답사하며 본 ‘경산(徑山)’은 실제로 산세가 웅장할 뿐만 아니라 경관 또한 수려했다. 더 나아가 특이할 만 한 점은 온산이 모두 거대한 대나무 숲이었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경산(徑山) 정상을 오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온통 대나무로 이루진 산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실로 대나무 밀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늘 높이 쭉 쭉 뻗은 대나무는 은자(隱者)의 곧은 품성을 느끼게 하고, 하늘 높이 대나무 끝자락에 무성히 매달려 하늘거리며 산 전체를 덮고 있는 대나무 잎들은 마치 거대한 털 복숭이 강아지를 연상케 했다. 대나무가 잘 자라는 곳엔 늘 상 운무가 덮여있기 마련이고, 운무가 감도는 곳엔 반드시 좋은 차가 나기 마련이다.

 

경산 정상에 도달하면 “다선일미(茶禪一味)의 발원지”로 유명한 당대(唐代)의 고찰 ‘경산사(徑山寺)’가 자리 잡고 있다. 경산사는 현재 ‘경산(徑山) 만수선사(萬壽禪寺)’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경산사’, ‘만수사’ 또는 ‘만수선사’라고도 부른다. 예전에도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지만, 일본다도의 정수인 ‘다선일미’의 사상과 다도가 바로 이곳에서 일본다도의 종조격인 ‘에이사이(榮西)선사’에 의해 일본으로 전파되어갔다.

 

‘육우천’은 절강성 항주시 여항구(余杭區) 경산진(徑山鎭) 쌍계에 위치하며 속칭 ‘육가정(陸家井)’이라고도 한다. 그 규모는 평면 장방형이며 남쪽 너비가 2미터이고 북쪽 너비가 1.1미터이며 동서 길이가 3.5미터이다. 수질이 달콤하고 청량하며 물이 마르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현재 육우의 초옥은 남아있지 않고 샘물만이 옛날처럼 맑게 남아있어 당시 다경의 저술에 몰입하던 육우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당시에 차 씨를 따고 뿌리던 곳이 있는데 현지에서는 이곳을 ‘다자오(茶?塢)’라고 부른다. ‘육우천’은 1986년 항주시의 ‘시급문물보호단위(市級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었다

2) 육우의《다경(茶經)》

 

① 《다경》의 명명

 

‘다경’의 내용이 어떠한가를 거론하기 전에 우선 ‘다경’이란 명칭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또 “어느 시기에 누가 붙인 것인지?” 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하겠다. 육우와 동시대에 살았던 봉연(封演)은 자신의 저술한 《봉씨견문기(封氏見聞記)》에서 “초나라 사람 육우가 다론(茶論)을 지어 차의 공능을 말하고…”라고 하여 ‘다론’이란 말만 거론하였지 ‘다경’이란 말은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숭문총목(崇文總目)》제3권상에도 “육우의 다기(茶記)”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다경》의 〈십지도(十之圖)〉의 끝부분에 육우는 자신이 저술한 다서에 대해 결론을 내려 “이에 다경의 시작과 끝이 모두 갖추어진 셈이다.”라고 말하여 스스로 저술한 다서를 가리켜 서슴없이 《다경》이라고 칭하였다.

 

《다경》에서의 ‘경(經)’은 경전의 뜻으로 유가의 경전에 비유하여 지은 이름이다. 그가 이렇게 한 의도는 자신이 지은 《다경》이 그냥 단순하게 차를 보통음료의 차원에서 해설한 게 아니라 차와 연관된 각 분야를 총망라하여 학문적 해설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다서가 ‘차(茶)의 경전’으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자신감에서 서슴없이《다경》이라 명명하였을 것이다.

 

 

 

(8) 육우의 다경(茶經), 다도 정신

 

‘검지덕(儉之德)’ - 진정한 ‘육우의 다도정신’

 

②《다경(茶經)》의 내용

현존하는 《다경》은 상?중?하 총3권으로 나누어져있다.

상권은 다시〈일지원(一之源)〉, 〈이지구(二之具)〉,〈삼지조(三之造)〉등의 세 편으로 나누어져 있고, 중권은 〈사지기(四之器)〉1편만이, 하권은〈오지자(五之煮)〉,〈육지음(六之飮)〉,〈칠지사(七之事)〉,〈팔지출(八之出)〉,〈구지략(九之略)〉,〈십지도(十之圖)〉등의 6편이 있어, 총 3권 10편으로 구성되었다.

《다경(茶經)》의 내용만 다루어도 이내 곧 엄청 분량의 독립된 한권의 전서(專書)가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다경》이 어떤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책인지에 대해서만 개략적 설명만 하고자 한다.

일지원(一之源: 차의 근원)에서는 맨 먼저 차의 식물학적 설명을 하였고, 둘째는 차의 문자적 표시 설명하였고, 셋째는 차가 생장하는 토양을 설명, 넷째는 차를 기르는 방법을 설명, 다섯째는 차의 효능을 설명, 여섯째는 차와 고려인삼을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이지구(二之具: 차 만드는 도구, 또는 연장)에서는 찻잎을 딸 때 사용하는 대나무바구니(다루:茶?)와 차를 찌는 부뚜막(조:?)과 시루(증:甑), 차를 빻는 절구와 공이 그리고 끝으로 차의 본(모형)을 뜨는 거푸집(속칭,模子) 등 차를 만드는 도구에 대해 설명하였다.

삼지조(三之造: 차 만들기)에서는 찻잎 따기에서부터 고형차(固形茶)의 제조법에 이르기까지 설명하고, 그 다음은 이미 제품화되어 출시된 차의 종류와 또 차의 좋고 나쁨에 대한 감별법에 대해 설명하였다.

사지기(四之器: 차 마시는 그릇)에서는 물을 끓이고, 차를 다릴 각가지 준비도구에서부터 차를 마시고, 다기 정리함에 이르기까지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풍로(風爐), 거(?:숯 광주리), 탄과(炭?)(숯 가르게), 화협(火?: 부젓가락), 교상(交床:솥 걸치게), 협(夾:차를 구울 때 쓰는 집게), 지낭(紙囊:차를 보관하는 종이 주머니), 연(?<불말(弗末)>:연 가루 털게), 나합(羅合:가루차를 거르는 체와 보관하는 합), 칙(則:차의 양을 조절하여 떠서 넣는 도구), 녹수낭(?水囊:물 거르는 자루), 표(瓢:표주박), 죽협(竹?), 차궤(??:소금단지), 숙우(熟盂:익은 물 사발), 완(?:주발), 분(?:차 사발을 담아놓는 일종의 삼태기 같은 바구니), 찰(札:큰 붓 모양의 대나무솔), 척방(滌方: 찻그릇을 씻고 남은 더러운 물을 담아두는 8되짜리 개수통), 재방(滓方: 차 찌꺼기를 담아두는 5되짜리 찌꺼기통), 건(巾: 행주), 구열(具列: 모든 차 도구를 수납하여 진열하는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나 선반 ), 도자(都煮:다기를 수납하여 정리하는 대나무 광주리로 도람(都籃)이라고도 한다.) 등에 대해 그 쓰임새와 모양 그리고 재료에 대해 상세히 전하고 있다.

 

 

육우 좌상(상해 閘北公園)

 

 

오지자(五之煮:차 달이기)에서는 자다(煮茶)하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설명하는 자다법(煮茶法)은 제1장에서 거론한 당대이전의 자다법과는 사뭇 다르다.

육우의 ‘자다법’은 당시 보편화된 일반음료로써의 자다법을 한층 넘어선 다도(茶道)로써의 의미를 지닌 차를 달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 하였다. 고로, 육우의 자다법은 결코 쉽지 않으며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더욱 아리송하고 까다롭기만 하다. 이것이 바로 다도의 행다법(行茶法)의 효시이며, 많은 다도를 하는 다인들이 흠모하여 배우고자 하는 바이기도 하면서 또한 제대로 이해하고 습득한 사람은 도리어 보기 드물 정도이다.

내용은 ‘차 굽기(灸茶)’를 시작으로 하여 찻잎 쪄서 빻고 가루내기, 목탄(숯)의 품질, 최상급의 물 선택하기, 물의 끓는 정도에 따른 구분과 차를 끓이는 등의 복잡한 절차가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육지음(六之飮: 차 마시기)에는 음차의 역사적 기원과 차를 마시며 주의해야 할 방법인 ‘음차의 구난(九難:9가지 어려움)’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다도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거쳐야할 일종의 ‘육우(陸羽)식 점다법(點茶法)’이라 할 수 있다. 육우가 주장한 ‘음차의 아홉 가지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차 만들기’, 둘째 ‘분별하기’, 셋째 ‘그릇’, 넷째 ‘불’, 다섯째 ‘물’, 여섯째 ‘굽기’, 일곱째 ‘가루내기’, 여덟째 ‘달이기’, 아홉째가 ‘마시기’이다.

칠지사(七之事: 차의 일)에서는 역사에 기록된 차에 얽힌 이야기들을 풍부한 문헌을 통해 고증하고 있다. ‘차의 효능’에서부터 ‘차의 명칭’, ‘차의 습속(習俗)’, ‘차 판매’, ‘차에 얽힌 갖가지 역사적 사실과 전설’ 등등 차에 얽힌 이야기와 사실들이 수록되어 있다.

팔지출(八之出: 차의 산출)에서는 육우가 살았던 당나라 때의 각종 차의 생산지에 대해 지역별로 분류하여 상세히 밝히고 있다.

구지략(九之略: 차의 생략)에서는 차 마시는 때와 장소, 그리고 마시는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생략해도 무방한 몇 가지 다기와 절차를 상황에 따라 설명해 놓았다. 이어서 맨 끝에 부분에서 “그러나 성읍 안에 사는 왕공(王公)의 귀족들은 24가지 다기 중, 어느 한 가지만 없어도 차를 마시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십지도(十之圖:차의 그림)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시 열거하면서 모두 차에 관한 일임을 다시 설명하고, 이로써 《다경(茶經)》의 시작과 끝이 모두 완성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③ 육우(陸羽)의 다도(茶道)정신


육우의 다도정신을 살피기 이전에 우선 ‘다도(茶道)’란 말의 어원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순서인 듯하다. 여러 다서를 보다보면 ‘다도’에 대해서는 참으로 많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 내용들은 대부분이 ‘다도’의 추상적이고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어, 현실적으로 누가 언제부터 ‘다도’란 용어를 사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은 것을 많이 본다. 중국에서 ‘다도’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문헌은 아마도 당대 봉연(封演)의《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로 추정된다.

 

 

육우의 다경(茶經)-항주차엽박물관 소장

 

 

《봉씨문견기》는 당나라 천보(天寶) 연간(742~756년)에 진사 봉연이 저술한 것이다. 그는 육우의 《다경》을 가리켜 ‘다론(茶論)’이라 말하고, 차 마시는 행위에 대해서 ‘다도(茶道)’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 내용에 “초(楚)지방의 사람인 육홍점(陸鴻點)이 다론(茶論)을 짓고 차의 효능과 함께 차 달이기, 차 굽는 법을 말하고, 다구 24종을 만들어서 이를 수납 바구니에 담으니, 멀고 가까운 곳에서 마음을 기울여 사모하고, 호사가는 한 벌을 집에 간직하였다.
또한 ‘상백웅(常伯雄)’이라는 자는 ‘홍점(鴻漸)’의 이론을 널리 윤색하였고, 이에 다도(茶道)가 크게 성행되어 고관대작들과 조정의 관리들은 차를 마시지 않는 자가 없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당대(唐代)에서부터 시작된 ‘다도’의 창시자는 육우이지만, ‘다도’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자는 ‘봉연’임을 알 수 있겠다.

육우는 자신의 저술인《다경》에서 “차는 맛이 지극히 차서 행실이 정련되고 검소한 덕망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했으며, 또한 “차의 성질은 검소하다.”고 말하고 있다.

‘검(儉)’자에 대해서 상고해보면, 논어의〈학이편〉에서 공자가 주장한 사람의 인격형성의 다섯 가지 덕성이 되는 “온(溫)?양(良)?공(恭)?검(儉)?양(讓)”에서 볼 수가 있다. 또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검은 약(約)이다.”라 하였고, 일반적으로 ‘약’은 예절에 밝고, 공손하며 근면하다는 뜻이다.

단옥재(段玉裁:1735-1815년)의 주해에는 “약(約)은 함부로 사치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했다. 이상에서 보듯 육우의 다도정신은 ‘사치’를 완강히 거부하는 ‘검소한 덕(德)’이라고 볼 수 있다. 육우의 ‘검소한 다도정신’은 아마도 그가 어린 시절을 사찰에서 보냈던 성장배경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고 ‘육우의 다도’가 무조건 검소하기만을 강조하고 ‘형식과 예절’에 있어서 완전히 무시해 버린 것은 아니다. 앞서 거론한《다경》<구지략(九之略)>에서 그는 ‘이십사기(二十四器)’를 모두 응용하고 사용했을 때 비로소 완전하게 정식의 차를 마시는 것임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최소한의 다도의 형식과 예절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에 또 다기를 다 갖출 수없는 산이나 들에서 거친 차를 마실 경우에는 굳이 규정된 ‘이십사기’를 다 사용하지 않아도 됨을 함께 언급하였다. 즉, 차를 마시는 사람이 처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 몇 가지 생략할 수도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이는 형식에만 너무 얽매여서 차의 내면적 정신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경》의 곳곳에서 나타나는 ‘검지덕(儉之德)’이야말로 진정한 ‘육우의 다도정신’이라 할 수 있다. 물질과 정신이 둘이 아닌 하나, 그러면서도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도리, 형식을 따라 예절을 익히고, 정신을 수양하면서도 굳이 그 형식에만 얽매이지 않는 걸림 없고 자유로운 검소한 덕성, 이것이야 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참된 다도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1) 점다법(點茶法) : 당송시대에 크게 유행한 일종의 가루차(末茶) 우리는 법을 말한다.
2)《茶經》〈九之略〉: “… 但城邑之中, 王公之門, 二十四器闕一, 則茶廢矣.”
3) 육우의《다경》에 대한 원문과 상세한 풀이는 金明培,《韓國의 茶書》,부록편〈다경〉을 참조하기 바람.
4) 육홍점(陸鴻點)은 육우(陸羽)이다. 홍점(鴻漸)은 그의 호이다.
5) 원문의 내용이 긴 관계로 생략하였다. 林治《中?茶道》4쪽을 참조 바람.
6)《茶經》<一之源>: “茶之爲用, 味至寒, 爲飮最宜, 精行儉德之人….”
7)《茶經》〈五之煮〉:“茶性儉, 不宜廣”. 김명배,《韓國의 茶書》의 부록,〈다경(茶經)〉편에서는 “검(儉)은 차의 소박한 맛이고, 광(廣)은 차의 진한 맛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8)《說文解字》:“儉約也, 約者纏束也, 儉者不敢放侈之意.”

 

 

 

박영환 / 중국 사천대학 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