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좋은 더 아파야 한다
시를 읽고 나는 어떤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그윽한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 앞에서,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 눈코 뜰 새 없는 일상을 살다보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긴, 사랑하는 게 쉽다면 우리 삶이 이리 팍팍하진 않겠지요. 모두 ‘강하거나’ ‘진짜 외로운 사람’이 돼버린 세상입니다.
하지만 노력 없이 되는 건 없지 않습니까.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요. 좋은 것 마주할 때 잠시만 누군가를 떠올려보세요. 지금 곁에 있는 사람, 떨어져 있어 보고 싶은 사람, 스쳐 지나간 사람…. 그리고 연락해보세요. 오늘 당신 생각이 났다고.
/ 박한신 기자. 한경
월광욕 / 이문재
달빛에 마음을 내다 널고
쪼그려 앉아
마음에다 하나씩
이름을 짓는다
도둑이야!
낯선 제 이름 들은 그놈들
서로 화들짝 놀라
도망간다
마음 달아난 몸
환한 달빛에 씻는다
이제 가난하게 살 수 있겠다
노독 / 이문재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문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 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며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죄.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고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뵌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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