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색변(一色邊) .1
/ 무산(霧山) 조오현
무심한 한 덩이 바위도
바위소리 들을라면
들어도 들어 올려도
끝내 들리지 않아야
그 물론 검버섯 같은 것이
거뭇거뭇 피어나야
일색변. 2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소리 들을라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그 물론 굽은 등걸에
장독(杖毒)들도 남아 있어야
일색변. 3
사내라고 다 장부 아니여
장부소리 들을라면
몸은 들지 못해도
마음 하나는 다 놓았다 다 들어올려야
그 물론 몰현금(沒弦琴)한 줄은
그냥 탈 줄 알아야
*몰현금: 줄 없는 거문고
일색변. 4
여자라고 다 여자 아니여
여자소리 들을라면
언제 어디서 봐도
거문고줄 같아야
그 물론 진겁(塵劫)다 하도록
기다리는 사람 있어야
*진겁: 과거 또는 미래의 아주 오랜 시간
오원 장승업 / 군마도
일색변. 5
사랑도 사랑 나름이지
정녕 사랑한다면
연연한 어울목에
돌다리 하나는 놓아야
그 물론 만나는 거리도
이승 저승쯤은 되어야
일색변. 6
놈이라고 다 중놈이냐
중놈소리 들을라면
취모검(吹毛劍) 날 끝에서
그 몇 번은 죽어야
그 물론 손발톱 눈썹도
짓물러 다 빠져야
* 취모검 : 칼날 위에 솜털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끊어지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
일색변. 7
세상은 산다고 하면
부황이라고 좀 들어야
장판지 아니라도
들기름을 거듭 먹여야
그 물론 담장 밖으로
내놓을 말도 좀 있어야
결구(結句).8
그 옛날 천하장수가
천하를 다 들었다 놓아도
한 티끌 겨자씨보다
어쩌면 더 작을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
*일색변(一色邊) : 일색나변(一色那邊)의 준말로 유무색공 미오득실
(有無色空 迷梧得失)의 이견대대(二見待對)를 초월한 일색의 경계
고구려의 魂 / 슬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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