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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독(蜂毒·벌침). ‘산림경제(山林經濟)’의 나무 조경[고전이 건강에 답하다]

경호... 2012. 12. 6. 00:01

[고전이 건강에 답하다]

기원전부터 봉독의 효능 알고 있었다

 

‘마왕퇴의서’의 벌침 건강

 

 

얼마 전 면역학 분야의 국제 학술지 ‘뇌행동면역학’ 최신호(2012. 11. 1)에 ‘봉독(蜂毒·벌침)이 파킨슨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주제의 논문이 실려 화제가 됐다. 논문 작성자인 경희대 한의대 배현수 교수 연구팀은 동물실험 결과, 파킨슨병에 걸린 쥐들이 벌침을 맞은 뒤 뇌세포 파괴 증세가 억제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배현수 교수는 한약재 200여 종을 분석한 결과 봉독이 면역세포를 증강시켜 파킨슨병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으며, 실제로 2년째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환자가 벌침주사를 맞은 뒤 다시 일어난 사례도 보고됐다고 밝혔다.

 

파킨슨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벌침치료는 지금까지 제도권보다 비제도권 의학에서 주로 거론해왔다. 파킨슨병과 증상이 비슷한 중풍 환자가 집안에 있을 경우 “벌통을 짊어지고 살아라”라는 우리나라 민간의학 속설도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다.

 

사실 벌침과 관련해 그 치료 및 효능에 대한 언급은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됐다. 벌과 벌집을 치료에 이용하는 방법을 기재해놓은 ‘마왕퇴의서(馬王堆醫書)’란 중국 고전이 있다. 1973년 중국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의 마왕퇴 3호 묘에서 출토된 의서를 부르는 명칭이다.

서한(西漢) 초기 귀족 집안의 묘인 이곳에서 의서 15종류가 백서(帛書) 및 목간(木簡) 형태로 출토된 것. 이 책의 발견으로 당시 중국 학계는 물론 세계 의학계 전체가 고대 의술의 뛰어난 안목에 깜짝 놀랐다.

 

‘마왕퇴의서’는 벌독을 사람 피부에 침투시키는 방법으로 양생과 치료 효과를 가져오는 비법을 기록하고 있다. ‘마왕퇴의서’ 양생방(養生方)에는 “살아 있는 닭의 털을 뽑아 장대에 매달아 벌집 옆에 닿게 해놓은 뒤 벌들이 침으로 닭을 쏘아 죽게 한다. 벌침에 쏘인 닭의 살점을 발라내 말려 대추기름에 재운 다음 헝겊에 싸 기(氣)가 약한 사람의 발에 마찰시켜주면 기가 왕성해진다”고 적혔다. 닭을 이용해 벌침을 약재로 사용한 고대인의 지혜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마왕퇴의서’의 또 다른 책 잡료방(雜療方)에는 벌침을 성기능 강화에 이용하는 법을 자세히 적어놓았다.

 

“개의 간을 벌집에 집어넣어 벌이 간을 쏘도록 한 뒤 이를 식초에 5일간 재워두었다가 꺼내 천으로 복부에 감아둔다. 음경이 발기되면 떼어낸다.”

 

물론 벌침에 성기능 강화 효과가 있는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그러나 잡료방을 포함해 마왕퇴의서 15종 가운데 5종이 방중술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해 성능력을 강화하려고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 알 수 있다.

 

마왕퇴 묘의 주인공이 기원전 160년 전후에 활동한 인물들인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서적에 기재된 방법은 그 이전부터 전해왔음이 분명하다. 신기한 것은 히포크라테스(BC 460~BC 377)도 벌침을 ‘대단히 신비한 약’이라고 극찬했고, 벌침으로 질병을 치료한 기록을 남겼다는 점이다. 거의 비슷한 시대에 동서양의 극단에서 벌침을 언급한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한의사들은 벌침이 각종 염증 및 통증 질환에 효과가 있지만, 사람에 따라 숨을 잘 쉬지 못하거나 혈압이 떨어지면서 쓰러지는 등 부작용도 분명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벌침이 아무리 효과가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독(毒) 성분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벌침요법은 이독제독(以毒制毒)의 극단적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을 잘 제어할 줄 아는 전문가에게 시술받는 것이 안전하다.

 

 

 

 

명당 집터는…나무가 만든다

 

‘산림경제(山林經濟)’의 나무 조경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 싫어 경기 양평에 단독주택을 마련한 뒤 서울로 출퇴근하는 한 지인은 전원생활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마당 한켠에 고추며 상추를 심어놓고 식탁 찬거리로 애용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자신의 집터를 보기 좋게 꾸미는 것이다. 거기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기(氣)가 충만한 터로 꾸며 건강도 챙기고 싶단다.

 

그런 지인에게 기자는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 홍만선(洪萬選·1643~1715)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이 책은 농촌 경제서일 뿐 아니라, 치열한 당쟁에 지쳐 낙향을 꿈꾸는 당시 사대부를 위한 산림생활 지침서로서의 성격도 띠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도시 지식인이 전원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엮은 실용서적인 셈이다. ‘산림경제’ 복거(卜居)편에서는 집을 꾸밀 때 풍수(風水) 원리를 도입해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무릇 주택에서 (터를 기준으로) 왼쪽에 물이 흐르면 청룡(靑龍)이라 하고, 오른쪽으로 긴 도로가 있으면 백호(白虎)라 하고, 앞에 연못이 있으면 주작(朱雀)이라 하고, 뒤에 구릉이 있으면 현무(玄武)라 한다. 이렇게 생긴 곳이 가장 좋은 터다.”

 

네 가지 조건, 즉 풍수용어로는 사신사(四神砂)를 잘 구비한 곳은 실로 풍수학인들이 꿈에서도 찾아 헤매는 명당이다. 물론 그런 터에 사는 생명체는 좋은 기를 받아 건강하고 안온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굳이 풍수지리법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명당은 땅이 기름지고 햇볕을 잘 받는 양명(陽明)한 곳이다. 문제는 사신사를 완벽하게 구비한 명당 집터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 여기서 홍만선은 풍수 논리상 결함을 메워줄 비보책(裨補策)을 귀띔해준다. 바로 나무를 심으라는 것이다.

 

“동쪽(청룡)에는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심고, 남쪽(주작)에는 매화와 대추나무를 심으며, 서쪽(백호)에는 치자나무와 느릅나무를 심고, 북쪽(현무)에는 능금나무와 살구나무를 심는다.”

 

홍만선은 동서남북 각 방위에 맞는 특정 조경수를 거론하고, 그것을 결함이 있는 방위에 심어놓으면 집터의 좋은 기운을 북돋워준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복숭아나무나 버드나무는 동쪽에 해당하는 목(木) 기운이 강하므로 동쪽이 허(虛)할 경우 이들 나무를 심으면 부족한 기를 메워줄 수 있다는 식이다.

 

나무나 화초에 특정한 오행(목·화·토·금·수) 기운이 흐른다고 할 때 이를 풍수적으로 이용해 건강을 도모하는 방법도 있다. 이를테면 목기(木氣) 성질이 강한 구기자나 결명자를 관상용으로 집 안에서 키우다 보면 인체와 나무가 교류하면서 목기에 해당하는 간의 피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화기(火氣)가 강한 쑥이나 맥문동은 심장에 도움이 되고, 토기(土氣)가 강한 감초나 두릅나무는 비·위장에 좋으며, 금기(金氣)가 강한 도라지나 박하는 폐에 도움이 되고, 수기(水氣)가 강한 복분자나 겨우살이는 신장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산림경제’에서는 건강과 풍수 비보책으로 유용하게 쓰는 나무를 엉뚱한 곳에 심거나 잘못 사용할 경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목(樹木)이 집을 등지고 서 있으면 흉하고, 큰 나무가 마루 앞에 있으면 질병이 끊이지 않으며, 집의 뜰 한가운데에 나무를 심으면 한 달 내에 재물이 흩어지는 등 재앙이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단독주택 마당에 큰 나무가 있을 경우 땅속 양분을 빨아들여 마당이 윤택하지 않고, 또 벌레가 꼬이는 등 폐해가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양명(陽明)한 터가 못 되는 것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은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한마디로 음기를 제어하고 양기를 모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산림경제’는 바로 그런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풍수상 길한 터에 해당하는 경주 양동마을 이향정.

 

 

 

안영배 기자 /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