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世上萬事

시향(時享).태실과 옥호.영기(靈氣) [돈 버는 풍수]

경호... 2012. 12. 9. 01:00

 

`時享` 의 계절

 

 

 

 

명절 차례나 제사에서 지방(종이에 써 모신 신위)을 쓸 때 고인이 생전에 벼슬을 지냈다면 그가 누린 벼슬 중 최고위직에 해당하는 품계와 관직명을 적는다. 평생을 관직 없이 평민으로 살았다면 남자는 학생(學生), 여자는 유인(孺人)이라 쓴다. 학생은 ‘벼슬하지 않은 일반인’을, 유인은 그의 ‘부인 또는 아내’를 지칭한다. 그래서 부모님 제사상엔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쓴 지방이 많이 세워지고, 무덤 앞에 선 묘비에도 ‘학생’이란 글자가 심심찮게 보인다.

 

어느 날 공원묘원 옆을 지나가던 등산객이 친구에게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곳저곳 비석에 학생이란 글자가 써 있지.”

그러자 친구가 서슴없이 말을 받았다.

“공동묘지에 새로 입학했으니까 학생이지. 안 그래.”

조상숭배사상이 많이 퇴조한 현 세태를 풍자한 조크다.

 

바야흐로 시향(時享)의 계절이 돌아왔다. 전통적으로 조상의 혼령에게 음식을 바치고 추모하는 제사는 명절 때 지내는 차례 외에 기제와 시향으로 나뉜다. 기제(忌祭)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 집에서 지낸다. 사대봉사라 하여 부모~고조부모까지 4대만 지낸다.

 

기제로 받들지 않는 5대조 이상은 음력 10월에 무덤에 제사를 지낸다. 이를 시향이라 하고 요즘이 그 시기이다.

 

그동안 기제를 모시던 조상이 이제 5대조 이상의 조상이 돼 시향으로 모셔야 한다면 어떤 절차와 제례가 필요할까. 예전에 지체 높은 명문가는 대개 집 안의 사당에 조상들의 신위를 보관해오다 기제 때가 되면 신위를 꺼내와 제사상 위에 올려놓고서 제사를 지냈고, 제사가 끝나면 다시 사당에 안치해왔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기제에서 시향으로 변경해야 할 조상이 되면 매위(埋位)라 해 사당에 모셨던 신주를 꺼낸 뒤 해당 무덤의 앞쪽에 묻는다. 사당에 신주를 모시지 않았다면 별도로 한지에 지방을 써 땅속에 묻는다.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망이 높은 분과 배우자는 특별히 불천위라 하여 매위하지 않고 계속 기제를 지내도록 나라에서 허락했다. 불천위 제사는 명문가임을 나타내는 증거 중 하나다.

 

요즘은 도시화와 핵가족화에 따라 생활환경이 크게 변해 불천위 제사조차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출산율이 떨어지고 조상에 대한 숭배사상이 약화돼 기제에 불참하는 후손들이 많아지는 것은 어느 집안 할 것 없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리고 여성의 권위가 차츰 강해지는 세상이다 보니 어떤 남자는 자기 집 제사는 불참한 채 처가댁 제사는 꼬박꼬박 참석하는 후손도 있다고 한다. 세상에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조상 없는 내가 없다.

1년에 한 번 종중이 모여 지내는 시향만큼은 시간을 꼭 내 참석할 것을 권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먼 훗날 자기 역시 제삿밥이라도 받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태실`과 옥호

 

 

 

 

경북 안동에는 성리학의 대가인 이황 선생이 태어난 태실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이 고택은 퇴계의 조부 이계양이 지었다. 퇴계가 이 집에서 태어났다 하여 ‘퇴계 태실’이라 부른다. 이 목조 기와집은 4동으로 구성돼 있다. 몸체는 ‘ㅁ’자형 평면으로 중앙에 퇴계 태실이 돌출돼 있고, 동남쪽 모서리에 마루를 두고 큰사랑과 작은사랑이 분리돼 있다.

 

유명한 고택을 찾아가면 집 안의 건물마다 처마 아래에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이들은 절집의 ‘대웅보전’ ‘지장전’ 등과 같이 건물 안에 모신 부처님을 나타내기도 하고, 건물에 기거하는 사람의 소망이나 풍류를 담고 있다. 이것을 옥호(屋號)라고 부른다. 옥호를 보면 남자와 여자 중 누가 사용하는지를 알 수 있고, 그 건물에서 어떤 인물이나 업적이 산출되기를 기원하는지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집의 풍모를 지닌 퇴계 태실의 정문은 성임문(聖臨門)이다. 퇴계 어머니인 춘천 박씨가 임신했을 때 공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하여 붙여진 대문 이름이다. 성임문을 들어서면 곧장 보이는 ‘一’자형의 건물이 노송정이다. 조부가 뜰에 소나무를 심고 키우며 거처에 노송정이란 현판을 내걸고 자기의 호로도 삼았다. 또 동남쪽 모서리에 마루를 두어 큰사랑과 작은사랑이 분리됐는데, 마루 위쪽에 온천정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퇴계선생태실’은 본채 중앙에 삼면으로 난간을 둘러 누처럼 꾸민 방이다.

 

이 고택을 특별히 퇴계 태실로 부르는 것은 훌륭한 인물이 태어난 생가는 그 터 역시 범상치 않을 것이란 풍수 사상이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강릉의 오죽헌 역시 최치운이 살려고 지었다가, 신사임당의 조상이 이 집을 사서 살다가 신사임당을 낳고 이후 율곡을 낳았기 때문에 율곡의 생가로 유명하다.

 

양반가에선 자식이 크게 출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식이 쓰는 건물이나 방의 이름을 지어 편액을 걸어두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본받아서 자식이 의사가 되길 바라면 명의의 이름이나 의학 서적에 나오는 좋은 글귀를 따 방 이름을 지은 뒤 판자에 새겨 자식의 방문에 걸어 놓는다. 과학자가 되길 바라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의 이름을 본뜬 방 이름을 짓고, 정치가를 원하면 간디처럼 존경받는 인물의 이름을 참고하고, 장군을 바라면 이순신 같은 명장과 관계된 방문 이름을 지으면 된다.

 

이런 방식은 현재 성균관대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시험반의 명칭에서도 참고할 수 있다.

사법시험 반은 조선의 과거시험인 사마시에서 따와 사마헌이라 부른다. 공인회계사를 준비하는 시험 반은 조선시대 조정의 회계업무를 담당하던 관리의 직급을 따 송회헌으로 칭한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시험 반은 와룡헌이라 지었다.

 

아이들이 장차 나라의 보배로 자라길 바란다면 그가 존경하는 위인의 이름이나 호를 따 방의 이름을 써 붙이면 길하다.

 

 

 

 

靈氣 서려야 靈感 받는다

 

 

 

 

오늘날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무한경쟁에 내몰려 있다. 과거에는 선진국 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고 이전받거나 모방한 상품(짝퉁)을 독점적으로 만들어 많은 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이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세계인의 감성 벽을 뛰어넘은 초일류 상품을 다수 확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운명이다. 이른바 디자인 혁명이다. 200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디자인 경영을 선언했다.

 

“0.6초의 승부. 소비자 한 사람이 상품 진열대를 돌아다니는 30분 동안에 3만개의 상품을 둘러본다. 한 상품에 소비자의 시선이 머무는 시간은 평균 0.6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고객의 발길을 잡지 못하면 마케팅 싸움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중략) 이제 삼성 제품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반영된 독창적인 디자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싸고 질좋은 제품이 팔리는 시대는 지나갔다. 디자인 혁명을 통해 상품의 품격을 한 차원 높여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신념에 찬 말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서바이벌 카드이고, 막대한 부를 가져다 주는 멋진 디자인은 어떤 상황에서 생겨날까. 그런 디자인은 수학 공식 몇 개 외우고 그냥 밀어붙이거나 쥐어짠다고 생겨나지 않는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도 한순간에 떠오르는 것이 아이디어이고 영감(靈感, Inspiration)이다.

세상이 깜짝 놀랄 비범한 아이디어는 영기가 서린 명당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생각의 기가 응집된 아이디어 명당을 직접 찾아가 솜방망이처럼 대지의 기를 온몸으로 빨아들이고, 유리알처럼 정신을 투명하게 닦아야 한다.

 

안양에 소재한 삼막사가 그중의 하나이다.신라시대에 원효가 창건한 이 절은 최고의 고승들이 거쳐 간 도량답게 기만큼은 어느 곳보다 청량하고 엄숙하다. 이 절이 디자인의 메카로 불리는 데는 절 오른쪽 절벽에 새겨진 삼귀자 문양 때문이다. 바위 면을 네모지게 다듬은 후 거북을 3가지 형태로 음각해 놓았는데, 이것은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이 1920년 이곳에 은거할 당시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전수한 것이라고 한다. 오른쪽 것은 ‘龜’자를 닮았고, 가운데는 거북의 모습을 빼닮았고, 왼쪽 것은 네 다리를 쭉 뻗은 거북이 벌러덩 누운 형상이다.

 

지운영이 꿈속의 글자를 또렷이 기억해 바위에 새길 수 있었던 것은 기가 출중한 덕택이니, 삼막사는 꿈을 꾸어 기발한 디자인을 얻는 명당임이 분명하다. 아주 새로운 영감이나 굉장히 아름답고 놀라운 상상력이 필요한 공업(제품, 가구, 주얼리), 시각, 패션, 환경(건축, 조형, 조명),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삼막사를 순례해 삼귀자를 마음속에 그린 뒤 잠을 자 보자.

연구에 몰입했던 과학자들이 깜빡 졸다가 꿈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듯, 꿈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영감을 얻게 될 것이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 / 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