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끝나지 않았으면 빨리 자리로 돌아오라”
하안거 해제를 앞두고 만난 스님/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
굳게 닫혀있던 전국 선원의 빗장이 풀렸다. 백중이자 해제인 1일 2000여 운수납자들은 안거를 끝내고 만행길에 올랐다. 하안거 해제를 이틀 앞둔 지난 8월29일 덕숭총림 수덕사를 찾았다. 찾아간 날은 마침 선방의 죽비를 내려놓는 날이었다. 스님들은 언제 이곳에 있었냐는 것처럼 주변을 정리했다.
여름 한철 입었던 옷들을 빨아 널고, 땀 흘리며 깔고 앉았던 좌복 덮개도 뜯어냈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이지만, 정혜사만큼은 비바람이 비켜간 것 같다. 도량에는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 찾기 어렵다. 이른 아침부터 스님들은 3시간 동안 울력을 하며 정혜사 오르는 길을 쓸었다고 한다. 하나 둘씩 정리하며 도량을 나설 준비를 했다.
하안거 해제일(9월1일)을 사흘 앞둔 지난 8월29일 덕숭총림 수덕사의 정혜사 능인선원. 여전히 수좌들은 한 소식을 듣기 위해 불철주야 정진하고 있었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25명의 스님들은 ‘덕숭산 가풍’에 따라 적지 않은 운력을 하며 정진을 이어왔다.
이번 안거 때 덕숭총림에는 120여 명의 수좌들이 ‘본래면목’을 찾아 가부좌를 틀었다. 총림 산하 정혜사 능인선원에는 25명의 스님이 방부를 들였고, 개심사 보현선원, 향천사 천불선원에서도 많은 스님이 정진했다. 비구니선원인 견성암에는 60여 명이 수행했고 보덕사선원에서도 비구니 스님들이 한 철을 살았다.
무문관인 매화선원에도 12명의 수좌들이 더위를 잊고 정진했다. 정혜사 능인선원에서 한결같이 수행자들을 지도했던 방장 설정스님은 해제 후 산문을 나서는 수좌들에게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오라”며 해제가 결코 수행의 끝이 아님을 강조했다.
덕숭산은 근현대 한국불교의 선풍을 진작시킨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주석했던 곳이다. 특히 경허스님은 조선시대를 거치며 꺼져가던 선의 불씨를 되살린 장본인이다. 설정스님은 “근대 들어 한반도는 대열강들이 쟁탈전을 벌이던 곳으로 국민의 생활이 피폐해지고, 불교도 쇠퇴했다”며 “그때 경허스님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선의 복원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경허스님은 해인사, 범어사, 화엄사, 송광사, 실상사 등 수많은 사찰을 돌면서 선을 중흥시킨다. 스님의 제자들도 뛰어났다. 수월스님, 만공스님, 혜월스님, 한암스님 등 전법제자뿐만 아니라 당시 선지식들 대부분은 경허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곳 정혜사는 경허스님 제자 만공스님이 수행하던 곳이다. 만공선사가 주석한 이후 선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능인선원이 문을 열었다.
안거 때마다 수좌들이 모여드는 이곳 능인선원에 이번 여름에는 25명의 납자들이 함께 수행했다. 이곳에는 유난히 구참 스님들이 많다. 30년 이상 선방을 다닌 스님들이 즐비해, 웬만한 원력으로는 방부를 들이기 어렵다. 속된 말로 입방 경쟁률이 보통 8:1에 달하며, 높을 때는 11:1까지 오른다고 한다. 오고 싶다고 해서 올 수 있는 선방이 아닌 것이다.
어렵게 들어온 만큼 스님들의 정진은 더 치열하다. 일대사인연을 해결하기 수좌들은 매일 10시간에서 12시간씩 정진했다. 선원장 금산스님은 이번 안거 때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종식(一種食)을 하고, 잠을 잘 때도 등을 땅에 대는 법 없이 앉아서 정진했다.
방장 스님은 “자기공부는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비소리에 맞춰 공부한다는 것은 초심자의 마음가짐이다. 공부하겠다고 작심한 스님은 누가 뭐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참선은 남녀노소 종교가 있건 없건
모두가 해야 한다
이 세상 살아가는데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치열한 정진 외에 다른 사찰에 비해 운력이 많다는 점도 덕숭산 가풍으로 꼽을 수 있다.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실내온도가 35도인데 쉬지 않고 정진한 스님들은 땡볕에도 나와서 운력을 했다. 능인선원에서 스님들은 자신들이 먹을 채소를 손수 키웠다.
고된 운력의 가풍은 방장 스님이 어릴 때부터 보고 익힌 것들이다. 스님이 처음 덕숭산에 왔을 때가 10대 때다. 그 때만해도 사찰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스님들이 직접 개간해서 논밭을 만들었다. 소년이었던 스님도 일일이 돌을 들어다 옮기며 전답 만드는 일을 도왔다.
그 때 수덕사에 대중이 120여 명이 살았는데 농사를 지어 스님들의 양식을 마련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설정스님은 “지금은 벼농사까지 짓지 않지만, 그 전통을 이어 가능하면 자급자족하자는 생각으로 스님들과 채마밭을 일군다”며 “처음 농사를 짓는 수좌들은 어려워했지만 보람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정스님은 깨닫고자 출가한 스님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행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종교가 있건 없건, 불교를 믿거나 믿지 않는 사람 모두가 공통적으로 해야 하는 게 수행”이라며 “마음의 병을 고치는데 참선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마음 쓰기에 달렸다. 한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갈등과 시비 분쟁과 투쟁을 없애고 행복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 마음공부하지 않고 세계평화를 부르짖는 것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중요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심성이라는 것은 무한한 자비와 지혜, 공덕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심성을 밝히는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광명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지금 우리들이 괴로운 이유는 잘못된 것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명예, 돈, 애욕에 물들고, 특히 중생이 갖고 있는 괴로움의 근원이라고 하는 ‘탐진치만의(貪瞋痴慢疑)’라는 다섯 가지 잘못된 생각에 물들어 있다.
“오만을 부리며 안되는 일을, 불행할 일을 찾아서 들어간다”며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존경해야 할 대상이고 내가 보듬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오만방자하게 잘난 척하고 깃을 세우고 뿔을 세워서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의심까지 하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여기서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자기만이 아니라 남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잘못된 생각을 쉬려면 선 이외에 방법이 없다”며 “다섯 가지만 내려놓으면 된다”고 말했다.
혹자는 “이 세상을 사는 데 다 내려놓으라면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하고 묻기도 한다. “박복한 행동만 골라하면서 복을 바라면 이뤄지느냐”고 도리어 반문한 스님은 “정성을 쏟지도 않았는데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이라며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출발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선”이라고 했다.
마음병 고치는데 이것 외에는 없다
순진무구한 그 상태로 돌아가려면
생각을 쉬어야 한다
종단 안팎으로 시끄러운 현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스님은 “출가자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지키기 않아 종단이 자성과 쇄신을 하자고 나선 것 자체가 안타깝고 부끄럽다”고 했다. ‘말세의 비구들이 나의 옷을 가져가 도둑질을 해먹고 산다’는 부처님 말씀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아 두려울 정도다.
이런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아양승으로, 부처님 교리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람들에게 설법도 못하는 이다.
둘째는 독거승이다. 머리만 깎았지 탐진치로 꽉 찬 속인을 말한다.
셋째는 조소승이다. 속인도 아니고 중도 아닌 박쥐같은 사람이다.
가사를 입은 도적이라 피가사적(被袈裟賊)도 있다. 절에 와서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을 세운게 아니라 생활인으로 살면서 삼보정재를 축내는 이런 자들을 지옥재, 즉 지옥의 찌꺼기라고 한다. 스님은 승풍실추 사건이나 선거를 두고 제기되는 문제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설정스님은 “스님으로서 자질이 없고 사상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스님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양과 지식, 감성과 이성을 두루 갖춰야 한다. 수행을 통해 자신을 가라앉힌 사람이 돼야 한다.
특히 출가수행자는 원력과 신심, 공심을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이다. 스님이라면 부처님의 진리에 대한 무한한 신심을 갖고, 이 공부를 해서 진리를 깨달아 중생에게 보답하고 일체생명에게 어떻게 할지 원력을 세워야 한다.
거기에 제일 중요한 게 공심이다. “스님이 된 순간 공인이고, 공심이 결여되면 부정부패는 저절로 따라온다”며 “공심과 원력, 신심을 갖춘 스님은 교육을 통해 길러낼 수 있을 것”이라며 승가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재가불자에 대한 법문도 잊지 않았다. 스님은 “사회가 어렵다고 하지만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가 중요하다”며 “스스로를 항상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좋은 마음을 갖고 살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보면 이 세상은 즐거움을 주는 세상이 될 것이고, 돈이나 명예를 바라고 부족하다고만 생각한다면 불행한 사람이 된다”며 긍정적인 마음이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설했다.
한편 덕숭총림은 전통대로 음력 14일인 8월31일 수덕사 황화루에서 포살법회와 함께 해제법회를 봉행했다. 3개월간 정진을 끝내고 세간으로 나서는 스님들에게 설정스님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스님은 “공부가 끝나지 않았으면 빨리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라”며 결제도 해제도 없는 쉼 없는 정진을 이야기했다. “스님이라면 기본적으로 경전도 읽고 조사어록도 읽고 세상도 좀 알아야 한다”며 “이성과 감성을 가진 수행자가 돼야 세상의 리더로서, 지도자로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신재호 기자
“제대로 된 납자의 살림살이는
해제건 결제건 차별이 없다”
해인사 방장 도림법전 대종사 임진년 하안거 해제 법어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도림법전 대종사가 오는 9월1일(음력 7월15일) 하안거(夏安居) 해제를 맞아 법어를 내리고 대중들의 끊임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도림법전 대종사는 “생사일대사 공부는 해제건 결제건 언제나 한결같이 애를 쓰는데 그 묘妙가 있는 법”이라며 “제대로 된 납자의 살림살이는 해제건 결제건 차별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해인사 방장 도림법전 대종사의 해제법어 전문.
바위에도 꽃을 심어야 하니
나옹懶翁 선사께서 하안거 해젯날 법상에서 말했습니다.
“90일 동안의 금족禁足기간이 오늘로 끝났도다. 결제대중 모두가 3개월간 본분자리를 찾았건만 그 자취가 전혀 없구나. 이제 노주奴主와 등롱燈籠도 여기저기 떠나건만, 예전 그대로 돌호랑이(石虎)만 높은 봉우리에 오르려고 몸을 세우고 있구나.”
해제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반드시 망각하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공부인은 해제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석호石虎 즉 돌 호랑이처럼 ‘해제다 결제다’ 하는 분별심이 없다면 해제가 곧 결제인 까닭입니다. 항상 살아오던 그 자세 그대로 어떤 분별도 하지 말고 앉았던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는 석인石人처럼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껏 몸을 움직이며 제대로 춤을 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動과 부동不動의 길이 완전히 막혀 분별이 효력을 잃은 그 자리에서 비로소 관문關門의 정체가 제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선가에서 석호石虎는 무정無情을 말합니다. 석인石人, 목인木人, 돌거북石烏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정이란 바로 무심無心입니다. 무심이 극치에 이르면 오히려 들릴 것이 제대로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선인들은 ‘석인측이石人側耳’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떠한 자취도 남기지 않는 말’의 뜻을 묻는 납자에 대하여 섭현귀성葉縣歸省 선사는“정오에 삼경을 알리는 종을 치니 돌사람이 귀를 기우려 듣는다.”고 대답했고, ‘조사서래의’를 묻는 납자에게 용아거둔龍牙居遁 선사는“돌거북이 말을 할 때가 오면 그 때 일러 주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생사일대사 공부는 해제건 결제건 언제나 한결같이 애를 쓰는데 그 묘妙가 있는 법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돌 위에 꽃을 심으려고 하는 무모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납자의 살림살이는 해제건 결제건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만행길에도 늘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길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목인야반천혜거木人夜半穿鞋去더니
석녀천명대모귀石女天明戴帽歸로다
만고벽담공계월萬古碧潭空界月인데
재삼노록시응지再三撈?始應知로다
목인이 한밤중에 신을 신고 떠나더니
석녀가 대낮에 모자를 쓰고 돌아오네.
만고의 변함없는 푸른 연못에 달이 잠겼는데
두세 번 건져보고서야 달그림자임을 알았도다.
2556(2012)임진년 하안거 해제일
2012.08.30.
/ 불교신문
성성적적[惺惺寂寂] - 고요 하면서도 적[寂] 의식이 맑게 깨어 있는 상태
고요 하면서도 적[寂] , 의식이 맑게 깨어 있는 상태 성[惺]
성성적적[惺惺寂寂] 분명히 알고가시게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자리가 선(禪)이요
깨달음에 이르러 여실할때 그자리가 적(寂)이며
이 자리 까지가 적적(寂寂)이라 하고
깨달음을 깨달아 깨달음과 하나로 될때가 정(靜)이고
깨달음을 깨달아 깨달음조차 잊은자리가 성(惺)이라 함이니
이 자리를 일러 성성(惺惺)이라 말한다네.
모든것을 알아 자체가 녹아들어 행하나 행함을 모르고
말하나 말함이 없으며 일체의 구분이 사라져
일체가 하나의 근(根)에의한 온유(溫柔)함이 하나가되어
본체(本體)와 함께 어우러져 온 우주를 품안에 감싸 안을때
이러한 품성(品性) 그대로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로 드러날때를
성성적적(惺惺寂寂) 이라하며
공적영지(空寂靈知)라 함이라.
이는 그대들이 세존의 자리를 보고 말함이나
스스로가 스스로를 말할때에는 낮추어 여여(如如)하다 함이며
그 여여(如如)마져 놓아버려 돌아온 자리를 일없는 한량(閑良)이라 하나
사실은 어느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고
뜻하는대로 다닐수 있는 하나된 체(體)의 소유자 임을 말한다네.
불교경전에 대표적인 한량의 표본이 유마힐거사 로써 석가붓다의 제자들마져 인정한다네.
이것이 모두에게 두루갖추어져 빈곳이 없는 불성(佛性)의 바탕 이라네.
출처 : http://junggaksa.com/xe/board1/49151
問 : 성성적적(惺惺寂寂)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答 : 화두가 분명한 것으로, 의심이 분명한 것을〈성성하다>고 하고
번뇌가 없으니까〈적적하다>고 한 것이다.
寂寂한 가운데서 寂寂에 치우치면 무기(無記)에 빠진다.무기에 빠지면 화두를 들기가 싫어지게 된다.그래서 다시 寂寂한 가운데서 惺惺하게 화두를 들어야 하므로<惺惺寂寂>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두를 잘 들어서 惺惺하면서 寂寂해야 하고, 다시 寂寂한 가운데에서 惺惺하게 들고 나아가야 한다. 寂寂한 것만 지키면서<내가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묵조 사사배(默照 似邪輩) 들이 무사갑(無事甲) 속에 앉아있는 잘못된 것이다.
(출처 -진제스님)
惺 깨달을 성 1. (도리를)깨닫다 2. 영리하다(怜悧ㆍ伶?--), 슬기롭다 3. 조용하다 4. 고요한 모양, 조용한 모양 5. 꾀꼬리의 울음 소리 6. 주사위
惺惺 [형용사] (정신이) 맑다. 또렷하다. 총명하다. 똑똑하다. 영리하다.
'[佛敎] > 佛敎에關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의 심성론(心性論)과 성리학. 수행자 / 이상하 (0) | 2012.11.23 |
---|---|
통도사 자장암 [조용헌의 靈地(영지) 기행 ⑩] (0) | 2012.11.23 |
효봉(曉峰) 스님 (0) | 2012.11.22 |
돈오선(頓悟禪). 보조선(普照禪) / 윤창화 (0) | 2012.11.22 |
구순피선(口脣皮禪).일미선(一味禪) / 윤창화 (0) | 2012.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