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높다 해도 머리 들기 어렵고/김병연(金炳淵)
比竹彼竹(이대로 저대로)
比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하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風打之竹량打竹(풍타지죽량타죽) 바람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粥粥生彼竹(반반죽죽생피죽)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대로 是是非非付彼竹(시시비비부피죽)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붙이는 대로 賓客摺待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 손님 접대는 가세대로 市井賣買歲月竹(시정매매세월죽) 시정 매매는 세월대로 萬事不如吾心竹(만사불여오심죽) 만사가 안 되네 내 마음대로 然然然世過然竹(연연연세과연죽)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지나가는 대로
스물둘, 온 천하를 가슴속에 품어도 만족할 수 없을 한창의 나이에 스스로의 이름도 버린 채 세상을 등진 한갓 유랑시인의 길을 떠난다
自歎(자탄)
九萬長天擧首難(구만장천거수난) 구만리 장천 높다 해도 멀리 들기 어렵고 三天地闊未足宣(삼천지활미족선) 삼천리 땅 넓다 해도 발 뻗기 힘들구나
가혹한 현실에 속에서 그의 번뇌와 고민을 뚫고 자탄하여 읊은 그의 심정에 괴로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彼兩班比兩班(피양반비양반) 저 양반 이 양반하고 양반타령이니 班不知班何班(반불지반하반) 도대체 무슨 반이 양반인고 趙鮮三姓基中班(조선삼성기중반) 조선엔 세 성이 그 중 양반인데 駕落一邦在上班(가락일방재상반) 내 김 가는 가락에서 제일가는 양반이렷다 來千里此月客班(래천리차월객반) 천리길 왔으니 이 달엔 손님인 내가 양반인데 好八子今時富班(호팔자금시부반) 너같이 팔자 좋으면 요즈음은 부자가 양반이구나 觀其兩班厭眞班(관기양반염진반) 그 양반이 진짜 양반 몰라보니 客班可知主人班(객반가지주인반) 손님 양반 가히 주인 양반의 지체 알겠다
양반의 의미가 반상(班常)을 구별할 때의 그것과 그저 사람을 지칭하는 그것이 교묘하게 엮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통하여 이미 양반의 존엄이 사라졌음을 은밀히 드러내고 있다
二十樹下(이십수하)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 스무 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四十樹中五十食(사십수중오십식) 망할놈의 마을에 드니 쉰밥만 주는구나 人間豈有七十事(인간기유칠십사) 인간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不如歸家三十食(불여귀가삼십식) 집에 돌아가 설은밥 먹는 것만도 못하구나
이십,삼십,사십등의 수를 동원하여 익살을 부린다 삼십객은 서러운 손님 오십식은 쉰 밥 칠십사는 일흔 일에서 이러한 일 사십식은 서른 밥에서 설은 밥으로 된다
白鷗(백구)
沙白鷗白兩白白(소사구백양백백)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니 모두 희도다 不班白沙與白鷗(불반백사여백구) 흰 모래와 백구를 분별할 수 없도다 漁歌一聲忽飛去(어가일성홀비거) 뱃노래 소리에 홀연 백구 나르니 然後沙沙復鷗鷗(연후사사복구구) 그런 후에 모래는 모래, 백구는 백구대로 되더라
가장 뛰어난 서정 시인이요 전원 시인이기도 했으며 심오한 철학적 시편들을 남기기도 했다 해석은 다양할수록 진실에 가깝다던가 막연히 풍자 시인 세상을 초탈한 방외자적 인생이라지만 지금껏 내렸던 평가를 수용하며 그를 달리 보는 시각도 필요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