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국수 공양 / 이상국

경호... 2012. 11. 20. 00:20

 

 

 

 

 

 

국수 공양 / 이상국

 

동서울터미널 늦은 포장마차에 들어가
이천원을 시주하고 한 그릇의 국수 공양(供養)을 받았다

 

가다꾸리가 풀어진 국숫발이 지렁이처럼 굵었다

 

그러나 나는 그 힘으로 심야버스에 몸을 앉히고
천릿길 영(嶺)을 넘어 동해까지 갈 것이다

 

오늘밤에도 어딘가 가야 하는 거리의 도반(道伴)들이
더운 김 속에 얼굴을 묻고 있다

 

 

 

이 시를 읽고 동네 포장마차에 가서 5000원을 시주하고 국수 공양을 받았다.

‘시 읽고 따라하기’는 내 오랜 버릇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한다. 연탄 한 장을 발로 퍽 차버리지 않는다.

먼 길 가는 시인과 겨울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국수 공양을 하는 포차의 주인이여, 더운 김이여,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원재훈 시인  / 주간조선

 

 

 

 

산속에서의 하룻밤 / 이상국 


해지고 어두워지자
산도 그만 문을 닫는다

 

나무들은 이파리 속의 집으로 들어가고
큰 바위들도 팔베개를 하고
물소리 듣다 잠이 든다

 

어디선가 작은 버러지들 끝없이 바스락거리고
이파리에서 이파리로 굴러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새들은 몇번씩 꿈을 고쳐 꾼다

 

커다란 어둠의 이불로 봉우리들을 덮어주고
숲에 들어가 쉬는 산을
별이 내려다보고 있다

 

저 별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저항령 어둠속에서
나는 가슴이 시리도록 별을 쳐다본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이상국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비평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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