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새들의 화장실 /유종인

경호... 2012. 5. 28. 01:01

 

 

 

 

새들의 화장실 [유종인]

 

 

 

 

숲을 걷는다

환삼덩굴 한 잎의 초록 위에

흰 새똥이 꽃과 같아

문득, 멈춰서 고개들어 하늘을 봤다

 

푸르기만 한 저 하늘 어름,

다급한 새 한 마리가

꽁지깃에 감춰진 볼기를 내밀고

막무가내,

공중空中변기에 찰나적으로 다리 하나 안 내리고

양 날개만 턱하니 허공의 어깨걸이에 얹은 채

볼일을 봤으리라

 

똥구멍을 나오자마자

흰 새똥은, 스카이다이빙으로 바람내 엄청 묻히고

풀잎이나 공동묘지 비석이나 교회 십자가나 혹은 그대 머리에

비표秘標처럼

하늘 화장실의 위치를 대충 엇비슷하게

지상에 똥으로 입 맞춰놓는다

 

하늘에서도 가장 급한 하늘이었던 곳,

가장 볼일이 깊었던 하늘을

땅에 내려놓는다

 

거의, 단 한 번뿐인 새들의 공중空中화장실은

그래서 있으나마나,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화장실, 뒤가

전혀 구리지도 않은 화장실, 바람에

실어갈 것도 없는 묘유妙有의 화장실

 

그런 날아가면서 똥 누고 밑도 안 닦는 새들에게

땅에 불러다 제가 눈 똥은 제가 치워라

몰아세우는 것도 무리無理다, 늘 똥 묻는 게

두려운 사람들의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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