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화장실 [유종인]
숲을 걷는다
환삼덩굴 한 잎의 초록 위에
흰 새똥이 꽃과 같아
문득, 멈춰서 고개들어 하늘을 봤다
푸르기만 한 저 하늘 어름,
다급한 새 한 마리가
꽁지깃에 감춰진 볼기를 내밀고
막무가내,
공중空中변기에 찰나적으로 다리 하나 안 내리고
양 날개만 턱하니 허공의 어깨걸이에 얹은 채
볼일을 봤으리라
똥구멍을 나오자마자
흰 새똥은, 스카이다이빙으로 바람내 엄청 묻히고
풀잎이나 공동묘지 비석이나 교회 십자가나 혹은 그대 머리에
비표秘標처럼
하늘 화장실의 위치를 대충 엇비슷하게
지상에 똥으로 입 맞춰놓는다
하늘에서도 가장 급한 하늘이었던 곳,
가장 볼일이 깊었던 하늘을
땅에 내려놓는다
거의, 단 한 번뿐인 새들의 공중空中화장실은
그래서 있으나마나,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화장실, 뒤가
전혀 구리지도 않은 화장실, 바람에
실어갈 것도 없는 묘유妙有의 화장실
그런 날아가면서 똥 누고 밑도 안 닦는 새들에게
땅에 불러다 제가 눈 똥은 제가 치워라
몰아세우는 것도 무리無理다, 늘 똥 묻는 게
두려운 사람들의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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