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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록 / 탄허스님

경호... 2012. 4. 25. 03:19

족집게 예언’ 탄허 스님 “고통 지나면 남북통일 서광”

 

동서고금 꿰뚫는 법문 담겨…40~60년 전 한국발전 점쳐

현실정치에도 매서운 잣대 “정치가 손에 흥망성쇠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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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70년대 한반도에 전쟁의 참화가 지나간 후 한국이 세계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며,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 민중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누군가 말했다면?

그 때까지는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정권 교체를 이루고, 세계 3대 메이저 기구인 유엔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이 연임한데 이어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에 내정되는 등 한국인들이 지구촌의 주역으로 등장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그랬기에 ‘산승의 헛소리’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이가 오대산의 탄허 스님(1913~83)이었다.

그의 탄생 100돌을 10개월 가량 앞두고, 법문의 핵심만을 담은 <탄허록>(휴 펴냄)이 출간됐다. 이 책엔 세간의 궁금증을 유발한 예언뿐 아니라 정치, 철학, 생사, 종교에 대해서도 동서와 고금을 꿰뚫는 지혜의 요체가 담겨 있어 대중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있다.
 
우선 관심을 불러오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그의 예언이다.
  
“지구의 주축 부분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인류 역사의 시작과 끝이 이뤄질 것이다. 5천년 동안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불행한 역사는 머지않아 종결될 것이다. 새시대가 오기 전엔 진통을 겪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고통이 지나면 남북통일의 서광이 보이고, 생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도래한다.”
 
일제 식민과 민족끼리 살육하는 전쟁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흥분되지 않는 예언이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한겨레>, <문화방송> 사장을 지낸 언론인 김중배는 탄허에 대해 “비록 몸은 산간에 있으나 눈은 우주의 운행을 뚫어보고자 하며, 부정적이고 피해망상이라 할 수 있었던 우리 역사의식에 새로운 긍정, 새로운 용기를 불어 넣었다”고 평했다.
  
한반도와 달리 일본에 대한 그의 예언은 가혹하다. 백범 김구를 도와 독립운동을 했던 부친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는 “지난 5백년 동안 무려 49차례나 우리나라를 침략한 그 죄악의 과보를 받게 될 것”이라며 ‘일본 침몰설’을 제기한다.
  
탄허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정치지도자들에게 “우리의 정신 철학을 굳건히 하지 않고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정신문화원 설립과 남북화합 방안을 건의하는가 하면 대전 국립묘지의 터를 잡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산사의 노승의 말로 보긴 어려운 매서운 잣대를 현실 정치에  들이댔다. 그는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제시하면서도 “무엇보다 정치가의 역할이 막중하고, 그들이 손에 흥망성쇠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사람이 아무리 밝다해도 만민의 총명을 모으는 것보다 밝지는 못하다”며 독단과 독불을 경계했다.
  
그는 노나라 정승이 공자에게 ‘우리나라에 먹을 게 없다’고 걱정하자 공자가 ‘적은 것은 걱정하지 말고 먼저 공평하게 분배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한 예화를 들며, “탐심이 많은 지도자는 권력을 통해 제 욕심만을 채우므로 백성들이 곤고해진다”고 경고했다.
  
탄허는 “한 사람만 소득이 높아서는 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춥고 배고픈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만약 한 사람이 1백만명 먹을 것을 지니고 있다면 이것은 정치 부재의 사회임에 틀임 없다”고 꼬집었다.
  
탄허는 또 노나라 정승이 ‘우리나라엔 도둑이 많아서 정치를 못하겠다’고 하자, 공자가 ‘당신이 욕심을 안 내면 백성은 상금을 주고 도둑질하래도 하지 않을 것’라고 답한 문답을 들며 “솔선수범이 나라를 살리는 최선의 길”임을 제시했다.
 
탄허는 “최고의 지도자가 소인일 때는 그에 따라 10퍼센트의 극악질형(아주 악질) 관리가 등용되어, 10퍼센트의 극선질(아주 선한 부류)은 모두 암혈에 숨을 수밖에 없어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고 이렇게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수출이 늘어나고, 눈 뜨고 나면 수십 개의 대형 공장들이 들어서고,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되고, 우아하고 세련된 옷을 입는다고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으로 윤리와 도덕, 종교와 진리를 외면한 채 혼미에 빠져 있는 사회를 과연  발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느냐”면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일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정화하는 것만이 복지사회에 좀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가 노승일 때도 정치가들에게 젊은이들의 말을 경청하라고 권한 것도 예사로는 보이지 않는다.

탄허는 정치가에게 “돈벌이 하는 기업가의 건의나 주장보다는 밤새워 고민하고 국가의 미래를 주시하는 학자, 철학자 그리고 종교가의 말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하며 이렇게 채찍했다.
  
“정치만을 위한 정치는 백해무익이다. 진실로 인간을 위한 정치일 때만 그 기강이 바로 세워질 수 있다.”

 

 

◆ 탄허 스님은
 
탄허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이미 동양사상의 한 경지를 이룬 상태에서 조계종 초대 종정인 한암 스님과 20여 통의 서신을 주고 받은 끝에 21살에 강원도 오대산에 출가했다.
  
그는 스승 한암의 증명에 의해 23살 때 이미 승려들에게 불경을 강의하기 시작했고, 26살 때 훗날 조계종 종정이 된 고암 스님과 탄옹 스님 등 대선배 스님들에게 불교의 정수인 <화엄경>을 설했다. 이어 42살 때엔 한암에 이어 월정사 조실로 추대돼 수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탄허는 한자로만 100만자로 너무도 방대하고 유·불·선에 통달하지 않고선 해석이 불가능한 <화엄경> 80권을 붓다 이래 최초로 자국어로 번역해낸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10여년 간 매일 원고지 100장씩 쓰는 초인적인 작업을 거쳐 원고지 6만2천5백장 분량의 <신화엄경합론> 이름으로 내, 원효·의상 이래 최대의 불사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불교를 뛰어넘는 선각자이자 경세가이자 ‘현자들의 스승’ 구실을 했다. 탄허보다 10여년 연상인 함석헌(1901~89) 선생이 그를 자주 찾아 동양학을 물었고, 자타칭 인간국보였던 국문학자 양주동(1903~73) 박사는 탄허로부터 <장자> 강의를 들은 뒤 “장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도 탄허만큼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장 혜거 스님은 1960년대 초 여름 영은사에서 49재를 모실 때 한 밤중에 큰 바람이 불어 문짝이 펄렁거리고 모든 호롱불이 일시에 꺼져 모든 대중이 우왕좌왕 할 때 탄허 스님만은 <금강경>을 마지막 구절까지 독송하며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또 “탄허 스님은 밥짓고 일하느라 공부할 수 없는 공양주와 부목까지 함께 공부하도록 하기 위해 아침 공양 지을 때, 점심 공양까지 한꺼번에 밥을 짓도록 해 3년간 찬밥으로 점심 공양을 때웠을 정도로 공부하려는 이들을 돕는데 남달랐다”고 회고했다.  
 

 

◆ 탄허 스님이 보인 예지력
 
1949년 어느날, 탄허는 개미 떼가 자기들끼리 싸움을 해서 오대산 중대 법당과 뜰에 수백마리씩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를 본 뒤 역학 원리로 난이 일어날 것을 알고 상좌들을 경남 양산 영축산 고지에 있는 백련암으로 피신시켰다.
  
또 월정사의 한 암자에서 <신화엄경합론>을 번역하고 있던 그는 1968년 가을 장서와 번역 원고들을 모두 삼척 영은사로 옮겨두었다. 그러자 울진·삼척에 북한 무장간첩 120여 명이 침투했다. 월정사에 군단사령부가 세워져 소탕작전을 하면서 암자는 폐허가 되었다.  재가 될뻔한 ‘필생의 원고’를 미리 구해낸 것이다.
  
탄허는 월남전도 정확히 예언했다. 당시는 미국을 도와 국군이 파병돼 남한엔 ‘미국의 승리와 월맹 타도’의 분위기가 고조되던 때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숭산 스님이 “미국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 하나면 월남은 꼼짝 못할 것”이라고 하자 탄허는“역학의 원리를 볼 때 월남은 남쪽으로 화(火)인데, 미국은 태방으로 금(金)이어서 금이 불에 들어가면 녹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 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우담 화엄학연구소장은 출가승으로서 탄허 스님을 모실 당시 그의 남다른 예지력을 자주 지켜봤다. 1965년 겨울에 횡성에서 진부로 이동하면서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운전기사 뒤에 타고 있던 스님이 갑자기 내리자고 해서 황급히 내렸다. 날도 추운데 왜 그러느냐고 불평을 했더니 “운전기사의 미간을 보니, 곧 죽을 상이다”고 했다. 그런데 20분쯤 가다보니 버스가 전복되어 있었다. 서우담이 “왜 운전기사에게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탄허의 대답은 “몸 성히 운전 잘 하고 있는 사람한테 ‘당신 곧 죽을 것이니 운전하지 말고 한겨울 고갯길에서 차에서 내리라’고 하면 미친 놈이라고나 하지 내 말을 듣겠느냐”는 것이었다.
  
1979년 늦은 봄 고려대학교에서 봉직하고 있던 모 여교수가 안암동 대원암으로 스님을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박정희 대통령과 혼담이 오가고 있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탄허 스님은 “결혼 좋지, 그러나 서산에 지는 해는 부상(扶桑·해가 뜨는 곳)에 잡아맬 수 있을 때  좋은 것이지!”
 
박 전 대통령이 곧 세상을 마치리는 예언 때문인지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 탄허 스님 제자들의 회고
 
탄허 스님을 가까이서 겪었던 이들은 남달랐던 그의 면모를 생생히 전한다.
 
△혜거 스님(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장)=

1960년대 초 여름 영은사에서 49재를 모셨다. 한 밤중에 큰 바람이 불어 문짝이 펄렁거리고 모든 호롱불이 일시에 꺼지자 칠흑 같은 어둠 속 바람 소리 때문에 모든 대중이 우왕좌왕 했다. 그 때 탄허 스님만은 아무 동요 없이 <금강경>을 마지막 구절까지 독송했다.
 
탄허 스님은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심이 대단했다. 공부할 때는 승려들 뿐만 아니라 절에 사는 공양주(보통 공양간에서 밥하는 여성들을 일컬음)과 부목(절 살림을 위해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는 일군)까지도 함께 공부하게 하기 위해 아침 공양 지을 때, 점심 공양까지 한꺼번에 밥을 짓도록 했다. 공양주가 밥짓느라 공부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스님도 3년간 찬밥으로 점심 공양을 때웠을 정도로 공부하려는 이들을 돕는데 남달랐다
  
△전창열 변호사=

1963년 한국대학생 불교연합회 창립에 주도적이었다. 조계사에서 대한불교청년회가 신진 불교 학자인 이기영 박사를 초청해 원효 스님의 대승기신론 강의를 개설했다. 1964년 이기영 박사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서 개최된 대학생 수련회에 지도법사로 참석하고 돌아와서 탄허 스님에 대해 “이번에 월정사에서 만난 탄허 스님은 생불과 같은 위대한 스승이다”고 했다.

그 뒤 탄허 스님을 뵙기를 고대하던중 조계사에서 뵐 수 있다. 그 때 가르침에 대한 열정 그리고 지혜와 지식의 해박함과 심오함에 모두들 감탄했다. 탄허 스님과의 첫만남은 너무나 극적인 감동과 충격이었고 내 생애의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탄허 스님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스님에게 궁금한 것이 있을 때는 반드시 질문을 해야만 말씀을 해주셨다. 아무리 기상천외한 질문이 있더라도 전광석화 같은 답변이 이루어졌고, 불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 한겨레.조현 종교전문기자

 

 

 

 

탄허 스님 탄생 99년

 

17년 걸려 ‘화엄경’ 최초 완역 유·불·도 삼교에 통달

전란·공비 난입 족집게 예언도

 

내년은 탄허(呑虛) 스님 탄신 100주년이다. 1년이 남았는데 탄허 스님에 대한 책도 시중에 나왔다. 그의 사상과 철학, 한반도에 대한 예언이 담긴 책 ‘탄허록’(도서출판 휴)이 4월 5일 발간됐다.

탄허 스님(1913~1983)은 불교계의 대선사이자 대학자, 선각자다. 특히 화엄경을 최초로 번역한 걸로 명성이 높다. 화엄경은 선(禪)의 전통을 강조하는 한국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경이라고 얘기된다. 신라 때 원효, 의상이 화엄경 박사였다.
탄허 스님은 독특한 예측력으로도 화제가 됐었다.

   
탄허 스님은 독특한 예측력으로도 화제가 됐었다. 그는 강원도 오대산 중대암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1949년 법당 뜰에 개미 수백 마리가 떼로 죽어 있는 것을 봤다. 자기들끼리 싸움을 한 결과였다. 스님은 이를 보고 난(亂)을 예감, 짐을 챙겨 사흘 만에 경남 양산 지산리의 통도사 백련암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듬해 6·25가 터졌다.
   
   
독립운동가의 둘째아들
   
강원도 울진·삼척에 북한의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했던 1968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당시 스님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을 번역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랴부랴 짐을 싸라고 하더니 장서(藏書)와 번역 원고들을 모두 삼척 영은사로 옮겼다. 사람들이 대체 웬일인가 하며 웅성거렸다.

원고를 모두 옮긴 지 15일 뒤인 그해 11월 울진과 삼척에 무장공비가 침입했다. 진압작전에 흩어진 공비들은 오대산 일대로 도망쳤는데 이를 소탕하기 위한 군단 사령부가 하필 월정사에 설치됐다. 삼척 영은사에서 한 달가량 머물던 스님이 돌아와 보니 월정사는 암자 주변에 온통 참호가 파인 채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스님이 원고를 삼척으로 옮겨 놓지 않았더라면 ‘신화엄경합론’ 번역은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탄허 스님은 일제 치하였던 1913년 지금의 전북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에서 독립운동가인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불교에 입문하기 전 기호학파 최익현(崔益鉉)의 문파에서 한학(漢學)을 공부했으며 도학(道學)에도 상당한 경지를 이뤘다.

초대 조계종정 한암 스님과 20여통의 서신을 주고받은 그가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서 출가한 것은 22세이던 1934년이다. 그는 출가 이듬해인 23세 때부터 스님들에게 불경을 강의했다. 이후 3년간 묵언(默言) 참선으로 용맹정진한 스님은 훗날 조계종 종정이 되는 고암·탄옹 스님의 요청을 받고 26세부터 불교의 정수인 화엄경 강의를 시작한다. 당시 탄허가 15년간 오대산 경내에서 칩거한 얘기는 유명하다. 이때의 인연으로 탄허는 1957년부터 화엄경 번역을 시작, 한자 100만자(범어 10조9만5048자)에 이르는 방대한 이 불경의 ‘정수’ 80권을 17년 뒤인 1974년 한국어로 완역했다.
   
탄허 스님은 1967년 조계종 초대 중앙역경원장을 지내며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한글 번역 작업에도 투신했다. 그는 일본 도쿄대학 화엄학 특강, 국립타이완대학에서 비교종교 특강을 하며 주변국에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서우담 화엄학연구소장은 주간조선에 “화엄경은 한문으로 된 경전 원본만 80권에 달한다”며 “스님은 원본 80권과 화엄경의 대의(大義)를 담은 화엄경론 40권, 해석을 담은 화엄경소초 150권을 하나로 합쳐 자국어로 번역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탄허 스님은 이 방대한 화엄경을 17년간 매일 원고지 100장씩을 번역하는 초인적 작업 끝에 총 6만2500장 분량의 ‘신화엄경합론’이란 제목으로 1974년 발간했다. 이 작업은 원효·의상 이래 최대 불사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탄허 스님은 승려이지만 불교에 국한되지 않고 유교·도교·불교와 한학·주역을 아우르는 선각자이자 경세가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스로 ‘국보’임을 자처했던 국문학자 양주동(1903~1977) 박사는 탄허 스님으로부터 ‘장자’ 강의를 들은 뒤 “장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도 탄허보다 잘할 수는 없을 것”이라 극찬했다.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꼽혔던 함석헌(1901~1989) 선생 역시 스님을 자주 찾아 동양학을 물었다고 한다.
   
   
 대변혁기 정치가 역할 강조
   
탄허 스님은 “대변혁의 시기에는 정치가의 역할이 막중하다”고 했다. “그들의 손에 우리나라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흔히 정치인이 되면 세상 전부를 얻은 양 호령하는데 정치인은 나라의 어른이 아니라 심부름꾼”이라며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대통령은 세워진 기강에 따라 철학을 제공하는 사람이며 그 호령은 각계 지도자, 가정의 부모가 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가 국민의 의사를 묵살하고 권력쟁취에 휘말려 싸우는 것은 귀신 혓바닥 장난보다 못한 짓”이라며 “정치의 본질은 그렇게 더러운 곳에 있지 않다”는 말도 남겼다.
   
그는 대한민국의 앞날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모두들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은 산고의 고통이다. ‘주역’에 보면 한국은 간방(艮方)이다. 간(艮)은 갓난아기요, 결실을 의미한다. 바로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때의 진통이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아기를 낳듯이 우리나라 1980년대 이전은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는 때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찬 아픔이다. 가까이서 지켜보면 한심스럽고 어수선하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만 큰 안목으로 지켜보면 희망찬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이 고통이 지나면 우리의 숙원이던 남북통일의 서광도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탄허 스님이 입적한 때는 1983년으로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方山窟)에서였다.

세수(世壽) 70세, 법랍(法臘) 49세.

 

 

 

 

 

 

탄허스님의 미공개 예언

출처 : 신동아 2000년 기사중 일부

 

인류의 구원은 한국에서 이루어진다


1995년 1월 3천 3백여 명이 넘는 사망·실종자를 낸 일본 고베 대지진 사건이 터졌을 때 생전에 ≪주역≫을 풀어 미래 세계를 예언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던 고(故) 탄허 스님의 예지가 언론에 다시 화제가 된 바 있다.
탄허 스님은 생전에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도교 등 동양사상 전반,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난해하다는 ≪화엄경≫과 ≪주역≫의 으뜸 권위자로 평가받은 당대의 학승이다.

 

1983년 자신의 임종 시간을 불과 10시간 차이로 예언하고 열반, 몸에서 13과의 사리가 나온 고승으로 6·25전쟁과 울진·삼척 공비 침투 사건을 사전에 예견하고 재난을 대비함으로써 자신의 예지능력을 입증한 일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이 베트남에서 이기지 못하고 물러날 것임도 예견했다.

 

1980년 언론인 김중배(전 한겨례신문 사장)씨는 "예지의 거창함이 지나쳐 허황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뿌리치기 어렵다. 그러나 자연과학 지식까지 동원한 그의 예지에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고 탄허 스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글을 쓴 바 있다.

 

탄허 스님의 예지가 다시 화제가 된 배경은 이번 대지진이 그가 생전에 예언한 일본열도 침몰의 전조가 아니냐는 관측 때문이었다. 일본열도 침몰에 관해 탄허 스님은 "일본은 손방(巽方)으로 손(巽)은 주역에서 입야(入也)로 푼다. 들 입(入)자는 일본 영토의 침몰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지구는 지축 속의 불기운[火氣]이 북극으로 들어가 빙산을 녹이고 있는데, 북극의 얼음이 완전히 녹게 되면 일본은 영토의 3분의 2 가량이 바다로 침몰하게 된다는 것이 탄허 스님의 주역으로 본 일본운명론의 골자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것은 원자력 잠수함이 북빙하의 얼음 밑을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부연한 바 있다.

 

그는 ≪주역선해≫ ≪부처님이 계신다면≫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으며, 여기에는 미래에 대한 그의 예언이 담겨 있다 탄허 스님은 역학을 근거로 하여 미래를 보는 눈은 훨씬 포괄적이며 나아가서 인류사회의 미래를 우주적인 차원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구의 표면은 물이 4분의 3이고 육지가 4분의 1 밖에 안 되는데, 앞으로 지구의 대변화를 거치고 나면 바다가 4분의 1이 되고 육지가 4분의 3이 된다고 밝힌다. 그는 이같은 전 세계적인 지각변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현재 지구의 지축은 23.5도 기울어져 있는데 이것은 지구가 아직도 미성숙 단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구 속의 불기운이 북극으로 들어가서 빙하가 완전히 풀려 녹을 때 지구의 변화가 온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음양을 모르는, 즉 이성을 모르는 처녀가 이제 초경을 치르면서 규문(閨門)을 열고 성숙한 처녀로 변하는 것처럼 지구도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초경이라는 피를 흘리는 것은 지구가 지각변동과 함께 지축이 바로 정립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로써 결실의 신시대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예언자(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세계 멸망기가 아닌가 합니다. 또는 성경에서 말세와 예언자의 말은 심판이니 멸망이니 하지만, 역학적인 원리로 볼 때는 심판이 아니라 성숙이며, 멸망이 아니라 결실인 것입니다."

(≪주역선해≫ 제 3권)

 

탄허 스님은 또 재미있는 설명을 한다. 지구를 여자의 몸으로 비유해 볼 때, 최근의 세계적인 풍조가 여자들이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은 ? 지구가 적나라하게 자신의 변신을 드러낼 조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처녀가 초조(初潮) 이후에는 인간적으로 성숙하여 극단적인 자기 감정의 대립이 완화되듯이, 지구가 성숙해진 후천의 세계에는 극한과 극서의 혹독한 기후가 없어진다고 한다.

지구가 성숙한 처녀로 변화해 갈 때 우리나라와 이웃나라는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피를 흘리는 희생이 따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탄허는 김일부의 ≪정역≫의 원리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

 


한국 그 때 우리나라는 동남해안 1백리 땅이 피해를 입게 되나 서부해안쪽으로 약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해서 늘어날 것이다. 또 지금은 중국 영토로 되어 있는 만주와 요동반도 일부가 우리 영토로 속하게 될 것이다.

이런 파멸의 시기에도 우리나라는 가장 적은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는 한반도가 지구의 주축부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김일부의 ≪정역≫ 이론에 따르면, 한국은 지구의 중심부분에 있고 간태(艮兌)가 축으로 작용한다. 일제시대의 일본 유키사와 박사는 계룡산이 지구의 축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중국 역학으로 보면 중국은 진방(震方)이요 장남(長男)이다. 그래서 장남인 중국은 미국과 사이가 오래가지 못한다. 이것은 미국이 태방(兌方)으로 소녀(少女)에 해당하는데, 노총각인 중국과 남녀관계로 얼마간은 관계가 지속될지 모르나 곧 틀어지기 쉬운 이치이다.
 

 

소녀인 미국은 자신과 제일 궁합이 맞는 소남(小男)인 한국과 가까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은 아내로서 남편인 한국을 내조해 그 결과 남편의 성공을 드러내게 된다.

한편 중국과 소련 사이에 전쟁의 발생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왜냐하면 소련은 감방(坎方)이고 중남(中男)인데 장남인 중국과 같은 양이기 때문에 서로 조화할 수 없고 대립되기 때문이다.

 


일본 미래의 역사에 관한 한 일본은 가장 불행한 나라이다. 영토의 3분의 2 가량이 바다로 침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문화를 전파시켜준 한국에 대해서만도 지난 5백 년 동안 무려 49차례에 걸친 침략행위를 일삼아 왔다. 이처럼 일본의 선조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미래의 업보가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동양사상의 근본 원리인 인과의 법칙이요, 우주의 법칙인 것이다. 또 일본은 독립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작은 영토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영향권 내로 들어오게 된다. 

 
강대국의 지하 핵폭발 소규모의 전쟁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인류를 파멸시킬 세계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지진에 의한 자동적인 핵폭발이 있게 되는데, 이때 핵보유국들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을 것이다. 남을 죽이려고 하는 자는 먼저 죽고 남을 살리려고 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사는 법이다. 

 

 

탄허 스님은 이러한 현상은 성숙으로 가기 위한 인류의 비극적 운명이며 이때 전 세계 인구의 60-70%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소멸'된다고 고통스럽게 말한다. 이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죽게 되는데 ≪정역≫의 이론에 따르면 이때에 놀라지 말라는 교훈이 있다고 전한다.

 

탄허 스님은 지구가 성숙되는 결실시대로 접어드는데, 이 결실을 맡은 방위가 간방(艮方)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간방은 지리적인 팔괘(八卦) 분야로 보면 바로 우리 한국이다.

 

 

'간'은 갓난아이요, 결실을 의미한다. 바로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으로 처음과 끝을 함께 뜻한다. 조금 풀어서 얘기하자면 결실은 뿌리의 결과이니 뿌리가 시(始)라면 열매는 종(終)이다. 일단 결실이 되고 나면 뿌리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 열매이다. 그것은 열매가 다시 뿌리가 되기 때문에 뿌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니, 이것으로 보아도 결실은 처음과 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한편 간은 연령적으로 20대 청년을 뜻하는 소남(小男)의 뜻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부모의 여분인 결실인종이기 때문이다. 20대 청년들이 부모의 말도 선생의 말도 다 듣지 않고 오직 내 말만 들어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결실인종이므로 스스로 뿌리가 되려고 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든다.

 

 

"4·19 혁명이 청년학도들의 궐기로 이승만 정권을 타도했는데, 이렇게 청년 학생의 힘으로 정권이 붕괴된 일은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4·19 혁명 이후 세계 도처에 학생들의 봉기 현상이 유행병처럼 번져나가 그 결과 선진제국의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를 형성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 간방에 시간적으로 '간의 도수'가 왔고 간의 주인공인 20대 청년들이 정권을 붕괴시킨 것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 아니할 수 없는 거지요."

 

 

탄허 스님은 간방(우리나라)에 시간적으로도 결실의 간의 도수(度數)가 이미 와 있으므로 어두운 역사는 끝맺게 되고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인류역사의 시와 종이 모두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엄청난' 발언이다. 우리나라의 1980년대는 바로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때의 진통이 있던 때이다.

이 아픔은 희망찬 아픔이었다. 이 고통이 지나면 우리의 숙원인 남북통일의 서광도 엿보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땅이 결실이 되려면 꽃잎이 져야 하고 또 꽃잎이 지려면 금풍(金風)이 불어야 합니다. 그 금풍(?)이란 西方바람(?)을 말하는데 이 바람은 곧 해방 이후부터 우리나라에 불어오기 시작한 이른바 '미국바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금풍인 미국바람이 불어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 맺는 가을철, 다시 말해서 결실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도움으로 인류사의 열매를 맺고 새로운 세계사를 시작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한편 탄허 스님은 스스로 종교인이면서도 현재의 종교는 앞으로 없어질 것이라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뱉는다.

 

 

"앞으로는 왕도정치(王道政治)가 세워질 것입니다. 누구의 덕으로 사는지 모를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과연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가 궁금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종교의 알몸이 세상으로 들어날 것입니다. 현재의 종교는 망해야 할 것입니다. 쓸어 없애버려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끼리 반목 질시하고 네 종교, 내 종교가 옳다고 하며 원수처럼 대하는, 이방인이라 해서 동물처럼 취급하는 천박한 종교의 벽이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그 장벽이 허물어지면 초종교가 될 것입니다. 김일부 선생은 유(儒)·불(佛)·선(仙)이 하나가 된다고 했고, 강증산 선생도 그렇게 된다고 했습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탄허 스님은 또 인류사의 열매가 바로 이 땅에서 맺어질 것이라고 한다. 한국문제의 해결은 곧 세계문제의 해결과 직결되며, 우리나라를 초점으로 시작과 끝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남북분단문제와 통일문제가 전체 인류적 차원에서 보면 아주 작은 문제 같지만, 오늘날 국제정치의 가장 큰 쟁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에서 북한의 핵문제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지도국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북한정권의 행보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가 적선해 온 여음(餘蔭)으로 우리 한국은 필경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선 이 우주의 변화가 이렇게 오는 것을 학술적으로 전개한 이가 한국인(김일부) 외엔 있지 않으며, 이 세계가 멸망이냐 심판이냐 하는 무서운 화탕(火湯) 속에서 인류를 구출해낼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있는 이도 한국인 외에 또다시 없는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와서 조국을 통일하고 평화적인 국가를 건설할 것이며 모든 국내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국위를 선양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한국은 세계적인 신도(神都), 다시 말하면 정신 수도(首都)의 근거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주역선해≫ 제 3권
 

 

한편 탄허 스님은 세계 구원의 방안이 이미 한국 땅에서 준비되고 있다고도 말한다. 그가  남긴 이같은 말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탄허스님의 이같은 예언은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남북극빙하의 빠른 해빙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출처 : http://korea1691.com/zbxe/a24/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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