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독수리의 시/문정희

경호... 2012. 1. 20. 00:27

 

 

 

 

 

독수리의 시

 

 

 

눈알 속에 불이 담긴 맹금

나는 부리로 허공을 쪼던 독수리였는지도 몰라

 

 

 

나는 칼잡은 여자!

도마 위에 날것을 얹어 놓고 수없는 상처를 내고

자르고 썰고 토막치고 살았지

불로 끓이고 지지고 볶고 살았지

 

 

 

나는 한 달에 한 번 피보는 여자

제 몸을 찢어 아이를 낳아 사람으로 키우지

내가 시인이 된 것은 당연한 일

다리미가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고

찌개가 끓는 동안 글을 썼지

밤이 되면 남자가 아니라

허물 벗은 자신의 맨살을 만지며

김치의 숙성처럼 스스로 익어가는 목소리를 기다렸지

 

 

 

나는 알고 있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기교가 아니라

내가 나를 키우는 자궁의 시간을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의 피로 쓰는

천년 독수리의 시 쓰는 법을

 

 

 

 

                                      문     정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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