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대화(對話) / 마종기

경호... 2012. 1. 20. 00:26

 

 

 

 

 

 

 

 

 

               

 

 

 

 

 

 

 

 

 

 

 

 

대화(對話) 

            
    마종기

 

아빠, 무섭지 않아?
아냐, 어두워.


인제 어디 갈 꺼야?
가 봐야지.


아주 못 보는 건 아니지?
아니. 가끔 만날 꺼야.


이렇게 어두운 데서만?
아니. 밝은 데서도 볼 꺼다.


아빠는 아빠 나라로 갈 꺼야?
아무래도 그쪽이 내게는 정답지.


여기서는 재미 없었어?
재미도 있었지.


근데 왜 가려구?
아무래도 더 쓸쓸할 것 같애.


죽어두 쓸쓸한 게 있어?
마찬가지야. 어두워.

 
내 집도 자동차도 없는 나라가 좋아?
아빠 나라니까.


나라야 많은데 나라가 뭐가 중요해?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돌아가셨잖아?
계시니까.


그것뿐이야?
친구도 있으니까.


지금도 아빠를 기억하는 친구 있을까?
없어도 친구가 있으니까.

 
기억도 못 해 주는 친구는 뭐 해?
내가 사랑하니까.


사랑은 아무 데서나 자랄 수 있잖아?
아무 데서나 사는 건 아닌 것 같애.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 거야?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시가 불이야?
나한테는 등불이었으니까.


아빠는 그래도 어두웠잖아?
등불이 자꾸 꺼졌지.


아빠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
등불이 있으니까.


그래도 멀어서 안 보이는데?
등불이 있으니까.


―아빠, 갔다가 꼭 돌아와요. 아빠가 찾던 것은 아마 없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꼭 찾아 보세요. 그래서 아빠, 더 이상 헤매지 마세요.

―밤새 내리던 눈이 드디어 그쳤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오래 전

고국을 떠난 이후 쌓이고 쌓인 눈으로 내 발자국 하나도 식별할 수 없는

천지지만 맹물이 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난다.

 

 

 

 

 

 

 

                                                          

                                                     

 

* Sophia/ Heart of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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