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漢詩및 시조

맑은 차 한 사발

경호... 2012. 1. 15. 16:58



      # 맑은 차 한 사발

                       

                             
          엷은 노을 남은 볕이 절집을 비추이니
          반쯤은 붉은 빛에 반쯤은 누런 빛
          맑은 차 한 사발이 다만 내 분수거니
          누린내 나는 세상 온 종일 바쁘구나.

          澹靄殘陽照上方 半含紅色半含黃
          담애잔양조상방 반함홍색반함황
          淸茶一椀唯吾分 羶臭人間盡日忙
          청다일완유오분 전취인간진일망 


          - 아암(兒菴) 혜장(惠藏, 1772-1811)의
          산거잡흥(山居雜興)」20수 중 제14수의 3,4구 -
           

          뉘엿한 햇살에 노을이 맑다.
          빗긴 해가 산꼭대기 방장으로 빗겨든다.
          종일 돌아다녔으니 저도 좀 쉬자는 눈치다.
          이때의 이 빛깔을 어찌 설명해야 좋을까.
          붉은 빛이라 하기엔 누런 빛을 띠었고,
          누렇다고 하자니 붉은 기운이 감돈다.
          툭 터진 안계(眼界) 너머로 구름 노을이 탄다.
          사람의 한 뉘도 저와 다를 게 없겠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떠오른 아침 해가 서산낙조로 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맑은 차 한 잔을 끓여내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다.
          따뜻하다.
          이만 하면 내 살림이 참 넉넉하지 싶다.
          저 산 아래 중생들의 세상에는 서로 뺏고 빼앗는 아귀 다툼이 한창이다.
          헐고 뜯는 싸움판에서 마음은 까맣게 내던져 놓고,
          탐욕의 누린내가 진동을 한다.


          찻잔을 들어 다향을 맡고,
          한 모금 가만히 머금어 내린다.
          다 고맙다.
          사위(四圍)는
          어느새 어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