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六祖壇經

혜국 스님의 육조단경 법문3

경호... 2011. 10. 5. 04:10

“빠득~빠득 애쓸 때 참 화두 나온다”

 

봉은사 육조단경 혜국 스님 논강3

 

 

화두는 ‘근본자리’찾는 마음 공부

‘헛노력’ 세월 견뎌내면 화두 성성

  

 

지난번에는 『육조단경』에서 말하는 좌선의 정의에 소개했습니다. 조금 더 보충해서 설명하면 행주좌와(行住坐臥)가 모두 좌선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거꾸로 돌아다니건 바로 돌아다니건 앉아있건 서있건 내 마음의 중심이 딱 잡힌 무념의 상태를 좌라고 합니다. 이런 세계를 『육조단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알아듣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런 금쪽같은 가르침을 전해 주고 가신 어른들이 걸었던 하늘을 바라보고 흙을 밟는다는 것 자체가 복(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조단경』에는 많은 불사를 했던 양무제가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달마대사가 공덕이 없다고 답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없다고 했을까요. 여기서 주의할 것은 ‘공덕(功德)’과 ‘복(福)’의 차이를 잘 관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달마대사는 공덕이 없다고 한 것이지 복이 없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공덕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에서 벗어난 무념의 상태라 일컫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덕에 ‘상(相)’이 붙으면 복인 것이지요. 그러나 복은 공덕과는 달리 유한합니다. 쌓였으니 언젠가는 다 없어집니다. 그러면 최고의 공덕, 완전무결한 공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성품이 공(空)한 것을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난타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수행이란 그냥 몇 달 하면 최고의 경지에 오를 줄 알았는데 집중도 안 되고 딴 생각만 드는 겁니다. 특히 집에 두고 온 어여쁜 아내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것이었어요. 이것을 안 부처님은 난타를 데리고 천상에 올라갑니다. 그곳에 가니 천녀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빈 의자가 있는데 그곳이 왜 비었느냐고 물으니 한 천녀가 난타라는 스님이 수행을 열심히 한 복으로 훗날 이곳 천상의 왕으로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이후 난타 스님은 정말 열심히 정진했어요. 그곳에 가려고요. 그런데 어느 날 부처님은 그를 데리고 다시 화탕지옥을 갑니다. 죄업을 진 사람들이 펄펄 끊는 큰 가마솥에 너무나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솥에는 형벌을 받는 사람이 없는데도 불을 때고 있었어요. 이상하게 생각해 그곳에 있는 이에게 물었더니 난타라는 스님이 수행공덕으로 천상에 나지만 나중에 그 복이 다하면 이곳에 떨어질 것이기에 그 때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난타 스님은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힘을 잃으면 떨어지듯 복도 마찬가지로 결국은 없어진다는 사실을요. 그 후 열심히 정진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복이 없으면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행이 복을 쌓기 위한 목적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화두는 참으로 탁월합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모양 없는 것으로 번뇌망상을 하나하나 화두로 바꾸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화두를 접하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조사 어록만큼 ‘근본자리’를 정확하게 얘기한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출가자의 길을 걷되 화두를 멀리하라고 한다면 저는 당장 옷을 벗을 것입니다. 만약 그 분이 부처님이라도 말이죠.

한 때 저는 깨달음이란 것은 얼마간 열심히 정진하면 얻게 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해도 해도 안 되더라고요. 회의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때 성철 스님께서는 헛노력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화두는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닙니다. 빠득빠득 애를 쓰고 용을 쓰십시오. 그런 것이 밑받침이 되어야 화두는 성성해지고 화두가 참나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화두는 닦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린 사람 밥 찾듯이, 목마른 이 물 찾듯이, 외아들 잃은 어미가 죽은 자식 생각하듯 간절함이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몰록 반드시 길이 보일 것입니다. 열심히 정진하십시오.


정리=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2004-03-17/747호>

 

***혜국 스님의 3번째 법문 내용입니다. 봉은사 육조단경의 여기서 그친 것은 아니지만 이후부터는 다른 스님께서 법문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