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유의 詩

나는 누구인가

경호... 2010. 12. 7. 19:43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게 명령하는 구너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런 인간이고 내일은 다른 인간인가.

아니면 동시에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자기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신은 안다.

내가 그의 것임을.

 

 

 

나치에 항거하던 행동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베를린 감옥세서 숨을 거두기 전에 쓴 시

 

 

독일의 목사이자 신학자. 1906년 출생. 튀빙겐 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

유학 후 목사가 되었다. 베를린 공과대학에 재직 중 나치에 저항하는 자세를 고수하다가 비합법적인 포교 활동을 이유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한편 그는 영적인 주제로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이자 음악가이기도 했다. 굳건한 종교적 신념과 삶,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글들로 차세대 기독교를 이끌 신학자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1943년 4월 강제수용소에서 처형당했다. 사후에 대표작<옥중서간>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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