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적(李彦迪, 1491-1553), 〈신설(新雪)〉
新雪今朝忽滿地
怳然坐我水精宮
柴門誰作剡溪訪
獨對前山歲暮松
오늘 아침 첫 눈이 온 천지 가득하니
황홀히 넋을 잃고 수정궁에 앉았다네.
그 누가 내 사립 문 섬계처럼 찾아줄까
홀로 앞산 세밑의 소나무를 마주 보네.
아침에 문을 여니 온 세상이 은세계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비벼 뜬다.
첫 눈이 밤새 소복소복 내렸구나. 수정궁으로 변한 집에 앉아 발자국 하나
묻지 않은 순결한 세상을 내다본다.
3구의 섬계(剡溪)는 고사가 있다. 동진(東晋) 때 왕헌지(王獻之)가 산음(山陰)
땅에 살 때 일이다. 밤중에 큰 눈이 내렸다. 문득 잠이 깬 그는 창을 열고
펑펑 내리는 눈을 보았다. 술을 내 오라 하여 큰잔에 가득 따라 부었다.
둘러봐도 사방은 고요했다. 들뜬 마음, 그리운 생각이 두서 없이 밀려와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으니 마음을
더 가눌 수가 없었다. 문득 섬계(剡溪)에 사는 벗 대안도(戴安道)가 보고 싶었다.
그는 다짜고짜 작은 배를 띄워 밤새 섬계로 배를 저어 갔다. 아침에야 배가
대안도의 집 앞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문을 두드려 주인을 부르지 않고
그저 발길을 되돌리는 것이 아닌가. 까닭을 묻자 그가 대답했다. “내 본시
흥이 일어 왔는데, 흥이 다한지라 돌아간다. 굳이 만날 것 있는가.”
혼자 앉아 곱게 내린 흰 눈 세상을 바라보다가 그도 괜시리 마음에 흥이 일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아침에 내 집 사립문을 느닷없이 두드려줄 왕헌지 같은
벗이 없으니, 허전한대로 저 사시장철 푸르른 세모(歲暮)의 소나무를 바라볼 밖에.
《논어》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의 늦게 시듦을 안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라 하였거니와, 언제나 한가지 모양으로 우뚝 서서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저 낙락장송이 그 아침 따라 유난히 애틋했던 것이다.
본래 2수의 연작이다. 이어지는 둘째 수를 마저 보자.
探道年來養性眞
爽然心境絶埃塵
誰知顔巷一簞足
雪滿溪山我不貧
몇 해를 도를 찾아 참된 성품 길렀나니
마음 경계 상쾌해라 티끌 먼지 하나 없네.
안회의 단사표음(簞食瓢飮) 족함을 누가 알리
눈 덮힌 시내와 산, 가난을 내 몰라라.
도학자다운 자부와 득의가 문면에 가득하다. 궁리양성(窮理養性) 하며
마음 밭을 일구매, 마음에 티끌 하나 앉지 않은 투명하고 상쾌한 경지가
내 안에서 열리는 것을 느낀다. 비록 누추한 집에서 대그릇에 밥 담아
먹고 표주박에 물 떠먹는 청빈의 삶을 살지만, 대지 위에 덮힌 저 순결한
백색 앞에서 나는 혼자 부자가 된 느낌이다.
출처;한문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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