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마지막을위한이야기

마음이 흰 보자기로 쌓여있는 사람

경호... 2008. 12. 16. 14:28

국사암 입구에 조성된 쌍계연지雙溪蓮池에는 요즈음 연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습니다. 연못을 반으로 나누어 백련과 홍련이 서로 아름다움을 경쟁이라도 하는 듯이 다투어 꽃을 피워내고 있지요. 작년에는 홍련이 훨씬 많이 열리더니 금년에는 백련이 시샘이라도 하듯 피어나고 있습니다. 홍련은 분홍 빛깔이 화사하기 그지없는 꽃이고, 백련은 우아한 기품이 단아하면서도 청초하게 느껴지는 꽃입니다.  향기 또한 일품이라 연못가에 서 있기만 해도 그윽한 연꽃 향이 자욱하게 몸에 스며듭니다. 연꽃 향을 맡다보니 다음과 같은 예화가 떠오릅니다.

 

한 불자가 연못가에서 연꽃 향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때 홀연 연못 안에서 한 노인이 솟아올라 그를 향해 외쳤습니다.

" 이도둑놈아, 썩 꺼지거라." "아니, 나는 연꽃을 꺾지도 않았는데 어찌 도둑이라 하십니까?"

"제 것이 아닌 연꽃의 향기를 그토록 탐닉하고 있으니 향기를 도둑질한 것이 아니냐?"

그때 갑자기 험상궂은 사나이가 나타나 연못 속으로 들어가서는 연꽃은 물론이고 줄기와 뿌리까지 한 다발이나 꺾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노인은 멀거니 쳐다보기만 할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의아하게 여긴 불자가 말을 던졌지요.

"아니 영감님, 아까는 향기만 조금 맡았는데도 도둑놈 취급을 하더니, 왜 저 사람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겁니까?"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세간의 소인배는 악업에 몸을 담고 살고 있지만, 그대는 불자가 아닌가? 흰 보자기에는 작은 티끌 하나만 있어도 표가 나는 법일세."

 

그렇습니다. 불자는 마음이 흰 보자기로 싸여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흰 보자기로 싸여 있는 사람은 티끌이 붙게 되면 금방 티가 나게 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검정 보자기로 마음을 쌀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불자로서의 자신의 마음을 지켜나간다면 우리 마음 보자기는 하얗게 빛날 것입니다. 여기에 마음 보자기를 빛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살생하지 않겠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겠습니다.

삿된 음행하지 않겠습니다.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술 마시지 않겠습니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5계를 제대로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오늘, 우리는 이러한 다섯 계율을 경직되게 지키다보면 혹여 따돌림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지킬 수 없는 계는 받을 수 없다고 하여, 유보하고 있는 사람도 더러 있지요.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계를 어길 수도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불교용어로, 개차법開遮法이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연다는 것은 계를 어긴다는 의미요, 닫는다는 것은 굳게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토끼 한 마리가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달아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잠시 후 사냥꾼이 쫓아와서 물었습니다. "토끼가 어느 쪽으로 도망갔습니까?" 정직하게 왼편으로 달아났다고 하면 토끼가 죽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오른편으로 달아났다고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버리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공부를 완성하지도 못한 사람이 스스로 공부를 완성했노라고 하는 것은 커다란 거짓말입니다. 즉 어떠한 경우에도 이런 대망어大妄語를 범해서는 안되지요.

 

음주는 그 자체로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앞의 네 가지 계율을 어기는 동기가 되기에 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피치 못할 경우에는 술을 마실 수도 있겠지만, 마셔도 취하지 말고 설혹 취하더라도 다른 네가지 계율을 범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이 다섯가지 계율은 단신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당신의 소중한 삶을 아름답게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도덕률인 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