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마지막을위한이야기

자신의 맑은 성품을 들여다보세요

경호... 2008. 11. 13. 18:57

부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사람들은 수행이라는 인因을 통해서 깨달음이라는 과果를 이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오셔서 불성자리를 활짝 열어보이심으로써(開示) 신속하게 때달아 들어갈 수 있는 길이(悟入)열리게 된 것입니다.

불성은 본래 항상 존재하며 청정 합니다. 따라서 바로 지금 여기서 한 생각 쉬어주기만 하면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이는 선가의 대표적 어록인 <<마조록>>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도는 닦는 데 속하지 않는다 닦아서 체득한다면 닦아서 이루었으니 다시 부서져 성문聲聞과 같아질 것이며, 닦지 않는다 하면 그냥 범부에 불과하다.' 결국 '도는 수행일 필요로 하지 않는다(道不用修)'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세계(無生法忍)는 본래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어서 도를 닦고 좌선할 필요가 없으니 닦을 것이 없고 좌선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래의 청정선'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닦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닦아야 할 것은 몸과 마음이요, 보아야 할 것은 성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조 홍인 스님의 수제자였던 신수 대사는 말하셨습니다. "몸은 때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토대이니라. 그러니 때때로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과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 이는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서 깨달음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육조 스님은 이를 비유해 다음과 같은 시를 읊으셨습니다.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토대가 아니네.

불성은 항상 청정하거늘,

어느 곳에 먼지가 끼겠는가?

 

나무와 거울은 몸과 마음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몸과 마음은 생멸하는 것이지요. 생멸하는 몸과 마음을 붙잡고 불생불멸 자리에 이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다 근원적인 것은 성품입니다. 불생불멸의 성품이야말로 항상 청정(常淸淨)이기 때문에 닦을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닦아야 하겠지만, 성품자리는 '보면(見性)' 되는 것이지 닦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깨들음은 태초에 환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성을 들여다보십시오. 맑고 청정한 당신의 본 모습을 말입니다. 당신은 티없이 맑은 거울을 가지고 이 땅에 왔습니다.지금 그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그곳에 당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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