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마지막을위한이야기

일단 웃으세요! 웃을 일이 생깁니다.

경호... 2008. 11. 12. 20:54

지리산 국사암 뜨락에는 벌써 설중매의 봉오리가 오밀조밀 맺혀셔 조만간 벌어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년 이른 봄, 눈이 하얗게 내리던 가운데 피어난 설중매의 조그마한 분홍 꽃잎이 얼마나 청초했던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때 아닌 폭설을 감당하기 쉽지 않은듯 힘겨워 보이기는 하였지만. 흔들림 가운데서도 꿋꿋이 꽃대를 세우고 독특한 아름다움과 향취를 경내에 그윽이 풍기던 설중매의 고운 자태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금년에도 그런 장관을 다시 볼 수 있으려나 자못 설레는 맘 금할 길 없습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는 쌍계사 인근 화개동은 한겨울 잠깐을 제외하곤 거의 일 년 내내 꽃이 서로 다투는 듯 피어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꽃 화花자에 열 개開자가 아니겠는지요. 봄이 본격적으로 오기도 전부터 매화가 피기 시작하고 이어서 산수유, 진달래,철쭉 등으로 이어지다가 마침내 벚꽃이 만개하면서 무르익은 봄의 절정을 알립니다. 특히 화개장터에서 상계사까지 이르는 약 5킬로미터 구간의 십리벚꽃은 곳곳마다 터널을 이루며  감탄사를 연발시키지요.

 

하지만 벚꽃 철보다 더욱 권하고 싶은 때는 매화 철입니다. 벚꽃 철에는 원낙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모여들어 교통도 불편하거니와, 꽃 자체도 날씨에 따라 예고 없이 후딱 피어났다가 돌연히 져버리는 까닭에 만개하는 시기를 맞추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매화는 꽃도 계속 피고 지며 오래 가는데다가 방문객도 비교적 적어 이른 봄을 느긋하게 만끽하기에는 제격입니다.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울창한 매화동산에서 청매와 홍매의 빛깔과 향기에 푹 잠겨본 사람만이 진정한 봄의 향취를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매화건 벚꽃이건 봄에 피는 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동백과 같은 상록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봄꽃은 꽃이 먼저 폈따가 지고 나서, 잎사귀가 파릇파릇 돋아난다는 사실입니다. 매화나 벚꽃은 물론 산수유, 철쭉,진달래, 배꽃 등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겨우 내내 앙상했던 가지에 먼저 아리따운 꽃을 한껏 피우고, 그 꽃이 떨어지면서 잎사귀가 달리기 시작하니 이른바 '꽃이 먼저 잎이 나중' 인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꽃은 깨달음을 상징하며 잎은 수행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꽃이 피고, 잎이 나중에 달리는 현상은 '깨달음이 먼저, 수행이 나중' 이라는 방식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일반적으로는 수행이 우선하고, 각고의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를테면 잎사귀가 먼저 달리고 꽃이 나중에 피는 경우이지요. 하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 수행을 열심히 해서 그 결과로 깨침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불보살님의 가르침과 원력에 힘입어 깨달음과 중생교화를 함께 추구해나가는 것이 훨씬 빠를 것입니다. 이는 본성자리에 있어서는 이미 부처와 중생이 동일하다는 것을 먼저 확신함으로써 수행의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토대 위에서는 더 이상 완벽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추어진 완벽을 지켜나가기만 하면 되는 수행이 가능해집니다. 다시 말해서 수행이란 내게 없는 그 무엇을 말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춘 것을 확인하고 써나가는 것입니다.

 

사실 닦음과 깨침은 그 차원을 달리합니다. 닦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닦는 것(修身.修心)이며, 깨닫는다는 것은 볼래 성품을 보는 것(見性)입니다. 다시 말해서, 닦음은 몸과 마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깨침은 성품의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조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道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닦지 않으면 범부에 불과하다.'

 

요컨대 개달음은 디지털식이며, 수행은 아날로그식입니다. 디지털식은 '단박' 에 뜨지만, 아날로그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시계는 10이라는 숫자를 입력하면 10시를 곧바로 맞출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날로그 시계는 분침과 시침을 돌려 1시부터 2시, 3시,4시,..를 거쳐 10시로 가야하지요. 이러한 이치로 깨침은 디지털식으로 언제 어디서나 단박에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되, 닦음은 아날로그 식으로 지속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꽃이 먼저 잎이 나중' 혹은 '디지털식 깨침과 아날로그식 닦음'이라는 표현은, '일단 먼저 웃어라 그러다보면 점차 웃을 일이 생긴다'는 이치로 설명할 수 있겠지요.

 

꽃중의 꽃은 웃음꽃일 겁니다. 먼저 웃음꽃을 피우십시오. 그리고 나면 웃을 일이 생길 것입니다. 하비만 일단 웃으면서 웃을 일이 생기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웃음으로 가득 채워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웃으십시오. 그러면 웃을 일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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