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佛敎에關한 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경호... 2007. 10. 1. 01:57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 칠통 조규일



무엇을 깨달음이라 합니까?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깨달음이란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즉 "나"를 아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럼 깨달음으로 아는 것은 무엇을 아는 것입니까?



깨달음으로 아는 것이란
어떤 거창한 것 새로운 것
우주 만물 진리 법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으로
가아(假我)로 살면서 가아(假我)가 자기 자신인줄 알면서 살다가
어느 날 불현듯 지금의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이 아니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행위(것)를 수행이라 하고
수행을 통하여 "진정한 나"의 실체를 하나 하나 알아 가는 것을
수행의 계단 수행의 경지로 드러남이라 하고
이렇듯 밝혀 가며 자기 자신을 바로 보고 바로 알고
정점에 이르러 "진정한 내가 누구인가?"를 확연히 아는 것으로
"진정한 나" "진아" "나"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깨달음으로 아는 것이란
어떤 거창한 것 우주 진리 법이 아니라 바로 "나"를 아는 것입니다.
"나"를 알고 나서 진리도 알고 법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깨달음을 얻습니까?



깨달음은 얻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올바로 보고
"진정한 나""나"를 찾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찾으면 됩니다.






깨달음은 누구로부터 얻고 구하고 찾는가요?



깨달음은
누구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고
누구로부터 전해 듣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 "나" 밖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 "나" 밖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 "나"로부터 얻을 수 있고
자기 자신 "나"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으며
자기 자신 "내"안에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깨달음을 어떻게 얻고 구하며 전해듣고 찾는 것인가요?



자기 자신을 바로 보고 "나"를 인식하고
인식한 "나"를 부정하여 "나"를 구하고
구한 "나"를 부정하여 "나"를 얻고
얻은 "나"를 부정하여 "나"를 끊임없이 찾고 구하고 찾아
"진정한 나" "진아(眞我)" "나"를 찾는 것입니다.



지금 인식하고 있는
"나"라고 인식한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계속 부정과 긍정을 하며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나" "나"를 찾는 것입니다.


깨달음에는 특별한 법이 없다


깨달음에는 특별한 법이 없음에도
많은 수행자 및 제가 수행자들은
특별한 법을 많이 알려고 무진 애들을 쓴다.
그리고 특별한 법을 많이 아는 것이 마치 수행이 많이 되고
수행의 경지가 높아진 것으로 착각들을 하고
특별한 법, 진리(法) 찾아 헤매는 이들이 많다.

깨달음에는 특별한 법이 없고
특별한 그 어느 것도 필요 없다.
깨달음은 자기 자신 "나"를 알면 된다.
"나"를 아는데 어떤 특별한 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나"라고 하는 이 몸이 있고
이 몸을 유지하려는 "내가" 있고 "내 마음"이 있고
"나"라고 하는 몸으로 인한 생로병사를 인식 생각 의식하는 "내가" 있고
인식 생각 의식함으로 희로애락과 고통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하는 "내가" 있는 지를 알고
"나"를 찾으면 되고 "나" 찾아 "나"를 바로 알면 되고
"마음"을 찾으면 되고 "내 마음"을 찾아 "마음"을 바로 알면 된다.



깨달음은 무식(無識)의 앎으로부터 온다


깨달음은
자기 자신
"나"라고 생각 의식 인식하고 있는 "나"를 알면 된다.
"나"를 아는데 어떤 특별한 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앎을 알면 되고
"나"라고 하는 "나"의 실체를 알면 되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 때
"나"는 "나"라고 알고 있는 "나"로부터 벗어나
"나"를 찾으니
"나"를 찾아가는 "나"는 아는 식(識)의 "나"이고
"진정한 나"는 "내"가 아닌 "나"로 무식(無識)의 "나"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나"로
"내가" 아니다 할 것이 없는 "나"다

이는
"나"라고 인식한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고
"내 마음"은 "나"를 벗어나 있지 않고
"내 마음"은 "나"라고 하는 "내 안에서" 작용하는
모든 "내 안의 작용"이 내 마음이니
"내 마음"은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내가 알고 있는 내 안의 식(識: 아는 것)의 모든 작용이니
이 아는 것 식(識)이 없는 "나"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내 마음"은
"내 마음"이라 할 것이 없는 "마음"이고
"마음"은 이름이 그러한 것으로
아는 것(識)이 인식하고 있는 약속된 언어의 명칭 식(識)이니.
식(識) 없는 무식(無識)의 "나"에게
"나"랄 것 없고
"마음"이랄 것 없고
"나" 아닌 것 없고
"내 마음" "마음" 아닌 것이 없다.

이렇듯
깨달음은 나를 알아야 하지만
내가 지닌 내 마음을 가꾸면
내 마음이란 것이 없는 마음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무식의 앎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다.





"
나"를 인식하며 "나"를 찾는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나" "내 것"으로 알고
육체 내지는 영혼에 사로잡혀
육체와 영혼의 모순된 허상에 허덕인다.

"나" "내가"
육체인 사람은 영혼을 인식해야하고
영혼인 사람은 공(空)을 인식해야하고
공(空)인 사람은 공(空)한 가운데 생겨났다 없어지는 생멸을 인식해야하고
생멸이 인연인 사람은 진실허공 속 묘유(妙有)를 인식해야하고
진공묘유(眞空妙有)인 사람은 각종 종교에서 말하는 신, 신성. 신명, 불을 인식해야하고
각 종교의 신 신성 신명 불을 인식한 사람은 에너지(기, 기운), 빛, 생명을 인식해야하고
에너지 빛 생명을 인식한 사람은 절대자를 인식해야하고
절대자를 인식한 사람은 절대자의 생명력과 존재력을 인식하며
육체의 인식으로부터 절대자의 생명력 존재력의 인식까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올바로 깨닫지 않으면 아니 된다

진정한 자기 자신의 본질은
육체에 있지 않고 영혼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아니 되고
영혼에 있지 않고 공(空)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아니 되고
공(空)에 있지 않고 인연(因緣)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아니 되고
연기의 인연에 있지 않고 업(業)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아니 되고
업에 있지 않고 식(識: 아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아니 되고
아는 것 식(識)에 있지 않고 진공묘유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며 아니 되고
진공묘유에 있지 않고 각종 종교에서 말하는 신, 신명, 신성을...
깨닫지 않으면 아니 되고
각종 종교의 신(하나님 부처님), 신명에 있지 않고
에너지(기, 기운), 빛, 생명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아니 되고
에너지(기, 기운), 빛, 생명에 있지 않고
절대자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아니 되고
절대자에 있지 않고 순수의 있는 그대로의 대 생명 대영혼에 있음을
깨닫지 않으며 아니 된다.

이처럼 하나 하나 그 깨우침을 깊이 하며 나아가되
진정한 자기 자신의 본질 "진정한 나" "진아" "주인공"을 찾아가야 하고
찾아가는 가운데 세속적인 구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의식은 늘 깨어서 육체로 하여금 아주 작게는 영혼을 이기지 못하게 해야한다.

생활을 육체와 더불어 하되
육체에 끌려 다니지 말고
육체를 부정하고 인식한 "나"라고 인식한
인식의 "나"와 함께 있도록 하라
그리고 인식하고 있는 "나"를 의식 인식하고
의식 인식한 "나"를 계속 바로 보고
"진정한 나" "나"를 찾아가야 한다.

이렇듯 "나"를 인식하고 있는 의식은 깨어
"가아(假我)의 나"를 하나 하나 벗기며 "진정한 나" "나"를 찾을 때
수행의 계단 수행의 경지를 하나 하나 오르게 될 것이며
수행의 계단을 하나 하나 오를 때 모든 진실한 길은 하나 하나 열리고
하나 하나 진실한 길이 열릴 때마다
미명의 어둠은 점점 밝아지고
"진정한 나" "내가" 점점 드러날 것이다.



육체의 나를 시작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길을 잘 찾고 못 찾고는
길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달린 일이다.
수행은 길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
육체의 나를 시작으로 해서
길 없는 길
내부 깊숙이
"자등명"
"내 안에 이미 있는 하나님"
"마음"
"즉심즉불(卽心卽佛)"
"진정한 나" "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도
찾고 싶은 것을 전혀 찾지 못했다면
길을 찾아가는 그대가
길 위에서
길모퉁이에서
올바로 보지 못하고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길을 올바로 보고 관하고 관찰하고 성찰하지 못한
길 없는 길을 밝히는
견의 잘못이다.

(이 게시판 59-67번호에 있는 글로...2003. 11. 18) 

 

깨달음의 순간은


"나"라고 하는 내가 없고
"나"란 경계가 없어
"나"라고 하는 몸과 마음이 사라지고
"나"로 하여금 있는 땅과 하늘이 무너져야한다.


깨달음의 순간은
내가 눈을 뜨고 있음에도 한 번 더 눈을 번뜻 뜨고
("나"라고 하는 자성경계의 일원상이 깨짐과 함께
"나"라는 경계가 사라져서 보게 되는
늘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는데)
보는 순간 눈앞에 보여지는 모든 것 모든 곳에...
어! 저기에 내가 있네
이상한 생각에
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자기 자신을 향하여 바라보았을 때
어! 내 안에 밖의 모든 것들이 있네.

밖에 모든 것이 내 안에 있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밖에 있네
안팎 없이 일체가 하나구나.
내가 그렇게도 찾고 찾았던 깨달음이 내 주변에 있고
나를 떠나 있지 않았으며 나와 함께 있었구나
나는 단 한 번도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도...
이제껏 그것을 찾아 다녔다니...
(하는 생각과 함께 너무나 어히 없다는 생각이 스침과 함께)
아~~하하하~~~
(주변을 의식할 필요도 없이 주변이 떨어갈 듯 웃음이 나온다.)


"나"라고 하는 자성경계의 일원상인 한 방울의 물이
진리의 바다 바닷물에 떨어져
물과 진리의 바닷물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이는 마치 한 방울의 물이
물에 떨어져 물과 하나가 된 것과 같다.


간혹 질문하는 분들이 있는데...
견성이나 깨달음의 순간에 보는 자가 따로 있습니까?
견성 성불 돈오는 주객이 없는 상태라고 하는데...
주객이 없으면 보는 자도 없지 않습니까?
보는 자도 없는데 누가 봅니까? 라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지금 그대가 보는 것과 같이 보는 자는 분명히 있다.
지금 그대가 눈앞에서 무엇인가를 볼 때에 그대가 보는 것과 같이
그 누가 따로 있어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보는 것이다.
그대가 지금 눈앞의 사물을 보듯
견성할 때는 본성의 성품을 내가 보는 것이고
돈오 확철대오할 때는 내가 안팎이 없는지를 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직접 보기 때문에
자기 자신 스스로 자기를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는다면
해오(解悟)와 혜오(慧悟)는 보아도 보는 것이 분명하지 않아 불분명할지라도
견성(見性) 돈오(頓悟)는 보는 것이 확연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의심할 여지없이 본 것이 견성인지 돈오인지 확연히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 본 사람은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은
해오는 깨달음이 아닌지를 알고 또한 해오는 혜오가 아닌지를 알고
혜오 역시 돈오의 깨달음이 아니고 견성이 아닌지를 알며
견성 역시 성불이 아니고 돈오가 아닌지를 안다.
확철대오한 사람이야말로 스스로 안팎이 없고 주객이 없는지를 보았기에
누가 인정해 주고 해 주지 않고 상관없이 스스로 분명하고 명확하다 하겠다.


그 위치에 도달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혜오 견성 성불 돈오가 같다고 말하는 것이고
안팎이 없고 주객이 따로 없어 보는 자가 없다고 말하지만
지금 그대가 눈앞에 있는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이 직접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보게 된다.

지금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경계에서 보는 것과 같이
혜오하면 혜오의 경계에서 내가 보는 것이고
견성하면 본 성품으로의 내가 본 성품을 보는 것이고
주객이 없고 안팎이 없는 내가 주객이 없고 안팎이 없는 것을 보는 것이다.
혜오할 때는 혜오의 경계를 가지고 일체를 보는 것이고
견성을 하면 본 성품으로의 내가 본 성품을 보는 것이고
돈오를 하면 안팎이 없고 주객이 없는
오직 "나"만이 있음을 보는 것이다. 천지에....
나 홀로 있음으로 보는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어...

이렇듯 깨달음의 길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것이다.
처음부터 내가 보고 내가 인식하고 경험하고 체험하며
진정한 나의 실체를 찾아가는 것이며
진정한 나의 실체를 찾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임을 확인 인식하는 것이다.


2006. 01. 15 10:39

  한 소식 깨달음은 / 칠통 조규일

 

 

선문답 중
깨달음을 얻었다함은
본분종사를 듣고
본성의 자리를 감잡고 느낀 것으로
거의 대부분이 확철 대오가 아닌
맑고 깨끗한 거울을 봄이고

 

수행 중
한 소식 깨달음을 얻었다함은
확철 대오로
무형,유형의 소리에 공명현상을 일으켜
허공과 하늘이 무너지고
맑고 깨끗한 거울마저 깨진 것으로
본성자리를 확연히 보고 체험한 것이다


                 99. 5. 8

 


     확철 대오  / 칠통 조규일

 

본성자리를 확연히 보고 체험한다는 것은

 

우주의 유형, 무형의 소리에
"덜커덩 꽝"하는 순간
눈이 떠 있는데도
눈이 한번 더 번쩍 뜨이고
번쩍 뜨이는 순간 진실 허공을 보고
진실 허공을 보는 순간
진실 허공과 하나로 있는 상태의 경험을 체험하는 순간
너무나 어이없어 자신도 모르게
주변이 떠나갈 듯
대소(大笑)한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을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웃는다

 

이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나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을 면밀히 관찰해
순서적으로 나열해 본 것으로
이 한 순간이 확철 대오의 순간이다 


                  99.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