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열애/ 이수익

경호... 2015. 7. 22. 23:28

 

 

열애/ 이수익

 


때로 사랑은 흘낏

곁눈질도 하고 싶지.

남몰래 외도(外道)도 즐기고 싶지.

어찌 그리 평생 붙박이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나.


마주 서 있음만으로도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저리 마음 들뜨고 온몸 달아올라

절로 열매 맺는

나무여, 나무여, 은행나무여.


가을부터 내년 봄 올 때까지

추운 겨울 내내

서로 눈 감고 돌아서 있을 동안

보고픈 마음일랑 어찌 하느냐고

네 노란 연애편지 같은 잎사귀들만

마구 뿌려대는

아, 지금은 가을이다. 그래, 네 눈물이다.


- 시집 꽃나무 아래의 키스』(천년의 시작,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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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을 붙박이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마주 서서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절로 열매 맺는 은행나무 같은 사랑이 가능하다면 '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카사노바 식의 둘러대기를 하지 않더라도 통념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사랑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제인 폰다’ 주연의 ‘바바렐라’라는 SF영화가 있었다. 섹스의 방식도 진화를 거듭하여 마주보고 두 손바닥을 맞대는 것만으로 정신적, 육체적 합일감에 이르는 미래형 섹스를 영화에서 선보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대구 중앙통 송죽극장(혹은 자유극장)에서 나도 보았지만 다른 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그 장면은 비교적 또렷이 남아있다. 41세기 지구엔 더 이상 삽입 섹스는 없으며, 오로지 감정의 일치만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서로 주파수를 맞춘 채 손을 맞대고 있으면 사랑은 완성된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의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그런 사랑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꼭 전통적 방식의 사랑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라기보다는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같은 감정의 호사에 더 목이 말라서다. 정말 그저 바라만 보아도 아니면 손바닥만 갖다 대고도 충만한 사랑이 왔으면 좋겠다.

 

 군데군데 은행알이 보도블럭 위로 떨어져 뒹굴고 있지만 아직 남쪽에는 은행 잎이 광채를 띨 정도로 노랗게 물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녁답 쌀쌀해진 날씨가 점퍼를 뚫고도 감지되는 걸 보면 머지않아 만산에 단풍 들고 노란 은행잎을 매달 것이다. 그럴 때마다 조상 기제사 모시고 성묘가듯 팔공산 단풍도로를 시속 30킬로로 달리곤 했는데 별일 없으면 올해도 그러지 싶다. 뒤에서 빵빵거리거나 말거나 동공을 활짝 열고 차창 밖 풍경을 즐길 것이다. 아니 슬퍼할 것이다. 

 

 '보고픈 마음일랑 어찌 하느냐고' 노란 연애편지 같은 은행잎사귀도 직설법 추파처럼 마구 뿌려댈 것이다. 오늘로서 시월도 절반이 넘어갔다. 짙어만 가는 이 가을날들 어떻게 다 흔들리고 추슬러야할지 걱정이다. ‘네 눈물’을 어찌 다 거두어야할지도 난감하다.

 

 

권순진

 

 

Goddess Of Love - Tro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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