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목계장터 / 신경림

경호... 2015. 7. 22. 23:26

 

 

목계장터 /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 시집『농무』(창작과비평사,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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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가 처음 실린 시집 <농무>는 초판으로 고작 300부를 무허가 출판사에서 자비로 찍은 것이기에 그 출발은 얼핏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듬해 이 시집으로 신경림 시인은 제1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그 다음해 창작과비평사의 '창비시선' 첫 번째 시집으로 이 시집의 증보판이 나왔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로 시작되는 나옹선사의 가락과 닮은 이 시가 민족문학의 길라잡이가 된 셈이다.

 

 민중시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이 시의 또 다른 업적은 당시 한국 시단을 지배했던 모더니즘 계열의 난해시에서 벗어나 시와 현실, 시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는데 있다. 또한 지금까지도 문학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며 문단에서 가장 후한 지지를 받는 작품의 지위에 있다. 특히 서사 한편이 압축되어 들어앉은 것 같은 정확한 묘사와 민족적 유산인 민요가 시 안에서 친숙한 가락으로 승화된 점은 후학들에게 경전을 보는듯한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는 유난히 강과 나루와 장터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많다. 삶의 주요무대로서 민중의 애환이 토속 언어로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리라. 남한강안의 수많은 나루터 중에서 가장 번잡했던 ‘목계’도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의 전설이 서려있다. 정조 때(1789년) 실시한 호구조사에 따르면 당시 충주는 조선8도에서 네 번째 대읍(한양 19만 명, 평양 11만 명, 의주 9만 명, 충주 8만7천명)이었고 그 중심에 목계나루가 있다.

 

 목계나루는 지방 조세를 수로를 통해 한양 마포나루로 운송하는 물류의 핵심기지였으며, 뭍으로는 강원, 충청, 경상, 경기에 이르는 큰 길목이라 사람의 내왕이 끊이지 않았다. 목계장터는 한강 이남의 가장 큰 저자였다. 겨울철 결빙기를 제외하고 생필품 전 품목을 가지고 목계나루로 올라와 곡물, 소금, 목재 등과의 거래가 이뤄졌다. 여기에는 동해에서 잡히는 생선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 1920년대 후반 충북선 열차가 개통되고 1930년대부터 자동차가 물자를 수송하기 시작했다. 팔도에 살기 좋은 고장의 하나이며 중원문화의 발상지였던 목계나루와 저자의 번창은 여기서 멈췄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도 종적을 감췄다. 해방 이후론 하항의 기능이 완전 소멸되었고, 70년대엔 다리가 놓이면서 나룻배마저 사라졌다. 바람이 되고 떠돌이가 되지 않을 장돌뱅이는 없었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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