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산책]/서양화

드뷔시의 `기쁨의 섬`

경호... 2015. 7. 22. 23:00


                                   와토의 '시테르 섬으로의 순례' - 1717 년, 루브르 미술관 소장



    대학 3 학년 때였던가... 교양과목이었던 서양음악사 시간에 인상파 작곡가
    드뷔시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드뷔시에게 무척 화가 나 있었다.
    그 이유는 그에게 건네진 인상파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그가 너무나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인상파 화가들을 유독 좋아했던 때였고 고흐에게
    미친듯 매혹당했던 시기였음으로 인상파 자체를 거부하는 드뷔시가 야속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훗날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인터넷으로 인상파 예술가들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를 찾아보면서 나는 비로서 그 당시의 드뷔시를 이해하게 되었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드뷔시가 인상파를 싫어한 까닭'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스라한 기억을 되살려 드뷔시의 '기쁨의 섬'과 와토의
    '시테르 섬으로의 순례'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를 나의 친구님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프랑스 인상파 작곡가로 알려진 클로드 아실 드뷔시(1862.8.22 ~ 1918.3.25)의
    작품 '기쁨의 섬'은 드뷔시가 1904 년에 발표한 피아노 독주곡이다.  
    18 세기에 활동했던 프랑스 화가 와토의 <시테르 섬으로의 순례>를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이 곡은 드뷔시의 작품 속에서도 시테르 섬이 관능과 쾌락이 넘쳐
    흐르는 아름다운 사랑의 섬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독주곡은 드뷔시의 지시를 받은 지휘자 몰리나리(Bernardino
    Molinari, 1880~1952)에 의해 이 다시 관현악으로 편곡된다.

    크레타 섬의 북서쪽에 있는 이 시테르(키테르)섬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가 바다 물거품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으로 알려져 이 사랑의 여신에게 바쳐진 섬이다.
    18 세기 초 프랑스에서 이 시테르(키테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구애와 사랑의 장소라는 뜻을 갖게 되었고, 그 당시 젊은 연인들은
    비너스의 사랑을 배우기 위하여 크레타 섬 북쪽에 위치한 이 섬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드뷔시의 '기쁨의 섬'은 이런 신화적인 이야기를 사랑의 주제로 담아
    환상적이면서도 현란한 피아노의 기교가 느껴지는 곡으로서
    전 곡이 사랑의 환희를 담고 있으며 1905 년 2 월, 리카르도 비니에스에 의해
    초연 되었다.

    후대의 음악 평론가들은 이 '기쁨의 섬'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들 말했다고
    전해진다.

    "기쁨의 섬은 연애지상주의자이기도 한 드뷔시가, 애정감각이 남다른 까닭에
    신화 속 미의 여신 비너스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가장 드뷔시다운 감각으로
    그려냈다. 이 기쁨의 섬은 와토의 그림을 보면서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시테르 섬에 사는 비너스를 떠올리면서 감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 와토 (1684년 ~ 1721년)

    벨기에의 국경 가까이에 있는 프랑스 발랑시엔느에서 태어났다.
    1702년 파리로 나와 당시 그랑드 오페라극장의 장식화가였던 C.질로에게 배우고
    이어 장식화가 C.오드랑의 조수가 되어, 주로 인물사생과 희극배우들을 스케치
    했다.

    오드랑은 당시 뤽상부르궁의 어용화가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의 접촉으로
    궁전에 있는 루벤스나 플랑드르계 명화를 접하고 감화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16세기 베네치아파에서도 영향을 받아, 점차 로코코회화의 창시자로서의
    작풍을 확립해 나갔다.


    - 시테르 섬의 순례 [The Pilgrimage to Cythera]

    1717년 와토가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 회원자격을 취득하기 위하여 출품한
    것인데, 이 그림이 심사에 통과함으로써 그는 아카데미의 정회원으로 추대
    되었다. 그림의 테마는 당시에 유행한, 희극에 나오는 한 구절인 "우리와
    함께 시테르 섬으로 순례를 떠납시다. 젊은 처녀들은 애인을 얻어 옵니다."
    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와토의 '시테르 섬으로의 순례'


    화면은 비너스상, 배와 사공, 높은 산과 큐피드라는 신화적인 배경 속에
    서로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8쌍의 남녀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이 섬을 향해 가는 사람들인지 섬을 떠나는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로댕은 이 그림은 한 쌍의 남녀를 8 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그린 것이며,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가면서 사랑이 점차 깊어가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작품은 18세기 초 새로운 로코코미술을 탄생시킨 그림으로, 출품한
    당시에는 《시테르 섬의 순례》라고 하였으나 뒤에 《우아한 향연
    (궁정 사람들의 잔치)》라고 고쳤다. 귀족들의 풍속과 유행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런 양식의 그림을 즐겨 그리는 화가들에 의해 후에
    '우아한 연회화(아연화)'라고 하는 미술의 새로운 장르가 자리잡게 되었다.



                                                    와토의 '시테르 섬으로의 순례'


    오늘날 와토는 18세기 프랑스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와토는 생존시에는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의 작품을
    경멸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가 오늘날과 같이 뛰어난 화가로 평가받는 것은
    그가 죽은 후 100년 이상이 지난 뒤였고, 와토의 생가 뒷마당에 그의 흉상이
    세워진 것은 1865년이 되어서였다.

    그는 당시 베르사유궁전을 중심으로 꽃핀 화려한 왕조문화의 궁전풍속을
    비롯하여 주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던, 밝고 우아하며 어딘지
    모르게 관능적인 매력을 풍기는 풍속이나 취미에 적합한 작풍을 전개하여
    ‘아연(雅宴: fte galante)’으로 불리는 로코코회화 특유의 테마와 정서를
    확립해가고 있었다.

    자연관찰에 착실하였으며,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다른 로코코화가들에게
    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육체적으로 연약했던
    와토는 일찍부터 폐병을 앓아 1720년 요양차 런던에 갔다가 건강이 악화
    되어 다시 파리에 되돌아왔다.

    그런 와중에서도 친구 제르생이 화상을 시작하였을 때, 가게의 간판 그림
    으로 평생의 걸작 <제르생의 간판>을 그리기까지 하였다. 이 그림을
    완성하고 얼마 안 가서 37 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18세기의
    전 유럽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밖의 작품으로 <전원오락>, <파리스의 심판>, <제우스와 안티오페>,
    이탈리아희극에서 취재한 <질> 등 명작들이 파리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와토의 '시테르 섬으로의 순례'를 보고 보들레르는
    아래와 같은 시를 썼기에 몇 구절 옮겨 보고자 한다.


    시테르 섬으로의 여행 / 샤를 보들레르


    내 마음, 한 마리 새처럼, 즐거이 날아
    밧줄 둘레를 자유로이 돌고 있었다.
    배는 구름 없는 하늘 아래서 달리고 있었다,
    마치 찬란한 햇빛에 취한 천사처럼.

    저 어둡고 쓸쓸한 섬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건 시테르 섬, 노래로도 유명한 고장
    노총각들 누구나 꿈꾸는 진부한 '황금의 나라'
    그런데 보시오, 이제는 가난한 땅이 아니오.

    달콤한 비밀과 마음의 향연의 섬이여!
    고대 비너스의 희한한 유령이
    향료처럼 너의 바다 위에 감돌고
    사랑과 시름으로 정신을 채운다.

    초록빛 도금양과, 활짝 핀 꽃들로 가득하고
    온 백성들로부터 영원 무궁 숭배받던 아름다운 섬이여,
    거기엔 찬양으로 타오르는 가슴들의 한숨이
    장미원의 향기처럼, 아니 산비둘기의

    영원한 울부짖음처럼 울려 퍼지누나!
    ---하나 시테르는 이제 더없이 메마른 땅
    날카로운 고함 소리에 흔들린 자갈투성이의 황무지,
    하지만 나는 얼른 보았다. 이상야릇한 것을!

    꽃을 사랑하는 젊은 여승이
    남모를 열정에 몸이 닳아서
    스쳐 지나가는 미풍에 옷자락 펄럭이며 찾아간 곳은
    숲 그늘에 감싸인 신전은 아니었다.

    우리의 하얀 돛이 새들을 놀래 준 만큼
    가까이 바닷가를 스쳐 갈 때 우리가 본 것,
    그것은 가지가 세 개 달린 교수대
    삼나무처럼, 시커멓게 하늘에 우뚝 솟아 있었다.
    .......




                          드뷔시의 기쁨의 섬

'[예술작품산책] > 서양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경자 화백 그림2   (0) 2015.07.30
장 프레데릭 바지유  (0) 2015.07.22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  (0) 2015.07.22
뭉 크 Edvard Munch  (0) 2015.07.14
Winslow Homer  (0) 2015.07.14